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여름 지리산 성삼재-천왕봉-중산리(14시간) 하룻길 산행을 준비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몸소 겪은 일을 쓴 글이다 그러니까 지리산 주능선 타기를 처음 시작한 때가 2001년 11월 중순, 벌써 6년이 되어 온다. 그때는 안사람과 화엄사에서 천왕봉까지 갔다가, 되짚어 돌아서 세석평전으로 와서, 내려오는 길로는 하동군 화개면의 대성골을 선택했다. 2박 3일의 일정. 천왕봉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본다. 멋있기는 하더라. 그렇다고 눈이 되 뜨일 정도까지의 감흥은 아니고. 내 속에 해돋이에 대한 간절함이 크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말 지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길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 "나는 그리 덕을 쌓은 일도 없는데... 그만큼 천왕봉에서는 구름이 없는 날 새벽에 올라와 해 뜨는 장면을 온전히 보기가 쉽지 않다는 거겠지!" 산행 둘째 날쯤이었을까? 산행하는 사람들한테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새벽에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하루에 천왕봉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 얼핏 생각에 '대체나 그렇게 성삼재에서 시작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 그때 그 당시에는 성삼재에 새벽에 개인으로 당도하기가 여간 복잡하고 여비가 많이 드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일이 어렵게만 생각되었지. 체력은 자신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날 겨우 화개재에서 장터목까지 갔는데도 힘이 달려 "하루에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더라고. 한참 몸 상태가 좋고 기분이 들떴을 때 하루에 종주할 수 있다는 일장춘몽을 꾼 만용을 크게 반성했지. 두 번의 지리산 종주에서 지리산을 하룻길에 가려면 체력을 기르는 것이 우선임을 절실히 깨달았지. 그렇게 해서 하룻길 종주는 언젠간 이루어야 할 꿈으로 품에 품고..... 두 번째 주능선 타기는 2년 전 2005년 9월 23일 추분秋分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의 시작 따위 나름의 뜻을 달아 산행하는 날을 잡았다. 구례 지리산 온천 지역을 시작점으로 하여 산청군 대원사를 산행 끝점으로 정했다. 지리산 수백 갈래 산행 길 중 가장 정 서쪽 방향에서 정 동쪽 방향으로 가는 동진東進 길. 2001년 첫 주능선 탈 때와 거리가 얼추 비슷하지 싶은데 일정은 하루를 줄여 1박 2일에 간다. 세석산장에서 1박. 낮에는 약간 더웠으나 산장에서의 하룻밤이 얼마나 추웠던지 아직도 그 밤만 생생한 기억이. 지리산을 하룻길에 종주해보자는 꿈을 품에 품고 산지 벌써 6년이 흘렀다. 그동안 가까운 데 산을 열심히 다닌다. 그러던 두어 달 전 문득, 너무 멀어서 가보고 싶어도 못 가 본 먼 데 산을 가보고 싶더라고. 만날 가는 산, 가고 또 가니 좀 싫증이 나기도 하고, 내 안에서 변화를 갖고자 하는 바람이 생긴 것이다. 먼 데 산 가는 방법을 찾다 보니 산행 모임과 같이 하면 좋겠더라. 가서 새로운 산의 정기를 받고, 사람들과 만나 사귐도 갖고, 내년 6월쯤 내 지상 목표인 지리산을 하루에 산행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고. 야! 이거 뭐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가재잡기 아닌가! 이렇게 차근차근 지리산 하룻길 종주 산행할 수 있는 체력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다니는 판이다. 그런데 며칠 전 히말라야 8000m 이상 16좌座('봉峰'이 아니고 '좌座'라 하는데 '봉'은 땅에서 본 기준이고 '좌'는 하늘에서 본 기준이 아닐까? 땅에서 가장 높고, 하늘에서 가장 가까우니 하늘의 별자리와 같은 위치에 놓는, 높은 것을 격이 있고 신비스럽게 만드는 , 하늘이 허락한 자리, ....