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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長篇 詩-마2部.
목은시고 제3권 / 시(詩) / 이색(李穡
도중에 홀로 읊다. 3수(三首)
군자는 의당 멀리 노닐어야 하니 / 君子當遠游
멀리 노닐어야 진정을 볼 수 있네 / 遠游見眞情
공자는 도를 행하고자 하여 / 仲尼欲行道
춘풍이 만물을 불어 살리듯 했으니 / 春風吹物生
누가 알랴 허둥지둥하던 즈음에 / 誰知棲棲際
과화의 공이 이루어졌던 것을 / 過化功乃成
지금 그 도가 일월처럼 밝아서 / 至今如日月
제왕들이 이를 법식으로 삼누나 / 帝王爲法程
군자는 의당 뜻을 세워야 하니 / 君子當立志
뜻이 서야 학문을 통할 수 있네 / 立志學始通
그대는 끊어진 항구의 물을 보았나 / 君看斷港水
어떻게 동쪽 바다로 들어가리요 / 何由朝海東
구덩이가 차면 결코 멎지 않나니 / 盈科必不止
도의 밝기가 한낮의 해와 같거늘 / 道明如日中
어이하여 자포자기하는 자들은 / 奈何自畫者
양양하게 작은 공을 과시하는고 / 揚揚誇寸功
군자는 의당 기술을 삼가야 하니 / 君子當愼術
시인도 어질지 않은 건 아니로되 / 矢人非不仁
학습이 사람 가슴 뚫는 데 있기에 / 習在洞人胸
생각하면 참으로 괴로울 뿐이로다 / 念之良苦辛
이 때문에 학교에 들어간 처음에 / 所以入學初
도를 밝히고 또 윤기를 밝히나니 / 明道仍明倫
이사가 어찌 본성으로 한 짓이랴 / 李斯豈本性
책임이 고담 잘한 순경(荀卿)에 있었네 / 責在高談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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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5권 / 시(詩) / 이색(李穡
몹시 슬퍼하다. 3수(三首)
나라여 이 나라는 태조 때부터였으니 / 有國有國自太祖
영웅의 풍도 늠름하여 천고에 비치도다 / 英風凜凜映千古
전장의 문명함은 왕업을 크게 열었고 / 典章文明開寶圖
산하의 험고함은 천부를 겸하였는데 / 山河險固竝天府
변방 방비 소홀로 적의 칼날 불러들여 / 邊防網漏來遠鋒
시호처럼 독한 되놈이 백성을 도륙하네 / 腥穢屠殘毒豺虎
슬프고 슬퍼 한 번 곡하니 마음이 쓰리어라 / 哀哀一哭兮心膽苦
울다 참다 하다 보니 기운이 실낱같네 / 聲出復呑氣如縷
어머니여 어머니여 고당에 계시는데 / 有母有母在高堂
백발을 드리웠으니 그 얼마나 건강할꼬 / 領垂白髮幾何強
맹모의 삼천지교로 나를 가르치시고 / 卜隣敎孟學俎豆
적방진(翟方進) 따라 신 삼아 나를 출세시켰네 / 織屨隨翟媒軒裳
창칼만 들에 가득하고 마을은 텅 비었는데 / 兵戈滿野閭巷空
모친 몰래 업고 도주하여 충의를 상하였네 / 竊負而逃忠義傷
슬프고 슬퍼 재차 곡하니 곡소리 길기도 해라 / 哀哀再哭兮聲正長
어찌하면 와상처럼 편안한 준마를 얻을꼬 / 安得逸驥穩如牀
이 몸이여 이 몸이여 후한 작록을 받고 / 有身有身霑厚祿
무사 안일한 가운데 왕국을 보좌하면서 / 文恬武煕佐王國
격문 초해 오랑캐 교화할 재주는 없고 / 無才草檄化狼心
싸워서 말 가죽에 싸여 올 뜻만 있도다 / 有意橫戈包馬革
악중에서 젓갈 빌림은 내 차지가 아니니 / 幄中借筯不到我
임금이 걱정하면 신하는 욕이나 받아야지 / 主憂臣辱當自力
슬프고 슬퍼 세 번째 곡하니 천지가 깜깜해라 / 哀哀三哭兮天地黑
조정의 군신들은 순일한 덕을 함께하리 / 廊廟有人同一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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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5권 / 시(詩) / 이색(李穡
임연(林椽)이 준 시운에 차하여 짓다. 3수(三首)
객지 벼슬살이에 지기는 절로 당당한데 / 宦遊志氣自堂堂
세모에 뜻을 잃고 먼 지방에 유체되었네 / 歲晚龍鐘滯遠方
도를 즐기기에 일찍 세리는 능히 잊었고 / 樂道早能忘勢利
경적 연구로 다시 문장은 즐기지 않도다 / 窮經不復玩詞章
만사에 마음 놀라 눈물 줄줄 흘러라 / 驚心萬事雙危涕
되돌아보니 중원은 하나의 전장이로세 / 回首中原一戰場
가장 이 서호가 꿈에 자주 나타나는데 / 最是西湖頻入夢
매화가 초췌하여 광휘를 다 잃어버렸네 / 梅花憔悴慘無光
시끄럽고 번화한 곳에 강당을 개설하고 / 囂囂莊嶽闢鱣堂
생도들을 옳은 도리로써 잘 인도하누나 / 善誘靑衿納義方
세도의 계책은 응당 체통을 얻었거니와 / 策世只應深得體
사람 교화는 능히 문리를 성취케 하도다 / 鑄人能使斐成章
민공의 경학은 더 이상 미진함이 없고요 / 敏公經學無餘蘊
화정의 시명은 시단의 으뜸을 차지했네 / 和靖詩名獨擅場
알건대 그대의 집엔 숨은 덕이 있으니 / 知有君家潛德在
후일에 누가 은덕의 광채를 발휘할런고 / 他年誰爲發幽光
울타리도 아직 먼데 감히 당을 오를쏜가 / 藩籬尙遠敢升堂
스스로 헤아리매 무재가 대방을 만남일세 / 自揣無才見大方
세상일 논함엔 공문거에게 깊이 놀랐고 / 論世深驚孔文擧
손 칭찬엔 잘못 하지장의 대우를 받았네 / 賞賓謬被賀知章
나는 외로운 몸 이끌고 문명의 땅에 와서 / 靜携孤影衣冠地
한가히 문단에서 헛된 명성을 이루었건만 / 閑惹虛名翰墨場
오직 좌망만을 가장 즐거운 일로 삼아서 / 唯有坐忘爲樂事
때때로 심경을 다시 갈아서 빛을 내노라 / 時時心鏡更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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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 이색(李穡
느낌이 있어 읊다. 3수(三首)
자고로 지기는 도가 있는 데에 있었으니 / 自古知音在道存
분분한 세리를 다시 무엇하러 논하리요 / 紛紛勢利更何論
포정은 소를 잘 잡아 여유 있게 칼을 놀리고 / 庖丁善解餘游刃
정위는 사귀는 정을 문에다 크게 써 붙였네 / 廷尉交情大署門
먼 봉우리 뜬 구름은 청산을 가로질렀고 / 遠岫浮雲橫積翠
처마에 비친 아침 해는 온기를 펼치누나 / 短簷初日放微溫
비록 늦게 먹어도 배부르길 요구하여라 / 雖然晚食猶求飽
청백을 언제 일찍이 자손에게 끼쳤던고 / 淸白何曾遺子孫
소년 시절엔 태평 시대를 미쳐 달렸는데 / 少年狂走太平時
벼슬길에서 다시 늙을 줄 어찌 뜻했으랴 / 豈意危途更老衰
격렬한 창자만 한갓 무쇠 같을 뿐이요 / 激烈中腸徒似鐵
쓸쓸한 두 귀밑은 이미 흰 실이 되었네 / 蕭疎雙鬢已成絲
공명의 사업은 천하를 삼분한 나라였고 / 孔明事業三分國
자미는 평생에 재배하는 시를 읊었도다 / 子美平生再拜詩
몹시 발광코 싶으나 석 자 부리를 닫고 / 甚欲發狂關尺喙
문득 묵묵히 깊은 생각에 젖기만 하노라 / 却成緘默謾沈思
높은 데 올라 바라보니 생각이 끝없어라 / 登高一望思悠悠
물상과 생애 속에 온갖 근심이 모여드네 / 物像生涯感百憂
나는 홀로 무리 적어 산과 함께 빼어난데 / 我自寡徒山並秀
세인은 응당 짝이 많아 물이 갈려 흐르듯하리 / 世應多偶水分流
천 년을 안 돌아온 건 오직 황학뿐이요 / 千年不返唯黃鶴
만 리라 길들이기 어려운 건 갈매기로세 / 萬里難馴有白鷗
또 남쪽 창을 향하여 주역을 읽으노니 / 且向南窓讀周易
마음 씻고 단정히 앉아 또 무엇을 구하랴 / 洗心端坐更何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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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가련재(可憐哉) 3수(三首)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작고 못생기어 품위도 없어라 / 矮陋無容儀
내 스스로 보아도 싫증이 나니 / 自觀尙可厭
이 때문에 남들이 조롱을 하지 / 所以人共譏
기거동작은 법도에 맞지 않고 / 興俯不中式
말은 매양 어긋난 것이 많은데 / 語言每多違
오히려 고상한 풍도 천재에 드문 / 尙企晏子短
키 작은 안자가 되길 기대한다네 / 高風千載希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질병이 항상 몸을 싸고 돌아서 / 疾病常繞纏
칼로 도린 듯 아파 끙끙 앓아라 / 呻吟劇刀刮
위장은 고화가 오글오글 타듯하네 / 腸胃如膏煎
고통 속에 긴 겨울 밤을 지새노라면 / 艱辛冬夜永
잠시도 편안히 잠들 때가 없어라 / 寸刻無安眠
오만 집이 한창 깊이 잠들었을 때 / 萬戶睡正熟
근근이 숨만 쉬고 있을 뿐이라오 / 鼻息方綿綿
가련하다 이 몸이여 / 可憐哉此身
도를 실은 사람으로서 / 所以載道者
물욕의 부림을 받고 있으니 / 而爲物欲役
하천배만도 못하고말고 / 廝養不如也
또 마음 구석을 살펴보며는 / 且觀方寸地
이적과 중하를 분명히 알건만 / 明明洞夷夏
가리운 게 두터워 태양을 못 보고 / 豐蔀不見日
부질없이 긴 밤만 보내는구나 / 漫漫度長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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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스스로 읊다. 3수(三首)
벼슬함은 영화를 탐해서가 아니요 / 立朝非貪榮
떠남은 몸을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네 / 去國非潔己
세 밤을 묵고 주 땅에 나와서야 / 三宿乃出晝
호연히 돌아갈 뜻이 있었다오 / 浩然有歸志
머리 돌려 종남산을 바라보니 / 回首終南山
두릉의 뜻이 아득하기만 하여라 / 蒼茫杜陵意
유유한 천재 아래서 / 悠悠千載下
조금도 다름없이 의기가 투합하네 / 氣合無少異
일식경도 임금 은혜 못 잊건만 / 一飯不忘君
누가 내 늙음을 불쌍히 여겨 주리 / 誰憐吾老矣
어려서 배움은 몸을 꾸민 게 아니요 / 幼學非文身
자라서 행함은 영화를 꾀한 게 아닐세 / 壯行非圖己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 해도 / 枉尺直乃尋
군자가 어찌 뜻을 굽힐까보냐 / 君子豈降志
현달을 원함은 비록 인정이지만 / 發達雖人情
머뭇거림은 혹 하늘의 뜻이라네 / 低回或天意
즐거운 노래에 내 시도 읊고프나 / 酣歌矢我音
해가 지금 이미 저물었도다 / 歲今云暮矣
이치는 본디 물아가 없는 것인데 / 理也無物我
태어나서 남과 내가 있는 걸세 / 生而有人己
밝은 천명이 바야흐로 빛나거니 / 明命方赫然
누가 그 뜻을 어길 수 있으랴 / 疇能越厥志
원래부터 도에 들게 되는 건 / 由來得造道
단적으로 성의에 달린 것이니 / 端的在誠意
노력하여 이 관문을 통과한다면 / 努力過此關
천하를 평치할 수 있고말고 / 天下可平矣
‘스스로 읊다’ 3수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스스로 그 뜻을 슬퍼한 것이니, 천재(千載) 뒤에 반드시 내 마음을 알아줄 이가 있을 것이다. 군자(君子)는 도(道)를 준행하면서 중간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니, 아, 높은 산을 우러러보지 않을 수 있으며, 큰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애오라지 이것을 좌우(座右)에 기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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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잡영(雜詠) 3수(三首)
우뚝 치솟은 열두 누각 / 岧嶢十二樓
맨 위에 봉황의 날개가 있네 / 上有雙鳳翎
신선이 때로 자란 젓대를 불면은 / 時吹紫鸞笙
소리와 그림자 하늘 높이 올라라 / 聲影凌靑冥
비밀한 진결을 물어보고 싶은데 / 欲問祕眞訣
빠르기가 마치 유성과도 같구나 / 超忽如飛星
나는 삼생의 습기가 탁하기에 / 三生習氣濁
결합하기 어려움을 스스로 믿고 / 自信難合幷
취해 쓰러져 단꿈을 꾸다 보니 / 頹然就酣夢
흡사 상제의 궁정에 노닌 듯하네 / 髣髴游天庭
상제는 참으로 높은 데 거하시어 / 上帝信高居
아랫사람은 쳐다보기만 할 뿐이네 / 下人空竚瞻
하늘의 관문은 운무에 막혔는지라 / 天關阻雲霧
서풍이 동남쪽에서 불어오기에 / 閶闔來東南
서풍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 乘之欲上征
벼슬하여 때로 조참도 하고프나 / 通藉時朝參
세속 일이 이것저것 잔뜩 쌓여서 / 塵事共塡積
재삼차 스스로 탄식만 하였는데 / 自嘆方再三
꿈속에 한 신선을 만나 보니 / 夢中遇羽客
나를 경계하길 네 탐욕을 버리라 / 戒以去爾貪
네 탐욕은 값진 보배가 아니요 / 爾貪匪珍寶
명교가 바로 즐길 것이다 하누나 / 名敎是所耽
사람 마음은 물같이 맑아서 / 人心如水淸
하늘이 그 속에 거꾸로 박혔다네 / 太虛倒其中
구름 연기는 조석으로 변동하고 / 雲烟變朝夕
해와 달은 동서에서 뜨고 지는데 / 日月生西東
바람이 불어 풍랑이 일어날 땐 / 風來波浪作
살펴보면 어찌 그리도 웅장한고 / 視之何其雄
갑자기 조용하게 한 번 진정되면 / 寂然忽一定
털끝만큼도 처음과 안 다르다오 / 毫釐無異同
밝은 창 앞에서 주역을 읽노라니 / 明窗讀周易
향 연기가 맑은 허공에 흔들리네 / 香穟搖晴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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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잡영(雜詠)
태산이 숫돌로 황하가 띠로 된다 함은 / 礪山帶黃河
한나라가 공신에게 맹세한 말이니 / 漢誓功臣辭
끊임없이 후손에게 복록이 미치고 / 綿綿及苗裔
국가는 영원토록 이지러짐이 없으리 / 國家永無虧
충성심이 태양을 꿰뚫을 만한 건 / 丹心貫白日
천지신명이 엄연하게 살펴 알건만 / 森列嚴神祇
재앙의 싹은 소홀한 데서 생기고 / 禍萌生易忽
일의 형세는 변천함에 공교롭다네 / 事勢工推移
조정에서 한창 용사하는 자여 / 當朝赫赫者
묻노니 저이는 어떤 사람인고 / 問彼何人斯
예로부터 진실로 이와 같나니 / 自古諒如此
하늘의 마음을 누가 다시 알리오 / 天心誰復知
푸른 하늘은 어찌 그리 담담하고 / 靑天何淡淡
밝은 달은 어찌 그리 아름다우며 / 明月何娟娟
맑은 바람은 어찌 그리 솔솔 불며 / 淸風何習習
군자는 어찌 그리 편평한고 / 君子何平平
이 편평함을 끝내 어디에 쓸꼬 / 平平竟安用
도는 자연을 귀히 여김에 있나니 / 道在貴自然
사람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법은 / 以人理人耳
곧 요순이 서로 전수한 바이로세 / 唐虞之所傳
이런 뜻이 오랫동안 적막해져서 / 此意久蕭索
시속은 과격함을 어질게 여기지만 / 崛强時所賢
내 노래를 시험 삼아 들어본다면 / 我歌且試聽
삶은 생선의 좋은 맛을 느끼리라 / 雋永思烹鮮
남쪽 마을은 부가 하늘을 진동하고 / 南里富熏天
북쪽 마을은 가난이 뼈에 사무쳐라 / 北里貧到骨
시물은 한결같이 고움을 뽐내는데 / 時物一以姸
인정은 아주 사소한 걸 구분한다오 / 人情析毫忽
군자는 사사로 친한 것이 없기에 / 君子無私親
동정이 길하지 않은 게 없거니와 / 動靜罔不吉
남 해치지 않고 탐욕도 안 부리며 / 不忮亦不求
한가로이 긴 세월을 보낸다네 / 悠悠送長日
도덕이 마음속 깊이 자리하면 / 天爵被靈臺
하늘이 안락하도록 인도해 주나니 / 上帝時引逸
머리 숙여 하늘의 명을 받들면 / 稽首承天明
내 자리 다습고 굴뚝도 검어지리 / 席暖黔我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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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6권 / 시(詩)
새벽에 일어나서 읊다. 3수(三首)
밤에 누우니 뼈가 시리고 아파 / 夜臥骨酸辛
뒤척뒤척 괴로운 시름 그지없어라 / 展轉苦愁絶
몹시 슬퍼 심장은 오글오글 타고 / 深悲肝腎焦
하도 두려워 살갗은 찢길 듯하네 / 大恐皮肉裂
갑자기 첫닭이 한 번 울어대고 / 鷄聲忽一叫
벽에 비친 등불은 깜빡거리는데 / 照壁燈明滅
옷 걸치고 다시 일어나 앉아서 / 攬衣更危坐
아침 기운에 남긴 비결 상고하니 / 旦氣考遺訣
지극한 도는 아직도 아득하지만 / 至道尙渺茫
앞길은 판연하게 결정이 나누나 / 前途判然決
닭이 우니 마음은 이미 트였는데 / 鷄鳴心已豁
해가 뜨니 창문 또한 환하여라 / 日出窓更明
향 사르고 담담히 앉았노라니 / 焚香澹無累
깨끗한 마음 평온하기 그지없네 / 皎皎止水平
천지가 함께 한 집이 되어 / 天地共一室
위와 아래가 모두 깨끗하여라 / 上下俱澄淸
즐거울사 길이 바름을 보전하고 / 樂哉保永貞
상제 섬겨 내 삶을 순히 하노니 / 事帝順吾生
예의 넘치는 이 요순 시대에 / 揖讓唐虞際
그 누가 나에게 서로 친해줄런고 / 誰與予目成
질병을 요양하려 탕약을 마시고 / 撫病與湯藥
추위가 무서워 탄불을 재촉하니 / 哀寒促火炭
초동은 한낮에 나무를 하러 가고 / 樵童去近午
아내는 계곡으로 물 길러 나가네 / 爨婦出汲澗
오히려 기쁜 건 빈객이 드물어서 / 尙喜賓客稀
주인 또한 느지막이 일어남일세 / 主人亦起晏
머리 싸매고 남창을 향해 있으면 / 蒙頭面南窓
꼭 마판에 엎드린 관단마 같거니 / 伏櫪如款段
이로부터 다시 무엇을 근심하랴 / 從玆更何憂
토포 악발은 주공이 할 터인데 / 吐握有周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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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밤에 읊다. 3수(三首)
서적과 향불 화로 써늘하기 중 같아라 / 經卷香爐冷似僧
푸른 등잔 벽 중턱에 얼음이 생기려 하네 / 靑燈半壁欲生氷
그 누가 알리요 한 점 티끌도 없는 곳에 / 誰知一點無塵處
분명히 서로 주고받은 공증이 있었음을 / 授受分明有孔曾
나는 본디 생활 대부분이 죽반승과 같아서 / 我是多生粥飯僧
괴로운 마음 깨끗한 절조가 빙벽을 겸했으니 / 苦心淸節蘗兼氷
시 읊고 이슬 마심은 응당 누됨이 없거니와 / 吟風吸露應無累
봉 요리 용 요리 먹는 건 일찍이 없었다네 / 炰鳳烹龍却未曾
배움 끊고 아무 할 일 없는 하나의 중이 / 絶學無爲一箇僧
무슨 여력으로 차고 더움을 분변하려 할쏜가 / 肯將餘力辨湯氷
공부는 도리어 부들자리 위에 있을 뿐이요 / 功夫却在蒲團上
만수 천산은 내가 진작부터 기억한 바라네 / 萬水千山記我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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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아침에 읊다. 4수(四首)
