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27일(일)
캄보디아 입국 비자 요금은 20 달러다. 하지만, 부패한 캄보디아 관리들은 급행료 명목으로 웃돈을 당연히 요구한다. 특히 아란야쁘라텟 국경에서는 달러를 받지 않고 1,000 바트를 요구한다. 예전에 바트화가 약세일 경우 1,000 바트는 25 달러 정도이지만, 지금 1,000 바트는 약 30달러에 해당한다. 무려 50%에 달하는 급행료를 챙기는 것이다.
급행료를 주지 않고 정상 가격인 20 달러로 입국하는 게 우리들의 목표다. 처음에 이 국경을 넘을 때는 당연히 1,000 바트를 내야 하는 걸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이고 나쁜 행위라는 것을 안 이상 그러한 부정 행위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비자 수속에 임했다.
나와 세오녀는 이번이 일곱 번째 캄보디아 입국이다. 이런 순간을 대비해서 기간이 지난 옛날 여권까지 세오녀는 챙겨왔다.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우리는 모두 줄을 섰다. 그리고 세오녀가 제일 앞줄에 서서 여권과 함께 20 달러를 내밀었다.
"천 밧!"
아주 정확하게 '천 밧'이라고 무뚝뚝하게 내뱉는다. 이때부터 우리와 국경 관리들과의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예전에는 1,000 바트라는 글씨를 붙여놓았던데, 이번에는 비자 비용이 20 달러라는 팻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가리키면서 말해도 묵묵부답. 오직 천 밧을 내란다. 20 달러를 받았다고 정확하게 찍혀 있는 캄보디아 비자를 보여주었다. 표정 없는 관리는 그곳은 다르다고 한다. 베트남 목바이로 들어오면 캄보디아는 바벳 국경이다. 이곳에서는 20 달러 외에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자에도 20 USD 라고 도장까지 찍어준다. (2007년 1월)
라오스 남부 븐깜에서 육로로 캄보디아 입국하면 동 까로우(Dong Kalaw)다. 여기서도 20 USD를 찍어주지만, 종이 값이라고 1 달러를 요구(2006년 7월)한다. 그런데, 당시에 찬이는 12세 미만이라고 비자 비용을 면제해주었다. 태국 깝청(Kap Cheong)에서 오스맛 국경을 넘을 때도 20 달러 외에 별도 요구하지 않는다.(2006년 2월)
우리는 캄보디아에 일곱 번째라는 걸 강조해도 이 철면피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아예. 창구 문을 닫아 버린다. 이제 우리는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한다. 아이들은 벤치에 앉아서 저마다 시간을 때울 놀이를 찾아낸다. 어른들은 줄을 서서 무작정 기다린다. 누군가 여권 뭉치를 들이댄다. '천 밧'짜리 급행료를 지불한 '대한민국' 여권들이다. 정말 신속하게 비자는 발급된다. 본인이 오지 않아도 그냥 도장을 찍어준다.
"빨리 빨리~ 천 밧"
우리는 빠른 걸 원하지 않는다. 슬로우! 천천히~ 순리대로 해달라. 20 달러에 들여보내달라는 것이다. 카운터 앞에서 우리끼리 얘기하니까 국경 관리는 조용히 하라고 한다. 또는 다리가 아파서 앉아 있으니 밖으로 가라는 등 캄보디아 부패 관리들과 앙코르 사람들과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08년 발표한 국제 부패인식지수(TI)에서 캄보디아는 조사대상국 180국 중에서 162위를 차지하였다. 우리 나라는 48위.
심심찮게 우리 앞으로, 옆으로 급행 비자가 발급된다. 표지를 보면 모두 대한민국 여권이다. 우리가 버티고 있을 동안 벨기에인 흑인 부부가 나타났다. 남자가 일단 상황을 파악한 뒤, 우리와 마찬가지로 20 달러를 내민다. 통과하지 못한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천 밧'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우리 얘기를 들은 여자는 그냥 가지 않고 계속 항의를 한다. 1,000 바트를 받았다는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하지만, 부패한 나라의 능글맞은 국경 공무원은 영수증 발급해줄 리 없다. 유럽인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부패인식지수 21위인 벨기에 인이 부패지수 162위 캄보디아에서 하소연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우리도 작전을 바꾸었다. 관용 여권을 위에 올리고 다른 두 장과 함께 내밀었다. 관용 여권은 비자 비용이 없기에 그냥 통과되지만, 다른 것은 안 된다. 푸른바다님은 그냥 쉽게 통과할 수 있었지만, 가족과 다른 일행을 위해 끝까지 서서 버티기 시작했다.
