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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
No.341039
robin185 (2007-09-26 06:08:30)
검은베레
' 안되면 되게 하라! '
【‘안 되면 되게 하라’의 특전사】
‘안되면 되게 하라’. 이처럼 모순적이면서 특전사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은 ‘억지’인 동시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육군 특전사는 1·3·5·7·9로 나가는 홀수 번호의 여단을 갖고 있다. 이는 미 육군의 특수군사령부(Special Forces Command, 이하 특수군사)가 1·3·5·7·10의 다섯 개 특수단(Special Forces Group)으로 구성돼 있는 것과 유사하다. 미 육군 특수군사색는 그린 베레를 쓰지만 한국 특전사는 검은색 베레를 쓴다.
특전사 요원들은 두 개의 마크를 달고 있다. 왼쪽 어깨에는 낙하산과 독수리가 그려진 원형의 특전사 마크를 달고, 상의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는 여단 마크를 붙인다. 사자는 특전사 사령부, 독수리는 1여단, 호랑이는 3여단, 흑룡은 5여단(5공수는 현재 특수임무단으로 불린다) 마크다.
미 육군 특수단의 기본 단위는 12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미 특수단은 A·B·C의 세 개 팀으로 구성돼 있는데 B와 C팀은 부대 지휘와 관련된 특수 팀인지라, 팀이라고 할 때는 대개 A팀을 지칭한다. 미 특수단의 팀은 대위가 팀장, 준위가 부팀장을 맡고, 작전·무기·공병·의무·통신 분야별로 두 명씩 모두 12명으로 편성한다. 반면 한국 특전사의 팀은 대위가 팀장, 중위나 소위가 부팀장을, 상사가 선임하사를 맡아 13명으로 구성되는 차이점이있다.
평시의 특전사는, 육·해공군과 함께 ‘각군(各軍)’으로 대접받는 해병대와 는 달리 육군소속 한 부대다. 그러나 데프콘2 이상의 전시엔 육·해·공군 및 해병대와 같은 반열에 올라선다. 유사시 한미연합사는 예하에 지상군구성군사령부·해군구성군사령부·공군구성군사령부·해병대사령부와 함께 특수전사령부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구성군사령부 중에서 한국군 장성이 최고 지휘관을 맡는 것은 지상군구성군사령부(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맡는 한국 육군대장)와 특수전사령부(한국 육군의 특수전사령관인 육군 중장) 두 개이다. 한미연합특수전사령부는 한국 육군의 특전사와 미국 육군의 특수단 그리고 UDT로 알려진 한미 해군의 특수전 부대를 지휘하게 된다.
특전사가 육군은 물론이고 해병대와도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부사관 중심으로 편제돼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특전사에도 사병과 장교가 있지만 이들은 특전사의 주인이 아니다. 사병은 행정이나 부대 경계 같은 지원 업무를 하기 위해 의무병으로 입대한 장정 중에서 ‘차출’되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다.
지휘를 담당하는 장교는 작전에 들어간다. 특히 팀장과 부팀장을 맡은 위관 장교들은 부사관으로 구성된 특전요원을 끌고 최선봉으로 위험지역에 투입된다. 그러나 장교들은 보병사단으로 순환 보직되므로 영원한 특전인이 될 수 없다. 특전부사관은 1년에 4∼5차례 모집하는데 평균 경쟁률은 10대 1 안팎이다. 해병대는 안경을 쓴 사람도 자원할 수 있지만 특전사는 안경은 물론이고 렌즈를 낀 사람도 지원할 수가 없다. 신체 등급은 당연히 1급이어야 하고 무술 고단자에 수영 거리는 500m 이상이어야 한다. 또 운전면허가 있어야 한다. 물론 고등학교 학적부가 깨끗해야만 선발될 가능성이 높다.
