[안나 까레니나] 1부 3
옷을 입은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향수를 뿌리고 루바시까의 소매를 매만진 뒤, 익숙한 동작으로 주머니마다 담배와 지갑, 성냥, 두 줄의 사슬과 장식이 달린 시계를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손수건을 한차례 털고는, 닥쳐온 불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결하고 향기롭고 건강하며 육체적으로 활기찬 자기 자신을 느끼며 걸음마다 가볍게 다리를 떨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서는 이미 커피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편지와 관청에서 온 서류가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자리에 앉아 편지들을 읽었다. 그중 하나는 아내의 영지에 있는 숲을 매입하려는 상인이 보낸 매우 불쾌한 편지였다. 숲은 어쩔 수 없이 팔아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 아내와 화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 얘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불쾌한 것은, 그 일로 인해 금전적인 이해관계가 아내와의 화해라는 당면 과제와 뒤얽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금전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일 것이며, 따라서 숲을 팔기 위해 아내와 화해하려 들 것이라는 생각, 바로 그러한 생각이 그에게 모욕감을 불러 일으켰다.
편지를 다 읽은 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관청에서 보낸 서류들을 앞에 가져다 놓고 두 건의 서류를 재빠르게 훑어보며 커다란 연필로 몇 군데 표시한 다음 한쪽으로 치우고서 커피 잔을 들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직도 촉촉한 조간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자유주의적인 논조를 지니되 극단적이지 않은, 대다수가 지지하는 경향의 신문을 구독했다.(1) 본래 학문에도 예술에도 정치에도 관심이 없는 그였지만 그 모든 분야에 대해 다수의 사람들과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이 고수하는 견해를 확고하게 지지했으며, 오직 다수의 사람들이 견해를 바꾸는 경우에만 그 역시 입장을 바꾸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견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그것들이 은연중에 저절로 바뀌었다.
(1) 당시 뻬쩨르부르끄에서 발행되던 신문 <목소리>를 암시한다. 1863년부터 1884년까지 발행되던 이 신문은 자유주의적 관료들의 기관지 역할을 했으며, 일명 ‘여론의 바로미터’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 세간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노선도 견해도 선택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노선이나 견해들이 스스로 그에게 찾아왔다. 그건 그가 모자와 프록코트의 모양을 직접 고르는 대신 사람들이 착용하는 것을 택하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일정한 틀을 갖춘 사회에서 생활하는 그에게, 보통 성년기에 발달하는 일정한 사고 활동이 요구되는 경우 특정한 견해를 갖는다는 것은 모자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일이었다. 또한 자신이 속한 부류의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보수적인 입장보다는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생활 방식에 더 잘 들어맞기 때문이었다. 자유주의 당파가 말하기를 러시아에서는 모든 게 비루하다는데, 실제로 스쩨빤 아르까지치만 해도 빚만 많고 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자유주의 당파가 또 말하기를 결혼이란 낡은 제도이며 개혁이 불가피하다는데, 실제로 스쩨빤 아르까지치에게 가정생활은 큰 만족을 주지 못했으며 그로 하여금 성정에 어긋나게 거짓말을 하고 위선을 저지르도록 강요했다. 자유주의 당파가 주장하기를, 아니 정확히 말해서 암시하기를, 종교란 일부 미개한 국민들을 위한 굴레일 뿐이라는데, 실제로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가장 짧은 기도 중에도 다리의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승에 사는 게 무척이나 즐거울 수도 있는데 도대체 왜 저승에 관해 그토록 무시무시하고 과장되게 말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유쾌한 농담을 좋아하는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가끔씩, 혈통을 자랑하려 든다면 그것이 류리끄(2)에서 멈춰서는 안 되며, 최초의 선조인 원숭이를 부정해서도 안된다고 말함으로써 점잖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게 즐거웠다. 이와 같이 자유주의적인 경향은 스쩨빤 아르까지치의 습관이 되었고, 그는 자신이 구독하는 신문을 좋아했으니, 식사 후에 피우는 담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머릿속을 가벼운 연기로 채워 주곤 했기 때문이다. 신문의 사설을 읽어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었다. 급진주의가 모든 보수주의적인 요소들을 전부 집어삼킬 듯 위협하고 있다는 둥, 정부는 반드시 혁명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둥 원성을 높이는 것은 오늘날 전적으로 쓸데없는 짓이며, 오히려 ‘우리의 견해로는 위험은 가상의 혁명 세력에 있는 게 아니라 진보를 가로막는 전통의 완강함에 있다’ (3) 운운. 그는 또 다른 재무 관련 기사도 읽었는데, 그것은 벤담과 밀을 언급하면서 정부 부처를 은근히 비꼬는 내용이었다. 그 모든 비야냥의 의미를, 누가 누구를 겨냥하여 어느 건으로 조소를 보내는 것인지를 그는 특유의 재빠른 분별력으로 간파해 내고는 언제나처럼 모종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마뜨료나 필리모노브나의 충고와 집안이 불행에 잠겨 있다는 사실이 떠오르는 바람에, 오늘은 그러한 만족감도 훼손되고 말았다. 그는 보이스트 백작(4)이 풍문대로 비스바덴을 방문했다는 소식, 이제 백발을 사라질 거라는 기사, 사륜 경마차 판매 광고와 한 젊은이의 구직 광고를 읽었으나 이러한 소식들은 전처럼 그에게 평온하고도 아이러니한 만족감을 안겨 주지 못했다.