그들이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빨리 빨리~`25달러!"
우리는 원칙을 고수한다. 너희들이 써놓은 대로 20 달러! 협상은 결렬된다.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다리도 아프고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였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그것도 열 여섯 명이 비자 발급 창구 앞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어이 없는 나라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1,000 바트 내지 않으려면 그냥 돌아가라고 한다. 게다가 제복 입은 관리는 총까지 차고 있다. 이 국경에서 우리가 윽박지르고 항의한다고 해서 원칙대로 20 달러 비자 입국이 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최종 협상안을 그들이 제시한다. 23 달러에 100 바트. 조삼모사다. 25 달러나 23 달러에 100바트나 그게 그거지. 우리는 끝까지 20 달러를 고수한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세오녀가 미소 작전으로 나왔다. 살찐 관리가 끼고 있는 퉁퉁한 손가락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멋있다고 칭찬해준다. 노회하고 닳아빠진 관리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시간을 팔아 달러를 가방에 챙기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 인민의 복리와는 아무 상관 없는 개인들의 욕심을 채우는 검은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어느 순간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창구 문을 열고 우리 여권과 비자신청서를 받아들인다. 제일 앞에 있는 세오녀 여권은 밀치고 그 다음 것부터 처리해준다. 결국 제일 나중에 세오녀도 여권에 캄보디아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대치 한 시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처음 예상은 서너 시간 걸릴 각오로 줄을 섰다. 너무 기뻐 큰 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또 심경을 건드릴까 싶어 속으로 웃으면서 나섰다. 일단 비자 발급을 시작하는 순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기쁨의 순간을 기념 사진을 통해 흔적 남기기를 하였다. 손가락 두 개는 승리의 V이기도 하지만, 20 달러에 통과한 걸 나타낸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통쾌한 순간이었다.
* 여행일자 : 2008년 7월 25일(금)-8월 24일(일) 30박 31일
* 여행장소 : 포항-서울-태국 방콕-아란-캄보디아 뽀이뻿-씨엠리업-바탐봉-씨엠리업-태국 방콕-타이완 타이중-컨띵-까오슝-타이페이-서울-포항
* 함께 여행한 이 : 태국-캄보디아(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 회원 16명)
이후 연오랑 세오녀 찬이 가족여행
* 환전 : 1달러=1,012.38(2008년 7월 외환은행 사이버환전 70% 우대)
* 연오랑의 아시아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eetangkor
첫댓글 대단한 세오녀님 !!! 인간승리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릴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단체를 이끄는 연오랑의 고민...
미리 논의를 하고,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짰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현지에서 우왕좌왕 설왕설래 했다면 저들이 이겼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모두의 하나된 굳은 의지를 보여 줬기 때문에 저들도 손을 들었을것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우리팀은 3시간은 기본으로 버티기로 했기 때문에 아무도 급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리고 처음엔 푸른바다님이 제일 앞에서 협상으로 하기로 논의는 했는데 제가 이 관리들의 특성을 대충 짐작하기에 어떤 증거 자료가 있어야겠기에 그냥 제가 제일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비장의 무기를 집에서 부터 챙겨 갔습니다. 유효기간 지난 우리가족 여권3개. 이 여권속에 6번의 캄보디아 비자가 찍혀 있습니다. 증거물 제시에 관리는 다른 국경이잖냐? 작년이잖냐?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뭐라뭐라......결국 한참 뒤 어떤 관리가 와서 뭐라뭐라 하니 그 때부터는 5명이 안에서 미리 비자스티커를 작성 해 둔 것을 그냥 붙히고 도장 꽝!~
그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네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치밀한 계획아래 모두 하나로 똘똘 뭉쳤군요. 하하 통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