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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정진석] (61)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출범
“생명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 교회의 시대적 사명 실천 첫발
- 동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생명의 밤’ 행사에서 출연진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정진석(오른쪽 두 번째) 대주교와 염수정(맨 왼쪽 첫 번째)·김운회(맨 오른쪽) 주교. 가톨릭평화신문 DB.
정진석 대주교는 청주교구장 시절부터 줄곧 ‘생명’ 문제를 사목의 중심 주제로 다뤘다. 그는 이제 생명 운동에 역량을 집중해야 함을 느꼈다. 그래서 교구에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고, 전 세계에서 생명 운동 발전에 이바지한 이들을 위한 수상 제도를 마련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이미 이 사회의 생명 가치는 무방비로 훼손이 된 상황이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시작은 이렇듯 거침이 없었다.
2005년 10월 초 생명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정 대주교는 이 자리에서 이미 연구 기반을 확보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가톨릭세포치료사업단을 통해 구체적인 열매를 맺는 데 집중할 것임을 천명했다. 특히 성체 줄기세포 연구와 치료의 메카를 꿈꾸며 설립한 가톨릭세포치료사업단이 앞으로 가톨릭 세포 치료와 연구의 구심 역할을 하도록 하면서 세포 치료와 연구 부문의 국내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구단 육성을 통한 산업화를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이 사업을 진행하는 생명위원회는 정 대주교를 위시해 총대리 염수정 주교가 위원장을,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김운회 주교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위원회에는 주교들을 비롯한 교구청 사제들은 물론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생명 연구 분야 교수들도 포진했다. 야심찬 출발이었다. 정 대주교는 발족식에서 서울대교구가 생명을 파괴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 대신 교회가 대안으로 제시해 온 성체 줄기세포 연구를 촉진하고 생명 문화 확산에 앞장설 것임을 천명했다.
교구는 당장 생명의 신비 기금을 조성하는 한편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성체 줄기세포 치료법 개발과 연구에 100억 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 연구에 큰 업적을 낸 이를 격려하기 위해 ‘생명의 신비상’을 제정하고 해마다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연구 기금 100억 원은 당시 전 세계 가톨릭 교구 차원에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지원한 기금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서울대교구가 가톨릭 생명 운동의 명실상부한 중심축으로 큰 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2005년 12월 4일 낮 1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외교사절과 국회의원 등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생명 미사가 봉헌됐다. 생명 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생명 미사는 서울대교구 전체 본당에서도 같은 시간에 봉헌됐다.
“과학 기술을 잘못 사용할 때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인간을 수단화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야말로 신비입니다. 인간과 세상과 생명의 주인을 인간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며, 생명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 하느님 한 분뿐입니다.”(2005년 12월 제1회 생명 미사 정진석 추기경 강론 중에서)
실제로 위원회 발족 이후 처음 거행된 생명 미사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축복 서한을 보내는가 하면, 전 세계 가톨릭 교회 교구들이 속속 지지 서한을 보내 서울대교구의 생명 운동 행보에 힘을 보탰다. 정 대주교는 생명 운동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교황의 축복과 전 세계 교구들의 지지는 큰 힘이 됐다. 한국 교회뿐 아니라 세계 교회 안에서도 이 정도의 지지와 성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 대주교는 교회의 큰 흐름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달았다. 피할 수 없다는 부담감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성체 줄기세포 연구가 사람들에게 구체적 도움이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가톨릭대와 가톨릭중앙의료원, 서울대교구는 격려와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성당을 몇 개 더 신설하지 못한다더라도 생명위원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신자들과 국민 여러분의 지지와 도움을 청합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발족은 그동안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해 온 교회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거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사목적 결단이기도 했다. 이는 전 세계 가톨릭 교회와 국제 사회의 도덕적 요구에 대한 응답과 연대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이며, 가톨릭 교회의 시대적 사명이기도 했다. 정 대주교는 교회의 생명 운동이 절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추기경 정진석] (62) 선교의 사명감
작은 교회 · 사람 중심 교회로 신자들과 더 가까이
- 복음화2020운동.
