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자기를 버려 옛 것을 지킨 사람이 살린 아름다운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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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어지며, 붉게 물든 단풍잎은 모두 낙엽을 마치고 가만가만 겨울 잠에 들려 합니다. |
[2011. 11. 17]
이틀 동한 매운 바람이 불더니, 그뿐이었습니다. 다시 여느 해보다 따뜻한 늦가을입니다. 어제 낮에는 두툼한 스웨터가 성가실 정도였습니다. 떠나려는 가을과 다가서는 겨울이 마주쳐 지어내는 바람결에 세월이 가만가만 흘러갑니다. 그 사이 집 앞 길가의 나무들은 온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습니다. 계절의 흐름이 지나치게 들쭉날쭉이어서 혼란스럽습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자연의 흐름조차 옛 것을 잃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자신의 새 것을 내놓고 옛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 어른을 뵈었습니다. 경북 상주 화동면 판곡리, '낙화담(洛花潭)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이름의 아담한 연못 앞집의 어른이었습니다. 그런 어른이 계시다는 건 생각도 못한 채 낙화담 연못 안에서 자라는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아보려 나선 길이었지요. 낙화담 가운데에는 연못을 가득 채울 듯한 크기의 인공 섬이 있고, 그 가운데 서 있는 아름다운 한 그루의 소나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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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판곡리 낙화담이라는 이름의 작은 연못 가운데에 서 있는 아름다운 소나무. |
낙화담이라는 연못은 이름만으로도 백제 멸먕의 한을 담은 '낙화암'을 연상하게 됩니다. 짐작하신 분도 있겠습니다만, 낙화담에 얽힌 이야기도 낙화암의 전설과 비슷합니다. 이 낙화담이 처음 지어진 것은 조선 개국 즈음입니다. 고려 말에 황간 지역에서 현감을 지내던 김구정이라는 어른이 있었지요. 그는 조선 개국 소식을 들은 뒤,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속세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가 세속의 소식을 끊고 지낼 수 있는 아름다운 땅으로 찾은 곳이 바로 이곳 판곡리였습니다.
판곡리는 은거 생활 터로 더 없이 좋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풍수에 밝은 김구정이 보기에 판곡리에는 유난히 화기(火氣)가 승했던 겁니다. 그는 화기를 누르는 대책을 세우고 이 곳에 터잡기로 했습니다. 그게 바로 커다란 연못을 짓는 것이었지요. 마을 입구에 연못을 파고 많은 물을 담아둔다면 화기는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낙화담은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지금은 100평 정도 되는 작은 연못이지만, 처음에는 1천6백 평을 넘는 커다란 연못이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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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6백 년 전 이 곳에 마을을 일으켜 세운 조상이 심었다는 상주 낙화담 소나무의 줄기 |
연못의 풍광이 매우 좋았다고 하지요. 연못 한켠에 인공으로 섬을 쌓은 것도 연못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그 섬 안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은 것도 자연의 서정을 즐길 줄 아는 옛 선비의 혜안이 담긴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때만 해도 연못에 별다른 이름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저 마을 연못이었겠지요. 이 아름다운 연못에 낙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임진왜란 때의 일입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52) - 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위에 링크한 신문 칼럼에 자세한 이야기를 적었으니, 되풀이하지는 않겠습니다. 간단히 이야기자면, 임진왜란 때 왜군의 분탕질에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 했던 마을 여인들이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연못이어서, 낙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겁니다. 왜군의 분탕질은 이 마을 출신의 선비 가운데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김준신 장군에 대한 복수였던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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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없이 거북의 등껍질을 닮은 낙화담 소나무의 줄기 표면. |
여기까지는 답사 전에 찾아 본 낙화담 이야기입니다. 이 정도의 정보를 바탕으로 나무를 찾아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연못과 나무 이야기를 들으려 했습니다. 나무 주위의 마을은 무척 고요했습니다. 작은 마을이어서 사람이 많지도 않지만, 도무지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무작정 낙화담 바로 옆에 있는 집 안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칠순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소쿠리 한가득 잣 열매를 담아놓고, 느릿느릿 열매를 깨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올리고 아주머니 곁에 주저앉아 나무 이야기 좀 해 달라고 조르자, 아주머니는 '우리 집 양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출타 중이라'며 잠깐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돋보기를 꺼내 쓰고는 이곳 저곳으로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마 대여섯 군데로 전화를 넣으시더니, 연락은 안 됐지만 곧 오실테니, 좀 기다리라고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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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친 한 노인에 의해 살아남은 낙화담 소나의 위용. |
나무 이야기를 속속들이 들려주실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는 바로 옆에 있는 김준신 장군 사당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이 마을을 처음 일으켜 세울 때와 낙화담에 얽힌 옛 이야기를 느릿느릿 들려주셨습니다. 옛 일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셨고, 말씀은 무척 상큼했습니다. 사당을 들러보며 한 시간 쯤 지나자, 골목 안으로 자동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실 아저씨, 바로 김재궁 어른이 돌아오셨습니다.
