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 자녀됨의 영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즉,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니코데모는 이 탄생을 육에 한정시켜서 이해합니다. 그렇기에 질문합니다. “이미 태어나서 늙어버린 이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 태어나란 말입니까?”(요한 3,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탄생은 육적인 탄생과 관련된 것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요한 3,5) 우리는 이 물과 성령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여 ‘새로 태어나는 세례’입니다.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서도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부활로 다시 태어나셨습니다. 이 부활은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4)
이미 그분의 성모님으로부터의 탄생도,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때 성령이 그분위에 내려오시어 머무르시며 들린 성부의 말씀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란 것이었습니다. 그 후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받은 유혹의 핵심은 바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었습니다. 즉, 아들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에서 탄생부터, 세례, 부활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업적은 예수님의 아들로서의 삶과 아주 강력한 연관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지만 이 지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셨을 때는 지극히 겸손하게도 성령의 인도아래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부께 순명하는 ‘아들의 삶’을 사셨습니다.
같은 성령께서 이제 우리를 세례를 통해 새로 태어나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 자녀됨은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과 일치함으로서 이루어집니다. 즉 성령께서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외아드님 안으로 우리를 들어가게 하시어 ‘아드님 안’에서 ‘아들’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들의 영’ 혹은 ‘자녀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성령께서 바로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우리 안에서 확신과 열정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주십니다.”(로마 8,16) 우리는 세례로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자녀됨은 예수님의 모범처럼 부활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자녀의 삶, 그것은 성령에 이끌려 성부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삶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끊임없이 성부의 뜻에 일치시키십니다. 유혹자는 반대로 끊임없이 우리의 자녀의 삶을 위협합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네 뜻대로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여라’. 유혹의 본질은 늘 같습니다. 유혹자는 오직 한가지 유혹만을 압니다. 바로 ‘하느님 없이 하느님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성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이 성부의 뜻에 우리의 뜻을 일치시키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마 8,14)라고 말합니다. 내 뜻이 앞설 때 우리는 자녀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청할 때 성령은 우리가 성부의 뜻을 따라 자녀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22) 하느님 백성의 예언자직, 「교회헌장」 제12항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하느님 백성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도 참여합니다. 「교회헌장」 제12항은 하느님 백성의 예언자직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신앙 감각’(sensus fidei)과 ‘은사들’(charismata)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하느님 백성은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를 하느님께 “찬양제물”(히브 13,15)로 바칩니다. 하느님 백성의 예언자직 수행은 그 백성의 무류성을 전제로 합니다.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1요한 2,20)라는 말씀에 따라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백성의 무류성은 ‘신앙 감각’에서 비롯됩니다. 공의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빌려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의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 동의를 보이면 온 백성의 초자연적인 신앙 감각의 중개로 무류성을 보인다고 말합니다. 신앙을 일깨우는 성령의 작용으로 주어지는 신앙 감각은 본성적인 앎이며 신앙에 정통함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이 신앙 감각을 통해서 교도권의 가르침을 들을 때, 그것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1테살 2,13)라는 말씀은 신앙이 어떤 역사적 중개를 통해서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이룬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하느님 말씀을 증언하는 중개를 통해서 하느님 백성은 믿음을 지키고, 그 믿음을 더 깊이 깨달으며, 그 믿음을 생활에 적용합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하느님 백성의 모든 신자에게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은사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은사들을 통해서 신자들은 교회를 쇄신하고 건설하는 데에 유익한 활동이나 직무를 맡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과거의 신학은 은사들을 이례적인 신비 현상으로만 다루고,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주어진 은총의 차원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령께서 주신 이 은사들이 교계의 직무와 함께 공동선의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은사들은 그것이 뛰어난 것이든 단순하고 널리 퍼진 것이든, 교회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혹 특별한 은총을 함부로 청하거나, 그러한 은총에서 사도직 활동의 결실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은사의 식별은 교회 직무자들에게 있으며, 그들은 성령의 불을 끄지 않고 좋은 것을 붙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 백성은 은사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무)도 수행합니다.
[교회의 언어] Prayer(기도)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여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559항)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은 것처럼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께 자녀로서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참 다양합니다.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로서 드리는 자세인 흠숭 혹은 예배(adoration), 하느님께 나에게 필요한 은혜를 청하는 청원(petition),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는 전구(intercession),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감사드림(thanksgiving), 하느님을 하느님으로서 인정하며 하느님을 기리는 찬양(praise). 이렇게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다섯 가지의 기도 형태를 가르칩니다. 그밖에도 화살기도는 “aspiration”, 도움을 청하며 성인이나 천사를 부르는 것을 “invocation”, 호칭기도는 “litany”, 하느님께 드리는 다짐은 “act”입니다.
기도가 무엇인가요?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께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을 “quality time”이라고 합니다. 바쁜 일상 가운데 자주 하느님과 소중한 시간(quality time)을 갖는 한 주간 되시길.
