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 – 노년인생, 화이팅!
교차로신문 2020년 7월 7일
일반적으로 퇴직을 하는 분들은 마음이 착잡할 거라고 본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인데다 100세 시대에 60이나 65세에 퇴임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대체로 퇴직자들은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무언가 열심히 하려는 사람, 두 번째는 분노하고 억울하다고 사회나 타인을 원망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후자인 경우, 분노하고 억울하게 생각한다면 결국 우울증이 생길수도 있고, 더 나아가 육신의 병으로 와전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비롯해 가족까지 힘들어진다.
나이가 들어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 있다. 나이 들어 인생을 바라보는 각도가 달라질 때,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이든 타인을 위한 삶이든 인생의 새 기획을 세워보면 어떨까? 필자는 스님으로 불교와 관련된 노인 한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중국 송나라 때, ‘허’씨 성을 가진 노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의 법명이 ‘법진法眞’으로, 장태사張太師와 결혼하였다. 그녀 나이 삼십에 남편이 세상을 하직했고, 홀로 자식 둘을 키웠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그녀는 불교를 믿으며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아들 둘이 모두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나이 칠십에 이르자, 무언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던 차에 당시 유명한 대혜 종고의 제자인 도겸스님이 집에 찾아왔다. 부인은 스님에게 ‘경산에 계시는 대혜스님에게 수행을 지도받고 싶은데, 여기서 그곳까지 너무 멀어 찾아가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도겸은 “대혜 스님께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든 ‘마음이 있는 자는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법문을 들려주시고, 도 닦아 부처가 되기를 원하는 자에게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무자 화두를 참구하라고 지도하십니까?”
“한 승려가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었을 때 조주스님께서 ‘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조주 선사께서 답하신 ‘무’의 참뜻을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무’라고 했는가를 간절히 의심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의심을 놓지 말고 앞으로 밀어 붙일 뿐 왼쪽도 오른쪽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도겸스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았으니, 대혜 선사를 친견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그날부터 노부인은 용맹정진에 들었다. 오로지 한 생각, “왜 ‘무’라고 했는가?”를 묻고 되물으면서 7일 밤낮을 정진하다가 한순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오색이 찬란한 봉황새 한 마리가 집 정원 뜰에 내려앉았다.
‘아, 저 새 위에 올라앉으면 편안하겠구나.’
이 생각과 동시에 그녀는 새 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봉황이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고, 잠깐 사이에 구만 리 장천에 이르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들은 조그마한 점이 되어 오굴거리고, 큰 강은 줄 하나 그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조그만 점과 같은 저 집들 속에서 서로 살겠다고 욕심을 내고 성을 내며 치고 박고 살고 있으니, …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그녀는 인생살이의 참 면모를 깨달았다. 그리고 봉황새가 날아가는 대로 몸을 맡긴 채 세상의 이곳저곳을 모두 구경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봉황새가 사뿐히 정원에 내려앉는 순간 그녀는 꿈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무자 화두를 깨쳤다. 그리고 다음 오도송을 읊었다.
“꿈 속에서 봉황을 타고 푸른 하늘에 올라보니,
비로소 인생살이가 하룻밤 여인숙에서 보낸 것임을 알았네.
돌아와 보니, 한 바탕 행복한 꿈길이네.
산 새의 한 울음소리, 봄비 온 뒤 해맑더라.
夢跨飛鸞上碧處 始知身世一據廬 歸來錯認邯鄲道 山鳥一聲春雨餘
그 뒤 도겸스님이 다시 노부인을 방문했을 때, 부인은 이 두 수의 시를 주면서 대혜 선사에게 증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시를 본 대혜는 노부인의 정각을 인가한다는 답장을 보내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꼭 깨닫겠다는 결심만으로도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필자는 또 10년전 미얀마 맬라민(Malamyine)에 위치한 파옥(Pa-Auk) 센터에서 두어 달 머문 적이 있다. 내가 머문 숙소 옆방에 베트남 여성 출가자(사미니도 아니지만 출가자 신분으로 샤얄레이라고 칭함) 두 분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녀지간으로 어머니는 80세가 넘었다. 어머니 샤알레이는 미얀마에 오기 전, 신장암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몇 차례 대수술까지 받았다. 수술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 그녀는 죽기 전에 수행해야겠다고 서원을 세우고, 딸과 함께 미얀마로 와서 출가해 수행하였다. 이곳에서 사마타 수행의 진척도를 점검받는데, 그녀는 자신보다 먼저 출가한 딸보다 수행 진척이 매우 빨라 스승으로부터 늘 칭찬을 받았다.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직 젊은데도 인생의 멋진 회향이 뭘까(?)를 고민한다. 노년의 인생! ‘노년’을 슬프게만 바라보지 말자. 자식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 추진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보는 거다[다른 사람들과 늘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 불자라면, 앞의 노부인들이 70ㆍ80세에 깨달은 것처럼 얼마든지 명상을 통해 새 인생을 만날 수 있다. 이는 필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고, 타인을 위한 봉사이든 개인적인 취미생활이든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노년의 삶, 영혼이 배고프지 않을 그 무언가의 인생 이모작에 도전해 보자. 정동원 가수가 부른 ‘여백’ 가사 내용처럼,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