뭐 그런 뜻이 아닌가? '내 지레 짐작')를 등정한 엄홍길씨인가 하는 사람이 TV 오락 프로그램(무르팍도사 재방송)에 나와서 한 얘기를 들으니 치밀하게 준비하고 어떻게든 가야 한다는 갈망이 나를 채우면 못할 일이 없단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지리산 하룻길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없던 자신감이 생긴다. 그는 나한테 자신감을 가져라고 살살 꾀는 꼴이고 나는 또 살살 넘어가는 꼴이고. 이런 꾐과 속음은 백 번이라도 있으라지. 엄홍길님 말씀에 내년에 가려던 계획을 앞당기는 계기가 마련된다. 다른 사람들은 하룻길 종주 산행을 어떻게 하나 궁금해져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하루에 지리산 종주 산행하는 사람이 적지도 않더라. 그걸 보니 더 용기가 나고 내가 할 수 있나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하나하나 따져보고, 차근차근이 챙겨보게 되고.... 그러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의 틀이 잡히더라고. 지금의 체력과 자신감, 가고자 하는 열망이 넘치는 내가 못할 이유가 없더라. 단지 안해 봤기 때문에 생기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을 뿐이지. 그동안 몸도 어지간히 단련이 됐겠다, 뭘 더 망설이는가. 가자 까짓것! 이제 하룻길에 종주하는 산행 모임만 찾으면 된다. 찾았다!!! 산행 전날 일찍 자려 9시에 잠을 청했으나 잠은 오지 않고 내일 산행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고만 있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다잡아 내일 꼭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1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든다. 새벽 2시 반 알람 소리에 눈을 떠 짐을 챙겨 3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산행 시작점인 성삼재에 도착하니 4시 55분 경. 선잠에서 깨 정신은 아직 비몽사몽 간인데 목은 텁텁하여 연방 헛기침을 부른다. 그런데 세상에! 꼭두새벽인데 성삼재 광장에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세상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을 이 새벽 시간에,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그것도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서 예기치 못한 수백의 인파와 맞닥뜨리니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아연 긴장이 되었지. 오늘 산행 중에 이런 예기치 못한 일이 얼마나 일어날까? 조심,조심해야지!!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한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언뜻언뜻 마주치는 눈빛들이 비장에 차 있고, 여차하여 삐끗하면 모든 것이 어그러질 듯 팽팽한 긴장이 성삼재 구석구석 속속들이에 까지 스며들어 있다. 검푸른 어스름한 새벽 어둠과 팽팽한 긴장감이 함께 나를 짓누른다. 땡그랑땡그랑, 짤랑짤랑, 저벅저벅 짐을 채비하느라고, 또 떠나느라 여러 갈래 사람들의 온갖 소리들로 요란하고 분주하다.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 듯 거스를 수 없는 명령에 순응하여 나가는 사람들처럼 넓은 광장을 빠져 나가 좁은 산행길로 들어서는 산행꾼들의 모습이 꼭 '좁은 문'을 향해 가는 것 같다. 성경에 '너희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써라......많은 사람이 들어가려고 애써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했는데 그 좁은 문이 천국을 향하는 길이라면 그 문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 놨단 말인가! 넓은 문으로, 아니 아예 문이 없이 모두를 구원해줄 수는 없나? 