나이 오십여 세가 되고 보니 / 行年餘五十
귀밑털이 점차 희끗희끗해지는데 / 鬢髮漸星星
지붕 모서리엔 찬 소나무가 푸르고 / 屋角寒松碧
담장 모퉁이엔 늙은 냉이가 푸르러라 / 墻隈老薺靑
먼지는 서책 속에 끼어 있고 / 素塵棲竹簡
눈 녹인 물은 다경에 적혀 있네 / 雪水紀茶經
맑은 흥취가 아침에 더하여라 / 淸興朝來甚
꽃병에 매화꽃이 비치는구려 / 梅花照膽甁
입으로 쌀은 씹어먹을 만하니 / 長腰堪咀嚼
닭 주둥이 되는 건 괜찮거니와 / 雞口亦容與
아 소 똥구멍은 되지 말아야지 / 咄咄無牛後
쥐가 남긴 묵은 쌀도 좋으리라 / 陳陳或鼠餘
평생에 그냥 먹고 마시기만 하니 / 平生徒哺啜
세상일이 참으로 한탄스러워라 / 世事足欷歔
마음속의 번민이 가장 두려우니 / 只怕心中悶
차라리 뱃속을 텅 비게 해야겠네 / 寧敎腹裏虛
시골 중은 참으로 허탕하여 / 野衲眞虛蕩
일미선에 정진하고 있는데 / 參來一味禪
시를 지어달라고 자주 찾아와서 / 索詩頻叩戶
지팡이 놓고 문득 자리에 오르네 / 釋杖便登筵
권선하는 글은 천 권이나 되고 / 勸善文千卷
공을 표창한 기문도 두어 편인데 / 旌功記數篇
붓끝에 남은 힘이 있어 / 筆端餘力在
분복이 인천에 가득하겠네 / 分福滿人天
고상한 회포를 어디에 부칠꼬 / 雅懷何所寄
높이 올라 봉처럼 훨훨 날아볼까 / 高逝鳳飄飄
당 뒤엔 얼음이 아직 쌓였는데 / 堂背氷猶疊
산 이마엔 눈이 이미 녹았구나 / 山顔雪已消
연래에 조롱은 스스로 해명하나 / 年來嘲自解
늙어 가매 은자는 누가 불러줄꼬 / 老去隱誰招
이제 중흥송을 초하고자 하여 / 欲草重興頌
조정에서 정히 민요를 채집하네 / 朝廷政採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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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독야(獨夜) 8수(八首)
처자식은 경치 좋은 데 놀러가고 / 婦兒游勝境
늙은 나는 집을 지키고 있노라니 / 老病守窮廬
아직껏 정신 빼어남이 기뻐라 / 尙喜精神秀
이와 머리털은 성글거나 말거나 / 從敎齒髮疎
평생을 그럭저럭 지낼 뿐이니 / 平生聊爾耳
필경에는 정히 어찌할거나 / 畢竟定何如
기억컨대 승죽을 얻어먹을 적엔 / 記得隨僧粥
연기 놀 속에 목어가 움직였었지 / 烟霞動木魚
늙은 목은은 기심 잊은 지 오래라 / 老牧忘機久
연래엔 집이 얼음처럼 청결하네 / 年來室似氷
여러 애들은 한창 곤히 자는데 / 衆雛方爛睡
긴 밤에 등불은 꺼지려 하누나 / 長夜欲殘燈
아직 삼업을 맑히지 못했거니 / 但未淸三業
어찌 이승에 떨어질 수 있으랴 / 何曾落二乘
산 놀이엔 봄이 점점 좋아지는데 / 遊山春漸好
다행히 해묵은 오등이 있구나 / 幸有老烏藤
세월이 흘러 나는 늙어만 가는데 / 鼎鼎吾將老
유유한 것은 다만 이 마음이로세 / 悠悠只此心
강산은 혼자 노닐기에 알맞고 / 江山宜獨往
풍월은 맑은 읊조림을 요하누나 / 風月要淸吟
학문이야 어찌 고봉을 벗하랴만 / 學豈友高鳳
화하기론 응당 전금을 본받아야지 / 和應師展禽
붓끝에 봄이 한창 광대하여라 / 筆端春浩蕩
화초가 문단에 두루 펼쳐지누나 / 紅綠遍詞林
어제 여기 날아온 흰 구름은 / 昨夜白雲來
응당 만 리 밖에서 왔을 텐데 / 應從萬里歸
오늘 아침에 붉은 해가 나오자 / 今朝紅日出
문득 사방 산으로 날아 흩어지네 / 却向四山飛
그림자가 있은들 누가 능히 짝하랴 / 有影誰能伴
무심하기론 세상에 드문 거로다 / 無心世所稀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 看渠卷舒處
그것만으로도 벌써 기심을 잊었네 / 祇是早忘機
산당에 차가운 밤 하도 기니 / 山堂寒夜永
점차 도심이 깊어짐을 깨닫겠네 / 漸覺道情濃
얼음이 녹으니 솥에선 물이 끓고 / 氷釋湯鳴鼎
구름이 옮기니 달은 소나무에 있네 / 雲移月在松
서로 대하면 다 같은 동기이건만 / 相形固同氣
체가 같아야만 서로 용납한다오 / 同體却相容
혼자 읊조리매 생각이 끝없어라 / 獨詠思無盡
슬픈 소리가 귀뚜라미 소리 같네 / 悲聲似砌蛩
인생은 맘에 맞는 게 귀중하나니 / 人生貴適意
나 또한 나의 집을 사랑한다오 / 吾亦愛吾廬
흥이 있어도 누구와 함께 말하랴 / 有興將誰語
생각 있으니 문득 태연해지누나 / 忘懷却自如
얼음 녹으니 계곡은 졸졸 흐르고 / 氷消泉谷咽
눈이 다하니 나무숲은 성글어라 / 雪盡樹林疎
그윽한 회포 익숙함은 자신하건만 / 自信幽懷熟
자허부를 지을 길이 막연하구나 / 無從賦子虛
구몽은 점치는 관원이 있거니와 / 九夢官有占
한 번 죽음은 하늘이 명한 바로세 / 一死天所賦
자가 계시거니 회가 감히 죽으랴 / 子在回何敢
내 쇠하여 주공을 다시 못 보리라 / 吾衰周不復
영혼은 응당 유명을 통하거니와 / 精魄通幽明
수요는 끝내 천지와 함께한다오 / 壽夭同仰俯
생명 기도할 데 없음을 잘 아노니 / 深知無所禱
하루하루를 조심조심 지낼 뿐일세 / 惕若度朝暮
양지쪽 비탈엔 봄이 굼틀거리고 / 陽崖春動盪
음지쪽 구렁엔 눈이 희미한데 / 陰壑雪糢糊
거마의 세속 자취는 전혀 없고 / 車馬塵蹤絶
종어만 외로이 절간에 걸리었네 / 鍾魚梵刹孤
길이 수석 찾기를 생각하느라 / 永懷尋水石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래 앉아서 / 晏坐度朝晡
일만 그루의 낙락장송 아래 / 萬樹長松下
밝은 창 밑에 병든 몸 부치었네 / 明窓着病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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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즉사(卽事) 9수(九首)
시냇물 소리는 꿈속에도 맑건마는 / 溪聲夢裏猶淸
다만 부질없는 세속 일에 골몰하여 / 祇被塵緣汨沒
내 그윽한 정 저버림에 기가 꺾이네 / 垂頭負我幽情
밝은 달은 때로 왔다갔다 하거니와 / 明月時來時去
창랑수는 탁하기도 하고 맑기도 하네 / 滄浪有濁有淸
슬프다 내 평생에 사물을 관찰함은 / 慨我平生觀物
삼연한 공자의 생각 주공의 뜻이로세 / 森然孔思周情
술의 흥취와 시의 생각은 질탕하고 / 酒興詩情跌宕
하늘 모습과 바다 빛은 맑기만 하네 / 天容海色澄淸
일생의 세월을 어느덧 보내고 보니 / 斷送一生光景
공부는 다만 희로애락 잊는 데 있었네 / 功夫只在忘情
사륙변려문 지어서 기교 부리고 / 造語騈儷逞巧
청탁의 성운 맞춰 조화를 이루어라 / 諧聲淸濁含和
늙은 나는 이제 정신이 흐릿한데 / 老我如今怳惚
그대는 젊어서부터 활발함이 좋구나 / 喜君自少婆娑
평담함은 본래부터 맛이 적고요 / 平淡由來少味
청신함은 도리어 풍취가 많다네 / 淸新却是多姿
도끼로 깎은 흔적 전혀 없어라 / 斧鑿了無痕跡
동쪽 울에서 유연히 국화를 따도다 / 悠然採菊東籬
정회를 쏟아서 혼자 즐길 뿐이니 / 陶寫情懷而已
공덕을 선포하는데야 어찌하리요 / 鋪陳功德則那
늙은 목은이 근래에는 무양하여 / 老牧邇來無恙
온종일 청산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네 / 靑山盡日高歌
타파하면 원래 안팎이 없는 건데 / 打破元無內外
보아 오매 어찌 중간이 있으리요 / 看來何有中間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찾아오는 이가 모두 청한하리라 / 敲門盡是淸閑
일조의 허령은 스스로 만족커니와 / 一朝虛靈自足
다생의 장애는 모두가 텅 빈 거로세 / 多生障礙皆空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밝은 달 맑은 바람과 회통하리라 / 會通明月淸風
산색 보자고 어찌 애써 문을 열쏜가 / 山色何勞排闥
버들 그늘은 절로 뜰에 그득하네 / 柳陰自可充庭
늙은 목은이 이제부턴 활달해져서 / 老牧從今豁達
태평한 천지 사이에 소요하리라 / 逍遙天地淸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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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7권 / 시(詩)
잡영(雜詠) 3수(三首)
세상 다스림엔 다른 계책이 없고요 / 御世無餘策
백성 위함은 하늘 받드는 데 있나니 / 因民在奉天
사치와 검소의 예를 조절하고 / 節文奢儉禮
억양하는 권변을 헤아려야 하리 / 斟酌抑揚權
종이쪽은 좁아서 도장 찍기 어렵고 / 紙狹難容印
명함 하나만 쓰고 전은 생략하여라 / 銜單却省牋
알건대 태평성대가 곧 다가와서 / 太平知有日
천하 만물이 화육 속에 들어오리 / 萬物入陶甄
나는 질병 많음을 가련케 여기는데 / 自憐多疾病
남들은 아직도 건강하다고 하네 / 共道尙康强
늘그막이라 즐거운 마음은 적은데 / 老境懽情少
새봄이라 화창한 기운은 많구나 / 新春和氣長
옥계는 바야흐로 상서를 기록하고 / 玉雞方紀瑞
금압 향로엔 향 연기가 타오르니 / 金鴨正燒香
반드시 배꽃 같은 달을 마주하여 / 須向梨花月
좋은 자리에 술잔을 기울여야지 / 瓊筵倒羽觴
친구들은 지금 몇이나 남았는고 / 朋友今餘幾
교외엔 봄이 태반이나 지났구려 / 郊原春半强
새로운 시름은 날마다 생겨나고 / 新愁隨日出
호기는 봄과 더불어 자라나누나 / 豪氣與春長
달은 넘실대는 금파에서 감상하고 / 月賞金波灔
꽃은 향기로운 백설에서 찾노라 / 花尋白雪香
이제부턴 꼭 촛불 잡고 노닐면서 / 從玆須秉燭
흥겨울 때마다 술잔을 기울이리 / 遇興且傾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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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8권 / 시(詩)
스스로 읊다. 4수(四首)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 남들과 달라서 / 平生嗜好與人殊
병중의 회포가 스스로 즐기기에 넉넉하네 / 病裏情懷足自娛
침상 앞의 흰 구름은 먼 봉우리서 나오고 / 晝榻白雲生遠岫
새벽 창의 찬 이슬은 오동에서 떨어지누나 / 曉窓寒露滴高梧
좌석 모신 학동은 몸이 온통 먹빛이요 / 書童侍座身將墨
집에 온 늙은 의원은 성이 바로 주씨라네 / 醫老過門姓是朱
천지가 태평한 곳이 가장 사랑스러우니 / 最愛乾坤呈露處
찾아올라서 곧장 요순 시대에 이르고파라 / 相尋直欲到唐虞
부자가 안회 어짊 감탄한 걸 진작 알거니와 / 早知夫子歎回賢
찬앙의 공부는 갑자기 전후한 데 깊었었네 / 鑽仰功深後忽前
지금 내 나이는 오십여 세가 되었건만 / 政是行年餘五十
언제 삼천의 예를 다 실천한 적 있던가 / 何曾蹈禮盡三千
취한 뒤의 방탕함은 깬 뒤에 기억 못하고 / 醉來放蕩醒難記
싸움은 번화에 밀려 지킴이 견고치 못하네 / 戰退繁華守未堅
가장 한스러운 건 글 읽어 소득 없는 곳에 / 㝡恨讀書無得處
백발의 신세가 다 망연자실뿐인 것이로다 / 白頭身世儘茫然
밤 기운이 차서 혈액 순환도 잘 안 되는데 / 血不歸肝夜氣凝
계집애는 잠결에 억지로 등불을 돋우네 / 小娥帶睡强挑燈
종횡의 문자는 그 누가 제일이었던고 / 縱橫文字知誰最
정정의 공부는 어찌 내가 능히 하리요 / 定靜功夫豈我能
창 틈으로 보인 별빛은 밝은 빛 한 점이요 / 窓隙星光明一點
베개 밑의 산 빛은 푸르름이 천 층이로다 / 枕頭山色翠千層
두문불출 수년에도 입은 열고 말을 하니 / 閉門數載猶開口
도리어 그 당시 늙은 앉은뱅이 중 같구나 / 却似當時老躄僧
백발이라 연래의 기개를 스스로 조소하노니 / 垂白年來氣自調
세교는 저러한데 진정의 사귐은 적구려 / 勢交如彼少心交
영유의 패망한 일은 온통 꿈만 같고요 / 嬴劉顚蹶渾如夢
왕사의 풍류는 정히 조정에 가득하도다 / 王謝風流政滿朝
못 가운데 물고기가 피곤하단 말 모두 믿으니 / 摠信池中魚圉圉
반드시 높은 언덕에 봉황이 날게 하리라 / 會敎岡上鳳飄飄
다만 지금 내 신세는 누구에게 물어 볼꼬 / 祇今身世憑誰問
남쪽 멀리 고향의 산 한 점을 바라보노라 / 南望鄕山一點遙
또 짓다. 2수(二首)
평생에 옛것을 좋아한다 일컫노니 / 平生稱好古
수시로 변천하는 풍속이 한스럽네 / 風俗嘆移時
성인의 도는 글 속에서 찾거니와 / 聖道書中覓
인정은 날이 추워진 뒤에야 안다오 / 人情歲後知
청산은 마치 약속이 있는 듯한데 / 靑山如有約
백일은 정히 사심이 없도다 / 白日正無私
다행히도 시 짓는 세계가 있기에 / 賴是詩家地
참으로 노년을 의탁할 만하구나 / 眞堪托老衰
시비는 스스로 풀기 어렵고 / 是非難自解
마음속은 하늘만이 안다네 / 方寸只天知
병중엔 의당 별다른 일이 없어 / 病裏無餘事
한가할 때엔 예전 시를 고친다오 / 閑中改舊詩
구름 걷히니 하늘은 더욱 멀고 / 雲收天更遠
산이 고요하니 해는 옮아가려 하네 / 山靜日將移
패옥 떨구고 관 벗은 곳에 / 落佩倒冠處
때때로 두목지를 찾노라 / 時時尋牧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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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9권 / 시(詩)
원중잡영(園中雜詠)
송(松)
솔의 마음은 우뚝이 곧은 지조를 품어서 / 松心落落抱幽貞
솜이 끊기고 쇠가 흘러도 한가지로 푸르니 / 綿折金流一樣靑
응당 괴이타 하리 주인은 조금 괜찮은데도 / 應怪主人差可者
두 귀밑이 이미 성성해짐을 막지 못한 걸 / 不禁雙鬢已星星
율(栗)
밤은 초구에 있어 일찍이 시로 노래했기에 / 栗在楚丘曾詠詩
제수와 손 접대로 쓰는 걸 세상이 다 아는데 / 用充賓祭世皆知
유독 가련타 목은은 가난하여 먹을 게 없어 / 獨憐老牧貧無物
여물기도 전에 벌써 아이들을 먹이네그려 / 未得肥時已啖兒
이(梨)
이원에서 취하여 꽃 감상하며 읊조렸어라 / 梨園醉裏賞花吟
제공들의 정시음 시풍을 내 들어봤는데 / 見說諸公正始音
늙은 목은은 한가로이 열매만 먹으면서 / 老牧閑居惟食實
시고 단 맛 섞인 가운데 세월을 보내노라 / 酸甘相雜度光陰
행(杏)
살구꽃 마을에 오던 비가 막 개고 나니 / 杏花村裏雨新晴
향기론 바람이 농부에게 불어온 걸 보겠네 / 曾見香風洒耦耕
늙어 가매 뿌연 먼지 회상하기도 괴로워라 / 老向紅塵苦回首
몇 번이나 담장 머리 두어 가지 꽃을 봤던고 / 幾看墻角數枝明
도(桃)
한번 도원에서 진나라 난리 피함으로부터 / 一自桃源得避秦
지금까지 그 누가 그 사람을 안 부러워하랴 / 至今誰不羨其人
꽃 따고 열매 먹는 건 참으로 잗단 일이요 / 採花食實眞細事
산천이 난세와 격해 있음을 기뻐할 뿐이네 / 只喜山川隔戰塵
추(楸)
가래나무는 높고 높아 반공중에 치솟아서 / 楸樹高高倚半空
봄엔 잎 피고 겨울엔 우뚝해 앞산을 굽어보네 / 春敷冬竦壓前峯
뿌리는 땅 밑의 샘 근원에 깊이 서려 있는데 / 根蟠地下泉源在
그늘은 용 비늘 얻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누나 / 蔭得龍鱗入海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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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0권 / 시(詩)
잡제(雜題) 5수(五首)
베개맡에 바람 소리는 급하더니 / 枕上風聲急
창문 사이의 햇빛은 다사롭구나 / 窓間日色溫
그윽한 생활 자유 자적 만족하여 / 幽居甘自適
조용히 앉아 담담히 말을 잊노라 / 靜坐澹忘言
인가들은 연기가 용마루에 나오고 / 萬戶煙生棟
외론 마을엔 눈이 문에 가득하네 / 孤村雪滿門
인정은 모두 세월을 중시하건만 / 人情重時歲
나는 늘그막에 천지를 사절했노라 / 老境謝乾坤
한산에 새로 제수된 태수는 / 韓山新太守
나이 젊고 조행 또한 아름다워 / 年少更淸脩
성적 고사에서 높이 발탁되어 / 都目當高擢
오두로서 멀리 노닐게 되었네 / 遨頭却遠游
빈 관아엔 마른 풀이 썰렁하고 / 空衙寒草地
북소리는 석양 수루에서 울리리 / 戍鼓夕陽樓
밤엔 누웠어도 잠 이루기 어려워 / 夜臥難成夢
등잔 앞에 온갖 근심이 모이겠지 / 燈前集百憂
낭서로서 청요직까지 겸하여라 / 郞署兼淸要
혼자 유독 노성한 인재로구려 / 人材獨老成
젖비린내 벗었다고 누가 말했나 / 誰言離乳臭
문득 세상 여론 살피게 되었네 / 便得察輿情
관의 옥은 아침 햇살에 빛나고 / 冠玉明朝旭
뜰의 괴나무는 석양에 우뚝한데 / 庭槐峙晚晴
조산이라 시냇가의 길목엔 / 造山溪畔路
발걸음마다 패옥 소리 요란하구려 / 步步佩環聲
학문은 안팎을 밝혀야 하려니와 / 學須明內外
이치는 반드시 호리를 살펴야 하리 / 理必察毫釐
비록 듣고 본 게 많다 하더라도 / 縱是多聞見
의당 의심나고 미안한 건 빼야지 / 尤當闕殆疑
천명을 받들면 끝내 혁혁해지리니 / 奉天終赫赫
처신을 정히 노력해야 하고말고 / 行己定孜孜
해는 저물어가고 바람 소리 급한데 / 歲暮風聲急
고요히 앉았는 이때를 그 누가 알랴 / 誰知靜坐時
방은 고요하여 티끌 한 점 없고 / 室靜塵難染
창은 밝은데 해가 또 높이 돋으니 / 窓虛日又高
고요함은 응당 야기를 내거니와 / 靜應生夜氣
밝음은 털끝도 분석할 수 있다오 / 明可析秋毫
물을 취하려고 음수를 달아매고 / 取水懸陰燧
바람을 당하여 퉁소를 불어 대라 / 臨風捻洞簫
조용히 홀로 유유자적 하노라니 / 從容聊自適
군자는 정히 화락하기만 하다네 / 君子政陶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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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1권 / 시(詩)
담장 위의 풀[墻上草]을 읊다. 3수(三首)
담장 위는 편평한 땅이 아니로되 / 牆上非平地
네 생명도 다른 식물과 똑같이 / 渠生與物同
한 하늘 비이슬을 골고루 입고 / 一天均雨露
이삭 드리워 추풍에 애교 부리네 / 垂穎媚秋風
미물도 스스로 성취할 줄 알지만 / 物微還自遂
척박한 땅에선 전혀 다른 법인데 / 地瘠絶無同
하늘 가득 눈보라만 두려워할 뿐 / 祗怕漫天雪
악목의 거센 바람을 어찌 알리오 / 那知惡木風
누가 옛날에 못 고기를 아끼었던가 / 池魚誰昔愛
담장의 풀도 완연히 그와 같구나 / 牆草宛相同
태극은 원래 밖이 없는 것이라서 / 大極元無外
풀끝에서도 비바람이 일어난다네 / 毫端有雨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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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2권 / 시(詩)
세화(歲畫) 십장생(十長生)을 읊다.
십장생은 곧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 지초[芝], 거북, 학(鶴), 사슴이다.
