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순 시인의 시집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모르는 새가 있다』
약력 :
공화순
화성출생
2005년 『창작수필』 수필 등단
2016년 『시조문학』 등단
수필집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
시조집 『모퉁이에서 놓친 분홍』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모르는 새가 있다』
kgdosa@hanmail.net
시인의 말
그동안 숨기지 못해 몸을 불린 일상들
난 얼마나 그 사이에서 더 비겁해져야 할까
2024년 7월
공화순
메타버스metaverse
1
내 모습 이대로 보이고 싶지 않아
다양한 일상들을 편집해서 내걸죠
어떻게 알았을까요
번번이 찾아오네요
입맛을 자극하고 시선을 사로잡고
어디든 따라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렇게 속을 다 알면서
만날 순 없는 건가요?
2
세상 너머를 보나요
하고 싶은 게 많아도
할 수 없는 게 많아도
이곳으로 오세요
당신의 아바타가 되어
무엇이든 해줄게요
세잔의 사과
누군가 건네준 사과 하나 받아들고
독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한쪽 얼굴만 바라보는 시선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얼굴은 빨개지고
표정이 사라지자 점, 선, 면을 바꾼다
어디를 봐야 하는 걸까, 사방에 눈이 있다
가스라이팅
깊숙한 건 보이지 않아 속이 늘 궁금하다
숨기고 의심하던 우리 둘 사이에서
서로가 손발을 빼자 구멍이 드러난다
수없이 부딪히고 당기고 밀어내다
지나가는 바퀴에 눌리고 찢긴 상처
가끔은 속엣것들도 문을 열고 뛰쳐나온다
순식간에 차량을 집어삼킨 싱크홀처럼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하는 틈새들
갈수록 점점 커져서 흉터가 오래 남는다
가버나움이란 겨움
내가 태어난 죄를 누구에게 물을까
자인은 태어났고 집안은 가난했다
세상이 너무 좆같아요
열두 살의 법정 고백
제 살을 파먹고 자란 새빨간 본능에
체면은 도망가고 식욕이 자라났다
부모를 고소합니다
왜냐구? 날 낳았으니까
생명은 커갈수록 맨발에 힘을 주고
말마다 벌린 입들이 길거리를 헤맨다
자꾸만 화가 납니다
자꾸 배가 고파서
프로파일러의 식사법
지친 몸 퇴근길에 해장국을 먹으려다
같은 밥을 먹었던 용의자를 떠올린다
번번이 현장에서 막힌
선지 같은 의혹들
죽여야 살 수 있다던
마지막 몸부림 같은
한데 엉긴 덩어리 헤집고 으깨다가
국물에 단서를 말아 끼니로 해치우는
*살인자 정남규의 말 인용.
해 설
불화의 시대 시조 쓰기
황정산(시인·문학평론가)
현대시조는 시조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 적 사유와 감성을 담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모순과 딜레마를 안고 있다. 시조에 현대적 감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과거의 정형적 운율과 형식적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시조라는 정체성은 훼손된다. 시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담아내야하는 문제는 현대시조를 쓰는 시인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과제일 것이다. 전통적 시조는 3음절이나 4음절의 4마디로 된 초, 중, 종장의 3장으로 된 형식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종 장의 첫째, 둘째 마디의 음절 수 변화가 시조 형식의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다. 3음절의 짧은 마디로 시작해 둘째 마디에서 5. 6음절로 길어지다 마지막 4음절과 3음절로 종결짓는 방식이다. 초장과 중장이 길어지는 사설시조나 엇시조에서도 이 종장의 형식만큼은 꼭 지켜진다. 4마디의 안정성과 마지막 종장의 완결성은 시조의 내용과도 잘 상응한다. 시조가 번성하던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는 아무리 현실은 당쟁과 사화 등으로 얼룩졌더라도 자연과 천도라는 완전한 세계라는 이상이 있었다. 그런 조화로운 이상 세계는 완전한 자연을 노래하는 강호가도의 시조나 천도라는 유교적 이념을 설파하는 충효가 등으로 나타났다. 시조의 형식은 이 조화로운 세계관의 형식적 표현이기도 하다. 4마디의 안정된 질서와 마지막 행의 밀고 당기다 완결감 있게 마무리 짓는 형식은 인간의 정서적 동요 마저도 안정된 질서 속에 화합시킨다. 이렇듯 시조는 유교의 이념적 질서에 상응하는 시가 장르이다. 조화로운 세계의 질서와 보편적 이념에 상응하는 유장하고 안정된 형식이 시조의 정형적 운율과 형식적 틀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는 지났다."라고 루카치가 말했듯이 현대사회는 보편적 가치관이나 질서가 사라 라지고 없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의 전통적 시조의 틀은 시적사유와 정서를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전통적 질서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시켜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는 것 그것이 현대시조가 담당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한다. 공화순 시인의 이번 시조집에 실린 시조들이 바로 그런 노력과 그 성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