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공부를 하는 사람은 경숙이까지 4명, 그들은 두 구룹으로 나누어 한 구룹은 월요일, 수요일과 금요일 다른 한 구룹은 화요일과 목요일과 토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3일간 한 사람씩 정해진 시간에 나와 30분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나머지 30분은 지도를 받은 것을 연습한다.
두 구룹은 일주일 단위로 수강 받는 요일을 바꾼다. 즉 토요일에 끝난 구룹은 다음 주에는 월요일에 시작하여 금요일에 끝나게 하여 토요일을 격주로 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서로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경숙은 자기보다 네다섯 살 위로 보이는 어떤 남학생과 같은 조가 되어 한 날에 그림 공부를 하지만 그 남자는 18;;00-19;00시 사이에 경숙은 19;00-20;00시 사이에 그림 공부를 하게 되어있어 어쩌다 얼굴을 마주치면 같은 화방에 다니는 학생이구나 하고 서로 간단히 묵례 정도만 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선생님을 찾아오는 사십 대 중반의 여자가 그 남학생과 만나면 인사도 하고 선생님과 주고받는 이야기로 보아 선생님의 제자 같은 데 화가 선생님은 경숙을 그들에게 인사를 시켜주지 않는다.
경숙이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어도 가벼운 묵례만 하고 휭하니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 쑥스러워 경숙도 묵례 정도만 하고 지냈다.
그들의 행동에 경숙은 민망하면서도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자기들이 먼저 화방엘 다니기 시작했다고 텃세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풋내기라고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인지 그리고 선생님은 어째서 같은 학생인데 알고 지낼 수 있도록 인사를 시키지 않는 것인지 그리곤 자기가 먼저 그들에게 인사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기회조차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화방에서는 그림 공부를 하는 것 외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 것은 좋은데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했다.
그렇게 3개월쯤이 지나 봄이 되었다.
어느 날 화방에서 그림 공부를 마치고 나오려는 경숙을 화가 선생님이 불러 세웠다.
“모래 일요일 우리 화방에 다니는 모든 학생이 함께 야외로 나가 사생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 자네도 점심과 화구를 갖추어 가지고 아침 10시까지 화방으로 나오도록 해.”
“꼭 가야해요?”
“그럼! 꼭 가야지. 왜? 가기 싫은가?”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그냥 여쭈어봤어요.”
“사람 싱겁기는.”
“그런데 어디로 가기로 했는데요?”
“광주 근교에 산사로 갈 거야.”
“산사 어디요?”
“가보면 알 텐데 무엇이 그렇게 궁금해?”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안 돼. 일요일 날 가보면 알거 아니야. 성급하기는.”
선생님의 음성이 다소 높아졌다.
자기의 너무 많은 질문에 선생님이 화가 나신 것 같아 더 물어보기도 어려워 화방을 나오며 경숙은 처음 들어 올 때도 그러더니 조금은 괴팍한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외에 사생을 하러 간다며 데리고 갈 제자에게 목적지도 안 알려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서로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무슨 사생대회인가 분위기가 서먹할 텐데 하는 생각에 처음에는 가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화방에 다니고 처음 하는 행사에 빠진다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경숙의 그림을 지도하다가 그 솜씨가 못마땅하면 “다른 사람들은 처음에도 너보다 훨씬 잘했다”라고 선생님이 칭찬하던 다른 사람들의 그림 솜씨는 어느 정도인가 하는 궁금증에 참석하기로 했다.
일요일 날 아침 날씨는 무척 화창하다.
약속 시간에 맞추어 화방으로 향하면서 대체 사생을 하러 어디로 가는지? 교통편은 어떻게 되는지? 모든 학생이라고 해보아야 4명인데 4명이 모두 다 가는지?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던 경숙이 화방에 도착했을 때 화방에는 이미 학생들이 다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로 아는 사이인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숙이 들어서자 이야기를 멈추고 눈인사로 경숙을 맞는다.
그러고 보니까 화방에서 묵례만 하고 지낸 것은 경숙이뿐인가 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화방의 규칙이 화방에서의 공부가 3개월 지나기 전까지는 가까이하지 말도록 선생님이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양화 공부를 시작하고 소질이 없어 며칠 못 되어 그만두는 사람, 싫증이 나서 그만두는 사람 또는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어 학생으로 들어와 3개월을 넘겨야 화방에 한 식구로 보아 다른 학생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시키는 것이 화방의 규칙이란다.
그러니까 경숙은 그 시험을 통과한 것이 된다.
그래서 오늘 사생에는 경숙을 환영하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
학생은 경숙과 한 조인 남자 한 명과 여자가 경숙이까지 세 명이다.
그러고 보니 경숙과 같은 또래의 여학생 한 사람만 거의 본적이 없고 남자와 또 한 사람의 여자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화방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가볍게 묵례 정도는 나눈 사이이다
화가 선생님의 경숙을 정식으로 그들에게 인사시키고 그들도 한 사람씩 경숙에게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은 고철수이고 경숙과 같은 또래의 여자는 손화경 나이 좀 많은 여자는 미세스 김이라고 소개를 했다.
왜 다른 사람은 모두 이름을 말해 주는데 그 여자만 미세스 김이라고 소개를 하는가? 하고 궁금해 하던 경숙은 나중에 그 여자의 이름을 듣고 그 이유를 알았다.