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지금이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
푸르고 푸른 하늘은 밤낮으로 회전하고 / 圓象蒼蒼晝夜旋
산하 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와 같은데 / 山河大地海中船
해 바퀴는 만고에 멈추는 곳이 없건만 / 日輪萬古無停處
달이 혹 앞서고 뒤서는 게 가소롭구나 / 可笑姮娥或後先
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형세 월등히 달라져 / 觸石漫空勢迥殊
신기루와 하늘의 형체를 몽땅 감춰 버리네 / 藏形海市與天衢
말고 펴고 하여 사람 눈을 미혹하겐 하지만 / 雖然舒卷迷人眼
주룩주룩 비 내리어 만물을 소생시킨다오 / 興雨祈祈萬物蘇
기수에 목욕한 당일 번잡한 가슴 씻었으니 / 浴沂當日洒煩襟
문득 긴 흐름이 고금에 뻗치었음을 알겠네 / 便識長流亘古今
한번 중니의 냇가의 탄식을 받음으로부터 / 一領仲尼川上嘆
바다를 봐야 깊은 줄 안다는 말 인정 않노라 / 不容觀海始知深
오악이 죽 연이어서 뭇 산을 압도하건만 / 五嶽聯綿壓衆山
오직 모래와 흙으로만 둥글게 뭉쳐졌는데 / 只將沙土肉成團
누가 알리요 돌이 한가운데 골격이 되어 / 誰知有石中爲骨
물이 할퀴고 천둥이 쳐도 끄떡하지 않는 걸 / 水囓雷搖兀自安
북쪽 낭떠러지에 한 그루 소나무가 있어 / 北崖有箇一株松
늙은 내가 이거하여 두 겨울을 났는데 / 老我移居再見冬
더구나 이 용만이 곡령을 조회하는 곳엔 / 況是龍巒朝鵠嶺
하늘 찌르는 소나무들이 절로 겹겹임에랴 / 拂雲蒼翠自重重
일찍이 기억컨대 집에 대 심고 완상할 제 / 曾記幽居種竹看
담장 달빛 섬돌 바람이 찬 기운 보내왔네 / 月牆風砌送微寒
나이 구십 되거든 기수가의 대를 바라보며 / 行年九十瞻淇奧
앉아서 무성함 읊고 다시 관을 정제하리 / 坐詠猗猗更整冠
예천과 주초는 바로 아름다운 상서인데 / 醴泉朱草是嘉祥
사책에 연서하여 나란히 광채를 내누나 / 史冊聯書對有光
어찌하면 노인들처럼 깊은 산에 은거하여 / 何似老人曾鵠去
이걸로 요기하고 한실을 붙들 수 있을꼬 / 療飢扶得漢明堂
멀리 생각건대 용도는 하수에서 뛰어나왔고 / 緬想龍圖躍在河
낙귀는 하늘이 내려 왕가의 상서 되었는데 / 洛龜天錫瑞王家
신선 거북으로 표출된 이후부터는 / 自從表出神仙後
문득 산중에 들어가 해의 정기만 삼키누나 / 却入山中嚥日華
삼신산은 아득해라 그곳이 어드메이뇨 / 三山渺渺是何方
태선을 타고 옥당엘 들어가고 싶어라 / 欲駕胎仙叩玉堂
한스러운 건 평생에 도골이 못 된 내가 / 却恨平生無道骨
부질없이 세인들의 사모함을 받음일세 / 謾敎塵世慕昻藏
진궁에서 말 대신한 일은 이미 그릇되었고 / 代馬秦宮事已非
오대 아래 놀던 곳엔 또 석양이 비끼었네 / 吳臺游處又斜暉
담장 넘어 짐짓 산중의 절로 들어가서는 / 踰牆故入山中寺
천하가 분분하여 재앙 기틀이 그지없었네 / 天下紛紛足禍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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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3권 / 시(詩)
눈 3수(三首)
근년엔 겨울이 오히려 다숩고 / 近歲冬猶暖
새봄에는 눈이 또 내리누나 / 新春雪又來
옥루는 자리를 따라 우뚝하고 / 玉樓從座聳
흰 띠는 수레를 좇아 돌아오네 / 縞帶逐車回
고각은 멀리 바라보기 어려우나 / 高閣難遙望
빈 처마는 홀로 짝하기 좋구려 / 虛簷好獨陪
나귀 등의 흥취는 가련도 해라 / 可憐驢背興
편히 앉아서 깊은 술잔 기울이네 / 穩坐倒深杯
은자가 문 닫고 들어앉았는데 / 幽人閉戶坐
함박눈이 하늘 가득 내리누나 / 密雪滿空來
다숩던 겨울을 깨끗이 쓸어가고 / 淨掃冬溫去
응당 따뜻한 봄을 재촉하겠지 / 應催春暖回
매화 떨어 진 건 세속이 좋아하지만 / 落梅知俗好
부러지는 대는 누가 받쳐줄쏜가 / 折竹有誰陪
공연히 날리는 버들개지에 비겼더니 / 謾擬因風絮
되레 바다에 나간 편주와 같구려 / 還如就海杯
누추한 시골에 봄이 오려 하는데 / 陋巷春將至
새해에는 손이 일찍 찾아왔네 / 新年客早來
흰옷 입은 선녀는 한만하게 노닐고 / 素娥游汗漫
흰 학은 빙빙 돌아 나는구나 / 白鶴弄低回
밤이 되면 홀로 듣기에 알맞으나 / 入夜偏宜聽
갠 날의 감상은 누구와 짝할꼬 / 賞晴誰與陪
평생을 두고 고심하여 읊는 곳에 / 平生苦吟處
어찌 다시 은잔을 셀 것 있으랴 / 肯復數銀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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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5권 / 시(詩)
고풍(古風) 3수(三首)
대아는 어찌 그리도 광활한고 / 大雅何寥闊
왕풍은 정히 산만하기만 하네 / 王風政漫瀾
뜬구름은 변방 구석에서 이는데 / 浮雲興塞隅
옛 달은 그대로 둥글기만 하구나 / 古月仍團團
슬프다 난새 봉새는 높이 날고 / 哀哉鸞鳳翔
가시나무는 잡초와 서로 연했네 / 枳棘連榛菅
주공 공자가 세상에 안 나오니 / 周孔不世出
이단들이 분잡하게 일어나누나 / 雜然多異端
대의는 날로 어두워져만 가는데 / 大義日以晦
하얀 머리털은 의관을 내리덮고 / 霜雪沾衣冠
내 몸은 또 병까지 많은 터라 / 我骨又多病
날이 흐리면 더욱 쑤시고 아프네 / 天陰彌辛酸
날이 흐리면 신기가 푹 갈앉아 / 天陰神氣沈
깊은 못에 잠긴 듯 깜깜해지네 / 悶悶窮淵潛
지극한 도를 바라보기 어려움은 / 至道杳難望
위아래로 고금이 다 그러했거니 / 上下通古今
점잖고 조용함은 군자의 양이요 / 舒遲君子陽
참혹하고 박절함은 소인의 음이라 / 慘迫小人陰
치란의 결과는 근원에 말미암나니 / 治亂出以原
지난 자취를 다 찾을 수 있고말고 / 軌轍皆可尋
간악한 자 죽이려고 내 이를 갈고 / 誅姦切我齒
덕을 숭상할 데 내 마음 기울이네 / 尙德傾我心
행실에서 조짐을 완벽히 살펴야지 / 視履考祥旋
그리 못 하면 말하는 새일 뿐이리 / 否則能言禽
말을 잘함은 몸의 꾸밈일 뿐이니 / 能言文身耳
그것은 겉이라 숭상할 바 아니로세 / 外也非所崇
조용히 한방 안에 앉아 있어도 / 靜默坐一室
마음은 하늘땅과 서로 통하여라 / 心與天地通
옛사람은 목격을 중히 여겼기에 / 古人重目擊
세도가 대동으로 오르게 됐는데 / 世道升大同
지금 사람은 말만 번드르르할 뿐 / 今人口瀾翻
마음속엔 산과 바다가 막히었네 / 山海方寸中
이런 때문에 목은자는 / 是以牧隱子
세상일을 보도 듣도 아니하고 / 收視仍塞聰
흥겨우면 붓으로 뱉아낼 뿐이거니 / 有興吐以筆
감히 궁하여 공교한 시에 비기리오 / 敢擬窮詩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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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금사 팔영(金沙八詠)
염동정(廉東亭)이 여주(驪州) 천녕현(川寧縣)의 금사장(金沙莊)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일에 따라 명칭을 붙여 모두 여덟 제목(題目)으로 만들고 인하여 근심과 슬픈 정을 서술하였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그 일을 잊지 못하여 나에게 함께 짓기를 청하였다.
서산채미(西山採薇)
봄비는 바람 따라 부슬부슬 내리고 / 春雨隨風細
봄 산은 가는 곳마다 깊기만 한데 / 春山到處深
그 어떤 사람이 고사리를 캐어서 / 何人能採蕨
백이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고 / 惹起伯夷心
동강조어(東江釣魚)
생선맛 좋단 말 일찍이 들었는데 / 早聞鮮味雋
모두 잔 고기 살진 걸 말들 하니 / 摠說細鱗肥
가을바람 일기를 기다릴 것 없이 / 不待秋風起
장한을 따라서 돌아가고만 싶어라 / 願從張翰歸
용문착약(龍門斲藥)
땅이 신령하니 약물들은 많고 / 地靈多藥物
산이 빽빽하니 먼지는 적구나 / 山密少塵埃
오이만 한 대추를 다시 묻노니 / 更問如瓜棗
안기생은 그 어드메 있느뇨 / 安期安在哉
호곡경전(虎谷耕田)
평야는 부호들이 다 차지하고 / 平野牢籠盡
남은 것은 거친 밭뙈기뿐이라 / 荒畬片段餘
몸소 밭갈아 조석을 지내노라면 / 躬耕度朝夕
도리어 공명의 초가집 같으리 / 還似孔明廬
한포농월(漢浦弄月)
해가 떨어지니 모래는 더욱 희고 / 日落沙逾白
구름이 옮기니 물은 다시 맑구나 / 雲移水更淸
고상한 사람이 명월을 희롱하는데 / 高人弄明月
다만 자란생 피리가 없네그려 / 只欠紫鸞笙
파성망우(婆城望雨)
하늘 뜻은 응당 만물을 살리거니와 / 天意應生物
농사일은 꼭 제때에 해야 하거늘 / 農功在及時
용은 깊은 못에 오래 누워만 있고 / 碧潭龍臥久
한 번 일어남이 어찌 그리 더딘고 / 一起竟何遲
장흥습률(長興拾栗)
가을바람이 막 우수수 불어오니 / 秋風初瑟瑟
밤송이가 점차 주렁주렁 드러나네 / 栗樹漸纍纍
내 홀로 찾아간 일을 기억하노니 / 獨往吾曾記
알밤이 벌겋게 떨어지던 때로세 / 金丸落地時
주읍심매(注邑尋梅)
매화 읊은 시는 핍진한 게 적으나 / 賦詠逼眞少
심은 곳은 세속 초월한 데가 많네 / 栽培離俗多
가장 어여쁜 것은 궁벽한 곳에서 / 最憐荒僻處
적막하게 달빛과 서로 짝함이로세 / 寂寞伴姮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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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고풍(古風) 3수(三首)
광대함이 무극과 연접한 가운데 / 寥寥接無極
천지의 형체가 처음 나누어지고 / 天地初分形
천지의 정기가 서로 응합하니 / 正氣偶妙合
사람이 만물 중에 가장 신령하여 / 人爲萬物靈
그 가운데 아름답게 빼어난지라 / 秀出於其中
성현이 세상의 법칙이 되어 / 聖賢爲法程
예악 법도를 천하에 널리 입혀서 / 文章被天下
찬란하기 마치 일성과도 같거늘 / 粲然如日星
어찌하여 지금 세상 사람들은 / 奈何今之人
캄캄한 속을 제멋대로 달리는고 / 覂駕趨冥冥
집안에 앉아 홀로 반성해보면 / 反觀居室內
내 맘 또한 하늘의 법칙이라오 / 是亦天之經
복희씨는 음획 양획을 그었는데 / 庖犧畫奇耦
상으로써 이치의 근원 밝히었고 / 象以明理源
문왕과 주공은 / 文王與周公
일일마다 말로 다 표명하였네 / 觸事宣諸言
중니는 십익을 부연하였으니 / 仲尼演十翼
위대하여라 도의의 문이여 / 大哉道義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져라 / 韋篇旣三絶
천재에 천지와 같은 분이로다 / 千載如乾坤
나에게 몽매함 깨우치게 했으니 / 使我知養蒙
덕성을 어찌 그리 높이었는고 / 德性何其尊
홀로 있을 때도 한사코 삼가서 / 獨居愼勿褻
경건한 맘으로 본원을 생각해야지 / 焚香思本元
공문은 크기가 마치 하늘과 같아 / 孔門大如天
종유한 제자가 삼천이나 됐는데 / 從游有三千
빨리 닮은 칠십 인 제자 중에도 / 速肖七十子
유독 안회가 어질다고 칭하였네 / 獨稱回也賢
증자는 공자의 종통을 얻어서 / 曾子得其宗
대학에서 선후의 일을 밝히었고 / 大學明後先
자사는 다행히 증자께 수업하여 / 聖孫幸摳衣
마침내 중용의 책을 이루었도다 / 中庸乃成篇
아 나는 유자의 한 사람으로 / 嗟嗟我縫掖
힘써 심전을 구하고는 있으나 / 用力求心傳
글을 읽어도 몸과 맘은 판이하니 / 讀書身心判
취하기 아니면 응당 미칠 수밖에 / 非醉應爲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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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음우(霪雨) 3수(三首)
장맛비는 피부를 윤택케 하고 / 霪雨肌膚潤
빈 대청은 귀와 눈을 서늘케 하네 / 虛堂耳目涼
늦게 일어남은 오랜 병 때문이요 / 懶興緣病久
높이 읊음은 시의 광기가 발함일세 / 高詠發詩狂
이끼는 점차 파릇파릇해지고 / 苔蘚將浮碧
산봉우리는 다시 울창해지누나 / 林巒更鬱蒼
누가 알랴 편히 앉아 있는 곳이 / 誰知安坐處
절로 하나의 태평성대인 줄을 / 自是一羲皇
강개한 것은 경방책이요 / 慷慨經邦策
처량한 것은 영사시로다 / 凄涼詠史詩
인재는 하늘이 내리는 바이거니와 / 人材天所降
성학은 내가 어찌 아는 바이리오 / 聖學我何知
안개 이슬은 소나무 길에 자욱하고 / 霧露沈松徑
시내와 산은 국화 울타리를 둘렀네 / 溪山擁菊籬
멀리 가련한 것은 진강의 물이 / 遙憐鎭江水
아득하여 가도가도 끝없음일세 / 渺渺去無涯
짙게 흐림은 병든 삭신을 괴롭히고 / 濃陰酸病骨
무더위는 쇠한 몸을 곤하게 하네 / 溽暑困衰身
맑은 새벽에도 기분은 침울하고 / 淸曉亦沈鬱
짧은 밤에도 잠은 이루질 못해라 / 短宵猶欠伸
삼복이 다가옴은 미리 걱정되지만 / 預憂三伏近
새로운 가을은 응당 기다려야지 / 應待九秋新
붓을 잡으니 생각은 끝이 없는데 / 把筆思無盡
덥고 서늘함은 절로 신기함이 있네 / 炎涼自有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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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잡흥(雜興)
해 저물자 별실에 솔가지로 불 지피니 / 日斜別室燎松枝
향기가 바람 따라 온 좌석에 불어오네 / 香氣隨風滿座吹
옛날 산중의 글 읽던 곳과 흡사하여라 / 恰似山中讀書處
이젠 두 귀밑에 백발 드리운 걸 어찌할꼬 / 奈何雙鬢素絲垂
기억하노니 산중에 더위 한창 극심할 때 / 記得山中酷熱時
맑은 샘 흰 바위 가에서 홀로 시 읊었지 / 淸泉白石獨吟詩
찌는 듯한 더위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엔 / 九街塵土蒸如火
천 수레 일만 말이 온종일 달리는구나 / 萬馬千車盡日馳
수레 먼지 뿌리는 땀이 거리에 가득한데 / 車塵汗雨滿通衢
내 홀로 강산모설도를 마주하여 있어라 / 獨對江山暮雪圖
후일에 참으로 이런 생활을 누리더라도 / 異日縱能眞致此
응당 머리 돌려 이 송도를 생각하겠지 / 也應回首憶松都
구구한 열뇌 속엔 죽고 삶이 끝없건만 / 熱惱區區萬死生
흰 구름 나는 곳엔 신선 피리 소리 들리네 / 白雲飛處紫鸞笙
먼지 하 난들 다시 어디로 좇아 나오랴 / 何從更有纖塵在
무위 경지에 초연함이 지극히 맑고말고 / 超出無爲却至淸
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이 가장 즐거웁고 / 陋巷簞瓢樂最深
탕의 정벌 순의 선위는 똑같은 인이라네 / 湯征舜受一仁心
그러나 노자 장자는 천하를 아주 잊어서 / 雖然莊老忘天下
청정으로 백성 편케 함이 고금에 으뜸일세 / 淸淨安民蓋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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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6권 / 시(詩)
잠부사(蠶婦詞) 전편(前篇)
새로 딴 누에고치 황금과 같아라 / 新繭如黃金
살갗 드러날까 걱정할 것 없구려 / 不愁露肌膚
뽕을 따러 조석으로 분주하나니 / 採桑走朝夕
어린 여종들 그 얼마나 괴로운고 / 艱哉小女奴
하지만 나는 아노라 눈서리 속에 / 懸知霜雪中
너만 유독 바지도 속옷도 없는 걸 / 爾獨無袴襦
저 혁혁한 고관대작들은 / 當朝赫赫者
거마가 도성 거리에 넘치거니와 / 車馬溢通衢
국은이 어찌 두텁지 않으리오 / 國恩豈不厚
깊은 방엔 두꺼운 담요를 깔고 / 密室敷氍毹
나가서는 겹갖옷을 걸쳐 입고서 / 加之以重裘
거나하게 취하여 노래를 불러대네 / 乘醉仍歌呼
가벼운 비단으론 봄옷을 짓거니 / 輕羅剪春服
어찌 또 구슬 같은 땀을 흘릴쏜가 / 肯復流汗珠
인생은 정해진 명이 있는 법인데 / 人生有定分
감히 관부에 바치는 걸 원망하랴 / 敢怨充官租
잠부사(蠶婦詞) 후편(後篇)
빈풍은 아송을 일으켰거니와 / 豳風興雅頌
누에 농사가 온 농사의 반이었네 / 桑蠶半農功
명주베 짜서 붉은 물 곱게 들여 / 載績朱孔陽
공자의 몸에 입혀 주길 원했으니 / 願被公子躬
화기가 성대하게 넘쳐 흘러라 / 靄然有和氣
임금께 충성함을 넉넉히 보겠네 / 足見於君忠
아 도타우신 공류 어른이 / 於戱篤公劉
내 맘 미뤄 백성과 고락 같이하니 / 推心與民同
후일에 자손이 천하를 얻어서 / 子孫得天下
온 세상이 태평하기에 이르렀네 / 擧世臻時雍
군자가 다만 농사에 힘을 쓴다면 / 君子但務本
온 집안이 곤궁하지 않으려니와 / 一家無困窮
기기를 부리고 음교를 만든다면 / 奇技淫巧作
천록이 영영 끊어지고 말리라 / 天祿其永終
누에 농사의 시가 비속하긴 하나 / 蠶詩雖鄙俚
혹 백관에게 고해줄 만도 하구려 / 或可告臣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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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잡흥(雜興) 3.
해 저물자 별실에 솔가지로 불 지피니 / 日斜別室燎松枝
향기가 바람 따라 온 좌석에 불어오네 / 香氣隨風滿座吹
옛날 산중의 글 읽던 곳과 흡사하여라 / 恰似山中讀書處
이젠 두 귀밑에 백발 드리운 걸 어찌할꼬 / 奈何雙鬢素絲垂
기억하노니 산중에 더위 한창 극심할 때 / 記得山中酷熱時
맑은 샘 흰 바위 가에서 홀로 시 읊었지 / 淸泉白石獨吟詩
찌는 듯한 더위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엔 / 九街塵土蒸如火
천 수레 일만 말이 온종일 달리는구나 / 萬馬千車盡日馳
수레 먼지 뿌리는 땀이 거리에 가득한데 / 車塵汗雨滿通衢
내 홀로 강산모설도를 마주하여 있어라 / 獨對江山暮雪圖
후일에 참으로 이런 생활을 누리더라도 / 異日縱能眞致此
응당 머리 돌려 이 송도를 생각하겠지 / 也應回首憶松都
구구한 열뇌 속엔 죽고 삶이 끝없건만 / 熱惱區區萬死生
흰 구름 나는 곳엔 신선 피리 소리 들리네 / 白雲飛處紫鸞笙
먼지 하 난들 다시 어디로 좇아 나오랴 / 何從更有纖塵在
무위 경지에 초연함이 지극히 맑고말고 / 超出無爲却至淸
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이 가장 즐거웁고 / 陋巷簞瓢樂最深
탕의 정벌 순의 선위는 똑같은 인이라네 / 湯征舜受一仁心
그러나 노자 장자는 천하를 아주 잊어서 / 雖然莊老忘天下
청정으로 백성 편케 함이 고금에 으뜸일세 / 淸淨安民蓋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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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홀로 읊다. 3수(三首)
홀로 읊으니 뜻에 다시 꼭 맞아라 / 獨吟情更適
높은 흥취가 늙어갈수록 깊어지네 / 高興老來深
세월은 두어 가닥 백발을 부르고 / 歲月數莖髮
강산은 한 치의 마음에 어렸는데 / 江山方寸心
문장 짓는 건 비단베를 짜듯 하고 / 屬文如織錦
시구 가리긴 모래에 금을 일듯 하네 / 揀句似淘金
잘못 한가함 속의 힘만 허비하노니 / 枉費閑中力
타고난 재주가 한림에 부끄럽구려 / 天才愧翰林
풍월은 읊자하니 괴롭기만 하고 / 風月吟來苦
강산은 앉아 있으니 더욱 깊어라 / 江山坐更深
나는 먼지는 외면을 차단하는데 / 飛塵遮外面
뛰어난 경계는 중심에 들어오네 / 絶境入中心
흠결 없는 옥이라고 자부하건만 / 自負無瑕玉
도리어 펄펄 뛰는 쇠와 같구려 / 還如躍冶金
회포를 부침은 끝내 얕지 않아라 / 寄懷終不淺
천지가 서림을 감쌌으니 말일세 / 天地繞書林
체세는 공과 졸로 나뉘거니와 / 體勢分工拙
정회는 깊고 얕음이 있나니 / 情懷有淺深
굳이 많은 힘 허비할 것도 없이 / 不須多費力
다만 마음을 논하는 게 중요하리 / 祗是要論心
늙은 솔은 일산을 기울인 듯하고 / 松老欲傾蓋
밝은 달빛은 황금을 부순 듯하네 / 月明還碎金
단청의 솜씨로 형용할 수 없는 / 丹靑所未到
그윽한 흥취를 산림에 부치노라 / 幽興寄山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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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잡흥(雜興) 5.
해 저물자 별실에 솔가지로 불 지피니 / 日斜別室燎松枝
향기가 바람 따라 온 좌석에 불어오네 / 香氣隨風滿座吹
옛날 산중의 글 읽던 곳과 흡사하여라 / 恰似山中讀書處
이젠 두 귀밑에 백발 드리운 걸 어찌할꼬 / 奈何雙鬢素絲垂
기억하노니 산중에 더위 한창 극심할 때 / 記得山中酷熱時
맑은 샘 흰 바위 가에서 홀로 시 읊었지 / 淸泉白石獨吟詩
찌는 듯한 더위 먼지 자욱한 도성 거리엔 / 九街塵土蒸如火
천 수레 일만 말이 온종일 달리는구나 / 萬馬千車盡日馳
수레 먼지 뿌리는 땀이 거리에 가득한데 / 車塵汗雨滿通衢
내 홀로 강산모설도를 마주하여 있어라 / 獨對江山暮雪圖
후일에 참으로 이런 생활을 누리더라도 / 異日縱能眞致此
응당 머리 돌려 이 송도를 생각하겠지 / 也應回首憶松都
구구한 열뇌 속엔 죽고 삶이 끝없건만 / 熱惱區區萬死生
흰 구름 나는 곳엔 신선 피리 소리 들리네 / 白雲飛處紫鸞笙
먼지 하 난들 다시 어디로 좇아 나오랴 / 何從更有纖塵在
무위 경지에 초연함이 지극히 맑고말고 / 超出無爲却至淸
누추한 시골 도시락 밥이 가장 즐거웁고 / 陋巷簞瓢樂最深
탕의 정벌 순의 선위는 똑같은 인이라네 / 湯征舜受一仁心
그러나 노자 장자는 천하를 아주 잊어서 / 雖然莊老忘天下
청정으로 백성 편케 함이 고금에 으뜸일세 / 淸淨安民蓋古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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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이[蝨]를 읊다.
옷 기운 틈새가 참으로 천지처럼 넓어서 / 衣縫眞如天地寬
평생에 의기양양 배회하기 만족하건만 / 平生得意足盤桓
몸을 편케 할 뿐 숨기는 꾀는 부족하여 / 安身只欠藏身術
섬섬옥수 고운 손을 피하기 어렵네그려 / 玉手纖纖避却難
벼룩[蚤]을 읊다.