정 대주교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기준은 첫째도 선교, 둘째도 셋째도 선교였다. 자신이 하는 일이 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 신념은 사목 생활을 통한 체험의 열매이기도 했다. 정 대주교는 교구장 취임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울대교구의 인구대비 신자 수(복음화율) 20%를 달성하자는 ‘복음화 2020 운동’을 제안했다. ‘복음화 2020’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어떤 이들은 인구의 20%가 천주교 신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 대주교도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며, 어쩌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목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래의 목표를 세움으로써 현재의 삶을 더욱 성실히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서울대교구 일부 본당은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이 20%에 육박했기에 마냥 실현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꿈을 갖고 그 꿈을 향해 노력하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정 대주교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후 2020년까지 신자 비율 20%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매일 드렸다. 정 대주교는 ‘복음화 2020 운동’으로 그동안 지속해 온 소공동체 운동에 매진함으로써 교회 본연의 사명인 복음 선포에 더욱 충실하고자 했다. 그는 ‘복음화 2020 운동’을 통해 외적으로 신자 숫자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충실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정 대주교는 서울대교구장 취임 초기부터 사제들의 보좌신부 기간이 너무 길어지고 정체돼 자칫 젊은 사제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까 고심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방법이 공동사목이었다. 서울대교구는 2005년 11월 10일 사제평의회를 열고 공동사목 정착에 좀더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교구 사제평의회는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사목 본당 확산과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사목 희망 사제를 공동사목 본당에 우선적으로 발령하는 등 공동사목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키로 뜻을 모았다.
‘공동사목’이란 한마디로 하나의 성전에서 여러 명의 사제가 함께 사목함으로써 연대책임을 지는 제도였다. 공동사목 제도는 성당 신축의 부담을 줄이고 여러 명의 사제가 함께 신자들을 돌봄으로써 건물 위주가 아닌, 사제와 평신도 간의 인격적 만남이 이뤄지는 ‘사람 중심 교회’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작됐다.
-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에서 화곡본동·화곡6동·신월1동본당을 1개 성전에서 사목하는 공동사목 출범미사가 정진석 대주교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서울대교구는 2005년 10월 기존 화곡동ㆍ오금동ㆍ장안동본당 등 3개 본당을 모태로 공동사목 본당 8곳을 신설했다. 보통 서울에서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관할 신자 수가 기존 성당에서 수용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면 인근 지역에 성당을 신설해 신자들을 분할하고 사제를 따로 두는 사목을 해왔다. 그러나 성당을 신축할 경우 신축 봉헌금 등이 신자들에게 재정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공동사목제는 성당 신축 없이 공동체의 소규모화가 이뤄져 사제와 신자 간의 만남이 쉬워지고 교회와 지역 간의 유대가 긴밀하게 되어 교회의 공동체성을 최대한 발휘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정 대주교는 공동사목에 이어 교구의 거대한 몸집을 줄이고 신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보좌주교들이 각 지역을 맡아 교구장 대리로 활동하도록 했다. 이미 서울대교구는 2002년부터 ‘교구장 대리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제도는 교구장이 선임한 교구장 대리가 교구장을 보좌해 교구의 특정 부분이나 특정 종류의 업무를 맡는 것이다.
그동안 염수정ㆍ김운회 주교, 김병도 몬시뇰 등이 ‘직능 담당 교구장 대리’로 서울대교구 관할 지역을 3개 지역으로 나눠 맡았다. 이들은 각 직능에서 활동하며 능률적인 선교 활동과 신자들의 신앙생활 활성화를 도왔다. 그런데 이번에 정 대주교가 교구장 대리 주교의 소임을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로 조정함에 따라 염수정ㆍ김운회ㆍ조규만 주교는 각 지역청(地域廳)에서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로 신자들에게 한층 더 다가가 사목하게 됐다.
사람 중심 교회, 신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교회를 표방한 이번 조치를 통해 서울대교구는 하나의 교구로 존재하지만 지역을 3개로 나눠 지역 담당 주교가 각각 책임을 맡게 됐다. 각 지역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중앙의 교구청과 연계해 사목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주교가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를 맡을 때 가장 큰 이점은 신자들이 주교를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비대해진 교구청의 직제를 개편하고 각 지역청에도 관련 부서를 신설하는 등 중앙 교구의 몸집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서울대교구가 3개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에 3명의 보좌 주교를 임명한 것은 교회가 신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처로 교구 사목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일대 사건이었다.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제는 공동사목처럼 작은 교회를 지향했다. 구체적 사목 활동의 현장인 지구와 본당이 사목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미비했다. 이 제도는 지역을 중심으로 지구와 본당 사목에 활기를 불어넣는 활력소가 될 수 있었다. 정 대주교에게 이 모든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실험이었기에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실행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 제도 시행을 계기로 서울대교구에 새로운 복음화의 기운이 살아나기를 바랐다.
[추기경 정진석] (63) 돌쩌귀, 추기경
꿈에도 생각 못한 임무, 기대하지 않은 은총의 십자가
- 2006년 2월 22일 서울대교구청에서 열린 추기경 서임 기자회견에서 정진석 추기경과 김수환 추기경이 두 손을 맞잡고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 탄생을 기뻐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2006년 2월에 들어서며 각 언론에서 새 추기경에 대한 예측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통상 2월 말 추기경 임명이 있었기 때문에 내ㆍ외신을 통해 한국에서도 새 추기경이 임명될 것이란 이야기가 쏟아졌다.
