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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중 ‘부흥’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고형원’목사님 작사, 작곡으로 발표되어 단 6개월 만에 CCM 판매순위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에서 많이 불려지는 찬양입니다. 고형원목사님은 이 찬양을 통해 사회를 치유하고 시대가 변화되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새로워질 이 사회를 갈망하며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가사중에 이런 내용이 나오죠.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 찬양을 살펴보면 병든 이 땅을 고치는 비결이 외형적인 성장 혹은 물질적 풍요, 사회의 어떤 제도가 아니라 신앙적인 부흥, 내적인 변화에 있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듯이 이 땅의 황무함은 이미 그 도를 넘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경제는 성장했고 과학은 발달했지만 오히려 도덕과 양심, 정의는 피폐하고 몰락했습니다. 인간의 정은 더 메말라지고 개인주의, 황금만능주의, 쾌락주의는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세상은 비도덕적, 비인격적 생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정, 기업, 정치권, 모든 분야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분야에 있어 삭막하고 매몰차지고 몰락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너무나 황폐해서 앞이 갑갑한 느낌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온갖 비리로 인해 무질서한 세상이 되었고 인권이 무시당하기도 하고 참다운 평화가 사라진 듯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회복의 역사를 이룰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앞에서 ‘부흥’이라는 단어의 찬양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흥’이라는 단어의 뜻은 ‘다시 새롭게 일어난다’라는 뜻입니다. 새롭게 흥한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사인 ‘부흥하다’의 영어 단어는 “리바이브”(Revive)입니다. 여기서“리”(Re)는 ‘다시 한번’이라는 의미이고, “바이브”(vive)는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영어적인 의미로 ‘부흥’은 ‘새 생명’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죽이는 이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을 고쳐서, 그 속에 새로운 생명을 주입시키는 것, 즉 ‘사람에게 새 삶, 새 신앙을 넣어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은 사람 숫자가 많이 늘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서 있던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내용이 모두 세상 것으로 채워지고, 세상 것이 기준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부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흥의 원천은 교회입니다. 교회에서부터 부흥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교회에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신앙부흥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에 고백하는 고백입니다. 그동안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준비했던 모든 재료들로 거룩한 성전과 자신의 궁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대 공사를 마친 후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형통해 주셔서 가능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였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항상 이 성전에 있겠다”라니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 말씀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회복과 부흥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교회가 우리의 가정을 책임지며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 나라와 민족이 복받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사명을 깨닫고 이 새해 주신 사명대로 살아가는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가족과 사회, 민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요? 첫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역대하 7장 14절을 찾아서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서는 열왕기서와 더불어 이스라엘 왕정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은 시대의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주시는데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열왕기서는 왕들을 중심으로, 역대서는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을 포함한 역대하서의 초반부는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소원이었던 성전건축을 아들 솔로몬이 완공하고 성전봉헌식을 성대하게 진행합니다. 성전봉헌식이 진행되는 동안 솔로몬은 장시간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의 기도는 당대는 물론 인간 세상의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성전이 어떠해야 하는 지 성전은 어떤 곳인지를 가르쳐주는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솔로몬의 기도가 마치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사르고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감동의 순간을 맞이하고 기쁨으로 환호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불로서 응답하셨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런 과정이 지나간 뒤에 이제 하나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갱신을 선포하십니다. 새롭게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기에서 강조하는 ‘그 땅을 고칠지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에게 임하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갱신하여 새로운 삶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사는 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변화로 인해 복받은 땅, 은혜의 땅, 평안과 번영이 이뤄지는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놀라운 복을 위해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 말씀 앞에 바로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15절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역대하 7장 15절입니다.
“이제 이 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평안과 번영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에 간절히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평화와 번영,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56장 7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의 집, 즉 성전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성전의 가장 근본적인 용도는 기도하는데 사용되는 곳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하는 기도를 눈을 들고 보시고 귀를 기울여 들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적 부흥을 가장 확실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전에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길가면서 수시로 생각하며 기도하고 항상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기도하기에 나는 정말 쉬지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기도생활이 정말 신실한 척 자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집에 들어와서는 집안일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전혀 하나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바로 나가면서 밖에서는 집안일에 대해 걱정하고 배우자를 추켜 세워주며 집안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막 이야기하면서 “나는 참 가정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꾸준히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속의 기도하는 것도 들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어떤 경우는 집에 들어가 잠 잘 생각도 않고 거의 외박을 밥 먹듯이 하며 집에서 밥 한 번 먹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밖에서 삼시 세끼 식사해결하고 다른 이성과 밖에서 시간을 자주 보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사람이 밖에서 말로는 아내와 자녀에 대해 생각하는 말, 걱정을 하는 표정을 짓는다고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을 가정적이라고 봐줄까요? 절대 이런 사람은 가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이 나는 부부관계 문제없다고 자녀와의 관계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부흥을 위해 교회에서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능력으로는 부흥을 경험할 수 없고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하나님을 찾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도, 내가 할 수 없는 부분도,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도록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기도입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도움을 보여주는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가 도움 혹은 돕는 자라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임한 부흥은 바로 이렇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모이기를 힘썼고, 또 모이면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고, 뜨겁게 기도했고,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기도로 성령이 임했고, 기도로 변화가 임했고, 기도로 부흥을 경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모이면 기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해 부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모이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에 모여야 합니다. 부흥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역사를 일으킵니다. 부흥의 불길이 여기에 임하도록 이제 다시 기도하기를 다짐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항상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과 사회, 민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요? 둘째는 스스로 낮추며 겸손의 본을 보여줘야 합니다.