일찍부터 옷과 이불에 이 생명 붙이어 / 早向衣衾寄此生
팔짝팔짝 뛰어라 한 몸뚱이 가볍건만 / 躍然跳躑一身輕
재빨라서 안 잡힌다고 자랑하지 말라 / 休誇捷疾能逃害
때로는 펄펄 끓는 물소리 요란도 하지 / 湯火時時沸有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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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7권 / 시(詩)
잡록(雜錄) 7수(七首)
바다 서쪽은 사막 변새에 접하고 / 海西沙接塞
강 동쪽은 달 밝은 물결이로다 / 江左月明波
천지는 어찌 그리도 아득한고 / 天地何寥闊
슬프기도 해라 장사의 노래여 / 悲哉壯士歌
한림원에는 꽃다운 풀이 나고 / 玉署生芳草
현릉에는 석양빛이 걸려 있네 / 玄陵掛落暉
구 년 동안 근심과 질병 속에 / 九年憂病裏
정황은 선왕에 대한 그리움뿐일세 / 情況苦依依
안목 갖춘 스님은 보기 드무나 / 具眼浮屠少
몸 태우면 사리는 흔히 나오네 / 燒身舍利多
지금도 강엔 달이 비추고 있건만 / 至今江有月
심해에 물결 없음을 누가 믿으랴 / 誰信海無波
은총은 남달리 후하게 입었건만 / 榮寵非他及
떠도는 신세라 몸담을 곳도 없네 / 流離無處藏
나이가 많으나 얼굴은 윤택하고 / 年高顔更澤
시어가 묘하니 글자도 향기롭구나 / 語妙字生香
습관이 되면 본성처럼 이뤄지나니 / 習矣至成性
몸 바루기부터 가르쳐야 하고말고 / 敎之從正身
삼가서 소학을 소홀히 말지어다 / 愼無輕小學
가장 중요한 게 명륜편에 있다네 / 最要在明倫
말수가 과묵함은 초수를 본받고 / 寡語師樵叟
견문이 많음은 역옹을 숭앙하노니 / 多聞祖櫟翁
문장이나 정사에 있어 / 文章與政事
중국과 으뜸을 진정 겨룰 만하네 / 中國可爭雄
젊어 미친 기백은 자못 맹랑했고 / 少狂殊孟浪
늙어 병든 것도 풍류가 있었는데 / 老病亦風流
목은은 공연히 악명만 남긴 채 / 牧隱空遺臭
이젠 쓸쓸한 백발의 가을이로세 / 蕭蕭白髮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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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8권 / 시(詩)
잡영(雜詠) 3
사물 통하여 시절 느껴 정신을 맑히어라 / 感時因物暢精神
늙은 나는 여전히 세상 밖의 사람이로다 / 老我依然世外人
비단 자리 자줏빛에 이끼는 맘에 들고 / 紫上金鋪苔稱意
빈 방에 흰빛 생겨라 달의 분신이로세 / 白生虛室月分身
오야에서 순 만나기 어려움은 잘 알지만 / 自知梧野難逢舜
어찌 꼭 도원에서만 진을 피할 수 있으랴 / 豈必桃源可避秦
정흥은 유유하여 거리낄 것이 없으나 / 情興悠悠無所累
다만 두 다리가 홍진 밟는 게 혐의롭네 / 但嫌雙脚踏紅塵
산이 깊어 딱따구리는 사람을 놀래키는데 / 山深啄木鳥驚人
선창에 홀로 읊으니 맛이 절로 순수하네 / 獨詠禪窓味自眞
처마의 흰 구름은 별천지에서 왔거니와 / 簷下白雲來別洞
병 속의 맑은 물은 통진을 쏟는 듯하네 / 甁中淨水瀉通津
홀연히 내게 들러 한참 동안 얘기 나눠라 / 忽然過我移時語
알아줄 이 누구뇨 온 세상이 미워하는걸 / 識者爲誰擧世嗔
어느 날에나 우리 서로 손잡고 떠나서 / 何日相從携手去
관작을 사절하고 세속 밖에 높이 노닐꼬 / 高游物外謝簪紳
괴이도 해라 신룡은 변화가 하도 많아서 / 怪底神龍變化多
탕 임금 칠 년 대한엔 뇌차를 베고 있었네 / 七年湯旱枕雷車
그러나 욕심이 있어 사람이 제어하지만 / 雖然有欲人能制
때에 적응함 사랑해 내 짐짓 노래하노라 / 祗愛趨時我故歌
구천을 날 때에는 구름이 하 광대할 게고 / 飛九天時雲浩蕩
깊은 못에 숨었을 땐 못 위에 달이 춤추리 / 蟄重淵處月婆娑
홀로 한설 갖고 백규를 삼복하다 보니 / 獨將韓說聊圭復
연래에 늙은 목은 두 귀밑이 희어졌구려 / 老牧年來兩鬢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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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19권 / 시(詩)
고풍(古風) 3수(三首)
옥이 옥돌 속에 박혀 있을 적엔 / 玉在璞中藏
그 마음이 독에 있지도 않았지만 / 其心非在櫝
독에 있은들 또한 뭐가 해로우랴 / 在櫝亦何傷
좋은 값만 받는다면 괜찮고말고 / 善價非所瀆
아 팔겠다고 말씀을 하였으니 / 嗚呼沽之哉
중니 또한 진퇴양난이었구려 / 仲尼亦惟谷
마침내는 돌아가리라 탄식하고 / 歸歟可歸歟
어두운 세상에 특립독행하였네 / 天昏立於獨
송백은 진실로 장수한다 하거니 / 松柏諒曰壽
빙설이 험준한 산에 가득 쌓여라 / 氷雪堆崔嵬
험준한 산은 인적 또한 드물어서 / 崔嵬絶人跡
혹 명당의 재목이 되기도 하나 / 或是明堂材
명당은 항상 짓는 게 아니거니와 / 明堂不世作
누각은 끝내 폐허가 되고 마나니 / 樓閤成塵埃
어찌하면 나의 곧음을 보전하여 / 何如保吾貞
종년토록 풍뢰를 부르짖음만 하랴 / 終年號風雷
지사는 짧은 해를 아껴 노력해서 / 志士惜日短
후세에 길이 공명을 남기는 건데 / 功名垂不劘
공명은 기필할 수도 없는 처지에 / 功名未可必
어느덧 두 귀밑이 희어져버렸네 / 倏忽雙鬢皤
가장 높은 건 덕을 세우는 건데 / 太上有立德
나는 지금 불우함이 부끄러우나 / 愧我今蹉跎
중도에 폐하지 말도록 노력하며 / 勉哉勿中輟
기욱 편의 노래로써 신칙하노라 / 申之淇澳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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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0권 / 시(詩)
단가행(短歌行)
삼가 생각건대 선왕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 恭惟先王日之昇
신이 대책 올려 처음으로 이름 날렸고 / 臣用對策初飛騰
그 명년에 경사에서 마침 회시가 있어 / 明年京師適會試
계리와 함께 눈서리 무릅쓰고 갔는데 / 偕計不知霜雪凝
내 이름은 황금방 가운데 나열되었고 / 名從黃金榜中列
내 발은 옥당 한림 자리에 올라갔었네 / 足向白玉堂上登
찬란하기론 온갖 꽃의 골짜기인 듯 / 爛兮萬花谷
깨끗하기론 한 가닥 얼음 같았어라 / 淸兮一段氷
늘어선 수많은 영재들이 다 이러했으니 / 群英森立有如此
나는 요행일 뿐 참으로 능한 게 아니었네 / 我獨徼倖非眞能
창 부수고 땀 흘림은 요행히 면했거니와 / 斲窓流汗雖幸免
농장을 잘못 씀은 항상 가슴에 새겼었지 / 弄璋錯寫常服膺
동해에 돌아와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해 / 歸來東海臥不起
예리한 재능 숨겨 교만 자부 다 잊은 채 / 藏鋒斂鍔忘驕矜
바야흐로 적막함 속에 세월을 보내는데 / 方將寂寞送日月
상께서 불차탁용으로 높은 반열에 올렸네 / 主恩不次班高升
오래되매 자연히 녹록한 존재 되었는데 / 久而自然成碌碌
녹록함이 도리어 무리의 증오를 받았고 / 碌碌還爲吾輩憎
나는 실로 무리를 압도할 마음 없었건만 / 我實無心壓吾輩
무리들이 스스로 가을 파리처럼 움츠렸지 / 吾輩自退如秋蠅
지금은 와병중이요 일어나도 절뚝발이라 / 如今臥病起又躄
다시 학과 함께 대부 수레를 못 타기에 / 不復與鶴軒中乘
명성 겨루는 이 없고 비웃던 이도 그쳐서 / 爭名者絶笑者止
바야흐로 깊고 맑은 고정처럼 담담하구려 / 淡如古井方泓澄
옛 놀이를 회상하며 한번 탄식을 발하니 / 回思舊游發一嘆
붓끝에서 문득 바람 천둥이 이는 듯하네 / 筆下忽爾風雷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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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2권 / 시(詩)
잡영(雜詠) 4
남산은 내 창 앞에 당해 있는데 / 南山當我窓
나무들이 그 꼭대기에 자라나서 / 有樹生其顚
아침저녁으로 애교를 부려주고 / 朝昏逞媚嫵
풍일 속에 맑고 고움 간직했기에 / 風日涵淸姸
잎새 사이에 고운 소리를 남기고 / 葉間遺好音
꾀꼬리는 이제 방금 옮겨 가누나 / 黃鳥時方遷
이걸 생각하며 길이 탄식하노니 / 念此坐長嘆
사물 이치는 자연에 말미암거늘 / 物理由自然
어찌하여 출처에 어두울 것 있나 / 奈何昧出處
순리대로 하늘을 섬길 뿐이로다 / 順序當事天
용수산은 우리 이문에 당해 있어 / 龍山當里門
구름이 그 봉우리에서 나오는데 / 有雲出其岫
담담하여 본디 무심한 것이거니 / 澹然本無心
어찌 거취에 헷갈린 적 있으리요 / 何曾迷去就
긴 바람이 어디서 불어만 오면 / 長風何方來
그를 좇아 급히 달리곤 하나니 / 從之乃馳驟
신룡이 천하에 우택을 내릴 적엔 / 神龍澤天下
서로 만남이 우연이 아니고말고 / 所憑非邂逅
음양은 본래 기관을 멎지 않나니 / 陰陽無停機
나는 또 복괘 구괘를 관찰하련다 / 我且觀復姤
동산은 바로 우리 집 뒤에 있어 / 東山在屋上
그 높이가 성문을 압도하는데 / 其高壓城闉
부소산과 천마산은 / 扶蘇與天摩
서로 나란히 어찌 그리 가파른고 / 相次何嶙峋
티 하나 없이 맑고 빼어난 품이 / 淸秀淨無垢
포홀 갖추고 대궐을 향한 듯하네 / 袍笏趨紫宸
그를 마주해 감히 서로 겨룰쏜가 / 對之敢相抗
높은 자리를 배석이나 하였으면 / 庶以陪文茵
정색을 그 누가 감히 더럽히리요 / 正色誰敢褻
엄연히 임금과 신하 사이 같구려 / 儼爾如君臣
가파르고 험준한 삼각산은 / 峨峨三角山
구름 끝에 우뚝 솟아 푸르른데 / 聳翠浮雲端
산골짝을 완연히 서로 마주하니 / 巖壑宛相對
체세가 어찌 그리도 우뚝한고 / 體勢何巑岏
석양이 서쪽 비탈에 쏘아 비치니 / 夕陽射西崖
늘어선 송백은 참으로 가관일세 / 松柏森可觀
그 옛날에 놀던 곳 생각해 보니 / 心懷舊游處
돌 위엔 이끼가 알록달록했었지 / 石上苔花斑
가고파도 끝내 갈 수가 없는지라 / 欲往竟不可
바람 앞에 나의 애만 끊어지누나 / 臨風摧我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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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3권 / 시(詩)
스스로 탄식하다. 4수(四首)
스스로 탄식하며 이와 같이 간다던 / 自嘆如斯逝
냇가에서의 말씀이 아련도 하여라 / 依俙川上言
때로는 자주 수레 명하여 나가고 / 有時頻命駕
온종일 문 닫고 홀로 있기도 하네 / 竟日獨關門
바다에 들면 넓어서 끝이 없거니와 / 入海浩無際
산에 있으면 처음 발원지가 되는데 / 在山初發源
꼭 동으로 흐르는 뜻을 누가 알랴 / 誰知必東意
본성이 다행히 끝없이 보존됨일세 / 成性幸存存
비록 거취를 결정함엔 어둡지만 / 雖然迷去就
또한 국가의 안위는 관섭하나니 / 亦復管安危
머리는 내가 지금 가장 희거니와 / 髮白我今最
마음 맑음은 누가 다시 알아줄꼬 / 心淸誰復知
고향 산천은 하늘 아래 아득하고 / 山川天漠漠
문항의 해는 마냥 더디기만 하니 / 門巷日遲遲
붓과는 서로 종유한 지 오래이라 / 毛穎相從久
오직 흥취 푸는 시만 쓸 뿐이네 / 唯題遣興詩
무한 광대한 이 천지 가운데 / 大哉天地中
이 백발 늙은이가 붙여 있어 / 著此白頭翁
소란스러운 공명엔 싫증이 나고 / 擾擾功名倦
한가로운 흥미만 농후해지누나 / 悠悠興味濃
학은 선탑의 달빛 아래 울어대고 / 鶴鳴禪榻月
백로는 낚싯줄 바람 앞에 섰나니 / 鷺立釣絲風
어느 곳인들 은거할 데 없을까만 / 何處不可隱
아직 오도의 궁함만 슬퍼하다니 / 尙悲吾道窮
흰 구름은 또한 무슨 뜻이 있는지 / 白雲亦何意
가벼이 나는 게 무심한 듯도 하네 / 輕擧似無心
새는 바다 하늘 저 멀리 사라지고 / 鳥沒海天遠
원숭이는 깊은 바위굴에서 우누나 / 猿吟巖洞深
말고 펴는 게 참으로 자유자재라 / 卷舒眞自得
가고 멎는 걸 아득하여 못 찾겠네 / 行止杳難尋
홀로 서서 그윽한 흥취 기탁하여 / 獨立寄幽興
머리 숙여 내 흉금을 피력하노라 / 低頭披我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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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3권 / 시(詩)
잡흥(雜興) 3수(三首)
고요하니 뜻은 더욱 원대해지고 / 闃寂志彌遠
한적하여라 거처는 절로 깊숙해 / 幽閑居自深
흥이 나면 외로이 휘파람을 불고 / 遇興發孤嘯
근심 풀려면 짧은 시를 이루노니 / 舒憂成短吟
빈아는 이미 아득해졌거니와 / 豳雅旣渺渺
노송은 어찌 그리 침침해졌나 / 魯頌何沈沈
작자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 作者不可見
태양은 제잠에 떠오르누나 / 海日升鯷岑
동방의 풍속은 인수한 고장이라 / 東方俗仁壽
고래로 군자가 사는 곳이거니와 / 君子之所居
중고엔 기자의 나라가 되었는데 / 中爲箕子國
질서 정연한 저 홍범의 글을 / 井井洪範書
맨 처음 주 무왕에게 전해 주어 / 初傳周武王
도가 중국에 성대히 행해진 다음 / 道行沛有餘
품고 와서 우리 백성에게 펴니 / 卷之惠我民
예양이 어쩌면 그리 의젓했던고 / 禮讓何徐徐
우리 동방은 절로 안정하건만 / 海邦自安靜
주진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네 / 周秦成丘墟
요 임금이 즉위하던 무진년에 / 帝堯戊辰歲
동방에 처음 임금이 있었으니 / 東方始有君
그때에는 하늘과 서로 통하여 / 其時與天通
괴이한 일들이 삼분을 이뤘는데 / 祕怪成三墳
천재에 이르도록 장수를 누리며 / 壽考至千載
동해 가의 땅을 다 점유했으니 / 奄有東海濆
질박하여 예는 간략하게 행하고 / 質朴禮向簡
거칠어서 말은 꾸미지를 않았네 / 麤疎言不文
어찌하여 내가 태어난 지금은 / 奈何予之生
세상 변천이 뜬구름 같단 말인가 / 世變如浮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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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5권 / 시(詩)
행삼군가(行三軍歌)
자로(子路)가 묻기를 “부자께서 삼군을 인솔하고 전장에 나가시게 된다면 누구와 함께 가시겠습니까?[子行三軍則誰與]” 하니,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범을 맨손으로 잡으려 하고 하수를 맨몸으로 건너려다가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를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을 당하면 두려워하고, 계책을 내기를 좋아하여 성공하는 자라야 할 것이다.[暴虎憑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하였다. 천재(千載) 아래까지 성인의 훈계가 마치 일성(日星)처럼 빛나게 드리우고 있다. 이에 행삼군가 한 편을 지은 것은 느낀 바가 있기 때문이다.
천지가 폐장하면 의당 봄이 돌아오고 / 天地之閉回其春
용사의 칩복은 제 몸 보존키 위함인데 / 龍蛇之蟄存其身
힘을 기르되 때로 숨겨서 겁내지 않고 / 遵養時晦不爲㥘
널리 밝아서 갑옷 쓴 이는 성인이었네 / 純煕大介稱聖人
혈기의 용맹은 고작 일당백에 그치지만 / 血氣有勇一當百
의리가 지극하면 천하의 신하가 된다오 / 義理作至天下臣
양 몰아 범을 침은 상대가 안 되고말고 / 驅羊格虎勢非匹
군사 착함은 율로 내는 데 있을 뿐이네 / 師臧只在出以律
이공과 변군은 용맹 지혜 다 갖춘 데다 / 李公邊君勇智俱
의리는 하늘 닿아라 어이 그리 우뚝한고 / 高義薄天何嵂屼
일 당해 두려워하고 계책 내서 성공하니 / 臨事而懼好謀成
유독 군법에만 모두 정명한 게 아니로다 / 不獨軍法皆精明
상산은 지대가 낮고 큰 고개는 험준한데 / 商山地低大嶺峻
고기들이 솥 안에서 살려고 버둥대거니 / 羣魚在鼎方偸生
붕궤되는 형세가 반드시 급격할 테지만 / 橫流奔潰勢必激
함정만 있고 견고한 성 없음이 한스럽네 / 陷穽只恨無堅城
가을바람 썰렁해지면 몸은 움츠러들지만 / 秋風漸冷筋骨緊
가을밤 점차 길어지면 꿈은 맑아지리니 / 秋夜漸長魂夢淸
원컨대 우리 주장이 높은 공렬을 세워서 / 願我主將樹功烈
일거에 요기의 뿌리를 모두 절멸시키고 / 一擧畢使祅氛絶
백만의 창생이 다 안정을 되찾게 하여 / 百萬蒼生皆按堵
다시 여생에 풍월을 즐기게 해주었으면 / 更向殘年弄風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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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7권 / 시(詩)
만생(晚生) 3수(三首)
만생이 도리어 옛 도를 좋아하기에 / 晚生還好古
바른 법도로 시속에 적응코자 하여 / 矩步欲趨時
학문의 힘은 마음으로 징험하건만 / 學力將心驗
사귀는 정은 일을 당해서 알게 되네 / 交情遇事知
강산은 원래 한계가 있거니와 / 江山元有界
천지는 절로 사정이 없고말고 / 天地自無私
고요한 남쪽 창에 햇살 비출 제 / 日照南窓靜
유연히 또 시를 읊조려 얻었네 / 悠然又得詩
식후의 낮잠을 막 깨고 나서 / 攤食眠初罷
유연히 낮닭 소리를 듣노라니 / 悠然聽午雞
문정은 어찌 그리도 적적하며 / 門庭何寂寂
신세는 어찌 그리도 허둥대는고 / 身世竟栖栖
누각은 가없는 하늘에 높다랗고 / 樓逈天無際
창문은 석양 아래 환히 밝아라 / 窓明日欲西
백발로 자주 거울을 보노라니 / 白頭頻攬鏡
귀거래만 실천 못 했을 뿐이로다 / 只欠去來兮
쇠한 용모는 남들이 다 놀라지만 / 衰容人共駭
호기는 스스로 제거하기 어렵네 / 豪氣自難除
다만 현빈에 참여하고플 뿐이지 / 祗欲參玄牝
어찌 소서에 무릎 꿇은 적 있으랴 / 何曾跪素書
산은 왕찬의 집 위에 높다랗고 / 山高王粲宅
뽕나무는 공명의 집에 무성해라 / 桑暗孔明廬
거마의 소리 없어 적적한 가운데 / 寂寂無車馬
소리 높여 읊으니 흥이 넘치누나 / 高吟興有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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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8권 / 시(詩)
유감(有感) 3수(三首)
첨소병우하휴라는 말도 분명히 있건마는 / 諂笑明言病夏畦
가련하도다 궁중에 대고 꼬리를 흔들다니 / 可憐搖尾向中閨
농촉의 욕심이 원래 끝도 없다고 한다마는 / 由來隴蜀茫無際
닭장까지 쫓아와서 또 다른 닭을 엿보다니 / 走到雞栖又候雞
봄 눈이 새로 녹아 약초밭을 적셔 주니 / 春雪新消潤藥畦
조정도 봄바람 불어 점점 따스해지겠지 / 春風漸暖入金閨
목옹이 늘그막에 한가히 거처하는 이곳 / 牧翁垂老閑居處
몸 기대고 읊노라니 한낮에 우는 닭소리 / 隱几微吟聽午雞
병이와 나환이 언덕과 두둑에 무성히 자라는 때 / 餠餌羅紈隴與畦
음식상 질펀히 차려 놓고 떵떵 울리며 노는구나 / 著橫高案拆鳴閨
주인은 그저 기름 끓듯 혼자 애를 태우면서 / 主人心地煎膏火
아들 손자들 닭싸움 놀이 가끔씩 바라보노매라 / 時見兒孫共鬪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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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8권 / 시(詩)
욕출(欲出) 3수(三首)
외출을 하려 해도 허리가 하도 욱신거려 / 欲出腰酸甚
창문 열고서 무릎 안은 채 읊조리노라니 / 開窓抱膝吟
먼 산봉우리에선 외로운 구름이 일어나고 / 孤雲生遠岫
높은 나무 숲에선 온갖 새들이 지저귀네 / 百鳥噪高林
필묵 속에 어느덧 시간도 훌쩍 지나가니 / 翰墨光陰迅
천지간에 우로의 은혜 이렇게 깊을 수가 / 乾坤雨露深
어물쩍거려 넘기고 덩달아 맞장구치면서 / 悠悠復唯唯
마음 편한 경지를 나는 이미 얻었다오 / 我已得安心
봄도 늦은 날 약간 온기가 돋아나며 / 春晚生微暖
엷은 구름 흩어지고 하늘이 개었으나 / 天晴散薄陰
떠가는 구름은 아직도 비 내릴 뜻이 있고 / 行雲猶雨意
누운 나무 역시 꽃 피울 마음을 지녔어라 / 臥樹亦花心
적막 속에 경서를 마주 대하기도 하고 / 寂寂對黃卷
청랑하게 거문고를 울려 보기도 하나니 / 冷冷調素琴
공자님이 매우 즐거워하신 그 생활을 / 孔子深樂處
이 속에서 다시금 찾을 수도 있으리라 / 更向此中尋
바람은 뜨락의 나무 속에 잠겨 있고 / 風在園中樹
구름은 창밖의 하늘 위에 떠가는 때 / 雲行窓外天
나의 마음 역시 덩달아 나부낀다마는 / 吾心亦飜動
병마는 여전히 나의 몸을 휘감았는걸 / 病勢却纏綿
술잔 속에 찾아오는 밝은 달님이요 / 樽酒邀明月
향로 위에 흩어지는 푸르른 안개로세 / 香爐散碧煙
세상 걱정 유유히 떨쳐버릴 수 있으니 / 悠悠可消遣
신선을 또다시 찾을 필요 있으리요 / 不用更求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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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29권 / 시(詩)
학교(學校) 3수(三首)
학교가 국가의 명맥이라면 / 學校邦家脈
군사는 천지의 마음이시라 / 君師天地心
생성하는 공이 절로 묘하거니 / 生成功自妙
교양하는 은택이 얼마나 깊나 / 敎養澤何深
날마다 대하나니 갱장의 모습이요 / 日對羹墻面
수시로 들리나니 금석의 소리로다 / 時聞金石音
가엾어라 이 몸은 병을 부여안고 / 自憐方抱病
궤안에 앉아 혼자서 침음만 하니 / 几坐獨沈吟
학교를 유신하신 금상의 명령 / 今代維新命
선왕이 못다 하신 그 마음이라 / 先王未了心
문풍이 바야흐로 떨쳐지려 하니 / 文風方欲振
성상의 은택이 또 깊다 하리로다 / 聖澤亦云深
밝은 태양이 사심 없이 비춰 주고 / 白日無私照
꾀꼬리가 명랑하게 노래하는 때 / 黃鸝送好音
나의 생도 아직은 강건하거니 / 吾生尙强健
함께 공부하며 송가를 불러야지 / 絃誦共謳吟
부끄러워라 재주도 학식도 없는 내가 / 愧我無才學
현릉의 은혜로 반궁에 몸을 담았는데 / 逢君叨泮宮
장차 무수의 공을 이루려고 하던 차에 / 功成將舞獸
홀연히 반룡을 당해 꿈이 끊어졌다오 / 夢斷忽攀龍
섬돌의 이끼는 비 내리니 더욱 푸르르고 / 階蘚工隨雨
뜨락의 솔도 바람을 만나니 마냥 기쁜 듯 / 庭松喜得風
흰머리 병든 몸도 어떻게든 참여해서 / 白頭扶病去
자갈 같은 자질이나마 다시 갈고 닦아야지 / 沙石更磨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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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0권 / 시(詩)
