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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27회] 나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라 – 프란츠 리스트. 2022년 11월 20일 방송 다시보기
✵ 예썰의 전당 스물일곱 번째 이야기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 리스트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이성을 중시하던 고전주의를 지나, 음악에 감정을 담는 낭만주의가 대두되던 시기였다. 쇼팽, 슈만 등 이름난 음악가들이 넘쳐나던 시대에 리스트는 뛰어난 기교와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피아노 연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특별게스트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화려한 연주와 함께 리스트의 음악세계로 떠나보자!
● 임윤찬이 연주하는 리스트 마제파
마제파(Mazeppa)는 프란츠 리스트(1811~86)가 작곡한 같은 이름의 세작품이다. 첫째는 1840년에 피아노 곡으로 작곡한 〈마제파 연습곡〉이고, 둘째는 1851년에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초절기교 연습곡〉 중 한 곡이고, 마지막 곡은 빅토르 위고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교향시(1851, 개작 1854)이다. 이밖에 같은 제목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마제파〉가 있다. 이것은 푸슈킨의 〈폴타바 Poltava〉를 바탕으로 한 V. 부레닌의 대본으로 차이코프스키가 각색한 곡이다. 1884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초연되었다. 마제파(1644~1709)는 우크라이나 카자크족의 지도자였다.
● 초인적인 기교를 구사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
카프리스 24번(Paganini Caprice No.24) 영화 '파가니니: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中
공연 중 발치에는 사슬이 감겨 있었고 '악마'가 나타나 연주를 도왔다.
- 하인리히 하이네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한들, 무감각한 철자와 죽은 단어의 나열, 그저 해독 불능의 상형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 빈 공연 직후, <바이올린 협주곡 3번 E장조> 연주에 관해 논평한 신문 기사 中
일명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린 인물로, 19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군림했던 이탈리아인 바이올린, 비올라, 클래식 기타 연주자이자 작곡가, 지휘자이다.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의 상징이며, 낭만주의를 예고했으며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가다. 몇몇 경우에 따라서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 신(新)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기도 하며, 또는 초기 낭만주의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기도 한다. 아무튼 파가니니는 음악의 낭만주의 시대를 연 선구자격 인물임에 분명하며, 후대 대표 낭만주의 작곡가들인 프란츠 리스트, 로베르트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도 파가니니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재능과 작품, 그에 반비례하는 수준의 막장 인생 때문에 이른바 악마의 재능의 원조로 꼽힌다.
✵ 예썰 하나. 더 빠르고, 더 화려하게?! ‘초절기교 연습곡’이 보여주는 리스트의 독보적 스타일! 총 12곡, 65분 길이인 ‘초절기교 연습곡’은 빠르고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리스트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다. 지난 6월, 제16회 미국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한 18세 임윤찬이 준결승 무대에서 이 ‘초절기교 연습곡’을 연주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초월적’ 기교를 ‘초절정’으로 ‘초기절(?)’하게 연주하기 위해 목숨을 건 준비가 필요하다는 무시무시한 곡! ‘초월기교 연습곡’이 보여주는 리스트만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에 빠져본다.
제60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Van-Cliburn-concours) 결승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을 연주하며 지휘자 마린 알솝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 예썰 둘. 프란츠 리스트가 존경한 ‘악마의 음악가’? 리스트의 화려한 기교에 숨겨진 비밀! 초고난도 기교가 돋보이는, 누구나 칠 수 없는 리스트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음악가가 있다. 바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다. 파가니니의 놀라운 연주 기교에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하루 14시간씩 기교 연습에 매달렸다. 리스트의 피나는 노력은 어떤 명곡들을 탄생시켰을까?
✵ 예썰 셋. 열성팬을 몰고 다닌 클래식계의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가 나아갈 길을 개척하다! 기교로 무장한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는 당시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또한 그는 독특한 복장을 입고 연주하거나 연주 도중 기절하는 척을 하는 등 전무후무한 연주 공연을 선보여 청중을 놀라게 했다. ‘리스토마니아’라는 열혈 팬덤까지 끌고 다녔던 클래식계의 원조 아이돌,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연주에 있어 늘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그는 당시 팬들뿐만 아니라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리스트는 ‘교향시’라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까지 개척했다는데. 자신만의 스타일을 내세운 리스트는 피아노의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 교향시를 창시한 피아노의 달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헨리 레만(Henri Lehmann, 1814-1882), 프란츠 리스트의 초상(Portrait of Franz Liszt), 1839년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근대 피아노 기법을 확립하고,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양식인 교향시를 창시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1811년 헝가리의 도보르얀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광대한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영지를 관리하는 재산 관리인이었다. 리스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후작의 궁전에서 열린 귀족들의 연회에서 아들의 피아노 솜씨를 선보이고, 이들로부터 매년 600굴덴의 후원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1821년, 리스트는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다. 거기서 당대 최고의 피아노 교수인 체르니에게 피아노를, 빈 궁정 악장인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다. 그리고 이듬해 11살의 나이로 빈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 연주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리스트는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갔다. 하지만 당시 원장이던 케루비니가 외국인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교칙을 내세워 그의 입학을 불허했다. 음악원 입학이 좌절된 후, 리스트는 파에르와 레이하에게 개인적으로 푸가와 대위법을 배웠다. 이 무렵 그는 소년 피아니스트로 널리 이름을 날렸다.