특전단과 같은 뜻으로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가 ‘공수단’이다. 공수는 항공기를 타고 가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것을 뜻하는 Airborne에서 나왔다. 미 육군 특수군사는 SFC라는 부대 명칭 뒤에 ‘(Airborne)’을 붙여 공중강하가 가장 중요한 임무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 특전사 역시 공수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해, 1여단을 ‘1공수’, 3여단을 ‘3공수’식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점(點)에서 점(點)으로 기동
상륙전을 감행한 해병대는 교두보라고 하는 ‘면(面)’을 차지해 이를 확대하는 작전에 들어간다. 면이 있다는 것은 전차와 장갑차·자주포·헬기 등 중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고, 중장비는 면을 확대해 들어가는 ‘결전(決戰)’의 주력 세력이 된다. 그러나 특전사는 낙하산으로 강하하기 때문에 소총과 기관총급 소화기만 갖고 간다.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이고 차량도 가져갈 수 없다.
따라서 특전사의 팀은 면이 아닌 ‘점(點)’으로 움직인다. 적지 한가운데에 몸을 숨기고 은밀히 기동하며 핵심세력을 파괴해 나가기 때문에 이들은 ‘안 되면 되게 하라’를 모토로 한다. 이러한 모토를 성공시킨 케이스로 거론되는 것이 이라크전쟁이다.
이라크전에서 미 특수군사 요원들은 전쟁 발발 훨씬 전에 낙하와 도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라크에 침투했다. 정찰을 통해 이라크군 밀집 지역과 전략 요충지를 확인한 이들은 이를 본부에 보고하고 이로써 3월19일 다국적군은 이라크군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리는 ‘충격전’을 펼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쟁 위협이 높아지면 한국 특전사 여단들은 사전 계획에 따라 맡은 지역으로 날아가 팀 단위로 흩어져 작전에 들어간다.
혹한 속에서 웃옷을 벗고 단검술을 익히는 특전사 장병들. 이들은 적지에서 ‘점’으로 움직이며 작전한다.
식량과 탄약은 공중 보급을 기대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나물도 캐먹고 짐승도 잡아먹으며 버텨야 하는 것이다. 자연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야생동물 보호단체는 특전사 요원들이 훈련을 나갈 때마다 이들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특전사는 농장에서 닭과 토끼를 사와 풀어놓고 잡아먹음으로써 보급이 끊어진 야지(野地) 생존술을 익히고 있다.
특전사 요원들은 명령이 있을 때 퇴출을 실시하는데, 개중에는 퇴출 도중에 실행할 임무를 부여받기도 한다. ‘점’으로 이동하며 새로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이들은 악조건하에서 행군을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특전사는 천리행군 훈련을 반복한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무장간첩사건은 특전사가 실전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경우다. 무장간첩이 산악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육군은 보병 사단으로 산악을 포위하고 특전사 팀을 헬기에 태워, 간첩들이 은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투하한다. 특전사 대원은 비트를 파는 훈련을 받았기에 점(點)에 불과한 무장 간첩의 비트를 쉽게 찾아낸다. 간첩은 대부분 이러한 수색작전에서 소탕된다.
일각에서는 특수전 부대인 특전사가 이라크에 민사작전부대로 파병되는 데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이에 대한 답은 미국 육군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한국 육군의 특수작전사령부에 해당하는 미군 부대는 미 육군의 특수작전사령부(Special Operations Command)이다. 이 특수작전사령부 산하에 특수군사령부(Special Forces Command)와 민사심리전사령부가 있다.
한국 특전사는 미군에 빗대 설명하면 특수군사령부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부대이다. 그러나 미국의 특전사는 ‘게릴라전’을 펼치는 특수군사령부와 함께 민사작전을 펼치는 민사심리전사령부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한국 특전사 역시 적은 횟수이긴 하지만 민사심리전 훈련을 거듭해 왔다. 한국군 최고 사령부인 합참에는 ‘민사심리전참모부’가 있으나 민사작전을 시행할 수 있는부대는 현재로서는 특전사가 유일하다.