유거(幽居) 3수(三首)
유거의 재미를 알 사람이 뉘 있을까 / 幽居有味有誰知
한 가닥 향 연기에 실 같은 귀밑머리 / 一燧香煙兩鬢絲
간밤의 술도 다 깬지라 저녁밥 재촉하며 / 宿酒已消催夕飯
풍우성 가득한 창가에서 또 한 수 짓노매라 / 滿牕風雨又題詩
물어보세 풍류 넘치는 우리 국 수재여 / 爲問風流麴秀才
중양절에 국화 핀 걸 몇 번이나 보셨던가 / 重陽幾見菊花開
금년엔 푸른 꽃술 참으로 따기 어려워서 / 今年靑蘂眞難摘
백옥 술잔에 하늘 그림자 분명히 비치는군 / 天影分明白玉杯
하느님의 마음 쓰심이 정말 깊기도 하셔라 / 天公用意十分深
내가 쇠년에 심장을 토해 낼까 걱정해 주셨나니 / 恐我衰年嘔出心
백로의 계절 중추(中秋)에는 구름이 달을 가리더니 / 白露正中雲掩璧
된서리 내릴 중구(重九)에는 안개가 국화를 숨겼구먼 / 淸霜欲下霧藏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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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1권 / 시(詩)
춘음(春陰) 3수(三首)
.봄 그늘은 아득아득 낮 바람은 산들산들 / 春陰漠漠午風輕
환한 뜨락에 푸르름 짙고 붉음은 쇠잔하고 / 綠暗紅殘小院明
언뜻 내리는 가랑비 보아도 보이지 않는데 / 微雨乍來看不見
홀연히 들리나니 꾀꼬리 소리 두세 마디 / 忽聞黃鳥兩三聲
하늘이 만년에 호젓한 거처 정해 준 덕에 / 天敎晚歲卜居幽
책만 널려 있을 뿐 세상일 모두 잊었어라 / 書冊紛紛萬事休
마루 뒤 마루 앞 많이도 서 있는 늙은 나무 / 堂北堂前多老樹
가장 높은 가지 위에선 구구구 비둘기 소리 / 最高樹上有鳴鳩
봄이 질 때야 원정이 채소 씨를 뿌리다니 / 春盡園丁種菜遲
묵은 뿌리에 싹 났어도 아직은 여리기만 / 宿根雖出未敷㽔
늙은 이 몸 애당초 경영할 줄도 모르면서 / 老翁本不知區畫
밥상에 봄채소 좀 올려 보라고 채근하네 / 却要盤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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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1권 / 시(詩)
춘음(春陰) 3수(三首)
봄 그늘은 아득아득 낮 바람은 산들산들 / 春陰漠漠午風輕
환한 뜨락에 푸르름 짙고 붉음은 쇠잔하고 / 綠暗紅殘小院明
언뜻 내리는 가랑비 보아도 보이지 않는데 / 微雨乍來看不見
홀연히 들리나니 꾀꼬리 소리 두세 마디 / 忽聞黃鳥兩三聲
하늘이 만년에 호젓한 거처 정해 준 덕에 / 天敎晚歲卜居幽
책만 널려 있을 뿐 세상일 모두 잊었어라 / 書冊紛紛萬事休
마루 뒤 마루 앞 많이도 서 있는 늙은 나무 / 堂北堂前多老樹
가장 높은 가지 위에선 구구구 비둘기 소리 / 最高樹上有鳴鳩
봄이 질 때야 원정이 채소 씨를 뿌리다니 / 春盡園丁種菜遲
묵은 뿌리에 싹 났어도 아직은 여리기만 / 宿根雖出未敷㽔
늙은 이 몸 애당초 경영할 줄도 모르면서 / 老翁本不知區畫
밥상에 봄채소 좀 올려 보라고 채근하네 / 却要盤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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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2권 / 시(詩)
짚신 3수(三首)
짚신은 산중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 / 山屨山中物
살이 닿는 곳마다 매끄럽고 향기로워 / 肌膚滑且香
새로 짚신 닦는 곳을 알고 싶으신가 / 欲知新拭處
시냇가 여인 아침 화장 끝내는 그곳 / 溪女罷朝粧
생각나네 그 옛날 소년 시절에 / 憶昔少年日
산속 절간에서 글을 읽을 적에 / 讀書山寺中
옷을 걷어붙이고 맨발을 벗고 / 褰衣仍赤足
솔바람 밟고서 뛰어다닌 일이 / 馳走踏松風
조정의 구두 벗어 버린 지 오래 / 我脫朝靴久
산 다락 산보하니 발걸음 가뿐 / 山亭野步輕
홍진이 묻을래야 묻을 수 있나 / 紅塵汚不得
삶을 지켜 주는 네가 고맙도다 / 謝汝爲吾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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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시고 제35권 / 함창음(咸昌吟)
우제(偶題) 3수(三首)
예전부터 담박한 경지 지켜 왔나니 / 淡泊昔相守
시와 비 양쪽을 지금 모두 잊었노라 / 是非今兩忘
고아한 시는 두보와 이백이 모범이요 / 正音師甫白
그윽한 뜻은 복희와 황제에 가깝도다 / 幽意到羲黃
비 올 때는 베갯머리에 냇물 소리 급하고 / 雨枕溪聲急
날 개면 창가에 나무 그림자 선들선들 / 晴窓樹影涼
누대 위에 올라서면 더욱 한적하다마다 / 登樓更閑適
푸른 산빛 뚝뚝 듣어 옷을 물들이는걸 / 山翠滴衣裳
그 따위 재상이야 원래 유감도 없다마는 / 彼相元無憾
우리 임금님만은 아직도 감히 못 잊겠네 / 吾君未敢忘
소싯적에 잘잘못을 따질 줄 알고부터 / 少曾分皁白
얼마나 오래 피 흘리며 싸워 왔던가 / 久矣戰玄黃
구름과 비 갑자기 자주 오락가락하는 속에 / 雲雨俄多變
하늘과 땅에 또 한번 서늘 기운이 도는도다 / 乾坤又一涼
무엇이 더 좋으리오 태평스러운 이 시절에 / 何如太平日
은자의 옷 잔뜩 취해 춤을 추는 이 일보다 / 沈醉舞霓裳
한마디 말 속에도 천금의 중함이 있거니 / 說有千金重
밥 한 끼 먹여 준 은혜라도 어찌 잊으리오 / 恩何一飯忘
평소에는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다가도 / 持身愼平素
위급한 상황에선 나라를 구해야 하고말고 / 遇事濟蒼黃
산색이 어우러진 오밀조밀 골짜기요 / 谷密山光合
달빛이 서늘도 한 높은 이 다락이라 / 樓高月色涼
지금은 세상 생각 모두 떨쳐 버리고서 / 卽今塵慮盡
곧장 연잎 옷을 지어 입고 싶구나 / 便欲製荷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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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 홍여하(洪汝河)
천군 8수 기해년(1659, 현종1) 〔天君 八首 己亥〕
만리 밖을 밝게 보니 / 明見萬里外
천군은 곧 성신일세 / 天君乃聖神
장수는 의리를 속이지 않고 / 都將不欺義
심신을 다해 충신이 되네 / 盡瘁作忠臣
신첩이 서로 연마하지 않으면 / 臣妾不相治
무엇으로 천군을 섬기겠는가 / 何以事天君
예를 다함은 오직 경에 있으니 / 盡禮唯在敬
사특함을 막아 공을 세우련다 / 閑邪要策勳
왕도는 신독을 하는 데 있으니 / 王道在愼獨
보고 듣지 않는 곳에서 두려워해야 하네 / 戒懼不覩聞
중화를 이루면 천지가 자리를 잡으니 / 中和天地位
그런 뒤에 임금다운 임금이 될 수 있다네 / 然後得君君
원년 원일에 본성을 받아 태어나니 / 降衷元年正
영대는 위엄스런 자줏빛 대궐일세 / 靈臺儼紫宸
천하가 인을 따름은 하루로 징험되니 / 歸仁一朝驗
넉넉히 사해의 봄을 소유하리라 / 富有四海春
임금은 요순의 자질이 있으니 / 君有堯舜質
천명을 받아 화덕으로 왕이 되었네 / 受命火德王
치지는 어진 이의 도움에 힘입고 / 致知資賢輔
징분에는 뛰어난 장군을 보낸다네 / 懲忿遣良將
극기는 곧 일신을 위함이 아니요 / 克己卽匪躬
성찰해야 할 것은 간쟁의 말일세 / 省察是諫諍
만약 힘써 공부하길 논하려면 / 若論帶礪功
첫째는 오직 경 공부라 하리라 / 第一曰唯敬
인심이 매양 천명을 듣고 따라 / 人心每聽命
덕을 행하면 위에서 편하리라 / 作德逸於上
공손하면 이미 할 것이 없으리니 / 恭已定無爲
태평시절 도리어 상상할 수 있겠네 / 太平還有象
천군은 참으로 넉넉하고 귀하니 / 天君眞富貴
지키고 채워서 시종 삼가야 하네 / 持盈愼終始
자주 밖으로 사냥가게 하지 말고 / 莫敎頻出狩
명당 안에 단정히 앉아 있게 해야지 / 端坐明堂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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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산곡의 고시에 차운하다 7수 〔次山谷古詩 七首〕
돌아가는 새는 연기를 가르고 / 歸鳥破煙急
빈산에는 가을 해가 저무네 / 空山秋日翳
손에는 연명의 시편 잡고 / 手把淵明篇
감탄하다가 다 읽지 못했네 / 感歎讀未旣
세상 사람은 나를 찾지 않고 / 世人不求我
나는 스스로 세상을 피하려 한다 / 我自欲避世
우습다 저 유완이 술에 취해 / 哂彼劉阮醉
겨우 설병의 지혜로 이름남이 / 僅名挈缾智
필력이 같지 않음 부끄러워했지만 / 筆力愧不如
사적은 대소를 전수하였네 / 事類大蘇傳
한 번 임금께 만언의 글을 올려 / 一上萬言書
황강 고을에 귀양갔네 / 謫在黃岡縣
강산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 江山自千古
삼국 전쟁 이후 얼마나 지났던가 / 幾經三國戰
누대 위의 우의 입은 객을 / 樓頭羽衣客
때때로 꿈속에서 보네 / 時許夢中見
아득히 문수 가의 선비를 생각하니 / 緬懷汶上士
높은 품격은 무리 속에서 빼어나네 / 高標迥離群
세상 사람들 알아 줄 이 적지만 / 世人識者寡
나는 유독 그대를 좋아한다오 / 故我獨多君
한산은 우뚝 솟아 푸르고 / 漢山碧岧嶢
백강은 넘실넘실 흘러가네 / 白江去沄沄
어느 곳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여 / 何處許對談
맑은 바람에 아름다운 향 맡을까 / 淸風聞一薰
현빈의 여러 오묘한 문에 / 玄牝衆妙門
옥시가 한 번 열리기를 기다리네 / 一待玉匙啓
물음도 없고 답도 없이 / 無問亦無答
멍하니 처음부터 기대어 있었네 / 嗒焉初隱几
기운과 형상이 드러나기 전에는 / 氣象未發前
이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네 / 此事無多子
그대는 보았는가 모든 게 고요하다가 / 君看萬籟寂
문득 빈 구멍에서 소리 나는 것을 / 却從空處起
문장이 부귀보다 낫기는 하나 / 文章勝富貴
죽어서도 몸이 윤택하지 못하네 / 亦不潤黃壚
주나라 낚으려 경륜을 쌓아 / 釣周蘊經綸
가슴에 혹 늘어진 이리들 마주하네 / 可待胸垂胡
어진 이는 천하를 주유하다가 / 賢轍環天下
돌아옴에 주먹이 여전히 거칠었지 / 歸來拳尙麄
지사는 입신양명을 귀하게 여겨 / 志士貴立名
가죽을 남기고 죽은 호랑이 일세 / 留皮死於菟
주자는 박약을 종주로 삼아 / 晦庵宗博約
지은 글이 참으로 썩지 않네 / 立言眞不朽
어찌 새로 수립하는 사람은 / 云何新建子
이를 벗어나 다른 학설을 세울까 / 離此別鑿牖
옥은 쪼아야 아름다운 그릇되고 / 玉琢器粹美
거울은 비어야 선악을 비춘다네 / 鑑空物姸醜
그 가운데 오묘한 곳 있음을 / 箇中有妙處
묻노니 그대는 이해하겠는가 / 試問君解否
그대의 시는 이미 힘을 얻어 / 君詩已得力
장도(長途)를 마음껏 달리는데 / 脩途騁逸軌
나의 화살은 정곡을 잃었으니 / 我射失正鵠
어찌 그대처럼 적중할 화살을 얻겠는가 / 焉得中君矢
시를 지어 곧 부치는 듯하니 / 詩成輒寄似
가을 하늘 돌아오는 기러기 기뻐하네 / 秋天歸鴈喜
내가 스승의 법도를 얻으려면 / 吾得致師法
먼저 굴가의 보루를 무너뜨려야겠네 / 先摩屈賈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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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냉천 팔영〔冷泉八詠〕
여항의 샘을 냉천에 견주면 어떠할까 / 餘杭泉在較何如
나는 이곳에다 집을 짓고 싶어라 / 我欲於玆置屋廬
혹 이 곳에서 백일을 머물 수 있다면 / 倘得此間淹百日
저 이십사고의 중서령보다 나으리 / 勝他二十考中書
냉천정〔冷泉亭〕
금화산에서 양 치던 일 몇 천 년 되었던가 / 金華羊叱幾千齡
괴석이 부름에 응하여 양으로 변했다네 / 醜石應須變幻成
홀연 산 밖을 지나는 목동을 보고서도 / 忽見牧童山外過
세상에 초평을 아는 사람 다시 없네 / 世人無復識初平
산양벽〔山羊壁〕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 / 日落江空暮靄橫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 / 更憐寒月靜中生
동쪽 봉우리는 삼천 길 옥처럼 서서 / 東岑玉立三千仞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 / 留得淸輝夜夜明
월류봉〔月留峯〕
푸른 산에 구름 다 걷히고 학이 날 때 / 碧山雲盡鶴飛時
찬 솔 다 밟고도 아직 남은 가지 있네 / 踏罷寒松尙有枝
자부의 신선이 아름다운 글 전하고 / 紫府眞君傳玉字
물결이 맑고 얕아 천천히 돌아가네 / 海波淸淺得歸遲
청학굴〔靑鶴窟〕
봄 물결 출렁대는 무지개 연못 / 春波澹蕩玉虹淵
돌 위 꽃잎은 거울 같은 수면에 날리네 / 石上花飛鏡裏天
취해 높은 대에 기대자 철적 소리 울려 / 醉倚高臺轟鐵笛
한 소리에 잠자던 독룡이 놀라 깨어날듯 / 一聲驚破毒龍眠
용연동〔龍淵洞〕
청련 태수 남긴 자취 찾아보니 / 靑蓮仙尉揖遺蹤
별동의 풍류도 종주로 삼을 만하네 / 別洞風流亦可宗
산 나뭇가지에 꽃이 피려 하니 / 看取山枝花欲放
봄볕이 사군봉에 먼저 온 줄 알겠네 / 陽春先到使君峯
- 윤별동이 황간 태수였다. -
사군봉〔使君峯〕
차 마시고 산 누각에서 선정에 드니 / 茶罷山樓入定禪
꽃이 핀 남악이 앞 냇물에 비치네 / 花明南嶽映前川
용녀가 붉은 꽃을 받쳐 올리나 했더니 / 却疑龍女擎紅獻
향기로운 비가 부슬부슬 범연에 떨어지네 / 香雨霏霏落梵筵
화헌악〔花獻嶽〕
이끼 매끄럽고 구름 깊은 돌길 아래 / 苔滑雲深石路低
법준암이 월류봉 서쪽에 자리하네 / 法遵菴在月峯西
십 리 길 골짜기에 봄 물결 넓으니 / 洞門十里春波闊
땅에 가득 꽃이 지고 산새 지저귀네 / 滿地落花山鳥啼
법준암〔法遵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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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감흥 5수 〔感興 五首〕
십 년을 몹시 바쁘게 달려 / 十載劇馳騁
풍진의 변방 길이 길더니 / 風塵關路永
돌아와 강호에 누웠음에 / 歸來臥江湖
자못 백구를 찾게 되었네 / 頗爲白鷗請
십 무의 농가는 가난하고 / 田廬十畝貧
네 벽의 도서는 고요하네 / 圖書四壁靜
세상일은 취한 듯 꿈인 듯한데 / 世故如醉夢
솔바람 소리가 나를 불러 깨우네 / 松風喚我醒
공부는 득도함을 기뻐하고 / 學道拚朝聞
부귀는 천명에 맡겨두네 / 富貴任在天
누추한 집에 거친 음식 먹으니 / 蓬堵蔾不糝
백발의 이 몸 더욱 쓸쓸하여라 / 白髮更蕭然
하씨에게 가난을 따져 묻다가 / 呼貧問何氏
곧이어 헌연을 본받아 벗 삼았네 / 乃祖友憲淵
소박한 기풍 여러 대를 이어 왔으니 / 素風承累葉
이제 망년의 사귐을 인정하겠지 / 從此許忘年
천하가 이미 주나라를 받들지만 / 天下旣宗周
백이 숙제는 끝내 돌아가지 않았네 / 夷齊遂不回
이에 백마 탄 기자가 있어 / 爰有白馬客
날듯이 또한 동쪽으로 왔구나 / 翩翩亦東來
유학의 도를 전해 주기 위하여 / 爲有斯道傳
일부러 잠시 광대 행세하였네 / 故作暫徘徊
천추의 일편단심으로 행한 / 千秋一片心
거짓 광대 노릇 참으로 애달다 / 佯狂誠可哀
동방의 풍속은 순후하고 어지니 / 東方俗醇仁
추로보다 못하지 않네 / 不居鄒魯下
한스럽기는 문장이 고루하여 / 但恨文章陋
오늘까지 풍아에 부끄러운 것이네 / 至今愧風雅
사법은 도무지 그 효과가 없고 / 史法全欠功
시격은 어긋나 더욱 촌스럽네 / 詩格舛更野
후세 현인을 위하여 고하노니 / 爲告後來賢
노력하여 좌마를 배우시라 / 努力學左馬
천 년에 드문 빼어난 기운으로 / 一千年間氣
동국에 유문충이 태어났네 / 東國柳文忠
충성은 제갈무후와 짝하고 / 忠侔諸葛侯
행실은 사마온공과 견주네 / 行方司馬公
평생 도를 배우는 마음으로 / 平生學道心
모두 고요한 가운데서 터득했네 / 盡向靜中得
그런데 도리어 나예장처럼 / 却似羅豫章
곁의 사람도 알지 못하게 했네 / 不遣旁人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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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우연히 읊다 6수 〔偶吟 六首〕
경과 의는 서로 꽉 끼어 잡아 / 敬義相夾持
잠시도 놓아두게 해서는 안 되네 / 霎然放不得
다만 곧바로 올라가기만 해야 하니 / 只得直上去
그래야 곧 천덕에 도달하리라 / 故便達天德
안과 밖이 끼어 잡고 있는 곳에는 / 表裏夾持處
어디에도 잘못될 여지가 없네 / 東西沒走作
그대는 보라 그 위에 / 君看此上面
다만 하나의 천덕이 있음을 / 只有箇天德
말타기를 배울 때는 마음이 말에 있고 / 學御心在馬
활쏘기를 배울 때는 마음이 과녁에 있네 / 學射心在的
글을 읽을 때는 의리를 보아야 하니 / 讀書看義理
터전을 쌓고서야 집을 세울 수 있네 / 築基方立屋
정숙하면 마음이 저절로 한결같나니 / 整肅心自一
경 공부에 가장 절실하고 급하다네 / 於敬最切急
근엄하고 삼감이 경의 도는 아니지만 / 儼恪非敬道
경에 이르려면 이로부터 들어가야 하네 / 致敬從此入
용모와 언어의 사이에 / 容貌辭氣間
종종 공부를 더하지 않으면 / 往往不加工
설령 보존할 수 있다 하더라도 / 設令能存得
석씨 노씨와 같음이 없겠는가 / 釋老將無同
가장 뒤의 주부자는 / 最後朱夫子
경을 말할 때 외자가 가깝다 했네 / 說敬畏爲近
이 뜻이 더욱 정밀하고 절실하니 / 此義尤精切
지극하도다 만고의 가르침이여 / 至哉萬古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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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1권 / 시(詩)
졸재 8영〔拙齋八詠〕
봄 채소 이랑 가득 비에 젖어 푸르니 / 春蔬滿畦雨浥翠
밭 머리에 날로 나가 청려장을 꽂는다 / 畦頭日遣蔾杖植
문득 뱃속을 채소 동산으로 만드니 / 便敎腸胃作菜園
훗날 만나는 일 무엇이든 다 하리라 / 會見他時做百事
봄 밭에 채소를 심다〔春畦種蔬〕
동산에 해 길어지고 꽃 그림자 생겨 / 園日初長花影畔
새벽 찬 샘물 길어 몇 번이나 물 주었나 / 曉汲寒泉幾回灌
얕고 깊음을 짐작하는 경륜을 가졌으니 / 斟得淺深存經綸
일과 외에 한 공부가 한 단계 끝이 났네 / 賸作工夫了一段
여름 동산에서 꽃에 물을 주다〔夏園灌花〕
비 갠 서재에 가을날이 저물고 / 書齋晴罷秋天暮
맑은 달빛 머금어 빈방이 훤하네 / 月華澄涵虛室素
마음 바탕을 더없이 맑게 할 줄 알아 / 解敎心地遣纖塵
얼음 병에 찬 이슬을 넉넉히 쌓았네 / 贏得氷壺貯寒露
가을에 졸재에서 달을 대하다〔秋齋對月〕
눈 내린 창가에 글을 덮고 화로 마주하여 / 雪窓對爐罷畫字
쇠 젓가락으로 꺼져 가는 불 뒤적이네 / 鐵筯時將撥灰死
인간 세상 만종 곡식을 믿지 못하여 / 不信人間粟萬鍾
한가로이 산에서 난 밤 몇 톨 먹네 / 臥啖數顆山栗子
겨울에 화로에 밤을 굽다〔冬爐烘栗〕
매화는 꽃 중의 소허라고 품평하여 / 花中巢許品題裁
주문공이 진중하게 말해 왔었네 / 珍重文公說得來
거사의 맑은 품격 이에 견줄 만하니 / 居士淸標堪底比
중생들 무리 속에 찬 매화 피어났네 / 衆生叢裏着寒梅
매화〔梅〕
속진을 멀리 끊어 댓잎소리 쓸쓸하더니 / 爽籟蕭蕭逈絶塵
달 아래서 보니 더욱 맑고 신령스럽네 / 看來月下更精神
어여쁘구나 눈과 바람이 몰아치는 곳에 / 獨憐風雪交爭處
일단의 정조가 갈수록 더 새로움이 / 一段貞操轉益新
대나무〔竹〕
본래 빼어난 자태가 온갖 꽃의 으뜸인데 / 自是奇姿冠百花
온갖 꽃이 피어날 땐 꽃을 피우지 않네 / 百花時節欠榮華
묻노니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더디더냐 / 問渠那得遲如許
바람 불고 서리 내릴 때 홀로 꽃 피는구나 / 會向風霜獨做葩
국화〔菊〕
겹겹의 청산 속이 속세와 떨어져서 / 靑山數疊隔煙塵
초옥은 쓸쓸하고 누항은 가난하네 / 草屋蕭然陋巷貧
거문고 잡고 한 곡조 연주하려는데 / 擬把枯桐彈一曲
좋은 바람 불어와 행단에 봄기운 일으키네 / 好風吹作杏壇春
거문고〔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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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의고 8수 〔擬古 八首〕
지는 달 서쪽 봉우리로 떨어지고 / 落月墮西岑
흰 태양 동쪽 바다에서 솟아난다 / 白日出東溟
저들을 돌아봐도 편안치 못하거늘 / 眷彼不安居
우린들 어찌 편안할 수 있으랴 / 吾人那得寧
빠듯한 일정 참으로 기한이 있어 / 嚴程固有期
찬 새벽이건만 외로이 길 떠나네 / 寒曉尙孤征
가을이 깊어 변방이 어둑하고 / 秋深關塞黑
뜬 구름은 만 리에 고즈넉하네 / 浮雲萬里平
수레 몰아 험한 고갯마루에 올라 / 驅車登峻嶺
칼 어루만지며 큰 바다 굽어 본다 / 撫劍俯大瀛
장부는 먼 유람을 귀하게 여기기에 / 丈夫貴遠遊
술잔을 재촉하며 속마음을 펼치네 / 促觴抒中情
문득 남쪽으로 가는 기러기 바라보니 / 忽瞻南飛雁
또다시 눈물이 갓끈을 적시는구나 / 却復淚霑纓
철령 관문에 있는 큰 고갯마루는 / 鐵關有大嶺
우뚝하여 하늘까지 닿을 듯 하네 / 嶻然曁穹蒼
우리의 행차 홀연히 이곳에 다다라 / 吾行忽到此
비로소 하늘 한 끝에 왔음을 알았네 / 始知天一方
말에서 내려 가을 풀 깔고 앉아 / 下馬藉秋草
머리 들어 황량한 북녘을 바라본다 / 矯首望北荒
위대하구나 영평백이여 / 卓哉鈴平伯
그 당시에 이 강토를 개척했구려 / 當時此拓疆
관중이 아니었으면 우리들은 좌임했듯 / 微管吾其左
그분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되네 / 勳業不可忘
가을이 와서 맑은 강물이 좋으니 / 秋來愛江淸
어찌 바위 가에서 낚시하지 않으랴 / 豈爲磯頭釣
시들어 떨어짐을 슬퍼할 것 없고 / 搖落不足悲
보이는 사물마다 나를 웃게 하네 / 覽物令我笑
만 리 물결에 날아가는 백구는 / 白鷗萬里波
멀리 아득하여 부를 수 없는데 / 飄然不可召
꾀꼬리는 홀연히 수풀 밖에서 / 黃鸝忽林外
짧은 혀로 누굴 위해 지저귀나 / 寸舌誰爲掉
흥이 무르익어 노저어 돌아오니 / 興酣返棹回
죽림 서쪽으로 노을이 환하네 / 竹西明返照
나그네 산 밖에서 찾아오더니 / 客從山外來
희황 시대 훌륭함을 말하는데 / 爲談羲皇妙
머리 숙인 채 끝내 답을 못 하다가 / 垂頭竟無對
나그네 떠나자 길게 휘파람을 부네 / 客去還長嘯
손등의 고사를 활용하다.
