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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로 참석한 대구점자도서관 2023 역사지도제작사업
(함께 걸으며 즐겼던 2박 3일의 추억)
송은석
# 서로 믿고 의지하며
“선생님! 2박 3일간 40km 정도 걷습니다. 단단히 준비하셔야 합니다”
출발 직전까지 나는 대구점자도서관 박하은 대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하루에 10km 이상씩 3일을 걷는다고. 그것도 시각장애인들이···’
하지만 박 대리의 말이 맞았다. 박 대리의 말을 실감하는 데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동대구역을 출발해 영천역을 거쳐 원주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몰랐다. 하지만 점심 식사를 위해 원주역에서 식당까지 가는 도보 길에서 알게 됐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원주역에서부터 알게 됐다. 원주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각자 배낭을 역 사무소에 맡기는 일이었다. 오후 내내 원주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한 일은 박은희 팀장의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했다. 이때 알아봤다. 박 대리의 말이 빈말이 아니란 것을. 식당까지 20-30분 정도 걸었다. 차도와 인도를 갖춘 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외곽 변두리 길이었다. 공사장도 지나고, 시골 마을도 지났으며, 들판도 지났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걷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시각장애인 1명과 비장애인 1명이 한 조가 되어 걸었는데 평소 내 걸음 속도보다 빨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인원들은 사전에 소정의 선발 과정과 훈련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내가 보기엔 너무 잘 걸었다. 우리 일행은 3일간 총 43km를 걸었다. 1일 차 원주에서 14km, 2일 차 제천과 영월에서 23km, 3일 차 영주에서 6km. 자신의 눈이 되어준 짝꿍을 믿고, 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짝궁을 무엇보다도 먼저 챙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 원주시 원도심을 걸으며
강원도에서 가장 큰 도시는 도청소재지가 있는 춘천이 아닌 인구 36만 명의 원주시다. 강원도에서 가장 강원도답지 않은 도시라는 평을 듣는 원주. 우리는 원주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원주역에서 출발, 북동쪽 원주 원도심을 향해 걸었다. 원도심 진입 전까지 도시 모습은 전형적인 계획 신도시 모습이었다. 널찍한 도로와 인도, 밀집한 고층아파트, 잘 관리된 공원 등. 그런데 특이한 광경도 있었다. 도로에는 차가 많이 다니는데 반해 인도와 공원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의아해하는 일행에게 이 지역에서 유행하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더니 다들 재밌어했다.
“이 지역에서는 영월·단양 사람은 제천으로 놀러 가고, 제천 사람은 원주로 놀러 가고, 원주 사람은 서울로 놀러 간다는 말이 있어요. 오늘이 일요일이잖아요. 다들 서울 나들이 떠났나 봅니다”
요즘은 대도시 어디를 가도 원도심 투어가 인기다. 대구도 마찬가지다. 대구 원도심 투어인 중구 근대골목투어는 10여 년 넘게 대구 대표 관광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걸으면서 보고 듣고 느낀 원주 원도심은 대구와 많이 닮아 있었다. 강원감영과 경상감영,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과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현 대구근대역사관), 원동성당과 계산성당, 원주향교와 대구향교 등.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대구와 원주에는 각각 경상도와 강원도의 행정·군사·경찰권을 지닌 경상감영과 강원감영이 있었다. 다시 말해 대구와 원주는 조선시대 경상도, 강원도를 대표하는 대도시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도심에서 느껴지는 두 도시 모습이 비슷했던 것이다.