[저는 믿나이다] (36)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
우후죽순 출현한 이단에 신앙고백으로 맞선 교회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아버지, 세상이 생기기 전에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이제 다시 아버지 앞에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5)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 당신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처럼 ‘부활 이전의 예수’와 ‘부활 이후의 그리스도’,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인간 예수’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를 하나의 명제로 일치시켜야 했습니다. 곧 인간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선포해야 했습니다.(요한 11,27 참조)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지, 어떻게 한 인간이 구세주가 될 수 있는지, 하느님께서 어떻게 인간이 되셨는지를 이성적으로 추론하고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경과 교회의 성전 안에서 충만하게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이단들이 출현합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양자설’(養子說)입니다. 비잔티움의 테오도투스와 스미르나의 노에투스, 사모사타의 파울루스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천주성)을 부정하며,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 예수를 양자로 입양하여 성자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권능을 받아 기적을 일으켰고,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께서 이루신 공로에 따라 신적 지위를 들어 올려 주시고 덕행의 상급을 주셨다고 설파했지요.
두 번째는 양자설과 반대로 단일 신성만을 강조한 ‘양태론’(樣態論)입니다. 노에투스·프락세아스·사벨리우스 등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각 위격을 구분하지 않고,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그때그때 성부·성자·성령의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곧 성부와 성자·성령 세 위격의 실제적 구분을 부인하여 아버지 하느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성부 수난설’을 설파했지요. 양태론은 양자설과 함께 이단으로 단죄됐습니다.
양자설과 양태론의 중도 입장을 취한 ‘종속론’(從屬論)도 대두했습니다. 종속론자들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첫 번째 피조물이자 아버지 하느님의 중개자 또는 대리자로, 모든 피조물에 비해 우월한 존재이지만 본성에 있어 하느님과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말씀은 하위 하느님, 두 번째 하느님, 창조하는 하느님과 창조된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이단으로 단죄됩니다.
영지주의자인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마르키온 등은 극단적인 ‘이원론’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상위의 그리스도와 하위의 예수를 구분하여 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은 결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고스와 외아들,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는 서로 다른 자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조차 다른 존재라고까지 합니다. 그는 예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물 안에 있는 선한 하느님으로 표현했습니다. 아울러 발렌티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시몬 마구스와 함께 예수는 인간으로 강생하지 않고 단지 인간처럼 보이게 육신을 빌려왔을 뿐이며, 그가 겪은 십자가 수난의 고통 역시 가상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일련의 그릇된 가르침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신학 자문역을 맡아 「교회 헌장」 「교의 헌장」 「계시 헌장」 완성에 크게 이바지한 알로이스 그릴마이어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주류 교회의 선포자, 목자 그리고 신학자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한편으로 전해진 가르침을 보존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가르침을 영지주의로부터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답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그리스도교 안으로 반입되지 않았고, 오히려 계시 신앙과 구원 신앙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조명되었다.”(「교부들의 그리스도론」 368쪽)
교회는 그 첫 조치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합니다. 신약 성경 ‘요한의 첫째·둘째 서간’과 초기 교부들인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등은 예수를 그리스도이며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144년 마르키온을 파문하지요
“누군가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르게 말한다면 여러분은 귀를 막으십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시고 마리아에게서 참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셨으며 참으로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서 수난 하시고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것들이 보는 앞에서 참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으니 예수님은 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졌습니다.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분을 닮도록 마찬가지로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는 참 생명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7’)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영성체(Communio) ①
미사 때 사제는 영성체 전, 나누어진 성체를 성반 또는 성작 위에 받쳐 들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어린양”이란 표상은 탈출기(12,1-14.21-28)에서 유래하며, 고난받는 주님의 종을 묘사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이사 53,7)을 떠올려 줍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외친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는 구절과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만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죽임을 당한 어린양’(5,8-12)도 떠올려 줍니다. 이때 들어 보이는 쪼개진 성체는 그리스도의 몸이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나뉘어졌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이에 신자들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고쳐주시길 부탁한 백인대장의 청원(루카 7,6-7)에서 따온 기도문입니다. 곧 온전한 의탁과 겸손의 마음으로 참된 구원을 바라는 청원입니다.
사제는 신자들에 앞서 성체와 성혈을 모시면서 조용히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피는 저를 지켜 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
이 기도는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반영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제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배령(拜領)해 줍니다. 사제가 성체를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하면, 신자들은 “아멘”으로 응답하고 성체를 받아 모십니다. 이 짧은 초대와 응답은 4세기 말 성 암브로시오 저서에 나오는 경문에 따른 것인데, 최후의 만찬 때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 마르 14,22; 루카 22,19 ; 1코린 11,24) 하신 말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때, 신자들은 분명한 목소리로 “아멘”이라 응답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희생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성체를 받아 모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또한 같은 성체를 나누어 모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도 일치합니다. 영성체(Communio)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 수직적 차원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수평적 차원에서도 ‘하나 됨’(Communio)을 이루어줍니다. [2025년 7월 20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의정부주보 8면]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영성체 (Communio) ②
미사 때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서 해야 하는 준비가 있습니다. 바로 공복재(또는 공심재)를 지키는 일입니다. 공복재(空腹齋)는 영성체 한 시간 전 어떠한 음식도 먹지 않는 걸 말합니다. 단, 물과 약은 허용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영성체를 위한 준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정한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 몸가짐(행동, 복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님이 되시는 그 순간에 걸맞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을 나타내야 한다”(1387항).