남국의 곱고도 아름다운 아가씨 / 南國窈窕女
용모와 자태가 절세에 빼어나네 / 容姿絶代媺
타고난 성품이 침착하고 차분하여 / 生來性沈靜
집안사람조차 웃는 모습 보기 어려웠네 / 家人鮮覩齒
주옥 비취같은 패물 없으랴마는 / 豈無珠翠物
몸에 지니기를 즐기지 않는구나 / 將身不肯被
우연히 나가서 정원을 거닐다가 / 偶出步園庭
꾀꼬리 쫓다가 매실 떨어뜨렸네 / 打鶯落梅子
돌아와 이내 후회하며 뉘우치며 / 歸來輒悔懊
깊은 규방 속에서 홀로 지내네 / 獨在深閨裏
포소체를 본받다.
하급 선비는 도를 듣지 못하고 / 下士未聞道
세월만 부질없이 늦쳐 버리네 / 歲月空晼晩
백가의 학술에 두루 빠져서 / 汎濫百家術
지엽을 찾다가 큰 근본 잃어버리지 / 尋枝迷大本
거둬들일 생각부터 하지 마시게 / 莫敎念穫畬
그저 부지런히 북돋우다 보면 / 祇宜勤穮蓘
하루아침에 위연히 탄식하며 / 一朝喟然歎
온갖 관문을 열어젖힐 수 있네 / 千門擴關鍵
바람을 타고 낙원으로 들어가서 / 乘風適樂國
외로운 배 아득하게 멀리 떠가네 / 渺渺孤舟遠
만일 피안에 다다르게 된다면 / 倘能到彼岸
보냈던 자 벼랑에서 돌아오리 / 送者自崖返
부재의 주에 ‘보냈던 자란 그에 힘입어 깨달은 자를 가리킨다.’라 했다.
병이 많아 오래 집무하지 못했는데 / 多病久不庭
골짜기마다 봄의 자태 생기 있네 / 萬壑生春姿
창문을 열자 해는 한낮이고 / 開窓日亭午
그윽한 새소리가 꽃가지에서 나네 / 幽鳥韻花枝
막걸리 차고 허리춤엔 단소 꽂고 / 佩醪腰短笛
소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네 / 騎牛恣所之
비온 뒤 물가 풀 기세 사나운데 / 雨餘汀草怒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오는구나 / 光風淡淡吹
조용히 세찬 여울물 바라보고 / 靜觀湍急處
홀로 구름 있는 곳을 마주하다가 / 獨對雲在時
홀연히 자라 잡는 사람을 만나 / 忽逢擉鼈人
물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선 / 磯頭坐垂絲
객은 어디에서 왔느냐 물었더니 / 借問客從何
그저 내 집이 여기라고만 답하네 / 但云予宅玆
송나라 배가 애산에서 엎어지자 / 宋舸覆崖山
후손들이 연경에서 제사 지내네 / 膚敏裸燕京
자앙인들 말할 것이 무엇 있으리오 / 子昂何足道
다시 벼슬하여 맑은 등용 그르친 걸 / 已復誤澄衡
큰 절개가 온전한 이를 따지면 / 考論大節完
오로지 우탁 선생뿐이라 하겠네 / 只有禹先生
고려가 백년세월 전란으로 쇠락하여 / 麗衰百年戎
자미성이 그 신명을 더럽혔네 / 紫極穢神明
상소문 작성해 군왕께 간하니 / 作書譏君王
성난 소리에 하늘도 놀라는구나 / 奮舌天公驚
늙었다 하여 관직을 떠나오니 / 乃老不待年
풍월은 선성에 가득 퍼졌도다 / 風月滿宣城
책상 앞에 한 편 주역 펼치고 / 床頭一篇易
꿈속에서 하남 정자를 뵈었네 / 夢見河南程
천지간에서 제일의 인물이니 / 乾坤人第一
어찌 동방에만 이름 날렸으리 / 豈唯東國鳴
천추토록 유허를 공경하려 해도 / 千秋式遺墟
도리어 식별할 비석 하나 없네 / 却欠片石旌
어떤 사람이 술잔 드릴 수 있게 / 何人奠椒杯
우리들 위해 옛 무덤 찾아 줄까 / 爲我訪舊塋
선생의 묘가 고향 마을에서 멀지 않지만 지금은 소재를 잃어버렸고, 또 경겸과 의논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말했다.
은자가 한낮 꿈에서 깨어나선 / 幽人午夢還
무심하게 여울물을 내려다보네 / 浩浩俯風湍
푸른 숲에서 꽃을 꺾어 내고야 / 靑林折瓊蕤
풍수에 난초 있음을 알게 되네 / 也知灃有蘭
여린 가지엔 봄 향기 스며들고 / 柔條襲春馥
이슬 맺힌 잎엔 밤의 한기 모였네 / 露葉團宵寒
문득 마음 맞는 이 생각하자니 / 忽憶同心子
길은 멀고 강산에 가로 막혔네 / 途遠有江山
편지 부치려 해도 전할 이 없어 / 欲寄無人將
우두커니 있자니 눈물만 줄줄 / 佇立涕自潸
돌아 와 텅 빈 방에 앉아서는 / 歸來坐空室
홀로 거문고 안고 튕기는구나 / 獨抱瑤琴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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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파리를 놓아주는 노래
집안사람들이 박멸하려 했지만 내가 청소는 하되 놓아주라고 한 뒤 느낌이 있어 〔放蒼蠅行 家人設計撲滅 吾令掃而放之 有感〕
내 집은 좁은 데다 낮고 습기가 심해 / 吾廬窄阨劇湫卑
무더위에 모질게 파리 떼의 능멸을 받네 / 炎溽苦被蒼蠅欺
몰아냈다 싶으면 번번이 다시 돌아오고 / 縱令驅去輒復還
갔다가 어디선가 곧장 여기로 모여드네 / 適從何來旋集玆
잠시 얼굴 귀밑 요리조리 다니다가 / 乍循顔鬢巧點綴
별안간 음료와 밥에 모여 음식 탐내네 / 俄萃壺簞學饕餮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못 들게 하고 / 使我當寢睡不著
밥상에 앉아도 밥을 먹지 못하게 하네 / 使我臨餐不得喫
가동들은 내 마음이 상할까 염려하여 / 家僮憂我損神機
파리 떼 섬멸코자 한 가지 꾀 내었네 / 擬殲醜類出一奇
가죽 조각을 잘라 나무 끝에 붙이니 / 割取片韋棲木末
왕씨 사씨 집 물건과 모양이 좀 다르네 / 制樣差殊王謝物
먼저 밥 미끼를 던져 모여들게 해 놓고선 / 先投糗餌俾屯聚
한 번 휘둘러 박멸해 버리니 도망갈 수 없네 / 一揮撲滅無脫佚
이리저리 낭자하게 스러진 주검 즐비하지만 / 縱橫狼藉衆屍僵
보는 이들 손가락질하며 웃지 누가 상심하랴 / 觀者指笑誰嗟傷
내 탄식하며 가동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노니 / 我噫謂僮勿復爾
다 때려잡음은 어진 사람의 일이 아니라네 / 打盡不是仁人事
어떻겠는가 멀리 한적한 물가로 내쫓아 / 何如遠放寂寞濱
앵앵거리며 집 울타리에 오지 못하게 함이 / 無使營營到樊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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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8월 4일 큰 비 내리다 4수 〔八月四日 大雨 四首〕
비는 오월에 내려야 마땅하지 / 雨應蕤賓律
팔월의 큰 비는 재앙이라네 / 浸淫八月凶
모두들 하늘이 샐까 근심하고 / 共愁天欲漏
다시 땅에 가득 찰까 의심하네 / 更訝地成濃
물결에 붉게 익은 벼 이삭 휩쓸리고 / 波轉紅芒稻
산에는 흰 소나무가 꺾였네 / 山摧白甲松
철철 흐르는 물이 연못을 치고 지나가 / 鳴泉衝沼過
푸른 연꽃을 모두 꺾어버렸네 / 折盡翠芙蓉
엎드려 누운 청산은 어둡고 / 伏枕靑山暗
가을에 비낀 빗줄기 높구나 / 橫秋雨脚高
연못 열리자 금붕어 달아나버리고 / 池開金鯽遯
겹겹 구름 속에 달이 숨어버리네 / 雲重玉蟾韜
습기를 겁내니 근심이 뼈에 사무치고 / 怕濕愁侵骨
시절을 근심하니 두려움에 털이 곤두서네 / 憂時凜豎毛
목화꽃 벌써 다 떨어졌으니 / 木綿花落盡
누가 다시 솜옷 보낼 생각해줄까 / 誰復念綈袍
들판 농사는 가을 물결이 걷어가고 / 野稼秋濤捲
외로운 마을에는 저녁 안개 이는구나 / 孤村暮靄生
북두칠성 자루 막 유성에 이르러 / 斗杓纔揷酉
뱃속 창자가 바로 아우성을 치네 / 囊匱正呼庚
포구 건너편엔 황소가 울고 / 隔浦黃牛語
숲으로 돌아가는 흰 새들 선명하네 / 歸林白鳥明
저번엔 보리 베어 물에 떠내려 보내고 / 向來漂刈麥
이번엔 다시 가을걷이 그르쳤네 / 今復誤西成
장수 물가에 병들어 누운 나그네 / 淹臥漳濱客
가을장마에 병든 얼굴 씻어낸다 / 秋霖灑病顔
물결은 용수산 벼랑에 더하고 / 波添龍首岸
구름은 녹음산에 활발하구나 / 雲潑鹿音山
시냇가에 나루 터 배는 닻줄 매고 / 津舸侵溪纜
대나무 곁에 바위 문은 닫혔네 / 巖扉傍竹關
지난날 나라 걱정하던 귀밑머리 / 向來憂國鬢
시 짓느라 고심해서 쇤 것이 아니라네 / 不是惱詩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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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가암팔경〔可庵八景〕
저녁노을 만 겹에 가려져 있는 / 煙霞鎖萬重
가암은 가을 봉우리 정상에 있네 / 庵在秋峯頂
새벽이 되어 들리는 찬 종소리 / 曉來聽寒鐘
사람들에게 깊은 성찰 일으키네 / 令人發深省
사찰의 새벽종〔釋迦曉鐘〕
탁봉은 높이가 몇 길이던가 / 卓峯高幾仞
푸른 시내 서쪽으로 해가 지네 / 影落碧溪西
늦저녁 풍경이 참으로 그림 같아 / 晩景眞堪畫
외로운 노을 오리들과 나란하네 / 孤霞與鶩齊
탁봉의 지는 노을〔卓峯落霞〕
마산에 내리던 비 잠시 그치고 / 馬山雨初歇
한줄기 흰 안개 비끼네 / 一抹白煙橫
숲가에 지팡이 짚고 서 있으니 / 林畔搘筇立
유연하여 속세의 마음이 아닐세 / 悠然不世情
마산의 갠 안개〔馬山晴煙〕
저녁 내내 기잠을 마주대한 건 / 竟夕對箕岑
가을 백운을 좋아하기 때문이네 / 爲愛秋雲白
나올 때부터 참으로 무심하더니 / 出時固無心
돌아갈 때도 자취 남기지 않네 / 歸時亦無跡
기곡의 저녁 구름〔箕谷暮雲〕
네 척으로 의관 갈무리해 두니 / 四尺衣冠藏
천 년 동안 모범이 성대했다네 / 千秋模楷盛
언덕 아래 만 그루 소나무들은 / 隴底萬株松
하나하나 사람들이 공경하네 / 一一人堪敬
원천의 늙은 소나무〔遠川晩松〕
안개 자욱한 가을 산 바라보니 / 靄靄看秋嶂
가물가물 멀리서 남기 꿈틀댄다 / 霏霏動遠嵐
이런 좋은 경치 시에서 보지 못하면 / 不緣詩上見
당연히 그림 속에서 찾아야지 / 應向畫中探
무현의 푸른 남기〔舞峴翠嵐〕
생각해보니 우뚝한 대근 산봉우리는 / 想見跟岑矗
눈 내린 뒤에 가장 마음에 드네 / 偏宜雪後天
내년에 섬계에 달이 떠오른다면 / 他年剡溪月
자유의 배를 타고 다시 찾아가리라 / 重棹子猷船
대근의 쌓인 눈〔大跟積雪〕
맑은 바람 불어옴을 좋아함에 더하여 / 賸喜光風來
곧 비 갠 달 떠오르는 모습 보네 / 旋看霽月上
지난날 풀이에 잘 그려내었으니 / 疇解善形容
도를 깨우친 사람의 기상이로다 / 有道者氣象
원통의 비 개인 달〔圓通霽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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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집 제2권 / 시(詩)
감회 31수〔感懷三十一絶〕
천지가 개벽하여 반이 되려는데 / 元會天將半
건곤의 태양이 동에서 솟네 / 乾坤日出東
본체는 허명하여 묘용을 담고 / 本虛涵妙用
태극은 그 가운데 있는 듯 없는 듯 / 太極有無中
땅이 중국에 비해서는 작지만 / 地方華夏小
하늘이 태사를 동쪽으로 보냈네 / 天遣太師東
은나라 우물 있는 오랜 강토이고 / 殷井舊疆在
홍범구주의 교화가 남아 있네 / 禹疇遺化中
북쪽 연꽃 핀 제방을 산보하고 / 散步荷堤北
동쪽 버드나무 언덕에서 읊조리네 / 微吟柳岸東
시는 꽃이 핀 뒤에 나오고 / 詩生花綻後
술은 새 소리 가운데 다하네 / 酒盡鳥聲中
작약은 소나무 단상에 피었고 / 紅藥松壇上
단풍은 대나무 언덕 동편에 물드네 / 丹楓竹隴東
매화 동산 옆 연꽃 계단 / 梅園傍荷砌
그 속에 공부하던 글방 있네 / 筮塾在其中
불교는 서역 천축국에서 왔고 / 貝籙西天外
단서는 벽해 동쪽으로 전했네 / 丹書碧海東
누가 알리오 양가의 학술이 / 誰知兩家術
천기의 틀 속에서 돌고 돎을 / 旋轉氣機中
서재 창가에 꽃 그림자 드리우고 / 書窓花影亞
조는 책상에 오동 그늘이 동으로 지네 / 睡榻梧陰東
나직하게 소강절의 시를 읊조리고 / 康節微吟外
꿈속에서 주공을 만나네 / 周公短夢中
기자는 어째서 이곳으로 왔으며 / 箕子何來此
공자도 왜 또 동으로 오려 했던가 / 宣尼又欲東
도가 백왕의 으뜸이었건만 / 道冠百王上
왕이 될 자리에서 지혜 감추고 살았네 / 明夷五位中
기린은 노나라 교외에서 쓰러지고 / 麟踣魯郊外
봉황새 쇠하여 주나라 동천했네 / 鳳衰周室東
춘추에 수천 가지 의리가 / 春秋數千義
해와 별처럼 밝게 빛나네 / 炳烺日星中
훌륭하구나 우 좨주여 / 卓哉禹祭酒
동방에서 처음으로 역전을 연구했네 / 講究易初東
복희 문왕의 오묘함 풀어내고자 / 欲解羲文妙
주역본의 가운데 잠심했었지 / 潛心本義中
주자 이후 설을 속찬하고 / 續纂紫陽後
회택 동쪽 설을 집대성하였네 / 輯成滙澤東
일찍이 빗고 씻어 내놓고도 / 曾經梳洗出
오히려 없는 글로 해 버렸네 / 猶入無文中
어찌하면 사법을 밝게 알아 / 若爲了史法
사서에 이 나라 역사를 채울까 / 汗竹滿天東
화려하고 과장된 좌전을 뛰어넘어 / 突過浮夸左
사기 가운데서 물결치리라 / 波瀾腐史中
고려 왕조 오백년 / 松都五百載
복록이 온전히 융성하진 않았네 / 茀祿欠全隆
단지 후왕에게 남겨준 계책의 뜻은 / 只爲貽垂意
그 근원이 불교에서 나온 것이네 / 根源竺敎中
양연은 자비로운 마음 실천했고 / 梁衍慈悲行
제양공은 금수라 기롱받았네 / 齊襄鳥獸風
자손이 많아도 백 명을 채우지 못했으니 / 諸孫不滿百
푸른 바다에 한 척 배 같았네 / 滄海一帆中
제후에겐 두 명의 정실부인 없지만 / 諸侯無二嫡
중자에게는 특별히 궁을 지어 주었네 / 仲子別成宮
천자가 혜공의 부의를 보내주니 / 天王歸惠賵
중자의 손에 글자가 있었기 때문이지 / 有文在手中
거문고는 화류에서 울리고 / 琴絃韻花柳
깃대에 봄바람이 스치네 / 旗脚拂春風
질문은 사비 상에 이르고 / 問到四非上
마음은 석 달을 어김없이 보존하네 / 心存三月中
위진은 현묘한 이치 숭상했고 / 魏晉崇玄理
양당은 불조의 선풍 떨쳤네 / 梁唐振祖風
노나라 들판에 오성이 이어지고 / 連珠魯野上
송나라 하늘에 일월이 합쳐졌네 / 合璧宋天中
당나라 때엔 상서로운 빛 감추더니 / 唐天閟瑞旭
송나라 시대엔 맑은 빛 바람부네 / 宋日來光風
묵은 찌꺼기 싹 쓸어 없애니 / 査滓渾消盡
가슴속이 씻긴 듯 상쾌하네 / 胸襟灑落中
정자는 공부 단계가 엄밀하고 / 程氏階梯密
소요부는 학문의 세계가 공허하네 / 堯夫樓閣空
봄바람 자리에 불어오고 / 春風來座上
가을 달 중천에 다다르네 / 秋月到天中
세인들은 다 달을 가리키는데 / 世人渾指月
정백자는 홀로 풍월을 읊조리며 돌아왔네 / 伯子獨吟風
공자는 무우에서 바람 쐬는데 찬동하였고 / 童冠舞雩上
안자는 단표로 비루한 거리에 있기를 즐겼지 / 簞瓢陋巷中
강서는 간이함을 힘쓰고 / 江西務簡易
남악은 불가의 풍조에 젖었네 / 南嶽襲空風
주자는 박문약례를 종지로 삼아 / 紫陽宗博約
지정하면서도 대중했네 / 至正又大中
처음부터 한계가 없는데 / 自是無邊際
어찌 시작과 끝이 있으랴 / 那能有始終
형상 너머를 방관하며 / 傍觀影像外
단지 짐작하는 중에 있을 뿐이네 / 只在揣摩中
공자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 / 一自玄聖沒
주자가 천추의 바람을 일으켰네 / 千秋紫陽風
공이 우 임금보다 못하지 않으니 / 功應不禹下
교화가 이미 역내에 두루 미쳤네 / 化已覃域中
본성을 받들고 천리를 따르며 / 尊性循天理
박문약례로 참된 공부 이루네 / 博約致眞功
황돈은 사리를 깨닫지 못하여 / 篁墩不曉事
초년 만년설에 엎치락뒤치락 하였네 / 顚倒晩初中
하늘이 퇴계옹을 내려 / 天降退陶翁
남긴 글로 해동을 비추었네 / 遺文照海東
장인봉은 대은봉이 아닌가 싶고 / 丈人疑大隱
낙동강은 민중 땅과 비슷하다네 / 洛水似閩中
경위의 천문은 다 왼쪽에서 돌아 나오고 / 經緯渾旋左
산수의 지구는 도리어 동을 향하네 / 峙流却向東
저절로 변화의 오묘함을 이루어 내니 / 坐成變化妙
마치 맷돌에서 짜내는 듯하네 / 拶出似磨中
퇴계는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는데 / 陶翁生不數
서애와 학봉이 고풍을 이었네 / 厓鶴嗣高風
배움에 힘쓰고 자질을 겸비했으니 / 學力兼天質
삼대 중에서 찾아볼 만 하겠네 / 試求三代中
만 가지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면 / 萬理敎透徹
하나의 근원이 본래 맑고 허령하지 / 一源本澄空
이제야 알겠네 사마자미는 / 方知司馬子
