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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일환 목사(장안중앙교회)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최일환목사
사탄의 열가지 전략(4)
신명기5:6~11 마6:1
2014년 7월 13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설교
신5:6~11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마6:1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설교:
우리는 몇 주 전부터 사탄 마귀가 우리 성도와 교회를 무너트릴 때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무너트리는데 사용하는 10가지 전략 무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주에 걸쳐 8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무기는 교만입니다. 두 번째 무기는 절망, 세 번째 무기는 비교의식,
그리고 4번째는 의심, 5번째는 거짓말, 6번째는 미움입니다.
그리고 7번째가 원망불평이고 8번째가 지연작전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이전에는 우리가 이런 것이 사탄의 무기인 것을 알지도 못하고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깨달았으니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알았으니 대응전략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성도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더 살펴보려 합니다.
1. 사탄의 9번째 무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사탄은 원래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쫓겨난 존재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계속 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을 숭배하도록 교묘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의 이런 시도는 오늘 우리에게만 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게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금식 중에 계실 때 마귀가 나타나 세 가지 시험을 겁니다.
그 첫째 시험이 먹을 양식 문제입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시험이 명예시험입니다.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는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너를 받아주어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권력시험입니다. 산꼭대기에 세워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탄의 교묘한 전략을 아시니 말씀으로 대적하여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사탄의 전략이 뭔지도 모르고 펑펑 넘어지고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넘어트리는데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이 바로 이 우상숭배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성도들이 이것이 사탄의 전략인줄도 모르고 넘어갑니다.
제가 지난번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간 그곳은 인도인들이 많이 들어와 정착한 지역이라 힌두 우상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사람 개인 집집마다 제단을 만들어 놓고 섬깁니다. 들어가며 나가며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보세요. 온천지가 우상 천지입니다. 일본도 그렇고 대만, 홍콩같이 아시아에 선진국들도 우상 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태국을 비롯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여러 나라는 불교 우상 천지이고 인도는 힌두우상 천지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타락한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지금도 등록된 역술인이 약 30 만 명이라고 하고 등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50만 명이라니 우리나라도 우상으로 가득한 나라입니다.
사탄은 이처럼 우리 인간의 마음을 교묘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수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은 손으로 만들어 놓은 우상은 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상숭배가 없느냐? 아닙니다. 수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은 아니나 무형의 우상을 수없이 많이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6~7절을 보세요.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 말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우상을 섬기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약속하십니다. 할렐루야!
문제는 이런 우상을 우리 크리스천들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섬기는 무형의 우상이 어떤 것일까요?
1) 돈이 우상입니다.
가장 강력한 우상입니다. 그래서 돈이면 뭐든지 다된다는 생각을 누구나 다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돈은 전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이 악한 것인가요? 돈은 중성입니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 돈을 대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딤전6: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했습니다. 잘 보세요. 돈이 악의 뿌리가 아닙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돈을 탐내고 그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결국 그 돈 때문에 근심 걱정이 많아 자기를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중에 돈을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하나님처럼 전능한 존재로 받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 백성으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실상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 돈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라면 환장을 합니다. 돈이 오라면 어디든지 가고 무엇이든지 합니다. 그래서 돈이 보이는 곳이라면 어떻게 하든지 그 돈을 붙잡아 보려고 생명을 걸고 전력 질주합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잘 안되니 불의한 방법이 동원됩니다.
어떻게 하든 한 번에 일확천금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도박에 빠지기도 하고, 로또복권에 인생역전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마약을 밀수하려고 비닐봉지에 넣어 입에 삼키고 들어온답니다. 그러다가 배속에서 봉지키 터져 죽기도 한답니다.
세상에서는 성공이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돈을 붙잡는 일에 인생을 걸고 평생 죽도록 힘쓰다가 결국 건강을 잃게 되고 그래서 평생 벌어놓은 돈으로 잃은 건강 되찾으려다 다 날리고 후회합니다.
가롯 유다를 보세요.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자기 눈앞에 계시는데도 몰라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는데 그것은 돈에 대한 탐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어찌해야 할까요? 히13:5절을 보세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결국은 다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세상이 다 우리를 떠나고 버릴지라도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습니다. 할렐루야!
2) 명예와 권력이 우상입니다.
이것은 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미치게 합니다.
명예가 있으면 권력이 따르고 권력이 있으면 돈이 따릅니다. 또 돈이 있는 곳에 명예도 권력도 따라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예나 권력도 무서운 우상입니다.
젊어서는 이 우상이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 누구나가 붙잡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을 보세요. 누가 존경받고 있나요?
다 욕을 먹고 떠납니다. 쫓겨나기도 하고 총에 맞아 죽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온 갓 추잡한 별명을 들으며 욕을 먹습니다.
그런데도 그 대권을 잡아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권력도 10년을 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명예를 갖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청문회에 서보면 온갖 추악한 것이 다 들어납니다. 그래서 이것도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이 명예와 권력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스스로 만들려 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마귀가 거짓말합니다. 눅4:5~7절을 보세요.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을 산꼭대기에 세워두고 말합니다.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본래 내게 넘겨준 것이라고 거짓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세가 이스라엘 지도자가 된 것,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 모두 하나님이 세워주신 것입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것도 알고 보면 투표로 세워지지만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하는 자식이 우상입니다.
가장 막강한 우상중에 하나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 우상 앞에서는 꼼짝을 못합니다. 이 우상은 하나님보다 막강한 힘을 가진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별로 안 두려운데 자식이 큰소리치면 벌벌 떱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신앙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아보는 수단으로 자식을 건드려 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아브라함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 약속의 씨로 낳은 아들인데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할아버지는 그 시험에 합격을 합니다. 그래서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시험이 주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고요? 왜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와 상의하지 않았는지 아시지요? 분명 “나 죽이고 데려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승리해야 합니다.