지난 4년간 한국군은 동티모르에 상록수부대를 파병했는데, 이 부대의 근간이 특전사였다. 특전사는 특전대대 하나를 상록수부대로 선발해 6개월씩 파병했다. 그러니까 특전사에서는 이미 여덟 개 대대가 민사작전의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파병과 민사작전 경험 축적
이라크에는 네 개의 특전대대가 파병돼 6개월씩 머물며 민사작전을 수행한다. 한국군이 3년간 이라크에 주둔한다면 24개 특전대대가 파병과 민사작전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다.
이라크는 동티모르에 비해 훨씬 더 위험하다. 과연 특전사는 이라크에서 민사작전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지난 해 5월 서희·제마부대가 파병되었을 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특전사 팀이 함께 파병됐다.
공병대인 서희부대가 공사를 할 때 가장 골칫거리는 이라크의 어린이였다. 전쟁에서 대부분의 학교가 파괴돼 갈 데가 없어진 아이들은 군부대가 공사를 벌이면 우르르 밀려나왔다. 어리다고 이들을 깔보았다간 큰일을 당한다.
실제로 민사작전에 나갔던 한 미군은 이라크 어린이가 건네주는 것을 무심코 받았는데, 받고 보니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었다. “어-” 하는 사이 수류탄이 폭발해 이 병사가 폭사했고 곁에 있던 병사도 다쳤다. 이후 미군은 곤봉을 들고 나와 어린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몰려나온 이라크인들을 밀어냈다. 이것이 후세인 축출을 환영하던 이라크인으로 하여금 미군에 대해 적대감을 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똑같은 상황을 서희부대도 겪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몰려들고 이어 이라크인 남자들이 다가오면 공사장 경계임무를 맡은 특전사 요원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라크인을 공사현장에서 멀리 떨어뜨릴 것인가.
특전사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 임무에 투입되지 않은 요원으로 하여금 가까운 곳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게 한 것. 특전사 요원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발차기를 하자 아이들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며 졸지에 노상 태권도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니 할일 없는 이라크 남정네들은 공사장을 기웃거리기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아이들마냥 특전사 요원을 둘러싸고 발차기를 할 수도 없으니 멀찍이 떨어져 나갔다.
이 경험이 민사작전을 위해 추가로 파병되는 부대에 적용되었다. 특전사는 민사작전을 펼칠 특전대대와는 별도로 태권도 교관팀을 구성키로 한 것이다. 아울러 이라크인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을 고려해 축구공과 축구화 등을 다량으로 가져가 뿌릴 준비를 하고 있다.
특수전은 군사작전은 물론이고 심리전 요소까지 동원해 안 되는 일을 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특전사는 민사심리전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 창설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특전사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특전사가 아니다. 특전여단에는 ○개 특전대대 외에 여단 직속의 정찰대대가 있는데, 정찰대대는 특전대대보다 한 수로 위 평가받고 있다. 특전사 사령부는 707 특수임무대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 부대는 정찰대대가 넘볼 수 없는 영역에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707 특수임무대원들은 장난을 치는 것이 ‘붕붕’ 날아다닌다고 할 정도로 빠르고 강한 사내들 일색이다.
부사관으로 구성된 특전사 요원들은 총검술을 익히지 않는 유일한 군인이다. 이들에게는 분열이나 행군 같은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집요함이 중요하다. 특전사는 왜 강한가란 질문에 대해 특전사의 고참 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일반 사단에서는 계급이 왕초라고 합디다. 장교는 실력이 모자라도 장교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특전사에선 실력이 왕초입니다. 장교일지라도 실력이 달리면 부사관한테 배워야 합니다. 위관 장교들이 중·상사와 태권도대련을 벌였다가 나가 떨어져 기절을 해도 문제가 안 되는 곳이 특전사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서운 경쟁, 이것이 최강의 특전사를 만들었습니다.”
