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들 중 살면서 단 한 번도 족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학생시절 쉬는 시간에, 회사 점심시간에, 군대 여가시간에 족구를 하는 남자들의 모습은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처럼 네트와 축구공만 있으면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족구는 우리나라에서 사랑 받는 스포츠 중 하나다.
누구나 가볍게 즐기는 족구 게임
기록에 따르면, 족구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람들이 즐겨온 놀이였는데, 1966년 공군 비행사들에 의해 현대적인 규칙이 정립되면서 그 역사와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족구와 유사한 형태의 다양한 스포츠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지역에는 배구와 축구가 혼합된 ‘세팍타크로(Sepaktakraw)’가 있으며, 유럽에는 ‘풋볼테니스(Football tennis)’ 또는 ‘풋넷(Footnet)’이라 불리는 스포츠가 199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11번의 월드 챔피언십 대회를 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패드볼(Padbol)’이라는 또 다른 퓨전 스포츠가 중남미와 유럽 지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축구공을 발로 차 네트를 넘긴다는 점에서 족구와 유사한데, 패드볼은 사방이 유리벽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패드볼은 ‘파델(Padel)’과 풋볼의 합성어인데, 파델은 테니스와 스쿼시를 혼합한 또 다른 퓨전 스포츠로 1980년대에 처음 고안되어 현재까지 중남미와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미지 목록 패드볼 로고 | 패드볼 그림 문자 |
패드볼은 2008년 아르헨티나에서 개발됐으나 이후 빠른 속도로 주변 국가에 퍼져나가, 2015년 8월 현재까지 중남미, 유럽지역 약 18개 국가에 전파됐다.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스포츠로 평가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신생 스포츠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인들은 패드볼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패드볼의 인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패드볼은 족구나 풋넷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경기를 할 수 있고, 경기장 크기도 훨씬 작아서 협소한 공간에서도 여러 경기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 또한, 단 2인이 팀을 이루어 좁은 공간에서 공을 주고받아 빠르게 상대편에 넘기기 때문에 신속하고 박진감이 넘치는 게임 진행이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패드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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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볼 경기 모습과 경기장의 형태. <출처: 스페인 패드볼협회 홈페이지> |
패드볼은 2008년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구스타보 미겐스(Gustavo Miguens)라는 건축가에 의해 고안됐다. 이 스포츠가 만들어진 것은 순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구스타보는 바비큐 파티를 하기 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불렀고, 축구를 좋아하는 그들은 식사 후 풋넷을 하게 됐다. 경기를 하던 중, 구스타보에게 받기 힘든 공이 패스됐는데, 그 공이 그의 등 뒤에 있던 화분대에 맞고 되돌아와 상대 진영에 다시 공을 넘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그는 파델처럼 풋넷 코트의 사방을 벽으로 감싸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스타보가 처음 만든 패드볼 경기장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하면서 패드볼 스포츠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패드볼을 즐기는 사람들
패드볼을 고안한 구스타보 미겐스
패드볼의 인기는 아르헨티나에서 그치지 않았다. 구스타보는 패드볼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패드볼 인터내셔널(Padbol International)’이라는 기관을 설립해 경기 규칙을 공식 문서화하고, 경기장이나 경기 장비 공인 규정 등을 마련했다.
이 스포츠는 홍보 초기 단계부터 여러 국가에서 호응을 얻어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우루과이,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등 중남미와 유럽국가에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현재 총 18개 국가에서 정식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타 국가에 비해 스페인 스포츠인들의 패드볼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스페인 패드볼협회(The Spanish Association of Padbol)에 따르면, 패드볼이 유입된 지 4년 만에 스페인에는 100여 개의 경기장이 세워졌으며, 총 32개의 파델 클럽에서 약 2만 명이 이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실력 면에서도 스페인은 종주국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다른 모든 경쟁국을 월등히 앞서고 있다. 축구와 파델 분야에서 이미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스페인은 2013년과 2014년 개최된 패드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특히, 2013년 아르헨티나 대회의 경우, 총 16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스페인 팀이 1, 2, 3위를 모두 거머쥐었고, 2014년에도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차지했다.
2014년 패드볼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자인 후안 알베르토와 후안 미겔(사진 중앙). <출처: 스페인 패드볼협회 홈페이지>
축구와 테니스를 합치다
패드볼의 경기 규칙은 축구와 테니스를 섞어놓은 형태라고 이해하면 쉽다. 공을 다루는 방식은 축구를,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테니스와 유사하다. 경기장 크기는 가로 6m, 세로 10m로 테니스 코트의 약 ⅓에 불과하며, 강화유리나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진 벽면에 둘러싸여 있다. 패드볼에 사용되는 공은 축구공과 비슷한 크기이며, 축구처럼 손과 팔을 제외한 신체의 어떤 부분도 사용이 가능하다. 각 팀의 인원은 2인으로 항상 복식 경기로 진행된다.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는 패드볼 코트
경기가 시작되어 자신의 진영에 넘어온 공은 바닥에 단 한 번 닿을 수 있으며, 같은 팀이 서로 번갈아가며 최소 두 번, 최대 세번 공을 터치해 상대편에 넘겨야 한다. 상대편으로 넘어간 공은 먼저 바닥에 바운드되어야 하며 벽에 먼저 맞게 되면 아웃으로 처리된다. 공이 바닥에서 튀어 올라 벽에 맞아도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해당 진영의 팀은 노 바운드로 공을 터치해 상대편에 넘기면 된다. 네트 주변의 레드존에서는 상대방의 공격을 블로킹해 바로 넘길 수도 있다.