그러니 착하게 살라? 종교는 자유의지를 가진 무한한 인간을 무엇으로 규정지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끼게 하는지. 지리산 자연의 품은 여기 온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고 그저 아무 말없이 받아들인다. 대도무문大道無門. 드디어 대장정이 시작된다. 나는 사뭇 비장하다.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가 이런 기분일까? 4시 58분 성삼재 출발 여느 때처럼 준비 운동을 하고 가려 했는데 일행들이 빠른 걸음으로 산행길을 재촉하니 나도 덩달아 맘이 급해서 그냥 출발한다. 이 산행모임은 여러 정맥,대간을 누빈 팀이어서인지 다들 힘이 넘쳐 보인다. 어느 정도 빠를 것은 짐작을 했지만 시작부터 일행들이 속도를 낸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절대로 천천히 내 속도로" 이 말을 산행 중에 얼마나 또 생각하면서 내 속도를 유지해야 할까! 다른 사람 속도에 휩쓸리지 말기를 다시 한 번 다짐하며 출발. 그것이 가장 빨리 가는 길이니까. 처음 속도와 마지막 속도가 큰 차 없이 갈 수 있다면 난 성공한 산행이다. 여유를 갖고 빠르지 않게 완만한 오르막을 걷는다.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넓은 길을 몸을 푼다는 마음으로 빠르지 않게 오르니 처음에 팍팍하다 싶던 다리가 좀 나아졌다. 5시 49분 노고단 돌탑 도착 해돋이. 해 밑둥이 반야봉 오른쪽 능선에서 막 떨어지려는 찰라다. 장관이다. 여느 때보다 해가 가깝게 크게 보인다. 서에서 동을 향하여 가는 장정에 해가 내 먼저 동쪽에서 먼길 산행을 마중하는구나! 내가 하루만에 하는 첫 번째 지리산 먼 길 산행에 서광을 예지하는 듯 해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나도 해한테 "오늘 산행을 잘 마칠 수 있게 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며 발걸음을 천천히 뗀다. 임걸령을 향해 가는 길. 전에 지날 때 이 길이 항상 질퍽거려 이슬과 비 때문인지, 아니면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다 보니 그랬던 것인지 마음이 쓰이던 곳인데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메떡처럼 고슬고슬하니 '길' 고놈 참 예뻐 죽겠다. 이것도 내 지리산 먼 길 산행 성공을 위한 상차림이라고 기분 좋게 생각한다. 걸을 때 새벽 바람이 한바탕씩 내 몸을 훑고 지나가면 시원하면서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움추러들 정도로 으스스하고 좀 춥게 느껴진다. 지금 산아래 도시들은 열대야에 시달리는데..... 이렇게 높은 산이 아니면 한창 이 무더운 삼복 더위에 이런 시원함을 어디서 느끼랴! 나는 이런 소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닌데! 덤이라 생각하자.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다보니 해도 덩달아 이쪽저쪽으로 따라 다니며 나와 숨바꼭질하며 간다. 어느 결에는 나뭇잎 뒤로 숨었다가 성긴 잎 틈새로 '반짝'하며 항상 해와 함께 함을 잊지 말라는 듯 눈이 부시게 해 잠시 눈 멀게 해놓고는 얼른 나뭇잎 뒤로 숨는다. 내 어찌 태양 네 빛과 볕의 소중함을 잊으랴! 속도도 나고 상쾌한 아침 산행 길이다. 한편으로 이곳 꽃들 중 일부는 벌써 시들어 꽃자리를 가을 열매에 내어주려는 모양이다. 산아래 낮은 땅은 지금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시기인데 이곳은 해발 1500m 정도로 산아래보다 계절이 먼저 바뀌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곧 가을에 꽃자리를 내줘야 한다고 귀띔을 한 모양이다. 폈던 꽃잎을 다소곳이 오무리고 수줍게 저만큼에 고개 숙인 꽃들이 제법 눈에 띈다. 때를 알고 순리에 따르는 자연이 경이롭다. 오르내림이 크지 않은 비교적 평탄한 산등성이를 걷는다. 돌부리가 많지 않고 부드러운 흙이 발바닥을 애무해주는 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길이 요만큼 만 이어라!" 더 바랄 것 없는 지금이 극락이다. 