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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다 단단한 것
“스크린 안 들어갈 겁니까?”
배장로가 결연하게 한말은 모두가 겁먹었던 말이
아니었다.조마조마 두려워했던 저주의 말이나 자존심 팍팍 꺾어 놓는 그런 말이 아니었다. 스크린 안 들어갈 거냐는 배장로의 말에 김이 빠지긴
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여자 짝이 안 맞다는 배장로의 말에 각양각색 오해했던 자신들을 추궁하거나 저주하리라 생각했는데, 스크린 안
들어 갈 거냐는 말은, 간 안 맞은 음식에 소금 뿌린 격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간은 실망해도 한숨, 좋아도 한숨, 미워도
한숨, 슬퍼도 한숨. 걱정거리가 풀려 안심해도 어휴 한숨이다. 한숨 안 쉬는 날 없는 것이 삶이다. 한숨 안 쉬는 것은 귀신뿐이다.
최사장이 안도의 한숨 쉬자 배장로를 뺀 모두
한숨을 토했다.
“흐미.”
“난 또.”
“휴. 뭐에요?”
배장로가 알듯 모를 듯한 웃음기를 얼굴에 띄고 또
능청스럽게 말했다.
“골프 하러 왔으면 골프해야지 입구에서 이러고
있으면 되나요? 우리가 무슨 삼류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최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미. 기도라고했어라? 삼류극장 들어갈 때
예수쟁이들은 기도하는 거이라? 흐미 웃긴다야.”
배장로가 말한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니다.
배장로가 말하는 삼류기도란 기도의 본질을 까먹은 기도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 기도는 나를 위함이 아니고 타인의 안위를 위한 축원이다. 나를
위하지 않는 인애정신으로 하는 기도를 일류기도, 그다음 나를 위한 기도가 이류기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기도를 삼류기도라고 믿는 배장로다.
어쨌거나.
삼류극장 들먹인 김에 되짚어보니.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아주 오랜 예전엔 공짜손님 차단하기 위해 극장입구에 조직폭력배 세웠는데 그 무리를 기도라고 했다. 기도들의 세력은 지금의 조폭과 수준이
달랐다. 차원이 다른 무리들이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주먹들도 우리나라 최고
오래된 종로3가 단성사 기도출신들이다. 그 당시엔 주먹들의 수입원이 시장과 카바레 그리고 술집이 주류였지만 극장을 아지트로 조직된 주먹들은 같은
주먹들 속에서도 의리파에 속했다. 그 주먹들 중 극장기도는 우정과 의리를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애국심과 의협과 인정의
사나이들이었다. 지금 조폭처럼 무자비하거나 마약과 금융 또는 청부살인 같은 불법엔 전혀 손대지 않았다.
기도의 역사를 들춰보면 1930년대엔 이런 무리를
협객이라 했고, 강산이 바뀌면서 협객은 주먹. 1940년대부터 주먹은 똘만이. 1950년대엔 똘만이를 모리배. 1960년대 들어 모리배는 깡패.
1970년대 들어 깡패는 폭력배. 1980년대에 와서 폭력배가 기업화되면서 비로소 조폭이 됐다. 이런 역사를 모르는 세대는 최사장
이후세대들이다.
최사장은 배장로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극장기도 몰래 3류극장에 들어간 기쁨 때문에 기도한다고 지례 짐작했던 것이다.
제비가 최사장의 잘못을
지적했다.
“최사장이 지금 30대야?”
“또 몬 시비할라카요?”
“기도도 몰라?”
“흐미, 삼류극장에서는 기도해야
한다안카요?”
“삼류극장에서 웬 기도?”
이번엔 최사장의 말뜻을 이해 못한 제비가
반문했다.
“흐미. 제비사장이야 말로 시대감각이 빠꾸했어야.
삼류극장들어가는거이 돈 주고 들어갑디야? 다 들치기로 들어가재.”
들치기란 사춘기 이전의 극장출입
기술이다.
사람의 머리통이 들어가기만 하면 언제 어떤
지형이나 모형에도 몸이 통과하기 때문에 삼류극장의 화장실창문을 열거나 천막을 들추고 머리부터 들이미는 것을 말하는데 들치기 중, 가장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것이 여자들 장치마 속에 머리 처박고 슬금슬금 네발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입장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야후! 절로 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최사장은 그 기쁨을 기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극장에 공짜로 들어 갔응께 얼마나 기뿌겠소?
그래서 기도하는거이 이치상 안맞소? 안그라요?”
최사장은 제비에게 그렇게 말한 후, 인증샷
받으려는 투로 배장로를 빤히 쳐다봤다.
빤히 쳐다보는 최사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배장로는 난감했다. 기도를 무슨
케이.팝K.POP처럼 생각하는 배장로를 어찌 대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올인 투어회원 승인을 받으려면 최사장의 한 표도
절대 필요한데 자존심 구기게 면박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동조해 줄 수도 없어 난감했다.
그때 배장로의 난감함을 제비가 뻥 뚫어주었다.
배장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최사장을 찍어
말했다.
“최사장이 한자는 많이
알지요?”
“한자야 충무로에서 나만큼 아는 사람
있을까이?”
“그래요? 돌로 만든 사람을
뭐라그러요?”
“석상이지라.”
“석상의 머리를 뭐라그러요?”
“석두지라!”
“머리 좋네? 그럼 석두보다 단단하건
뭔데?”
“철두 아니어유?”
제비가 한자 많이 안다고 최사장을 추켜세우자
진회장이 끼어들었다. 자신도 한자에 자신 있다는 투였다.
“진회장도 한자 많이 아네?”
“기본이지유.”
“그래요? 그럼 철두를 순우리말로
뭐라그러요?”
순우리말이 금방 생각나지 않는 두 사람이 더듬더듬
우물쭈물 거릴 때 제비가 딱 부러지게 말했다.
“쇠대가리라 그러는 거요. 최사장같은 머리통보고
그러는 거요.”
최사장이 제비의 말에 반응하기 전에 제비는
쁘리쌰의 손을 잡아끌고 방금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총알처럼 뛰어 들어갔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최사장의 목소리가
찌렁찌렁 들려왔다.
“머이라해쌌소? 본인 더러
쇠대가리라고라?”
.
첫댓글 삼류극장 기도 말인데 최사장은 장로가 기도한다는걸로 오해하였군요..
ㅎ
우리나라 말 똑 같은 발음 많죠?
좋은 오후시간되세요
회원간의 생각차이가 그렇게도 다를수가 있네요...
잘보았슴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시는 님의 시선이 맞습니다
각자 보는 시선이 생각이 다르니까 함께 어울려 함께 살아 가는 겁니다
좋은 오후시간되세요
소설에서 기도 이야기가. 옛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골에는 가설극장이라고 있었을때
기도가 센찬하면 우하고 몇명이 조를 짜서 밀고 들어가던때 ㅎㅎ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것 같슴니다.
기억하시군요.
가설극장은 말 그대로 조무래기 상대고 극장담치기 했던 시절도 기억하시죠?
기도 정신 빼 놓고 우루루 들어가던 시절 저도 그립습니다
그때 기도한테 걸려도 꿀밤 한대면 됐는데.....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