점수 체계는 테니스처럼 3세트로 이루어지며, 2세트를 먼저 이기는 쪽이 승자가 된다. 1세트는 6게임을 먼저 얻어내는 쪽이 승리하는데, 각 게임의 포인트는 피프틴(fifteen; 15), 써티(thirty; 30), 포티(forty; 40)라고 한다. 그 밖에, 듀스(deuce)와 어드밴티지(advantage) 등도 테니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된다.
빠져들 수밖에 없는 패드볼의 매력
스페인의 패드볼협회장인 미겔 앙헬(Miguel Angel)은 스페인에 패드볼이라는 씨앗을 처음 뿌린 인물이다. 그는 5년 전 스포츠 관련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패드볼이라는 신생 스포츠를 처음 접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파델이라는 2가지의 스포츠를 접목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그는 국제 연맹 관계자와의 접촉을 통해 스페인에 패드볼협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는 패드볼에 흥미를 느끼고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남성 못지않게 여성에게도 패드볼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데, 현재 스페인에 있는 32개의 패드볼 클럽 중 무려 12개가 여성 운동선수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2013 패드볼 대회 우승자인 오카냐와 팔라시오스
2013년 아르헨티나 패드볼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엘레아사르 오카냐(Eleazar Ocana)와 그의 동료인 토니 팔라시오스(Toni Palacios)는 과거 축구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들은 취미 삼아 풋넷 경기를 즐겼는데 여러 친분과 입소문을 통해 패드볼을 처음 접한 후 이에 큰 매력을 느껴 주변 친구들에게 패드볼을 적극 홍보하기까지 했다. 이후, 이 두 사람은 팀을 이루어 여러 지역 대회와 국내 대회에 참여해 우승했으며, 결국에는 세계 대회에서도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이들은 프로 패드볼 선수가 되는 것을 희망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토니의 직업은 경찰이며, 엘레아사르는 여전히 축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패드볼을 ‘사회성을 키우는 데 유용한 스포츠’라고 평가하면서, 패드볼 게임을 하며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우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 이를 즐거운 여가활동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패드볼 사랑은 계속될까?
패드볼의 인기가 동호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여전히 인지도도 낮은 편이며, 프로팀이나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생 스포츠라는 한계가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일부 기업에서는 패드볼 대회를 적극 후원하기 시작했다. 사실 기업 차원의 후원이 있다는 것만 봐도 패드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적지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이미지 목록 2013년 엘체 패드볼 리그 협찬. <출처: 스페인 패드볼협회 홈페이지> | 2014년 스페인 전국 패드볼 대회 협찬. <출처: 스페인 패드볼협회 홈페이지> |
2013년 엘체(Elche)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린 패드볼 리그에는 화장품 회사인 아바보(Ababo), 조명 회사인 Led그룹(LedGroup) 등이 후원했으며, 2014년 전국 패드볼 대회에 는 시계 브랜드 타임로드(TimeRoad), 스포츠 브랜드 켈메(Kelme) 등 총 6개 기업이 스폰서로 참여했다.
스페인 패드볼협회장인 미겔 앙헬 씨는 앞으로 패드볼이 스페인의 주류 스포츠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2020년까지 스페인 내 패드볼을 즐기는 사람들을 50만 명으로 늘리고, 1,000여 개의 관련 스포츠클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패드볼이 스페인에서 어느 정도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야외활동을 좋아하고 축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 소질이 있는 데다, 이를 유난히 즐기는 스페인인들에게 패드볼의 정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다.
좁은 땅덩어리 때문에 운동할 만한 공간이 항상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패드볼은 생활 스포츠 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가로 10m, 세로 6m에,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는 패드볼 코트는 테니스처럼 코트 외 별도의 주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반 테니스 코트에 서너 개의 패드볼 코트가 넉넉히 들어갈 수 있어, 면적 대비 탁월한 이윤 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족구에 익숙한 우리나라 스포츠인들에게 패드볼은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친숙한 놀이로 여겨질 수 있어 이를 홍보하기 위한 비용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이성학 | 마드리드 무역관
2016 한국이 열광할 12가지 트렌드 전 세계 85개국에 흩어진 KOTRA의 주재원들은 2015년 한 해 지구촌 곳곳에서 새롭게 떠오른 시장과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던 상품과 서비스, 기발한 소비자들을 목격하고 취재한 정보를 담은 책. 주재원들이 직접 각 나라의 시장에서 뜨고 지는 상품을 접하며 그 나라 소비자들과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세계의 지금을 정확하고 생생하게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