(2) 러시아 최초의 국가를 세운 통치자. 노브고로뜨 공국의 창설자이자 류리끄 왕조(852-1598)의 시조. 러시아어로 ‘바랴그’라고 불리는 북방 바이킹족 출신으로, 동슬라브인의 청에 따라 루시(옛 러시아) 땅에 와서 지배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류리끄 왕조 다음으로는 로마노프 왕조(1613-1917)가 이어진다.
(3) <진보를 가로막는 전통의 완강함> 에 관한 논평이 1873년 1월 21일 자 <목소리>에 실린 바 있다.
(4) Friedrich Ferdinand von Beust(1809-1886).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상이자 비스마르크의 정치적인 적수. 당시 러시아의 일간지에 그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신문 읽기를 마치고, 두 잔째 커피를 마시고, 버터 바른 깔라치(슬라브인들이 즐겨 먹는 굵은 고리모양의 흰 빵)를 먹어 치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끼에 묻은 빵 부스러기들을 털어 낸 뒤, 너른 가슴팍을 쫙 펴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속에 특별히 유쾌한 감정이 떠오른 게 아니라, 소화가 잘 돼서 기쁨의 미소가 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의 미소가 곧바로 모든 것을 상기시켰기에 그는 생각에 잠겼다.
두 아이의 음성(스쩨빤 아르까지치는 그것이 막내아들 그리샤와 큰딸 따냐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이 문밖에서 들려왔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실어 나르다가 쏟아 버린 참이었다.
“지붕 위에는 승객들을 태우면 안 된다고 내가 말했잖아.” 딸아이가 영어로 소리쳤다.
“자, 얼른 주워!”
‘완전 엉망친창이군.’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생각했다. ‘저렇게 아이들끼리만 뛰어다니고 있다니.’ 그는 문으로 다가가서 아이들을 소리쳐 불렀다. 녀석들은 기차 노릇을 하던 나무 상자를 내던지고는 아버지 방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딸아이가 거침없이 뛰어들어와서 웃으며 아버지를 부둥켜안더니 그의 목에 매달린 채 언제나처럼 볼수염에서 풍기는 익숙한 향수 냄새를 음미했다. 딸아이는 고개를 숙인 탓에 불그스레해진, 온화하게 빛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뒤돌아 달려 나가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이들을 붙잡았다.
”엄마는 어때?“ 딸아이의 매끈하고 보드라운 목덜미를 어루만지면서 아버지가 물었다. 그러고서 자신에게 인사하는 아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안녕 얘야“라고 답했다.
그는 자신이 아들을 덜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늘 공평하게 대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아들아이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차가운 미소에 웃음으로 답하지 않았다.
”엄마요? 일어났어요.“ 딸아이가 대답했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또 밤새 한숨도 안 잤다는 거로군.‘
”그래, 엄마 기분은 좋아?“
딸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웠고, 어머니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며, 아버지도 틀림없이 그 사실을 알면서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며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딸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그 순간 아버지 역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혔다.
”몰라요.“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공부하라는 소리도 안 하고 미스 헐이랑 같이 할머니 댁에 놀러 가래요.“
”그럼 다녀오렴, 우리 딴추로찌까.(따냐의 애칭)“ 그가 아이를 붙든 채 보드라운 손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 그래, 잠깐만.“
그는 어제 벽난로 위에 놓아두었던 사탕 상자를 가져다가 그중에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과즙 사탕 두 개를 골라 건네 주었다.
”그리샤 줘요?“ 딸아이가 초콜릿 사탕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그래.“ 그는 딸아이의 어깨를 다시 한번 쓰다듬고는 정수리와 목덜미에 입을 맞춘 뒤 보내 주었다.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마뜨베이가 말했다.
”그런데 여자 의뢰인 한 분이 찾아왔는데요, 나리.“ 그가 덧붙였다.
”온 지 오래되었나?“
”30분쯤요.“
”곧바로 알리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커피라도 좀 드시라고 그랬습니다요.“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을 만큼 정겹고 격의 없는 말투로 마뜨베이가 대답했다.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 오블론스끼는 화가 나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의뢰인은 2등 대위의 아내 깔리니나였는데, 가능하지도 않고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였다. 그러나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평소에 다던 대로 그녀를 자리에 앉혀 놓고 중간에 말을 끊지 않으면서 주의 깊게 그녀의 얘기를 경청하였으며, 누구를 찾아가서 어떻게 부탁하면 되는지 자세한 조언까지 해주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녀에게 도움을 줄 사람 앞으로 큼직하고 길게 늘어지며 수려하면서도 정확한 특유의 필체로 민첩하고도 조리 있게 쪽지까지 적어 주었다. 2등 대위의 아내를 보낸 뒤 스쩨빤 아르까지치는 모자를 집어 들고서 무언가 잊은 게 없는지 생각하느라 잠시 멈추었다. 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잊고 싶은 존재, 다름 아닌 아내를 제외하고는.
’아아, 이런!‘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잘생긴 얼굴에 우울한 기색이 드리웠다.
’가볼까, 말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갈 필요가 없다고, 지금 여기서는 위선밖에 아무것도 있을 수 없다고, 지금 그들의 관계를 바로잡고 회복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그녀를 또다시 사랑을 불러일으킬 만한 매력적인 여자로 만들기란 불가능하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늙은이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내면의 목소리가 그에게 말했다. 위선과 거짓말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나올 게 없었다. 그런데 위선과 거짓말을 그의 성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그래야만 해. 정말이지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스스로에게 용기를 붇돋우려 애쓰며 그가 말했다. 그는 가슴을 쭉 펴고 궐련을 꺼내 피워 물더니 두 모금쯤 빨고는 자개로 만든 재떨이에 던져 버린 채 재빠른 걸음으로 어두운 응접실을 지나 아내의 침실로 향하는 또 다른 문을 열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