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Syria)는 면적이 한국의 두 배 정도 크고, 정식 명칭은 시리아 아랍 공화국입니다.
인구는 약 2천만명이며, 터키,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 그리고 레바논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시리아라는 이름은 고대부터 동부지중해 연안 북부지방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습니다.
수도 다마스커스는 성경에서 언급될 정도로 3천5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인데 아랍어로는 ‘디메슈끄’ 또는 ‘앗 샴’이라고 합니다.
다마스커스라고 하는 말은 “Damaskene(물의 신의 아내)"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이 도시가 바로 사도 바울이 회심한 곳으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터키의 영토가 된 안디옥이 바로 시리아의 오랜 영토였습니다.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리아는 참으로 중요한 나라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할 수 있는 수메르어의 설형 문자가 시리아 남쪽에 위치한 ‘마리’라고 하는 도시를 중심으로 존재해 있었고, 쐐기 문자가 우가릿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대에 이미 시리아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기반을 둔 수메르 문명이 꽃피고 있었고, 우가릿 이라고 하는 도시 왕국을 중심으로 페니키아 인들이 상업 및 문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시리아지방의 페니키아안들에 의해 그들의 문자가 유럽에 전해지게 되어 지금의 유럽어의 뿌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곳에 상업을 통해 그들의 문명을 곳곳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북쪽 터키고원과 남쪽 아라비아반도의 접촉지대에 위치한 시리아는 지중해에 면해 있어 동서간 교통요충인 서아시아의 십자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민족이 이 땅에 와서 다채로운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와 시리아왕국, 그리고 로마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던 고대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아람왕국과 아람사람은 바로 시리아 사람들입니다. 고대 시리아어가 아람어 인데 그 아람어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을 하였고, 예수님 또한 지상에 계실 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무대가 되어왔던 지금의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일부지역은 고대부터 “샴”이라고 불리었는데 샴 이라고 하는 말은 곧 시리아를 의미했습니다.
이와같은 역사로 인해 이곳의 사람들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의 헬라제국 및 그 후의 셀류쿠스 왕조의 시리아왕국등으로 인해 그리스인들이 지배하며 많은 그리스인들이 유입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로마의 지배도 비슷한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지금도 그리스 계통의 혈통을 가진 이들이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이웃의 아르메니아 사람들과 쿠르드족 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대 기독교의 큰 영향을 받아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던 곳으로서, 로마 제국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내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과 381년의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국가종교로의 공인을 계기로 말미암아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 시대 때에 시리아 북부지역에 많은 교회들과 수도원, 그리고 수도사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르메니아지역의 교회들과 에디오피아교회, 그리고 이집트의 콥틱교회 등과 함께 칼케돈공의회의 결정과 다르게 그리스도의 단성론을 주장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후 시리아는 7세기 무렵에 이슬람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현재 이 나라 인구의 90퍼센트의 인구가 이슬람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지역으로 인식되어 있는 중동지방의 국가임에도10퍼센트가 로마 카톨릭과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및 개신교입니다. 그 10퍼센트 중 개신교는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15일에 발발한 뒤로 지금도 진행 중인 중동의 장기 내전이다. 시리아에서 2011년 4월부터 바샤르 알 아사드 정부를 축출하려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 현재 진행 중인 내전이다.
설상가설(雪上加雪)으로 지진까지 덮쳐 수만 명이 사망했다. 그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지 않아도 내전으로 이미 387,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560만명이 터키 등 이웃 나라로 탈출해 난민이 된 상태다.
이 칼럼에서는 내전으로 비참해진 시리아의 모습을 전하다.
2020년 7월 시리아 알레포 주 아타레브 주민들이 폭격으로 파괴된 마을에서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2017년 3월 9일 70세의 아부 오마르가 폭격으로 파괴된 그의 집 침대에 앉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있다. 반군이 장악했던 알레포 주 알 샤르다.
2011년 3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이었다. 이 조그만 불씨가 수니파-시아파 간 종파 갈등, 주변 아랍국가 및 서방 등 국제사회의 개입, 미국과 러시아의 국제 대리전 등으로 비화하며 1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14년 1월 4일 시리아 북동부의 데이르 에조르 시에서 한 남성이 전쟁으로 완전히 파괴된 거리를 지나고 있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시위는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하기 시작해 2013년 8월에는 정부군의 사린가스 공격으로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리아 공군의 수호이 22 전투기가 2017년 6월 30일 다마스쿠스 조바르의 반군 지역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2014년 10월 14일 시리아 이들리브 주의 마레 알 누만의 시리아군 기지로 추정되는 곳에 큰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인데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정권을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을 지원하면서 사태가 국제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12일 터키의 지원을 받는 군인들이 북부 알레포의 마레아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14년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의 합의로 일시적인 휴전을 맞았다.
2020년 4월 25일 미군 전투차량이 시리아의 북부 하사케 주의 미군기지 인근을 운행하고 있다. 양떼가 평화로워 보인다.
2019년 11월 8일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터키 시리아 국경지역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순찰하던 터키 군용차량에 돌을 던지고 있다.
2015년 9월 27일 터키와 에게해를 거쳐 그리스 레브보스 섬에 도착한 시리아 난민 소년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2019년 2월 27일 이슬람국가(IS)측이 장악한 지역을 떠난 시리아 난민이 쿠르드 민병대의 보호를 받고 있다.
생존을 위해 탈출하는 시리아 난민 문제는 세계적인 문제가 됐다. 쏟아지는 난민을 감당하지 못한 주변국들이 국경을 봉쇄했고,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하면서 유럽 난민 사태의 원인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