# 충청도에 있으면서 강원도 색깔을 지닌 제천
1일 차 원주 일정에 이어 2일 차 일정은 오전에는 충북 제천, 오후에는 강원도 영월이었다. 2일 차 하루 동안 약 23km를 걸었으니 3일 일정을 통틀어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이다. 인구 13만 명의 제천은 청주·충주에 이어 충청북도 3대 도시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중심부에 위치한 탓에 3국 시대엔 고구려·백제·신라 영토분쟁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충청·경상·강원 3도에 접해 있다. 제천은 충북에 속해 있지만 생활문화권으로는 강원도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한때 제천시민들이 나서 강원도 편입을 추진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영월·단양 사람은 제천으로 놀러간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영월·단양·제천은 생활문화권이 같다고 한다. 제천은 영월·단양과 더불어 시멘트 생산지로 유명하다. 제천·영월·단양 세 도시의 시멘트 생산량은 전국 시멘트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하지만 현재 이 세 도시는 광공업 도시에서 서비스·관광업 도시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 월악산·소백산·치악산과 충주호(청풍호), 동강·서강 등 뛰어난 자연경관이 이들 도시의 자랑이자 장점이다. 제천에서 우리는 근대문화유산인 ‘엽연초생산조합구사옥’, 충북 유형문화재 ‘제천향교’, 보물로 지정된 ‘장락사 7층모전석탑’이 있는 장락사 등을 도보로 탐방했다.
# 단종 애환이 서린 땅, 영월
3일 일정 모두가 하나같이 중요하고 즐거웠다. 그래도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을 하나 꼽으라면 2일 차 오후 영월 땅을 걸었을 때였다. 해설사 업무로 일 년에 4-5번씩은 다녀오는 영월.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영월역에서부터 걷고 또 걸었다. 원도심에 있는 영월 객사와 관풍헌,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는 물론, 단종 유배지가 있는 청령포까지 걸었기 때문이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도, 관광버스를 이용할 때도 항상 차량으로 이동하는 거리였는데, 이번엔 모든 일정을 도보로 해결했다. 처음에는 이 일정을 과연 오후 반나절 만에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영월역에서 원도심을 지나 서강 어귀에 자리한 청령포까지. 그것도 걸어서 왕복을 해야 하니 말이다.
단종이 유배 중 죽임을 당한 곳으로 알려진 관풍헌. 단종은 이곳에서 자신의 피 끓는 애환을 담은 ‘자규시’ 한 수를 남겼다. 자규는 두견새인데 사실 우리나라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두견새는 대부분 소쩍새를 가리킨다. 여름철 밤이면 산에서 들려오는 ‘솟쩍’ 혹은 ‘솟쩍다’ 하며 우는 새가 바로 소쩍새다. 우리 일행은 단종이 자규시를 읊은 곳으로 알려진 자규루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다.
수령 1,200년 하송리 은행나무를 지나 한 시간쯤 걸었을까. 드디어 우리 일행은 한 명 낙오자 없이 청령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발아래로는 서강이 유유히 흐르고, 멀리 보이던 육육봉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발아래 서강 건너 육육봉을 배경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다. 서강에 의해 3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저 솔숲에 지금으로부터 560여 년 전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이 있었다. 우리는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 청령포에 이르렀다. 단종이 유배 생활을 한 ‘단종어가’, 단종의 애환과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수령 약 600년의 ‘관음송’, 단종이 왕비 정순왕후 송씨를 그리워하며 올랐다는 절벽 ‘노산대’와 송씨를 생각하며 쌓았다는 돌탑 ‘망향탑’ 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청령포에서 우리는 아름드리 노송 사이로 난 숲길을 걸으며 세조와 단종을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일행은 다들 세조보다는 단종 편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 옛날 의금부 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유배지 청령포로 모신 후 홀로 강가에 앉아 읊조렸다는 시조가 흘러 나왔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웁고 /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녜놋다”
# 풍기 녹색농심인삼마을 인삼 조청 만들기 체험
3일 차는 걷기보다는 버스와 기차를 많이 이용했다. 제천역에서 풍기 ‘녹색농심인삼마을’과 ‘영주 365시장’까지는 전세버스를, 영주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은 기차를 이용했다. 3일 차 때는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다. 1-2일 차에서 주야장창 걸었다면 3일 차에서는 잠시 쉼표를, 아니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체험장에서 편안하게 우리나라 인삼의 대명사 풍기인삼으로 인삼 조청 만들기 체험을 했으니 말이다. 녹색농심인삼마을 가는 길은 소수서원 가는 길에 있었다. 이 길 역시 1년에 최소 10여 번 이상 다녔던 길인데 이런 마을이 있었는지는 몰랐다. 마을 이름이 특이했다. ‘백골마을’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아는 그 백골이 아니었다. 잣나무 백(柏) 자를 써서 ‘잣나무가 많은 골짜기’이란 뜻이었다. 체험장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인삼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조별로 1인당 6년근 인삼 한 뿌리를 가지고 조청을 담았다. 체험 후에는 단촌리 백골마을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수령 700년 느티나무를 둘러 보고 각자 소망을 빌어보기도 했다.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은 ‘영주 365시장’이었다. 이곳 역시 1년에 10번 정도는 다녀오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대구점자도서관 박시라 선생 때문이었다. 박 선생이 이곳 영주 출신이란다. 우리는 어미 오리를 뒤따르는 새끼 오리들 마냥 2명씩 짝을 지어 박 선생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영주 365시장 인근을 걸었다. 박시라 선생은 예전에 영주에서 좀 놀았던(?) 모양이다.
