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 이규리
결절인가 결별인가 4주째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의사는 언젠간 돌아온다 기다리라지만 집나간 아이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마루 밑으로 굴러간 실 뭉치가 있었다 실마리를 잡고 실실 당기니 더 어둔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따위 누구도 손길을 뻗혀주지 않았다 목소리도 무심 가운데 달아난 게 아닐까
가출이 비로소 가출을 돌아보게 한다 목소리가 떠난 말은 말이 아니었고 돌아와 라고 하기엔 추운 시간이 흘렀다 본질은 늘 사후에야 발견된다 미안하다 홀대했던 과거여
잘 있으니 찾지 말라고 기다리지 말라고, 마루 밑의 털실 뭉치를 밖으로 나오게 한 건 에멜무지 고양이의 발길질이었지 목소리는 이 엄동 잘 지내고 있을까 집구석 살림 달라진 것 없는데 고양이 발을 기다려도 좋을까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 이 규 리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 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 같은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