2월 22일 저녁 8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언론사에는 몇 시간 전 엠바고를 전제로 이미 고지가 된 상태여서 오후가 되자 서울대교구 주교관 마당은 언론사 취재 차량과 기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신문은 “정진석 대주교, 한국 두 번째 추기경으로 임명”이라는 머리기사로 장식됐다. 정진석 추기경은 1969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임명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그의 나이 만 74세에 받은 은총이었다.
37년 만의 새 추기경 임명은 한국 교회 경사였다. 그동안 한국 교회 교세 성장에 따른 아시아 선교에서의 주도적인 위치,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발전 등으로 매번 추기경 임명 때마다 두 번째 한국 추기경이 나올 것이란 소문이 떠돌곤 했다. 또 통상 주교직의 은퇴 나이가 75세인 것을 감안하면 만 74세인 정진석 대주교를 추기경에 임명한 것 또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 추기경의 임명을 가장 크게 기뻐한 사람은 선배인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김 추기경은 발표 직후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전했다.
“한국에서 새 추기경이 탄생해서 정말 기쁩니다. 매번 추기경 발표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는데 이제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게 됐습니다. 혹시 내가 아직 살아 있어서 두 번째 추기경 임명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가 해서 자책감과 부담이 있었습니다. 정 추기경이 직무를 잘 수행하도록 기도로 뒷받침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와 한국 천주교회가 주님의 은총 속에서 더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추기경 서임 기자회견에서 추기경으로 임명된 소회를 밝히는 정진석 추기경. 가톨릭평화신문DB.
2월 22일 오후 8시 새 추기경 임명이 공식 발표되자 주교관 마당에 모인 군중은 박수로 환영했다. 이어진 간단한 임명 축하식에는 많은 교회 인사들이 함께하면서 축하 분위기를 이어갔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는 감사 메시지를 준비해 낭독했다.
“한국 교회, 나아가 아시아 교회의 새 시대를 이끌어 나갈 새 추기경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새 추기경의 탄생은 교회 쇄신, 타종교와의 일치와 화합을 통해 평화와 정의와 사랑에 더 정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새 추기경을 위해 마음을 모아 기도와 희생을 봉헌합시다.”
1970년 39세로 최연소 주교품을 받을 때 정 추기경이 정한 사목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었다. 바오로 사도의 서한(1코린 9,22)에서 선택한 성구였다. 정 추기경은 추기경으로서 사목표어로 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라틴어 ‘Omnibus Omnia’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모든 것으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등 여러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말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용한 말이다.
추기경 발표 이튿날 아침, 정 추기경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루를 조용히 맞았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오전 5시에 일어난 정 추기경은 6시 서울대교구청 주교관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서울대교구청 국장 신부들과 아침 식사를 했다. 하지만 집무실에서의 일정은 그동안과 조금 달랐다. 오전에 교회 인사들이 축하 인사차 집무실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정 추기경은 청와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3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노 대통령은 추기경 서임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고, 정 추기경은 정부의 관심에 감사하다고 답했다.
오후에는 기자 간담회가 있었다. 정 추기경은 여기서 자신의 심정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나는 지도자로서 모든 것을 혼자 이끌어 갈 능력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좋은 뜻을 한곳으로 모아주시면 앞으로 좋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자들에게 기도와 협조를 가장 먼저 요청한 정 추기경은 추기경 임명의 의미도 함께 설명했다.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 탄생은 서울대교구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 추기경도 이를 절실하게 느끼며 강한 책임감이 들었기에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추기경에 임명된 것은 저 자신의 개인적 자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위상,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국민 전체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입니다. 추기경의 추가 임명은 한국 교회가 아시아 선교를 위해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교황님의 뜻이라 생각됩니다.”
‘추기경’이라는 말은 ‘돌쩌귀’라는 뜻의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다. 세상과 교회, 한국과 교황을 잇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추기경은 교황 자문에 응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은 자리다. 교황이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드릴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 평화를 지키는 문제에 여러 국가 지도자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교황이 하느님 뜻에 따라 말씀하는 것을 세계 지도자들이 경청하고 그 뜻을 존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힘이 닿는 데까지 협조하는 임무도 각국 추기경의 소임 중 하나다. 정 추기경은 자신이 사제의 삶에서 이제 또 한 걸음 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주님 부르심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위해 기도했다.
분주한 하루였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업무를 정리하고 숙소에 들어서자 함께 생활하는 사제들과 마주쳐 자연스레 추기경 임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사제관 입구에서나 저녁 자리에서 동료 사제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그는 습관처럼 말했다.
“추기경이 될 줄 정말 몰랐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임무, 기대하지 않았던 큰 은총의 십자가가 자신에게 주어졌음을 정 추기경은 비로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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