부대마크
천리행군
흔히 특전사 천리행군을 우리는 그냥 천리행군으로 칭한다.
그러나 본디 천리행군의 원어는 천리침투이다.
천리침투는 그 시초를 더듬어 보면 여러가지 설이 많은데
첫째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 부대 소속 게릴라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의암살 임무를 띠고 남파되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일명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견이었고,
두번째는 한반도 전시작전계획 5027의 계획에 따라 적후방에 침투되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특전부대 요원들의 철수계획으로 실시되었다는 두가지 설이다.
특전사 천리침투는 특전사의 대대급 훈련인 전술종합훈련의 마지막 단계이다.
전술종합훈련은 작계5027을 수행하기 위한 종합전술훈련이다.
훈련 단계및 내용은 군사보안상 자세히 설명할수 없고 대략적인 내용만 기술할까 한다.
전술종합훈련은 전시를 가상하여 작계5027에 명시된 제반사항을 세부적인 절차에 따라 그대로 시행한다.
싸우는대로 훈련하고 훈련한대로 싸운다는 교육기조를 실행하는 것이다.
공중및 해상침투, 팀단위작전, 지역대작전, 대대단위작전, 간접작전등 평소 특전사에서 수행하는 교육훈련의 전과정이 포함되어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약 4주간의 종합훈련이 실시되면 적후방에서의 작전성공을 가상으로 아군지역까지의 퇴출을 실시한다.
거리는 물론 400키로를 설정하여놓고 통상은 300키로까지는 적지역으로 간주하고 나머지 100키로는 아군지역으로 간주하여 천리침투를 실시한다.
최초 천리침투는 팀단위로 실시한다.
팀단위 천리침투를 약이틀정도 실시하여 지역대 단위 연결작전을 수행하며, 지역대 단위 천리침투를 2일정도 실시한후 대대단위 연결작전을 실시하고, 이어서 대대단위 천리침투를 실시한다.
연결작전이란 두개이상의 부대가 적지역에서 긴밀하게 조우하여 합류하는작전을 말한다.
본인이 특전사 근무당시만 하더라도 천리침투를 3박 4일의 단기간에 실시하다가 86년 부터 5박 6일간으로 기간을 연장하였고 90년도 이후부터 현재는 9일간으로 기간이 연장된것으로 알고있다.
한마디로 이제 천리행군의 본래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다 할수 있다.
천리침투를 4일만에 도달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장난이 아니었다.
매일 100키로의 험준한 산악, 야지, 도로를 종횡무진 누비다 보면 4일이라는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렇게도 지옥스러웠던지 한마디로 도로위를 달리는 자동차에 몸을 던져 자살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사람죽이는 무식한 짓이었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요원이라는 자부신과 특전사의 명예하나만을 위해서 죽기살기로 이를 악물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특전사 생활 13년동안 천리행군 10회의 지난 군생활을 회고해보면 피눈물나도록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천리행군은 지난 1984년 지리산 천리행군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84년 특전사 천리행군이 강화된것은 1983년 5월 북한군 제13사단 민경 수색대대 참모장(대위)으로 근무하다 동부전선을 넘어 귀순한 신중철 상위의 귀순 진술에서 밝힌 북한의 특수부대 특수8군단 요원들의 천리걷기운동, 발바닥 굳히기운동이 계기가 되었다.
귀순한 신중철의 진술에 따라 특전사에서는 북한군의 전술적 침투능력에 대한 검증과 특전사 천리침투능력 향상이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잡기위해 84년 전술종합훈련을 실시하는 특전사 **개 대대에 대하여 400키로를 4일만에 주파하라는 특전사령관의 특명을 수행하게 된것이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대대는 경남 거창 지리산 지구에서 전술종합훈련을 수행중이었다.
그당시 특전 사령관은 최웅 장군(육사12기)이었고 7공수여단장은 김태섭 장군(육사17기) 이었으며, 32대대장은 박근성 중령(육사28기)이었다.