귀가 어두운 어르신께 목청 높여 인사 올린 뒤에 나무 이야기를 여쭈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알려진 이야기들을 직접 듣기만 하면 된다 싶었지요. 그러나 김재궁 어른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 무엇보다 나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김재궁 어른은 이 마을을 처음 일으킨 김구정 어른의 14대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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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1천6백 평이 넘는 거대한 연못이었으나, 지금은 1백 평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연못 전체에 그늘을 드리우는 낙화담 소나무. |
이 마을이 고향인 그는 젊은 시절은 대처로 나가 있었지요. 대개의 젊은 시절을 군에서 보내신 듯합니다.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 낙화담 소나무는 거의 죽을 지경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나무를 잘 살린다는 이름난 나무 병원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원인과 대책을 찾아냈지요.
연못 옆의 방앗간에서 나오는 기름이 연못으로 흘러들어갔고, 그 기름이 나무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겁니다. 결국 그는 나무의사들의 처방대로 나무가 뿌리내린 인공섬의 흙을 교체하는 일을 손수 했습니다. 마땅한 장비를 마련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대개의 일을 그는 맨손으로 했다고 합니다. 조상이 일군 땅과 그 안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던 거죠. 그런 고비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무사히 두 번의 고비를 잘 넘기고 지금은 이 나무가 경상북도 기념물이 되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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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꽃이라고 해야 할 만큼 향기가 강한 꽃이 피어나는 멀구슬나무도 잎을 떨구고 열매만 한가득 달았습니다. |
옛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바쳤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열정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옛 것을 지킨다는 명목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실은 자신의 권세와 부귀를 맨 앞에 놓는 경우가 더 많은 시절이지 싶어서인가요? 옛 것을 지키며 살아온 한 노인의 삶이 눈물 겹게 다가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신문 칼럼으로 톺아 보시기 바랍니다.
[나무와 사람 이야기 (52) - 상주 판곡리 낙화담 소나무]
날씨 따뜻하다 해도 그래봐야 잠깐이겠지요. 가을은 이제 차츰 우리 곁을 떠나고 그 자리에 겨울이 들어올 겁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나무와 자연의 서정을 느끼게 하는 시 몇 수 남깁니다. 좋은 시에 오독(誤讀)의 권리를 남용하며 감상 글까지 보탠 신문 칼럼입니다. 원래 이 신문 연재 칼럼은 3개월 동안을 목표로 시작했는데, 좋게 봐 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조금 더 연장해 쓰기로 했습니다.
['시가 있는 아침' - 조향미, '나와 나무와'] ['시가 있는 아침' - 이선영, '산수유나무'] ['시가 있는 아침' - 김윤숙, '낙엽-멀구슬나무'] ['시가 있는 아침' - 백미혜, '투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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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나무 단풍은 아마도 붉은 빛깔의 단풍 중에서는 가장 화려한 나무에 속하지 싶습니다. |
끝으로 지난 주 편지에서 알려드렸던 저의 새 책 소개, 편집자의 소개 글로 한 줄 보탭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처음에는 어색했던 천리포 식물들과의 만남이 곧 풀어집니다. 마치 말하지 못했던 숨겨둔 이야기를 하고 더 가까워지는 사람들 사이처럼 말이지요. 저자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아는 것보다 자연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전해주고자 했습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접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다른 어느 숲을 가더라도 그래서 그곳의 꽃과 나무들을 만나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이 책 편집자의 책 소개글 에서]
[한겨레21의 책 소개 기사]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 찾아보기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를 더 많은 분들과 나눠 보고 싶습니다. 추천하실 분을 홈페이지의 '추천하기' 게시판에 알려주세요. 접속이 어려우시면 추천하실 분의 성함과 이메일 주소를 이 편지의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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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숲닷컴에서 나무 이야기 더 찾아보기 ■□ |
○●○ [솔숲의 나무 편지]는 2000년 5월부터 나무와 자연과 詩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 |
첫댓글 생명을 사랑하고 옛것을 지키려는 종손의 정성이 여기까지 전달되어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 알고 보면 나무 한 그루 살리기 위해 자기 삶을 온통 바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