거듭한 생각이 잘못된 탐구에 있었음을 / 念念枉求中
경문의 문맥을 훤히 통달한 학술은 / 活絡經文脈
익재 목은 따라 동으로 왔었네 / 曾隨益牧東
어째서 사서 읽는 방법을 / 如何四書法
백 년 가운데 실추시켰나 / 墜失百年中
우렛소리 천만 호를 열고 / 雷闢萬千戶
36궁에 봄기운 피어나네 / 春生卅六宮
내가 지금 하루 종일 말해 보아도 / 儂今終日語
어찌 그림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 那得離圖中
평탄하고 평탄한 터전에 / 坦坦平平地
한 치씩 공부를 쌓아가네 / 銖銖寸寸功
특이한 발상을 할 필요가 없으니 / 莫要奇特想
단지 이 산중에 있을 뿐이네 / 只在此山中
대청과 마루와 방을 배치하여 / 排比廳堂室
동서남북에 고루 자리 잡았네 / 均停南北東
형체가 없는 걸 어찌 잡을까 / 無形何可執
정일하면 절로 집중할 수 있네 / 精一自能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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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 윤기(尹愭)
배 안에서절구 4수 〔舟中 四絶〕
파리한 말을 타고 강에 와보니 / 羸馬尋江路
주인이 매놓았네 돌아갈 배를 / 主人繫歸舟
내 아무리 갈 길이 급하다 하나 / 縱郞行次急
강물에 이는 풍랑 어이하리오 / 風浪柰中流
외로운 배 강기슭 따라가는데 / 孤舟傍岸行
밤 깊어 서늘한 기운 생기네 / 夜久些涼生
물가에 자던 새 날아오르니 / 水宿鳥飛起
부드러운 노질에도 놀라 깬 게지 / 也驚柔櫓聲
오월이라 물결 소리 크기도 하고 / 五月濤聲壯
달빛 흐려 들판은 깜깜도 하네 / 黃昏野色幽
사공이 노질을 멎고 하는 말 / 篙師停楫語
달 어둡고 앞에는 배가 많다네 / 月黑前多舟
안개 속에 조각배 나아가는데 / 霧裏扁舟行
희미하게 먼 산이 보일락 말락 / 依微遠岫隱
강가 마을 개 짖는 소리 들리니 / 江村聞犬嘷
알겠네 우리 집이 가까운 줄을 / 知是我家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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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국가행(鞠歌行)22운 〔鞠歌〕
좌중은 술 마시기 잠시 멈추고 / 四坐且停酒
귀 기울여 내 노래를 들어보시게 / 側耳聽我歌
내 노래는 무엇을 노래함인가 / 我歌何所歌
들어보소 내 한번 읊어볼 테니 / 君聽我須哦
내 마음엔 천지가 좁기만 하고 / 我心狹天地
내 기상은 강하(江河)를 압도한다오 / 我氣壓江河
나는야 세찬 바람 타고 올라가 / 我欲凌長風
이 세상 끝까지 유람하고파 / 遠遊窮八垓
부상(扶桑)도 지척처럼 가까웁기만 / 扶桑視尺咫
큰 도성도 술잔처럼 좁디좁기만 / 廣都看杯罍
옹생원과 함께하기 수치스러워 / 恥同齪齪者
진세(塵世)의 밖으로 넘나든다오 / 出沒於塵埃
아득하고 아득한 구주(九州) 밖에는 / 茫茫九州外
바다만 있고 천지 없으니 / 有海無乾坤
만 리의 물결을 헤치고 나가 / 欲破萬里浪
근원을 끝까지 찾고 싶다오 / 遂以窮其源
누구인가 나를 따라 유람을 떠나 / 孰能從我行
나와 함께 세상 밖 날아오를 자 / 與我同飛騫
술잔에 그득하게 술을 채우고 / 盈盈酒滿尊
그대 위해 장한 기상 노래하노니 / 爲子擊玉壺
나 이제 떠난다고 슬퍼만 말고 / 子無惜我去
우리 벗들 분발하라 격려해주소 / 且以勉吾徒
묻노니 누구를 따르려는가 / 借問焉所從
왕자교(王子喬) 적송자(赤松子)와 어울리려네 / 喬松與翺翔
손 맞잡고 급히 서로 헤어지려니 / 摻手薄臨岐
세상살이 너무도 서글프구나 / 世路劇悲傷
찬 바람이 일만 골짝 휘몰아치고 / 寒風振萬壑
하늘의 밝은 해도 빛을 잃었네 / 白日爲無光
가고 가는 여행길 어려우리니 / 行行行路難
산천은 험하고 멀기만 하네 / 險隔山川長
동쪽으론 깊은 양곡(暘谷) 걱정스럽고 / 東憂暘谷深
서쪽으론 험한 양장(羊腸) 근심스럽고 / 西愁羊腸苦
남방에는 독기 서린 안개가 짙고 / 瘴霧南天凝
북방에는 얼음과 눈 잔뜩 쌓였네 / 氷雪朔方聚
나는 이미 유람길 출발했으니 / 而我已發軔
줏대 없이 뜻 바꾸진 않으려 하네 / 且欲勿骫骳
튼튼한 수레로 산을 오르고 / 堅車可躐山
빠른 배로 강물을 건너가리니 / 利楫可涉水
반보(半步)씩만이라도 쉬지만 말자 / 跬步且莫休
절름대도 천 리 길 갈 수 있으니 / 跛鼈卽千里
그대여 누더기 옷 비웃지 마소 / 君莫笑鶉衣
나는야 담비 갖옷 부럽지 않소 / 我不恥狐貉
그대여 거친 밥 비웃지 마소 / 君莫笑蔬食
나는야 이 속에 즐거움 있네 / 我有其中樂
하루하루 가는 날짜 정녕 아깝고 / 此日足可惜
바라는 건 공자님 배우기이니 / 所願學孔子
이 몸이 늙는 줄도 모를 정도로 / 不知老之至
부지런히 노력하리 살아 있는 한 / 斃而後乃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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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첫 아들을 얻고4수
〔余今年二十有五 而始有弄璋之喜 偶讀蘇詩 有曰人皆生子願聦明 我被聦明誤一生 但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意甚陋之 因反其意而步其韻 凡四首 聊以爲孩兒之祝辭云爾〕
내 나이 올해 25세인데 이제야 비로소 아들을 얻는 기쁨을 보았다. 우연히 소식(蘇軾)의 시를 읽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들 낳으면 총명하길 바라지만
내 인생은 총명함 그 때문에 망쳤으니
바라노라 이 아이는 어리석고 노둔하여
재앙과 환란 없이 공경(公卿)에 이르기를”
내 생각에 이 시의 뜻은 너무 옹졸하다. 그래서 이 시의 뜻을 뒤집고 운(韻)만 따라 모두 네 수를 지었다. 아기를 위한 축사를 이것으로 갈음한다.
소동파는 아들 얻고 총명함을 꺼렸지만 / 蘇翁生子厭聡明
총명함이 일생을 꼭 망친다곤 할 수 없네 / 未必聦明誤一生
총명코도 배우기를 좋아하게 만든다면 / 但使聦明仍好學
때 왔을 때 공경(公卿) 되기 무엇이 어려우랴 / 時來何患不公卿
어리석고 노둔함이 총명보다 낫긴 하나 / 元知愚魯勝聦明
안회 증참 본받아야 부끄럽지 않게 되네 / 能學顔曾不愧生
어리석고 노둔한 아이이길 바라면서 / 堪笑望兒愚且魯
우습구나 공경(公卿)에 오르기나 바라다니 / 區區但願到公卿
조화옹이 나에게 총명을 줬다 한들 / 洪均賦予我聦明
총명이 내 평생을 망쳤다고 한탄하랴 / 不恨聦明誤此生
궁달(窮達)과 행(行)ㆍ불행(不行)은 천명에 달렸으니 / 窮達在天行有命
부질없는 공경(公卿) 자리 부러울 것 무에 있나 / 浮榮何必羨公卿
어리석고 노둔한 듯 처신함이 총명이니 / 如愚若魯是聦明
덕 쌓기를 좋아하면 만복이 절로 오네 / 好德自然萬福生
건강하고 장수하고 아들도 많이 두며 / 康寧壽考多男子
정승 재상 벼슬도 따라올 수 있다네 / 人爵儻來公與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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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우연히 읊은 절구 5수계미년(1763, 영조39) 〔偶吟絶句五首 癸未〕
도잠(陶潛)처럼 슬하에 어린 딸 두고 / 女弱同元亮
풍연(馮衍)보다 운 좋게 아내 어진데 / 妻賢勝敬通
가련할사 생계에 졸렬한 이 몸 / 自憐生計拙
처자식을 양강(楊江) 동쪽 버려두었네 / 棄置楊江東
장수와 요절이 다르긴 하나 / 彭殤雖曰殊
모두가 천운을 다하는 건데 / 俱是盡天數
어인 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 / 何事世之人
억지로 호오(好惡)를 달리 하는가 / 強思分好惡
좋은 밥도 늘 먹으면 물리게 마련 / 膏粱長覺厭
좋은 옷도 익숙하면 그저 그렇네 / 狐貉苦無溫
이 어찌 나물밥에 오두막 살며 / 爭似竹窓下
등 따습게 햇볕 쬐는 생활만 하랴 / 啜芹仍負暄
좋은 명성 남기지 못할 바에는 / 苟使芳未流
풀과 함께 썩는 편이 낫지 않으랴 / 無寧草共腐
어찌하여 부질없이 재앙을 즐겨 / 如何樂禍徒
악명을 영원토록 전하려 하나 / 遺臭欲終古
잦은 병에 마음이 늘 고달프더니 / 多病心長苦
살 집 꾸릴 계획 다시 어그러졌네 / 卜居計又違
썰렁한 집 홀로 앉아 탄식하는데 / 寒齋獨坐歎
봄비가 저물녘에 부슬거리네 / 春雨暮霏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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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또 하옹의 시에 차운하여12수 〔又次霞翁韻〕
맑은 강은 흰 베처럼 티 없이 깨끗하고 / 澄江如練謝氛埃
강가의 몇몇 마을 푸른 언덕 둘러쌌네 / 多少江村擁翠臺
가을비 홀연 개어 날씨가 청명하니 / 天氣淸明秋頓霽
동쪽 하늘 달이 떠서 밤빛이 흐르누나 / 夜光浮動月東來
깊은 숲에 우는 새를 누가 울게 하였으랴 / 鳥鳴深樹誰相使
소용돌이 위에서도 갈매기는 돌지 않네 / 鷗泛盤渦故不回
명리(名利) 좇는 마음 없는 물상(物象)이 널렸건만 / 到處忘機已可驗
촌사람은 자리 다툼 어부는 물가 다툼 / 野人爭席漁爭隈
둘째 수〔再疊〕
강가의 성긴 숲은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 斷岸疏林絶點埃
맑은 강가 흰 바위엔 누대가 어울리네 / 淸江白石好樓臺
어부는 찬 물에서 그물 거둬 떠나가고 / 漁翁網捲寒波去
상선(商船)은 석양빛에 돛 달고 떠오누나 / 商客帆懸落照來
저자 거리 가까우니 귀를 씻어 내고 싶고 / 咫尺市朝耳欲洗
꿈속에선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네 / 尋常松菊夢頻回
가을 물가 갈대가 푸르른 채 시드는데 / 蒹葭秋水蒼蒼老
진정한 벗님은 어느 물가 계시는지 / 所謂伊人若箇隈
셋째 수〔三疊〕
번화가의 열 길 먼지 마음에 두지 않고 / 度外通衢十丈埃
중천에 해 뜨도록 코 골며 잠을 자네 / 日高睡足每咍臺
청춘은 급한 듯이 휑하니 가버리고 / 春如有急堂堂去
늙음은 부른 듯이 성큼성큼 다가오네 / 老孰相呼得得來
군자를 경계하는 소인에게 성을 내랴 / 不忿鵷雛飛見嚇
달라붙어 고혈 빠는 모리배가 미울 뿐 / 生憎蠅蚋逐旋回
우습구나 공부해도 졸렬하기 그지없어 / 讀書自笑龍鍾極
무료할사 나그네로 한강가서 지내는 삶 / 旅迹無聊漢水隈
넷째 수〔四疊〕
보배로운 거울은 때와 먼지 아니 타니 / 寶鑑元非染垢埃
끝없는 좋은 풍광 예가 바로 영대(靈臺)로세 / 無邊光景此靈臺
단비에 새싹 돋아 생기 좋게 머금고 / 雨甘草茁含生樂
불은 강에 배가 떠서 시원스레 내려오네 / 水到船浮得意來
대자연의 만물에 활기가 충만하니 / 上下鳶魚活潑在
맑은 바람 밝은 달을 읊조리며 돌아오네 / 淸明風月弄吟回
한가로이 지내는 종일토록 고요하니 / 閑居盡日喧譊絶
먼 물가 어부 노래 몇 가락이 들려올 뿐 / 多少漁歌極浦隈
다섯째 수〔五疊〕
예로부터 사람들은 세상사에 묻혀 살며 / 從古人多混世埃
평생의 금회(襟懷)를 도성 안에 두지만 / 百年襟抱倚高臺
나는야 성현 호걸 진정한 사우(師友) 삼아 / 聖賢豪傑眞師友
훼예(毁譽)와 애증(愛憎)을 오가는 대로 두네 / 毁譽愛憎任去來
위아래 교분 없어 진채(陳蔡)에서 고초 겪고 / 上下無交陳蔡厄
천명(天命)에 순응하여 진하(晉河)에서 돌아서신 / 行藏有命晉河回
공자님 배우기가 못난 이 몸 평생의 뜻 / 區區願學平生志
어떡하면 사수(泗洙)가에 가 볼 수 있을는지 / 安得一遊洙泗隈
여섯째 수〔六疊〕
비 갠 뒤 달과 바람 티끌 없이 깨끗하니 / 光風霽月淨無埃
천지의 원기가 만경대(萬景臺)에 충만하네 / 一氣沖瀜萬景臺
중후한 높은 산이 깎은 듯이 솟았고 / 厚重高山元壁立
근원에서 솟는 강물 해맑게 흘러오네 / 源頭活水自淸來
여유로운 뜻과 기상 거문고로 표현하며 / 從容意象琴歌寓
깨끗한 흉금으로 초연히 지내누나 / 洒落胷懷浴詠回
슬프도다 이 즐거움 아는 사람 다시 없어 / 惆悵無人知此樂
쓸쓸히 홀로 섰네 해 저무는 강가에서 / 蕭然獨立暮江隈
일곱째 수〔七疊〕
인생 백년 모든 일이 한 점의 먼지인데 / 百年萬事一浮埃
미천한 자 노력하여 고관대작 오르누나 / 卿相元多出皁臺
은자(隱者)들도 영원히 은거하긴 어려우니 / 山林未必皆長往
뉘라서 작록(爵祿)에 연연하지 않으리오 / 軒冕誰將視儻來
슬프도다 눈물 속에 죽어 간 공명(孔明)이여 / 堪悲雪涕死諸葛
부끄럽다변절하여 살아남은 저언회(褚彦回)여 / 叵愧戟髯生彦回
예로부터 영웅들은 속절없이 나댔으니 / 終古英雄空潦倒
몇몇이나 산골에 은둔하여 지냈던가 / 幾人藏在谷巖隈
여덟째 수〔八疊〕
좋은 집들 많고 많아 눈앞에 가득한데 / 甲第紛紛極目埃
나만은 누대 지을 땅 뙈기 하나 없네 / 獨吾無地起樓臺
그 누가 변함없이 이전처럼 예우하랴 / 後門誰揖前門揖
찾아오던 벗들도 더는 오지 않는 것을 / 今雨不來舊雨來
바둑판 같은 인정(人情) 참으로 변덕이요 / 棋變人情眞有幻
유수(流水) 같은 세도(世道)는 돌아오지 않으니 / 水流世道未曾回
고향 어서 돌아가자 저물녘에 생각하며 / 故園日暮催歸思
슬피 홀로 난간 기대 먼 물가 바라보네 / 悄倚空欄望遠隈
아홉째 수〔九疊〕
언변과 외모만 따지는 세상이라 / 言貌取人走俗埃
재아(宰我)를 잘못 보고 담대(澹臺)도 잘못 보네 / 失之宰我又澹臺
서안(書案)에 쌓여 있는 책만은 맘에 맞고 / 書惟可意堆床在
눈에 가득 달빛이 시름을 달래주네 / 月解消愁滿眼來
“차라리 그만두자.” 노래 자주 부르지만 / 行不如歸歌數闋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거듭 고개 돌리노라 / 計將安出首重回
산속의 경물들은 한가롭고 담박할 터 / 山中景物多閑淡
흰 구름 속 약초 캐던 물가를 생각하네 / 遙憶白雲採藥隈
열째 수〔十疊〕
어지러운 세상길 속된 일에 몰두하다 / 世路紛紛頭沒埃
맑은 가을 먼 타향서 홀로 누대 오르네 / 淸秋萬里獨登臺
여울 보면 어느새 마음이 즐거우니 / 觀瀾已覺吾心樂
흥취 깨는 사람들이 찾아온들 어떠하리 / 敗意何嫌俗物來
가랑비에 새들은 날갯짓이 비치적 / 細雨鳥飛恒側側
높은 가지 지는 잎은 빙빙 돌며 떨어지네 / 高枝葉落故回回
은(恩) 노인과 송(松) 노인이 글귀를 보내오니 / 恩翁松老空文藻
경치 좋은 강가에서 함께 못함 한스럽네 / 恨不相携水石隈
열한째 수〔十一疊〕
시 짓기에 게을러 붓에 먼지 앉았는데 / 懶尋詩句筆生埃
긴 장대 잡고서 낚시터로 내려가네 / 手攬長竿下釣臺
바람 불면 물빛은 반짝이며 흘러가고 / 水色風時閃白去
비온 뒤라 산의 자태 푸른빛을 보내오네 / 山容雨後送靑來
물고기는 뭐가 좋아 앞 다투어 헤엄치나 / 魚何樂事爭遊戲
새들은 세태(世態)처럼 잘도 오락가락하네 / 鳥亦世情巧背回
만물을 포용하는 천지가 이리 큰데 / 納納乾坤如許大
이 몸은 작은 성(城)의 물가에 붙어사네 / 此身覊旅少城隈
열두째 수〔十二疊〕
세상 만물 나에게는 한 점의 티끌이니 / 萬物於吾卽一埃
진희이(陳希夷)는 천 년 전에 운대관(雲臺觀)에 칩거했네 / 希夷千古閉雲臺
마음 맞는 소재 보면 시가 술술 나오는데 / 詩逢會意思如助
좋은 객(客)은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누나 / 客有可人待不來
가난에 초연하면 오두막이 문제이랴 / 環堵何傷非病憲
찬밥과 냉수로도 안회(顔回)는 즐거웠네 / 簞瓢堪樂屢空回
세밑의 강 마을에 찾아오는 이 없지만 / 江村歲暮無車馬
다행일세 좋은 시편 내게 보내주시니 / 惟幸佳篇到岸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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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남의 시에 차운하여4수 〔代次人韻 四首〕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지어 준 것이다.