한마디로 실험대상이된 우리대대는 재수가 억수로 없었던 것이다.
6일만에 걸어도 힘든 천리행군을 4일만에 주파하라니 사람잡겠네, 이제죽었다 이구동성 불평불만이 늘어졌다.
천리침투가 시작되는 당일 특전사령관의 현지순시와 격려가 있었고, 지리산 현지에서 최웅 특전사령관은 대대가 4일만에 천리침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1주일간의 전무후무한 특전사 1개대대 포상휴가를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힘든 군생활에서 1주일의 포상휴가는 그무엇과도 바꿀수 없을만큼의 큰 상이었다.
대대원은 목숨을 걸고 성곡할것을 다짐했고 결의대회가 즉석에서 이루어졌으며 대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특전사령부 교육과에서 각지역대별로 평가반이 편성되어 현지에 내려왔다.
개인의 신장, 체중, 건강상태등을 점검하고, 개인의 군장무게, 개인장비품목, 팀장비품목등 전시작전을 수행할수 있는 군장검사를 실시했다.
개인의 군장은 전시임무를 수행하는 작계5027에 명시된 모든 장비를 휴대하였다.
그러니 개인군장의 무게는 35키로가 넘었다.
행군거리는 지리산에서 부대가 위치한 전라북도 익산까지였고 직선거리로 400키로가 되지 않아서 행군코스를 남부지역으로 우회하여 400키로가 그어졌다.
행군코스는 거창=>산청=>진주=>하동=>구례=>곡성=>순창=>임실=>전주=>삼례=>익산 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400키로였다.
매일 100키로의 행군이 이어졌으니 잠잘시간 밥먹을 시간이 없었고 밥은 대충 생쌀을 먹기도하고,
건빵과 전투식량이 주를 이루었다.
반찬은 오로지 통조림이었다.
거기다 관절, 발바닥, 골반, 허리통증이 심해 진통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않될정도였으니 사람 잡을 일이었다.
대대원 300여명중 평균 체중7키로 감소, 혈뇨10%, 진통제 복용30%이상등 참으로 비참할정도로 강행군이 실시되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어 처음에 한알이면 되던 진통제도 정량을 초과하기 시작햇다.
한알, 두알, 세알,네알...한번에 열알까지도 복용한 대대원이 있었고, 최고체중감소는 11키로가 기록이었으며, 최단시간 주파 시간은 3일 22시간이었고 최장 주파기록은 4일1시간 이었다.
4개 지역대가 4일간 400키로를 목표로 행군을 실시하였으나 3개 지역대만 성공하고 나머지 1개 지역대는 독도법을 잘못하여 길을 잃어 헤메는 바람에 4일에서 1시간을 초과하여 부대에 도착하였다.
여단장이하 전부대원과 군인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대정문을 들어서는 대대원들의 상태는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초췌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대대원 300여명중 단한명도 환자로 낙오를 한 대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특전사 천리행군이 잔인할정도로 4일만에 시험 대상에 올랏던 84년 천리행군은 내생에 영원히 잊혀지지않을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4일만에 주파한 3개 지역대는 특전사령관의 약속대로 1주일간의 포상휴가가 주어졌고, 주파하지 못한 1개 지역대는 3일동안 전술종합훈련 기간동안 비워두었던 주둔지 환경정리 작업을 실시한다음 4일간의 포상휴가를 실시하였다.
그해 8월 중순에 시작한 전술종합훈련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9월 말이 되어서야 부대원들이 여유를 갖고 마음을 털어놓으며 천리행군을 추억으로 이야기 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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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날생각나네요 ㅠㅠ 전11여단 황금박쥐(눌린쥐포)
검은 베레가 베레모 인가요 ?
세계 최강 검은베레!!!
그러나 , 이런 특수부대가 북한군엔 십이만명이 호시탐탐 수령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다니!!!!우리의 열배는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