자식은 우상으로 섬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시127:3절에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여 우상이 되면 그 자식도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질투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우상으로 여기는 부모도 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를 속입니다. 이것을 우상으로 여기지 못하고 희생적 사랑으로 미화를 시킵니다.
세계에서 선진국 중에 대학공부와 결혼을 부모가 다 책임지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딸을 시집보낼 때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직장을 찾기도 힘들고 결혼을 해도 행복하게 살지를 못합니다.
새들도 새끼가 날수 있으면 둥지에서 쫓아냅니다. 사자들도 새끼들이 다 컸으면 무리에서 쫓아냅니다. 그런데 사람만이 자식들의 앞날을 끝까지 붙잡고 있습니다. 왜죠? 그 자식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앞길을 가장 크게 가로막는 존재가 부모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4) 건강이 우상입니다.
또 하나, 현대인의 강력한 우상은 건강입니다. 건강만능주의, 건강 최고주의가 한국 사회를 꽉 붙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에 좋다면 환장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지난번 심방을 해보니 몇몇 사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성도들의 기도 제목이 ‘건강’이었습니다. 물론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도 열심히 섬기고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건강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건강을 위하느라 주의 일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연한이 얼마입니까? 시90:10절에 우리의 인생이 몇 살이라 했나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신속히 가는 인생입니다. 오죽하면 날아간다고 했을까요? 그런데도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인데 건강을 위해 발버둥 칩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는 돈을 과감하게 씁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십일조도 못하면서 건강을 위해서는 몸에 좋다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마6:21절에 보면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마음이 있는 곳에 재물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재물 씀씀이를 보면 뭐가 하나님보다 더 큰 우상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만이 복인가요? 몸이 약한 것은 저주인가요? 아닙니다. 약한 자를 들어 쓰시는 분이십니다. 약한 자에게 은혜가 더 큽니다.
그러니 건강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제쳐놓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이 외에도 수많은 무형의 우상이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사탄의 간교한 전략 무기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먼저 사탄의 간계를 파악하고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무기 중에 유일하게 공격용 무기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무장해서 사탄의 간교한 전략을 물리쳐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모르면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에게조차 찾아와 시험을 거는 마귀, 우상을 섬기게 하는 그의 전략은 결국 사탄 마귀를 섬기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삼위 하나님만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성도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세요. 그들이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유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그로 인해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들입니다.
다니엘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그들의 신앙입니다.
이 말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적용하면 /돈을 못 벌지라도, /백수가 될지라도, /명예권세가 없을 지라도, /그리고 자식이 세상에서 볼품없는 존재가 될지라도, /그리고 건강치 못할지라도, 그럼에도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지라도” 신앙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탄의 끈질긴 우상숭배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달콤한 유혹에 빠져 범죄를 했듯이 인간은 유혹에 약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세상의 유혹은 얼마나 집요하며 끊기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사탄의 유혹을 단번에 물리치셨습니다. 생각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단번에 거부를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명백하고도 확실한 태도로 유혹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탄의 정략을 깨뜨리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탄의 10번째 무기는 외식입니다.
사탄이 믿는 자를 향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무기는 ‘외식’입니다. 왜냐하면 외식은 우리가 하늘의 상을 받는 것을 막는 마지막 전술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과 성경 읽는 것, 교회 가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막을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마지막 무기가 바로 ‘외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외식으로 하게합니다. 성경을 외식으로 읽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 출석을 외식으로 하게하고 봉사를 외식으로 하게 합니다. 그래서 속 다르고 겉 다른 신자가 만들어지고 바리새인이 나오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위선자가 되게 만듭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외식주의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강하게 책망한 것은 그들이 일반 사람보다 더 악하거나 잘못되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지도자로 있으면서 외식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의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에 책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6:1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하셨습니다.
어느 때 외식이 심각한 문제가 되느냐? 유대인은 3대 경건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구제할 때 외식하고, 기도할 때 외식합니다. 그리고 금식할 때 외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뒤집으면, 이 세 가지를 잘하면 하늘에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외식이 문제일까요? 외식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사탄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단을 구별하기 어렵고 막기 힘든 것은 외식 때문입니다. 그들의 간판은 항상 정통이고 성경이며 경건입니다. 그런데 속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속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보이기를 더 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복하게 되기보다는 행복하게 보이기를 더 원하고, 선하게 되기보다는 선하게 보이기를 더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유교적 전통문화와 통합니다. 그래서 ‘척’합니다. ‘체’합니다. 잘난 척하고 가진 척하고, 있는 체하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다보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명심할 것은 하나님은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겉만 보기에 속고, 또 속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단하게 봐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도, 속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어리석은 것이 외식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외식전술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서야 합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그분이 영광 받으신 것으로,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구제할 때도 은밀하게, 기도할 때도 은밀하게 금식할 때도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떠봅니다. 대단하다, 위대하다. 훌륭하다... 그러니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속입니다. 여기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펑펑 넘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 받은 성도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있음을 믿습니까? 그러면 그것만 바라 보셔야 합니다. 히11:6절 말씀을 아시지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 주십니다. 그것을 바라보세요. 그것을 믿고 묵묵히 살아가세요.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사탄의 열 가지 전략을 살펴보았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넘어 트리는 강력한 무기가 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깨어있어야 하고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쉬지 않고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간계를 제대로 알고 대적하여 승리하시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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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