그런데 지리산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던가! 나도 참 속이 없지! 6시 39분 임걸령 도착 임걸령 샘에서 물을 두 손으로 움큼지어 아홉 번을 마셔 몸 속에 물을 충분히 저장. 재작년 산행 때는 이곳에서 점심 시간을 맞았다. 불현듯 그때 생각이 스친다. 뱀사골로 곧 내려갈 사람들을 추월하는 우쭐함을 맛보다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은 내 처지를 망각하고 내 적정 속도를 잃었던 곳. 이후에 고생했던 기억에 "전철을 밟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며 배낭을 다시 메고 출발한다. 화개재 내려가는 엄청나게 많은 계단. 다른 사람이 산행기에서 무릎을 조심하라 하여 살금살금 조심조심 내려왔던 곳. 계단이 많기는 많다. 600개 가까이 된다던가?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또 고생했을꼬! 7시 41분 화개재 도착 2001년 첫 주능선 산행 때 화엄사에서 여기까지 와서 힘이 다 빠져 연하천 산장까지 갈 수가 없어 지금은 없어진 뱀사골 산장으로 발길을 돌렸던 곳. 힘 조절을 잘못했든가 체력이 부족했든가 해가 많이 남았는데 체력이 고갈되어 아래쪽 산장으로 발길을 옮길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이 컷던 곳이다. 긴 오르막의 본격적인 시작, 연하천 산장 가는 길이다. 다시 다짐한다. "제발, 천천히 내 속도를 지키자." 그런데 그게 어디 쉽던가? 저 모르는 욕심에 속도가 빨라지고 다른 사람과 겨뤄서 이기고 싶은 따위의 유혹에 빠지기가 쉽다. 고수들이야 자유자재로 체력을 배분, 조절해가며 산을 타지만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쉽지 않다. '천천히, 제 몸에 맞게'가 쉬운 거면 지리산 먼 길 종주 산행을 못할 사람이 없지. 또 히말라야, 안데스 같은 세계 최고봉우리들을 가는 것이 별 대수일 건가? 9시 11분 연하천산장 도착 물을 배가 부를만큼 채우고 산행 모임에서 간식 갈음으로 준 기정떡을 시간이 아까워 쉬면서 먹지 못하고 한 손엔 떡, 한 손엔 물병들고 가면서 먹는다. "애걔걔! 이 먼 길 산행에 겨우 한 쪼가리라니!" 둘 말아서 입에 넣으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양인데 아까워 한 입씩 베어 먹는다. 산행 모임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산행하는 사람들의 소모되는 체력을 고려하여 좀 더 배려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6시 16분 천왕봉 도착 다리 힘이 다해 양팔과 몸이 다리를 끌고 오르는 격이다. 네 발로 기다시피 오른 것치고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덜 걸린다. 57분. 제일 높은 곳에 서 있다. 언제나 처럼 정상에서는 별 감회가 없다. 앞이 안보여 후래쉬없이 사진찍끼 힘들 정도로 천왕봉 정상 위로 구름이 날아다니고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진다. 멀자 않은 곳에선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하고 금방이라도 큰 소나기가 올 것 같다. 국립공원관리소 안전 요원이 장터목에서 예까지 올라와서 벼락이 무서우니 빨리 내려가라며 채근하니 겁이 덜컹 난다. 사람은 너댓명 밖에 없다. 북새통인 천왕봉 정상에 이정도의 사람 밖에 없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상황이 급박하다. 벼락이 곧 나를 칠 것 같이 불안하다. 순간 머리가 쭈뼛 선다. 순간 스치는 생각이 "근데, 내가 평소에 벼락 맞을 짖을 했나? 그런 것 같기더 하고, 아닌 것 같기더 하고." 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때 친 그 천둥 번개에 한 곳에서가 아니고 벼락친 그 근방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이 벼락 맞아 죽었단다. 벼락맞는 얘기도 보통 일이 아난데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니 다시 없을 일이 일어났다. 그 시간 제일 높은 곳에 내가 있었으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고 끔찍하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는다. 