한편, 초대교회부터 미사에 참석한 교우들은 특별한 장애가 없으면 모두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4세기에 들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주의라는 이단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이단에 맞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였고, 그 과정에서 성체와 성혈이 지존하신 하느님의 몸과 피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교우들은 강한 경외심으로 차츰 영성체를 조심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영성체 기피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모든 신자에게 최소 매년 주님 부활 대축일에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DS 812). 현행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영성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사제 자신과 마찬가지로 신자들도 바로 그 미사에서 축성된 성체로 주님의 몸을 … 모시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85항). 따라서 대죄가 아니라 경외심 때문에 영성체를 기피하는 건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영성체는 본인이 참여한 미사에 한하여 최대 하루 두 번까지 할 수 있습니다.
미사 때 교우들은 대부분 성혈 없이 성체만 모시는 단형 영성체를 합니다. 그런데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영성체는 성체와 성혈 양형으로 할 때에 한층 더 완전한 모습을 갖춘다.”(281항)라며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가지 형상만의 영성체로도 그리스도를 참된 성사로, 온전하게, 그리고 모두 다 모시는 것이므로 영성체의 효과와 관련하여 오직 한 가지 형상만으로 영성체를 한 이들도 구원에 필요한 은총을 얻는 데 아무런 결함이 없다”(282항)는 점도 분명히 밝힙니다.
사제와 교우들이 성체를 영하는 동안 공동체는 영성체 노래를 부릅니다. 「미사 경본 총지침」은 영성체 노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제가 성체를 모실 때 영성체 노래를 시작한다. 이 노래는 목소리를 모아 영성체하는 이들의 영적인 일치를 드러내고, 마음의 기쁨을 표시하며, 영성체 행렬의 공동체 특성을 더욱 더 밝혀준다. 이 노래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동안 계속하여 부른다”(86항). “그러나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경우에는 「미사 경본」에 제시된 영성체송을 신자들 모두 또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독서자가 낭송할 수 있다”(87항). 이렇듯 영성체 중에는 영성체 노래를 부르는데, 때로는 영성체송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영성체 노래를 부른다면, 보통 영성체송은 생략합니다. [2025년 7월 27일(다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의정부주보 8면]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영성체 (Communio) ③
미사 중 성체 분배가 끝나면, 사제는 제대로 돌아와 남은 성체를 모아 감실에 모시고 성반과 성작을 정리합니다. 이때, 성반과 성작을 닦으면서 속으로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사제는 주례석에 앉아 교우들과 함께 잠시 감사 침묵 기도를 바칩니다. 이 감사 침묵 기도는 과거 미사 후에 바쳤던 개인 감사 기도를 영성체 직후로 옮긴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침묵 가운데, 영원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받아 모신 은총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미사 중에 침묵을 지키는 순간은 여럿 있지만, 그 위치나 의미로 보아 영성체 후 침묵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침묵을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또한 묵상문을 읽거나 악기 연주를 하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완전한 침묵 중에 각자 주님과 일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때로는 영성체 중에 성가를 부르지 않아 영성체가 끝난 다음 성가를 부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감사 침묵 기도를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 침묵 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주례석이나 제대에서 영성체 후 기도(Postcommunio)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본기도(Collecta), 예물기도(Oratio super oblata)와 함께 주례 기도에 속합니다. 사제는 다른 기도들과 마찬가지로 손을 펴 들고 바칩니다. 기도의 구조는 본기도와 같아 <① 기도권고, ② 침묵, ③ 기도, ④ 아멘>으로 이뤄지는데, 차이점은 끝부분이 짧은 마감 형식이라는 것입니다.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해 공동체는 침묵 중에 개인적으로 드린 감사의 마음을 모으고, 신자들은 거행된 성사의 효과들을 마음에 되새깁니다. 또한 미사의 신비가 실생활 중에 좋은 열매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은총을 간청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성화, 치유, 정화, 천상을 향한 열망 등이, 공동체 차원에서는 은총, 일치, 사랑의 선물 등이 언급됩니다. 오늘 연중 제18주일 미사의 영성체 후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천상 양식으로 새로운 힘을 주시니 언제나 주님의 사랑으로 저희를 보호하시어 저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영성체 후 기도로 영성체 예식, 나아가 성찬 전례가 모두 끝납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한다는 이유로 감사 침묵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 사이에 공지 사항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건 영성체 신비를 묵상하는 흐름에 방해가 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전례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공지 사항 전달은 영성체 후 기도까지 마치고 마침 예식(Ritus Conclusionis)을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