역대상 7장 14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14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라고 강조합니다.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교만이 나타나고 오만함과 자만심이 가득하다면 절대 하나님의 역사를 세상에 보여줄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중 가장 높은 위치에 앉아있는 솔로몬에게 먼저 주신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생각해볼 때 우선 이 말씀은 교만할 수 있고 교만해지기 쉬운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기만 보이는 것입니다. 지독한 자기중심주의, 철저한 이기주의가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위치의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거나 이해하거나 배려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부흥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겸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도 돌아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 하나님의 눈이 향하는 사람을 귀하게 살펴봅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하며 애해하며 배려합니다. 이런 사람이 모인 곳에는 위로가 있고 부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참 하나님의 공동체는 사랑과 배려와 이해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 교회공동체는 더욱 사랑과 배려와 이해를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남을 돌아보고 이웃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낮아져서 나보다 남들을 위해 섬기고 나눠주고 베풀어줘야 합니다. 내가 먼저 대접받을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20세기의 예수라고 불리웠던 알버트 슈바이처박사는 아프리카 대륙의 “랍바네대병원”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하여 나의 모든 것을 바치고도 재정적으로 너무나 부족하여 모금을 위해 시간을 많이 들이면서 병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병원기금모금을 위해 그의 고향에 잠시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 역에는 많은 친척들, 많은 지인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영접하러 나와 있었습니다. 기차가 도착했을 때 맞으러 나온 환영객들은 1등, 2등실에서 나올 줄 알고 그 객차앞 플랫폼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맨 뒷칸 3등 열차에서 걸어서 내려 플랫폼을 걸어왔습니다. 영접객들은 그 쪽으로 달려가 박사에게 “왜 3등칸을 타고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4등칸이 없으니 그렇죠”라며 더 등급이 낮은 자리가 없음을 아쉬워했습니다. 겸손한 자가 존경을 받습니다. 보화는 낮은데 묻혀있고 물은 낮은 골짜기로 흐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높으신 분이 어떻게 겸손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만을 가장 싫어하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결국 겸손한 곳에 진정한 부흥이 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좀 더 서로를 이해하고, 더 넓게 남을 배려함으로 교회를 섬겨 우리의 심령의 부흥의 역사, 교회의 부흥의 역사를 이뤄가시기를 바랍니다. 참된 부흥을 이루는 겸손의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족과 사회, 민족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뭘까요? 셋째는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역대상 7장 14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향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솔로몬왕을 향한 개인적인 축복은 17절에 다시 등장하며 앞에서의 축복과 동일한 복으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7장 17, 1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과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령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법규를 지키면 / 내가 네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버지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하리라”
그 앞 절 역대하 7장 16절에서는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이 모두는 한마디로 악한 길에서 떠나 선한 길, 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보는 것은 전쟁, 싸움, 다툼, 미움, 분쟁, 분파입니다. 그것을 보며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는데 교회는 그런 것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악해도 교회는 선해야 하고, 세상이 아무리 더러워도 교회는 깨끗하고, 거룩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면서 손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며 형통의 역사를 체험한 간증을 담은 책입니다. 면세점사업에서 성공한 성주인터네셔널 사장 김성주씨의 간증이 적혀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유학과 해외 현장의 다양한 유통 실무를 경험한 뒤 사업을 막 시작할 때였다. 한 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한국에서 성공하는 법 세 가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첫째, 술을 잘 마셔야 하고, 둘째, 거짓말을 잘 해야 하며, 셋째, 흰 봉투를 잘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를 다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크리스천이라는 내가 회사 매출을 조금 더 올리겠다고 부패 관행과 타협해야 하는가? 비록 나는 여자지만, 비록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분명히 정직한 손으로도 사업을 일으키는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뇌물을 바치지 않으니 멀쩡하게 면세점에서 잘 팔리던 브랜드가 퇴출당하지 않나, 나를 세 시간이나 서 있게 하고는 3분도 채 만나 주지 않고 쫓아내는 바이어가 있질 않나, 백화점에 있던 물건이 몇 백만 원 어치씩 사라지질 않나, 세관원들조차 물건이 안 왔다고 거짓 보고를 하는 등 내가 경험한 ‘부패의 역사’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내가 졌을까? 절대 아니다. 면세점 사업은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99.9%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1997년, 전체 한국 면세점의 5분의 1을 대행하며 당당히 한국 최고의 면세점 에이전트가 되었다. 정말 기적이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정직을 붙들어 하나님의 복을 체험하라.』
교회는 편법과 불법이 난무한 세상가운데 완전한 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부정과 비리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이야기할지라도 교회는 정직과 성실과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 사람들이 세상으로 떠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할까요? 바로 교회가 악한 길에 함께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악한 길과 세상 풍조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바로 그런 교회에 가고 싶고, 교회가 부흥하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올해 어떤 죄의 자리에도 함께 하지 말고 악의를 품는 일에서, 악의로 인한 악한 말과 행동이 나타나는 곳에서 멀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의인은 악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선한 마음을 품고 선한 말과 행동을 하며 선한 역사를 이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서 성도로 부름받고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에 속해 우리의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 저와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좋은 소문이 난 교회가 되어야 하고 저와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가고 싶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2024년에도 비록 시골교회, 아직 미자립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개척교회이지만 올 해 이런 부흥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로 무엇보다 영적으로 부흥하며 외형적으로도 성장하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첫 주 감사의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이 한 해, 아직 우리의 모임은 적은 숫자이고 뭔가 보여줄 만한 것은 아직도 미약하지만 이 한 해 작년보다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작년 보다는 올해가,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합니다. 무엇보다 육적인 성장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회, 우리의 삶의 터전이 회복되어지고 부흥되어지고 거룩하여지고 하나님의 복된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런 영적인 꿈을 꿀 때 꿈을 이루기 위해 모이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스스로 낮추고, 남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교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다님으로써 그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이제 모두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한 해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꿈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