비도 한 방울씩 내리고 천둥소리 울리고 둘레는 어두워지고 다리에 힘은 없고 시간은 늦었고 사면이 초가다. 이럴 때 나는 어떤 결정을 하는가? 쉬자!!! 정상에서 2,30m 내려온 천왕봉 바로 밑. 키 작은 나무와 더벅머리 풀숲이 어우러진 약간 경사진 곳에서 머리를 낮은 데로 하고 누워서 15분 정도 쉰다. 갈 힘은 없고 쉬지 않으면 못 내려갈 것 같다. 날씨가 급박히 변해오는 벼락이 곧 내리칠 것 같은 무서운 상황에서도 쉬지 않을 수 없음은 내려가기 위해, 빨리 내려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유일한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지리산을 대여섯 번 왔지만 중산리 길은 오늘이 초행이다. 경사가 급하지만 코스가 짧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코스인지라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먼 길 산행에 지친 사람에게는 너무 매정한 숫제 바위투성이 길이다. 아래쯤 내려가면 흙길이 지친 다리를 위무해 줄 것은 기대했는데 완전히 헛다리 짚었다. 기대에 대한 실망에 허탈이 커서인가 다시는 이 길을 내리막 길로 택하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너무 너무 힘들다. 너무 힘이 드니 산행하는 근본 이유까지를 생각한다. 왜 사람들은 지리산 종주 산행을 하는가? 안 하면 안 될 이유가 있는가? 왜 대간을 타고 정맥을 타고, 무엇을 얻었는가? 모두가 진지하게 고민하며 산을 타는가? 너무 힘이 들어 산행에 회의감이 드니 산행하는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 기를 쓴다. 전보다 체력이 좋아졌음을 확인한 것 이외의 다른 뜻은 찾지 못했다. 1959년 생으로 2007년 올해 49살이다. 다 와서 웬 투정인가! 연장 탓 안하고 조상 탓 안한다는데. 힘들다는 생각이 온통 나를 사로잡고 있다. 옛부터 그 자리에 있어 온 길 탓을 하고 있는 내가 측은하다. "오죽 힘들면 그러겠는가!" 스스로를 위로한다. 앞으로의 산행은 지리산 종주 산행만큼 힘들고 어려운 코스를 가까운 산 무등산에서 만들어 산행하련다. 여러 갈래 모습을 지닌 무등산에서 더 큰 도전을 준비하련다. 먼 데 산을 얼마동안 가보니 우리 동네 무등산이 나 한테는 참 좋음을 알겠더라. 이제 먼 데 산은 가물에 콩 나 듯, 쌀에 뉘 나 듯 갈까? 가까운 산에서 단련하여 수 년 내에 나에게 시련을 준 지리산을 다시 찾을 것이다. 오늘보다 먼 화엄사 대원사 종주 길을 준비하여. 18시 50분 중산리매표소 도착 첫 번째, 두 번째 지리산 종주 산행이 끝나고 내려와서는 긴장이 풀려서도 그러겠지만 걷지를 못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이번 산행은 그때보다 덜하다는 느낌이다. 무릎에 무리없이 산행을 잘 마무리한 것 같다. 내리막길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이다. 어떻게 해야 무릎에 충격을 덜 주며 내려갈 것인가? 30대에 무릎이 아파 한동안 산에 못가서 안타까워 했던 마음을 되새긴다. 안전 산행. 천천히 제 속도에 알맞게 가는 것이 가장 빨리하는 산행임을 음미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오래오래 산을 즐기며 산의 품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끼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평상시보다 정신이 총총하다. 산의 정기를 받아 심신이 맑아져서 일 것이다. 산을 타는 모든 이들이 산의 정기를 받아 건강이 한층 충만해져 생활에서도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2007년 7월 29일(음력 6월 16일)에 간 산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첫댓글 산애님 잘 읽었습니다...
긴 글을 읽으셨다니....끝까지 읽기 힘들죠?
에구...넘 길어 낭중에 ..... 숙제가 너무 많걸랑요
시방 지가 답글
지리산은 울 서방님 하도 많이 갔다온 사진들 보여줘설랑...안가도 간 듯 하다는...
솔직한 님이 왠지 더 사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