그 여자의 이름은 김새나 이였고 그 여자가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인사 소개가 끝나고 철수가 몰고 온 승용차 트렁크에 각자의 짐을 싣고 앞에는 운전하는 철수와 화가 선생님이 앉고 뒤에는 여자 셋이 앉고 차가 출발하였다.
처음에 경숙은 다른 사람들과 사실상 오늘 처음 인사한 사이라 서먹하여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차가 시내를 벗어나 목포행 국도에 들어서자, 오늘 사생에 자기를 환영하는 뜻도 있다니 자기가 오늘의 주인공 비슷하다는 생각에 분위기를 위해서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 날씨는 참 좋지요?”
하고 경화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또래의 경화가 가장 대화상대로 좋을 것 같아서다.
“그러게요, 우리가 사생하러 나가는 것을 하늘이 아는가 보죠?”
경화는 다소 들뜬 상태인지 금방 이렇게 응수를 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어디로 가는지 아세요?”
“아니요.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경숙씨도 모르세요?”
“네 나도 몰라요.”
“그렇군요. 철수씨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하고 경화가 운전하는 철수에게 물었다.
“그래요? 지금 우리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하고 다시 물은 사람은 경숙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왔어요.”
하고 백미러를 보고 고철수가 다시 물었고
“선생님이 가보면 안다고 하시며 안 알려 주셔서---”
고철수의 그 말에 목적지도 모르고 따라온 자기가 바보 같은 생각이 든 경숙이 이렇게 말끝을 흐렸고
“나도.” 하고 경화도 거든다.
경숙과 경화의 말을 들은 화가 선생님은 빙긋이 미소만 짓고
“그럼, 미세스 김도 모르세요?”
철수는 재미있어하며 묻는다.
“나야 알지.” 미세스 김이 쓱 몸을 앞으로 세우며 뽐내듯 말한다.
“어떻게 아셨어요?”
경화가 묻는 물음에
“나는 선생님한테 떼를 썼지. 안 알려 주면 안 간다고.”
“그래요? 어디로 간다고 하시던가요? 선생님이.”
철수가 묻는다.
“말해도 돼요”
하고 묻는 미세스 김의 물음에 화가 선생님은 말이 없고
“어디 말해보세요.” 한 것은 철수이다.
“목포 유달산이라며.”
“하! 하! 하! 목포 유달산이라고요? 그럼 미세스 김도 잘못 알고 계시군요.”
하고 말한 것은 철수이고 화가 선생님도 배꼽을 잡고 웃는다.
“뭐야! 선생님이 나에게도 제대로 안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때까지 허리를 잡고 웃고 있던 화가 선생님이
“하! 하! 알고 가면 재미없잖아, 몰라야 장소에 대한 호기심도 일고 기대감도 생기지.”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이 학생한테 거짓으로 알려 주시는 데가 어디 있어요.”
“그럼, 장소를 알려주면 재미가 없고, 다 큰 제자는 안가겠다고 떼를 쓰는데 어떻게 해. 그렇게라도 해야지”
“에이! 선생님 순 엉터리!”
화가 선생님과 미세스 김이 농담을 한다,
“선생님! 그럼, 정말 우리 어디로 가는 거에요?”
이번엔 경화가 다시 묻는다.
철수가“저---”하고 막말을 하려는데 화가 선생님이
“고군! 입 다물고 운전이나 해. 도착하면 알 텐데, 일부러 가르쳐 주려고 하지 말고.”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라고 그러셔요?”
하는 경숙의 말에
“비밀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네들에 기대감을 높이려고 그래.”
“그럼 왜 철수씨에게는 목적지를 알려 주셨어요”
하는 경화말에
“철수는 운전기사잖아, 운전기사가 목적지를 모르면 돼겠어?”
이렇게 이야기하며 떠드는 동안 차가 나주를 지나 해남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쪽으로 가면 해남 대흥사나 영암 월출산 도갑사로 가겠군.”
차가 방향을 바꾸자 미세스 김이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럼 대흥사로 갔으면 좋겠네요.”
하고 받은 경화가
“우리 대흥사로 가요. 선생님!” 하고 조른다.
화가 선생님과 철수는 서로 눈 맞춤을 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여자들은 모두 화가 난 듯 뾰로통해진다.
화가 선생님과 철수는 여자들이 속은 것이 재미있어하고 여자들은 자기들만 속은 것이 언짢은 표정이다.
잠시 차내의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 같다.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린 철수가
“지금 우리 도갑사로 가고 있는 중이예요.”
하고 목적지를 말해 준다.
“이 사람이 말하지 말 냈더니.”
한 것은 화가 선생님이고
“그게 무슨 비밀이라고 여태까지 숨겨서 사람을 답답하고 궁금하게 해요?”
한 것은 미세스 김이다.
“그래서 여기까지 재미있게 왔잖아. 궁금도 하고 기대도 하면서, 그 바람에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화가 선생님이 자주 만나지 않는 사람들, 특히 이번에 처음 이 행사에 참석하는 경숙이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서로 사귀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일을 그렇게 꾸민 모양이다.
괴팍하면서도 사려가 깊은 화가 선생님이
그 바람에 경숙이 다른 사람들과 많이 가까워졌다.
월출산 도갑사에 도착하니 미리 화가 선생님이 연락을 해놓았는지 널찍한 방 하나를 치워놓고 경숙이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장을 풀고 화가 선생님이 주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네 사람은 절 주위 경치를 돌아보았다.
화가 선생님은 도갑사 주지 스님과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첫댓글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