황종(黃鍾)에겐 와부(瓦釜)가 수치이지만 / 黃鍾羞瓦釜
지렁이 구멍서도 소리가 나네 / 蚓竅亦蠅鳴
세상엔 명리(名利) 좇는 사람만 많고 / 宇宙多朝市
서로 함께 은둔하는 사람 드무네 / 風塵少耦耕
집 앞에 쑥대가 우거졌어도 / 徑開仲蔚宅
은자의 이름을 사람들 아네 / 人識伯休名
좋을시고 여기서도 기심(機心) 잊거니 / 自是忘機好
바닷가에 은거할 것 무에 있으랴 / 何須海上盟
서리 내려 풍산(豐山)의 종 절로 울릴 제 / 霜方豐蠡響
오동(梧桐) 북 비로소 크게 울렸네 / 鼓始蜀桐鳴
젊은 시절 당당하게 세상을 떠나 / 早歲堂堂去
거친 밭 쉬지 않고 일구어 왔네 / 荒田故故耕
한평생 이별 노래 불러왔으니 / 百年三疊曲
그 이름 영원히 전해지리라 / 萬世千秋名
강권(强勸)에 못 이겨 시를 쓰자니 / 把筆因人強
열아홉 살 맹약에 부끄럽기만 / 全輸十九盟
그윽한 창 아래 홀연 잠 깨니 / 幽窓眠忽罷
무성한 나무에서 새들 우짖네 / 深樹鳥相鳴
석양 무렵 배에 올라 낚시를 하고 / 渚釣斜陽艓
보슬비 속에서 비탈밭 가네 / 山田細雨耕
천고의 뜻 못 이루어 적막해졌고 / 蕭條千古意
한 몸의 이름도 영락했으니 / 寥落一身名
나는 오직 그대와 함께하리라 / 微爾吾誰與
일찌감치 강호(江湖) 은거 맹약했으니 / 江湖早有盟
주렴 걷고 맑게 개인 낮이 길 제면 / 捲簾晴晝永
무릎에 거문고를 비끼어 타네 / 橫膝素琴鳴
삼 년의 글공부를 어디에 쓰랴 / 焉用三冬史
몇 마지기 밭을 갈면 그만인 것을 / 只宜數畝耕
흉금 열어 담소하는 벗 있어 좋고 / 論心欣有友
은둔하여 이름 숨김 귀히 여기네 / 遯世貴無名
호방한 기상 진즉 추앙했더니 / 已讓超乘氣
참으로 문단(文壇)의 으뜸되었네 / 眞成代起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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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탁영정 20경〔濯纓亭二十景〕
관악산의 청람〔冠嶽晴嵐〕
깎아지른 높은 산이 강 남쪽에 서 있으니 / 戍削峯巒卽水南
비 갠 아침 마주하네 진초록을 머금은 빛 / 晴朝相對綠濃含
좋구나 저 산의 뛰어난 풍광이여 / 堪喜箇中光景絶
푸르스름 서린 것은 연무 아닌 엷은 청람 / 非煙非霧是輕嵐
농바위의 저녁 물결〔籠巖晩潮〕
기이한 바위 우뚝 벼랑 문이 되어서 / 奇巖陡作斷崖門
긴 강물 만고토록 토하거니 삼키거니 / 萬古長江任吐呑
저녁 되자 물결 소리 갑절이나 웅장하니 / 潮水晩來聲倍壯
간밤의 밀물 자국 모두 지워냈으리라 / 也應全沒昨宵痕
모래사장을 비추는 밝은 달〔平沙皓月〕
잔잔한 푸른 물을 둘러싼 흰 모래밭 / 明沙環繞綠波漪
눈부신 광채에 옥가룬가 의심했네 / 奪目光晶玉屑疑
저곳의 빼어난 풍광을 알려거든 / 欲識就中奇絶處
개인 하늘 휘영청 달 밝은 밤에 보라 / 一天霽月皎然時
먼 물가의 한 줄기 밥 짓는 연기〔極浦孤煙〕
아스라이 먼 물가 구불구불 감돈 곳에 / 茫茫極浦勢縈紆
고목들과 외딴 마을 보일락 말락 하네 / 老樹幽村遠有無
영롱한 물빛이 산빛 속에 서렸는데 / 玲瓏水色山光裏
밥 짓는 연기 몇 점 그림보다 아름답네 / 數點孤煙勝畫圖
밤섬에서 활 쏘는 모습〔栗島射侯〕
맑은 섬의 먼 모래밭 버들잎 살랑이고 / 島晴沙遠柳陰輕
높이 매단 흰 과녁 강물 너머 또렷하네 / 粉鵠高懸隔水明
난간 기대 즐거이 활쏘기 구경할 제 / 凭欄坐愛穿楊技
빠른 화살 날자마자 북소리 울리누나 / 纔看星流已鼓聲
하얀 바위에서 비단 빨래하는 모습〔白石浣紗〕
모래는 흰 눈 같고 여인네는 꽃 같은데 / 沙如白雪女如花
하얀 바위 맑은 물에 흰 비단 빨래하네 / 白石灘淸浣白紗
가벼운 팔놀림에 물결이 일렁이고 / 玉腕輕嬌波蕩影
물속에 비친 여인 모두가 미녀로세 / 水中箇箇是西家
석양 속의 누대들〔夕陽樓臺〕
강 동쪽 저 끝까지 연이은 누대들 / 樓臺羅絡亘湖東
강 언덕에 기대선 높낮이가 제각각 / 依岸高低自不同
무엇보다 비 갠 뒤 석양 풍경 제일이니 / 最是新晴銜暮景
층층의 단청들 흡사 그림 속이로세 / 層層粉碧畫圖中
저녁 비 속의 돛대〔暮雨帆檣〕
바람 속에 돛단배들 멀리 이어지더니 / 風吹帆影遠相連
저물녘 들어올 제 폭우가 쏟아지네 / 暮入寒江白雨天
안개 속에 희미하게 여기저기 서 있는데 / 依微立立雲煙裏
돛대 끝만 보이고 배는 아니 보이누나 / 只見檣頭不見船
노주의 먼 마을〔鷺洲遠村〕
한강물 둘로 가른 비스듬한 노주(鷺洲)에서 / 中分二水鷺洲斜
밥 짓는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나네 / 裊裊炊煙望裏賒
강가의 마을 집 몇 채인지 모르겠네 / 村家列岸知無數
버드나무 녹음에 절반이 가리워져 / 爲有柳陰半被遮
누에나루의 수양버들〔蠶渡垂柳〕
누에나루〔蠶渡〕 수양버들 초록으로 줄을 지어 / 蠶渡垂楊綠作行
하늘하늘 얽힌 연기 푸른 물결 일으키네 / 縈煙褭娜拂滄浪
천 가닥 실로 꽁꽁 가는 배들 묶건마는 / 千絲剩繫行舟着
오고감이 어이하여 날마다 분주한지 / 來去緣何日日忙
밤에 창문에 비치는 고깃배의 불빛〔夜窓漁火〕
삼라만상 고요하고 강 소리만 들리는데 / 萬籟寥寥但聽江
밤 깊자 고깃불이 홀연 쌍쌍 켜지누나 / 夜深漁火忽雙雙
오고가는 불빛에 희미한 꿈 깨어보니 / 映來映去驚幽夢
맑은 난간 비추고 창 안까지 비쳐드네 / 直射淸欄透入窓
봄 물가에 놀러 나온 귀인들〔春渚貴遊〕
봄 강에 날마다 귀인(貴人)들이 놀러 오니 / 春波日日貴遊多
난간 너머 언제나 화려한 배 지나가네 / 檻外尋常錦纜過
거울 같은 강물에 그림 같은 사람들 / 湖如鏡面人如畫
가무(歌舞)하는 기녀들은 또 무엇에 비길까 / 歌扇舞裳又似何
남한산의 눈 덮인 성가퀴〔南漢雪堞〕
눈이 개자 먼 곳의 풍광이 떠오르니 / 六花初霽遠光浮
드높은 남한산에 흰 성가퀴 둘렀어라 / 南漢嵳峨白堞周
병자(丙子) 정묘(丁卯) 호란 이후 산성이 남아있어 / 丙丁以後城猶在
해마다 눈〔雪〕 덮이나 여태 설욕(雪辱) 못하였네 / 雪色年年未雪羞
서교의 단풍 숲〔西郊霜林〕
서교(西郊)에 서리 내려 온갖 초목 단풍들 제 / 霜落西郊萬葉知
바람 불고 석양 비쳐 참으로 아름답네 / 風飜夕照十分宜
진노랑 사이사이 심홍색 점 박혔으니 / 深紅間點深黃色
숲은 본디 무심한데 내 눈엔 기이하네 / 渠自無心我見奇
물결 너머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랫소리〔隔水樵歌〕
마을마다 연기 피고 석양이 비낄 때면 / 村村煙起又斜暉
모래밭에 줄줄이 나무꾼들 돌아가네 / 沙上樵群歷歷歸
천연스런 이 풍경 그려낼 만하지만 / 天然物色眞堪畫
물결 너머 들려오는 노랫소릴 어이하랴 / 爭那歌聲隔水飛
강물에 떠 있는 낚싯대〔乘流釣竿〕
종일토록 물결 위에 떠 있는 조각배 / 小艇乘流竟日於
어디 한 번 물어봄세 낚싯대 드리운 뜻 / 垂竿借問意何如
“임자는 나 아니니 어찌 내 맘 아시겠소 / 主人非我安知我
나는 본디 고기 아닌 한적함이 목적인걸” / 我自爲閑不爲魚
목멱산의 푸르름〔木覓蒼翠〕
안개 걷힌 목멱산(木覓山) 아름다운 풍광이여 / 終南罷霧氣佳哉
울울창창 솔숲이 푸른 언덕 이루었네 / 欝欝松林翠作堆
동쪽으로 아침저녁 그윽이 바라보면 / 東籬日夕悠然見
한 줄기 또렷한 흰 성가퀴 둘렀어라 / 一路分明粉堞回
청계산의 운무〔靑溪雲霧〕
비스듬히 마주한 청계산(靑溪山)의 푸른 얼굴 / 靑溪斜對立蒼顔
신기(新奇)한 모습으로 아스라이 서 있네 / 一種新奇杳邈間
깊은 산에 잔뜩 낀 구름과 안개로 / 深峯故是饒雲霧
산의 절반 때때로 하늘 저편 사라지네 / 天外時時失半山
여름 장마 때 불어난 물 구경〔夏霖觀漲〕
뭇 신들이 강과 바다 뒤집고 터 놓은 듯 / 飜河决海百神勞
천 리를 내달리는 기세가 힘차도다 / 千里驅來氣勢豪
큰 섬과 높은 바위 모두 물에 잠겼으니 / 崇巖巨島皆淪沒
관악산은 물 위로 몇 척이나 남았을지 / 冠嶽山餘幾尺高
겨울날의 얼음 구경〔冬天賞氷〕
하룻밤 찬바람에 물빛이 새로우니 / 一夜寒風水色新
적막할사 헤엄치는 물고기들 볼 수 없네 / 魚龍寂寞失經綸
행객(行客)들은 물 위 걷는 신선과도 같은데 / 行客恰如羅襪子
한 걸음 한 걸음 물거품도 일지 않네 / 瑤池步步不生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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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탁영정에서 보이는 한강 8경〔濯纓亭江中八景〕
해〔日〕
바람 잔 맑은 강에 물결이 잔잔하니 / 江澄風靜細紋生
반짝반짝 햇빛을 경쾌하게 반사하네 / 閃閃日光映射輕
그 누가 금덩이를 천 조각 부수어서 / 阿誰碎却金千片
물결 사이 흩뿌려 반짝이게 하였는가 / 撒在波間巧滅明
달〔月〕
달빛과 물빛이 어울리는 맑은 밤 / 月色波光淸夜宜
한 줄기 달그림자 물 위에 일렁이네 / 一條飛動影娥池
나공원(羅公遠)이 마법으로 은빛 다리 내었으니 / 羅公新幻銀橋出
누가 또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 몰래 훔쳐 내올까 / 偸得霓裳也有誰
별〔星〕
드문드문 찬별들 밤 강을 비추니 / 歷落寒星映夜湖
언듯 보면 고깃불 언듯 보면 구슬 같네 / 忽如漁火忽如珠
분명히 바둑 한 판 이제 막 끝났건만 / 分明一局棋初罷
흑백 중 어느 쪽이 졌는지 알 수 없네 / 黑白不知孰是輸
바람〔風〕
늘상 보면 평화롭고 예사롭던 강물이 / 長看平淡亦尋常
바람 불면 파도 일어 모습이 표변하네 / 風動波瀾幻景光
높은 곳은 은집〔銀屋〕 되고 낮은 곳은 눈〔雪〕이 되니 / 高成銀屋低成雪
기이한 변화를 그 누가 주재하나 / 箇裏奇權孰主張
비〔雨〕
바람 불고 비 퍼부어 먼 하늘 희뿌옇고 / 風吹白雨遠迷天
수면 위에 가로 날려 안개가 낀 듯하네 / 水面斜橫色似煙
떨어지는 모양 보면 낱낱이 둥글더니 / 初見落來圓箇箇
강을 메운 짙푸른 물 둥근 모양 더는 없네 / 滿江瑟瑟更無圓
눈〔雪〕
꽃처럼 눈 날리고 물빛이 차가우니 / 滕六花飛水色寒
유리 같은 언 강의 광경 참 기이할사 / 琉璃界上有奇觀
낚시하는 늙은이 고개 떨궈 조는데 / 釣叟把竿垂首睡
도롱이가 절반씩 눈 덮이고 말라 있네 / 半蓑雪滿半蓑乾
밥 짓는 연기〔烟〕
맑은 강 비 갠 뒤에 연기가 둘렀는데 / 澄江更有霽煙環
하늘대며 엷게 서린 자태 참 한적하네 / 細裊輕籠態絶閑
모래밭에 졸던 흰 새 놀라서 날아갈 제 / 驚得睡沙白鳥起
한 줄기 연기 끌고 앞산을 지나가네 / 拖分一抹過前山
안개〔霧〕
새벽안개 강에 끼어 황혼 무렵 같으니 / 曉霧迷江色若曛
연기도 비도 아닌 안개로 자욱하네 / 非煙非雨弄紛紛
아기 용이 구름 부르는 술법을 배우겠지만 / 兒龍應學呼雲術
남산(南山)의 스라소니 무늬만 하겠는가 / 何似南山豹變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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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의동의 오두막에 우거하며4수 〔寓居義洞村舍 題壁四首〕 벽에다 썼다.
낙산(駱山) 아래 자리 잡은 오두막집은 / 駱峯之下蝸居爰
도성 안에 있지만 시골스럽네 / 城裏依然野趣存
낮은 지붕 작은 창은 낚싯배 같고 / 矮屋小窓疑釣艇
성긴 울타리 얕은 우물은 완연한 산촌 / 疏籬瘦井宛山村
산엔 늘상 아름다운 풍광이 많고 / 林嶽尋常多氣色
저자 거리 가깝지만 소란치 않네 / 市朝咫尺絶啾喧
적인걸(狄仁傑)이 수레 멈추고 그리워했듯 / 千秋狄子停車思
분수(汾水)의 흰구름에 애간장 녹네 / 汾水白雲斷我魂
무너진 벽 날아간 이엉 누추하기 짝이 없고 / 壁頹茅捲陋無儔
칠척(七尺) 겨우 용납하는 조각배 같은 이 집 / 七尺纔容似小舟
방문 나설 적마다 눈앞 처마 한스럽고 / 出門每恨簷遮眼
들어설 땐 천정에 늘 머리 찧어 놀라누나 / 入室恒驚屋打頭
평소에 고대광실 부럽지 않았건만 / 平生不羨差高大
오늘은 싫어지네 너무도 작은 이 집 / 今日還嫌太隘湫
남산을 보려 해도 가리우는 것이 많아 / 欲望南山多掩蔽
한가로이 볼 수 없어 시름겹게 하누나 / 悠然未見使人愁
세상에 맞지 않아 오두막에 칩거하고 / 乖違盧屋閉
거취에 어두워 정착하지 못하누나 / 去就屈居迷
생계에 어두우니 어찌하리오 / 無那昧生理
꾹 참고 남의 집에 붙어 살 밖에 / 且須忍寄棲
호젓하여 독서하며 사색하기 안성마춤 / 讀書幽好賾
조용하여 글귀 찾아 시 짓기에 좋으니 / 覓句靜宜題
몸과 마음 여유로운 장점만 보고 / 但看身心裕
의지와 기개를 잃지는 말자 / 休敎志氣低
빈 배로 이 세상 떠다니다가 / 虛舟遊此世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여기 닿았네 / 飄泊任風波
울타리는 해어져 산빛 비치고 / 籬壞多山映
숲이 깊어 찾아오는 손님 드무네 / 林深少客過
내 마음은 세상 생각 끊지를 못해 / 吾心不得已
속태(俗態)를 어찌할 수가 없으니 / 俗態無如何
평소 닦은 학문에 부끄럽지만 / 慙愧平生學
청한(淸閑)히 지낼 수 있어 좋아라 / 猶能曳履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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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1책 / 시(詩)
소나무ㆍ대나무ㆍ국화ㆍ오동나무4수
〔有人賦松竹菊梧 蓋欲以強韻困和者而觀其能也 聞而次之〕
어떤 사람이 소나무ㆍ대나무ㆍ국화ㆍ오동나무를 읊었는데, 이는 화답하는 사람을 어려운 운자로 곤란하게 만들어 재능을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 그 시를 듣고 차운하였다.
소나무〔松〕
스스로 꼿꼿한 절개를 품고 / 自能直節抱
눈서리 만나도 개의치 않네 / 一任雪霜遭
골짜기 위로 높이 일산 펼치고 / 出壑軒危蓋
바람 불면 노도(怒濤)가 부서지누나 / 當風碎怒濤
독야청청(獨也靑靑) 혼자서 바름 지키며 / 靑靑獨也正
우뚝 서서 다른 초목 하찮게 보네 / 落落見他驁
오늘날엔 뛰어난 장인이 없어 / 今世無良匠
다행히 기둥감으로 베이지 않네 / 棟梁喜得逃
대나무〔竹〕
이 친구는 참으로 나의 벗이니 / 此君眞我友
아교에 옻 섞은 듯 친밀하다네 / 氣味漆投膠
청아한 소리는 아기 용 품고 / 疏韻含龍子
맑은 그늘에 봉황이 둥지를 트네 / 淸陰待鳳巢
해곡(嶰谷)에서 기장보다 앞서 나왔고 / 嶰生先秬黍
형주(荊州)의 공물(貢物) 중엔 청모(菁茅) 눌렀지 / 荊貢壓菁茅
빈 뜨락 달빛에 만 자로 비쳐 / 萬尺空庭月
문여가(文與可)가 비웃지 못하게 하길 / 休敎與可嘲
국화〔菊〕
울 밑에 황금빛 꽃이 피어나 / 籬下金英吐
가을 향기 집 안에 물씬 풍기네 / 秋香滿一齋
맑은 바람 속에선 담박하지만 / 風淸容自淡
서리 칠 땐 힘으로 물리친다네 / 霜打力能排
은사(隱士)의 뜨락에 어울리거니 / 三徑宜爲友
천 가지 꽃이 감히 견줄 수 있나 / 千葩敢與儕
나는 오직 만절(晩節)을 사랑할 따름 / 吾惟愛晩節
세상과 어긋나려 함이 아니네 / 非欲世相乖
오동나무〔梧〕
달 밝은 밤에만 어울릴쏘냐 / 偏宜月霽夜
비 개인 저녁에도 보기 좋다네 / 可是雨收晡
무성한 잎 벽운(碧雲)처럼 높이 벌었고 / 菶菶碧雲聳
꼿꼿한 줄기는 청옥(靑玉)과 같네 / 亭亭靑玉扶
명주실로 우음(羽音)을 낼 수 있으니 / 也令絲奏羽
물고기 수염 매단 대〔竹〕보다 낫네 / 不比竹嘲鬚
산 동쪽에 봉황이 기풍 떨친 후 / 一奮朝陽鳳
나약한 자 따라서 뜻을 세우네 / 餘風立懦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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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목가산 노래32운 〔木假山歌〕
그대는 못 보았나 / 君不見
두자미(杜子美)가 남조(南曹)의 가산(假山)을 두고 읊은 시를 / 南曹假山子美賦
당(堂) 아래에 한 삼태기 흙을 쌓아 흙산을 만들었네 / 堂下築成一簣土
그대는 또 못 보았나 / 又不見
한퇴지(韓退之)가 진국공(晉國公)의 가산(假山)을 아껴 지은 시를 / 晉公假山退之惜
냇가에서 바위 몇 덩이를 옮겨와 바위산을 만들었네 / 澗側匃來數拳石
뉘 집에서 섣달그믐 밤 모닥불을 피우는가 / 誰家除夕火峯熾
어디에서 동짓날에 비단 산을 쌓는가 / 何處至日綵岫峙
소꿉질 같은 행사가 천고에 끝없지만 / 無限千古小兒戲
각기 한때 벌여놓는 부질없는 물건일 뿐 / 各自一時閑排置
후대의 소순(蘇洵)은 그런대로 괜찮아 / 後來蘇老差可意
목가산을 집에 두고 기문(記文)을 지었으되 / 以木爲山文爲記
우뚝한 세 봉우리로 높은 인품 빗댔으니 / 岌然三峯能近譬
속인(俗人)들과 격이 다른 고상한 정취였네 / 高致殊與俗人異
허나 그도 내 집의 목가산만은 못하니 / 未若吾家木假山
구불구불 서려 있는 진짜 산 같은 모습 / 虬枝宛似眞螺鬟
천연의 모습 절로 우뚝이 드러나니 / 嶙峋自露天然顔
깎고 자른 사람 손길 어찌 용납했으랴 / 剜劃肎容人力艱
생각하면 이곳에 집터 잡던 그때부터 / 憶昔誅茅卜此地
동네가 외지고 호젓함이 좋았으니 / 已喜洞天幽且邃
뒷산 가른 냇물이 세차게 흘러오고 / 後麓擘開奔巨靈
좌우로 푸른 벼랑 병풍처럼 둘러섰네 / 左右環抱圍蒼屛
밤에 앉아 있다가 홀연 놀라 탁자 치니 / 夜坐忽然驚拍案
기이할사 산이 우뚝 남쪽 물가 솟았어라 / 奇哉有山聳南岸
가운데 봉우리는 중후한 인자(仁者) 모습 / 中峯厚重仁者象
양옆의 봉우리는 고상한 선비 모습 / 傍岫縹緲奇士樣
희미한 달빛 받아 맑은 물에 비치고 / 蒼茫帶月映淸潭
공중에 우뚝 솟아 푸른 이내 엉기누나 / 突兀凌空凝碧嵐
어떨 때는 붕새가 부리 높이 쳐든 듯 / 時看巉絶搴鵬噣
다시 보면 사람이 공읍(拱揖)하며 고개 든 듯 / 更疑拱揖矯人首
깊고 얕은 경치가 층층이 이어지고 / 淺深氣色層層連
호젓한 바위 골짝 형세가 침중(沈重)하네 / 窈窕巖洞勢隱然
이웃집 노인에게 산 이름을 물었더니 / 試問隣翁山名何
착각이라 하면서 크게 웃고 하는 말이 / 隣翁大笑謂我訛
“저건 늙은 잣나무의 가지와 잎 뒤엉킨 것 / 此是老柏枝葉互
그 모습이 험준하여 딴 나무와 다른데 / 其形崷崒異他樹
게다가 언덕 위에 꼿꼿이 빼어나고 / 況且亭亭秀高阜
아래에선 나무숲이 좌우를 옹위했소 / 下有林木擁左右
빈틈 없이 하늘 가린 기괴한 온갖 형상 / 蔽空補缺備奇怪
밑은 넓게 서리고 위로 점차 좁아지며 / 盤據磅礴上漸殺
사시사철 변치 않는 푸르른 저 모습 / 四時不改蒼翠容
바라보면 높은 산을 마주한 듯하다오” / 望之如對崔嵬峯
이 말 듣고 나는 매우 기이하게 여겼으니 / 我聞此語大異之
진짜 산 그보다 가산(假山)이 더 기이하네 / 假山勝似眞山奇
날 밝기를 기다려 다시 살펴보았지만 / 坐待天明更熟視
황홀하여 진위(眞僞) 분간 여전히 어렵구나 / 怳惚猶難分眞僞
날이 개면 우뚝함이 유난히 돋보이고 / 晴時戍削偏出群
그윽한 곳 은은하여 구름이 필 듯하니 / 幽處依微欲生雲
지척의 도성 먼지 모두 잊어버리고 / 城塵咫尺渾已忘
산야의 정취에 절로 늘 끌리누나 / 野趣尋常自相向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백 보 거리에서 / 不遠不近百步間
높이높이 우러를 뿐 오를 수는 없으니 / 高高仰止難可攀
알괘라 하늘이 교묘히 둔갑시켜 / 故知天意巧幻成
나에게 조석으로 깊은 정을 두게 했네 / 供我朝莫寄幽情
우습구나 세인(世人)들 번거로이 깎고 새겨 / 哂他世人刻斲繁
대청마루 섬돌 앞에 산 모형을 만듦이여 / 强學山勢對階軒
바위에다 부질없이 기교 부린 가산(假山)을 / 巖岫謾勞機巧加
뜨락에 벌여놓고 경치 좋다 자랑하네 / 騈羅爭詑佳致多
내 집엔 깎고 새긴 노고 한 번 없었건만 / 幸我不假彫琢苦
푸른 산이 우뚝이 방문 앞에 늘 서 있네 / 靑山偃蹇長當戶
사시사철 푸르른 자태를 옮겨 오니 / 移來歲寒後凋姿
천 길 높은 벼랑을 보는 것만 같아라 / 宛見千仞壁立儀
소나기 퍼부을 땐 폭포 속에 앉은 듯 / 雨驟疑坐懸瀑聲
새들이 지저귈 땐 깊은 산골 새소린 듯 / 鳥亂如聽深峽鳴
신선 세계 같은 경지 은자에게 흡족한데 / 眞境實愜幽人操
이러한 뜻 속인에겐 전달하기 어렵구나 / 此意難向俗子道
반 폭의 비단에다 그려내고 싶지만 / 更欲描出半幅裏
지금 누가 용면(龍眠) 같은 그림 솜씨 지녔을까 / 今世誰是龍眠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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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2책 / 시(詩)
반중잡영220수 〔泮中雜詠 二百二十首〕
별도 취합 본 카페 상식/자료에 전에 이미 등록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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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 長篇 詩-마2部.끝.
첫댓글 오늘도 잘 가져 가겠읍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