“여기가 영주에서 유명한 빵집 ‘태극당’, 감자탕으로 유명한 ‘명동감자탕’, 영주시장에서 떡볶이로 제일 유명한 랜드로버 떡볶이 집이예요. 저쪽 라인은 반찬가게들이 있는데요. 이 집 김구이가 정말 맛있어요···”
# 대구점자도서관 선생님들은 입이 정말 예민해
이번 프로그램에서 정말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식사’였다. 아마 참가자 전원이 이 말에 동의할 것 같다. 우리는 2박 3일간 간식을 제외한 일곱 끼 식사를 매번 다른 식당에서 해결했다. 1일 차 점심은 원주에서 막국수와 수육, 저녁은 제천 숙소 인근에서 돌솥 정식을 먹었다. 2일 차 아침은 숙소 인근 기사식당, 점심은 영월역 앞에서 다슬기탕과 다슬기전, 저녁은 숙소 인근에서 쥐눈이콩 두부찌개에 낙지볶음으로 해결했다. 3일 차 아침은 제천역 인근에서 제천 시락국을, 점심은 영주 시내에서 감자탕으로 해결했다. 이 중 2일 차 아침과 저녁, 3일 차 아침은 모두 숙소 인근 식당이었다.(우리는 2박 3일 동안 동일한 숙소를 이용했다) 그럼에도 세 번 모두 다른 식당을 이용했다. 이는 일의 효율보다는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고려한 대구점자도서관 측의 세심한 배려의 결과였다. 식사뿐만이 아니라 간식 또한 그랬다. 동대구역 출발 무궁화호 기차 안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먹었던 김밥, 원주 감영 뒤뜰에서 먹었던 샌드위치와 음료수, 청령포 가는 길에서 먹었던 찐빵.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매번 정말 맛있는 식사와 간식이었다. 내 경우 제일 맛있게 먹었던 식사는 2일 차 기사식당 아침, 다슬기탕+다슬기전 점심과 3일 차 감자탕 점심이었다. 그나저나 식사 관련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대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어떻게 우리 동선에 딱 맞춘 맛집들을 찾아냈을까? 제천, 영월, 영주 각기 다른 지역의 맛집을. 그것도 일부는 골목 안에 위치해 지역민들도 잘 모를 것 같은 식당이었는데. 아무래도 대구점자도서관 직원들은 입이 죄다 예민한가 보다’
# 칭찬합니다! 대구점자도서관 직원 여러분!
2023 대구점자도서관 역사지도제작사업은 올해 초부터 본격 기획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남해 섬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여수·순천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도중 포기했다. 배를 타는 문제, 섬에서의 식사나 숙박 등 많은 곳에서 여러 문제점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열차를 이용하는 테마였고, 최적의 코스로는 원주·제천·영월·영주로 정리됐다. 대구점자도서관 직원들은 이때부터 인터넷 검색을 통해 우리 프로그램 성격에 부합하는 문화관광자원을 찾아내고, 이들을 2박 3일 일정으로 한데 묶는 작업을 진행했다. 다수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열차와 도보를 번갈아 가며 문화관광자원을 둘러보는 일정을 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2박 3일 일정의 열차, 도보 여행을 짠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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