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삶 알면서도 ‘그래도 빛났다’ 고백하는 게 감사”
[감사 챌린지] <3> - 정재찬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수연2026. 2. 5. 03:24
정재찬 한양대 교수가 최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인생도 윤슬이나 반딧불 같지 않을까요.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아주 짧은 생이지요. 그렇기에 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삶은 빛나기만 하는 게 아니고, 어둠이 있어야 비로소 반짝임이 드러나니까요.”
최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재찬(63)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문학 속에서 길어 올린 감사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건축가 유현준의 추천으로 진행된 세 번째 ‘감사 챌린지’ 인터뷰에서였다. 여러 방송을 통해 ‘시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인문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언어로 삶과 신앙 속에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신앙 안에서 배운 감사
정 교수는 tvN ‘어쩌다 어른’, JTBC ‘톡투유’, ‘세바시’ 등 방송과 강연을 통해 대중과 만나왔다. 한양대 입학처장과 한국문학교육학회 회장을 지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그가 감사를 이야기하며 먼저 떠올린 것은 맹문재 시인의 ‘아름다운 얼굴’에 등장하는 ‘윤슬’이었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쳐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빛과 같다는 것이다. 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1~2년을 보내지만 정작 빛을 내는 시간은 보름 남짓에 불과한 반딧불도 같은 맥락에서 비유했다. 정 교수는 “감사는 형편이 좋아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빛났다’ 고백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35년째 교회를 다니는 집사지만 그는 스스로를 ‘부끄러운 신자’ ‘열등생 신자’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믿어져야 교회에 다니지 않겠냐는 친구의 말에 믿어질 때까지 평생 끈덕지게 다닐 거라고 답했다”며 “잘 믿어지지 않아도 자리를 지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그는 공부도 잘하고 무엇이든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원치 않는 학과에 진학하며 처음 좌절을 겪었다. 대학 시절엔 불교 사상에 빠져 ‘일체유심조’를 붙들기도 했다. 정 교수는 “마치 늪에 빠진 타잔처럼 발버둥 칠수록 더 빠졌다”며 “혼자 힘으로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인생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서른 살이던 그 무렵 아내를 만났다. 모태신앙이던 아내의 “기도해 주겠다”는 말 한마디가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마음을 열었다. 성경을 비지성적인 이야기로 여기던 그는 수요예배를 참석하면서 서서히 교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 뜨거운 간증 대신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시간’이 그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저는 제 소원을 말하는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깨달았죠.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은 제 말을 들어주신다는 뜻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제 바람을 들어주셔도 감사, 안 들어주셔도 감사했습니다. 이미 저를 붙들어 주셨으니까요.”
문학으로 풀어낸 감사 조건
정 교수는 문학 속에서도 감사의 뿌리를 발견했다. 조선 사대부들은 벼슬을 내려놓고 강호에 묻혀 살아도 한결같이 감사를 노래했다. 송순의 ‘면앙정가’,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에 나오는 ‘이 몸이 이러함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라는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는 형편이 어떠하든 임금의 은혜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 교수는 “자신을 주인이 아니라 신하로 여겼기에 가능한 태도”라면서 “모든 걸 당연한 권리로 여기면 고마움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조건은 겸손이다.
정 교수는 “겸손은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능력”이라며 “진정한 감사는 결국 겸손한 사람만 가질 수 있는 태도”라고 했다. 두 번째는 온유와 성찰이다. 흥분과 분노 속에서는 사유가 멈추고, 생각 없는 고백은 공허한 자기 위안이나 맹목적 신앙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윤동주의 시 ‘참회록’을 예로 들며 윤동주가 자신이 아니라 거울을 닦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왜곡된 거울로는 제대로 볼 수 없기에 세상이 씌운 녹을 벗겨내듯 자신을 비추는 기준부터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감사는 생각할수록 깊어진다. 그리고 결국 행동으로 이어진다”며 “기분이나 말로 끝나는 감사는 충분치 않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강요된 감사도 경계했다. 그는 “감사가 약자에게 순응을 요구하는 도덕의 언어가 되어선 안 된다”며 “오히려 가진 자들이 내려와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의무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실천, ‘노블레스 그라투스(gratus)’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러한 고백은 삶의 궤적과도 맞닿아 있다. 대학에서 문학을 선택한 일은 실패처럼 느껴졌고 긴 대학원 생활과 불안한 마음으로 진로를 준비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은 못 하겠다”며 “오히려 길을 끝까지 걷다 보니 뜻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석남 시인의 ‘옛 노트에서’를 인용하며 “오래 견딘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충분히 익은 열매가 가장 달듯, 인생도 기다림을 통과해야 단맛을 낸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평생 학교를 떠난 적 없다. 정년을 2년 앞둔 지금, 그 시간을 비로소 ‘감사의 목록’으로 바라본다. “시를 통해 사람과 소통하고 세상과 이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괜찮은 어른’으로 해야 할 일에 끝까지 헌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시를 가르치고 나누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기사원문 : https://v.daum.net/v/20260205032439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