182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그 후로는 피아노 레슨으로 돈을 벌며, 독서와 작곡에만 몰두했다. 그러던 중 첫사랑이 찾아왔다. 피아노 제자인 카롤린이라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카롤린의 아버지가 반대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고, 이로 인해 리스트는 엄청난 절망에 빠졌다. 그는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포기했다.
2년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면서 리스트는 방대한 독서를 통해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핸디캡을 상당 부분 극복했다. 그리고는 18살 때, 지적으로 무장한 핸섬한 청년이 되어 파리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10년간 그는 위고, 발자크, 뮈세, 하이네, 비니, 들라크루아, 베를리오즈, 쇼팽 등 파리 사교계의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다.
1831년의 어느 날, 리스트는 당대 최고의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후 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에 14시간씩 연습에 매진했으며, 그 결과 파가니니에 버금가는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1835년, 리스트는 파리 사교계에 드나들면서 알게 된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였다. 백작부인은 리스트보다 6살 연상으로 아이까지 있었지만 남편을 떠나 리스트에게로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10년 넘게 함께 살며 세 명의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1839년에 리스트가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사이가 벌어졌고, 1844년에 완전히 헤어졌다. 백작부인과 헤어진 후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어린 시절에 떠난 이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헝가리 땅을 밟고, 헝가리 민속음악에 눈을 뜨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키예프에서 리스트와 사랑에 빠진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1847년, 리스트는 키예프에서 있었던 한 연주회에서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을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공작부인은 리스트에게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줄이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권유했다. 같은 해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 악장으로 취임했는데, 공작부인의 충고대로 이때부터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접고 궁정 악장 일과 작곡에만 몰두했다. 리스트는 궁정 악단의 지휘자로 수많은 작품을 지휘했는데, 이 경험이 관현악곡을 쓰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리스트의 대표적인 교향시가 대부분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리스트는 공작부인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교황청에서 공작부인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톨릭에서는 이혼을 원천적으로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크게 실망한 리스트는 또다시 성직자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었으며, 1865년에 마침내 신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를 '신부의 옷을 입은 메피스토펠레스'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었다. 리스트는 1869년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살았는데, 이때 르네상스 음악을 들으며 종교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리스트는 헝가리 대관미사를 비롯한 대규모의 종교작품을 썼다.
1869년, 리스트는 바이마르로 돌아가 궁정 악장의 일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고국으로부터 새로 설립된 부다페스트 왕립 음악 아카데미의 원장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말에 리스트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바이마르에서의 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 년 중 3개월만 부다페스트에 머무르기로 했다.
1886년 7월, 리스트는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보기 위해 바이로이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심한 감기에 걸렸고, 이것이 나중에 폐렴으로 발전했다. 그 길로 몸져누운 리스트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7월 31일, 75세를 일기로 바이로이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리스트는 피아노로 가능한 모든 테크닉을 작품 속에 구현한 작곡가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1838년에 쓴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Grandes études de Paganini)〉이다.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다섯 곡이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위한 무반주 카프리스〉에서 주제 선율을 가져왔다. 연습곡 제1번은 〈카프리스〉의 5번과 6번, 제2번은 17번, 제4번은 1번, 제5번 〈사냥〉은 9번, 제6번은 24번을 주제 선율로 한 것이다. 그리고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라는 제목이 붙은 제3번의 주제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서 라 캄파넬라는 '종'이라는 뜻인데, 멜로디가 종이 땡땡거리며 경쾌하게 울리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붙었다. 피아니스트에게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곡이다.
그 외의 피아노곡으로는 〈초절기교 연습곡〉과 〈사랑의 꿈〉, 〈죽음의 무도〉, 〈헝가리 환상곡〉,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이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리스트의 집에 그의 피아노가 보존되어 있다.
리스트는 어린 시절에 헝가리를 떠나 헝가리 말을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곡가와 피아니스트로 성공해 헝가리를 찾은 후 민속음악 양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헝가리 광시곡(Hungarian Rhapsody)〉은 이런 관심의 결과물이다. 리스트는 환상적이고, 영웅적이며, 민족적인 성격이 강한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을 광시곡(랩소디)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작품에서 낭만적인 감정과 피아노의 화려한 기교, 헝가리 집시의 정열적인 멜로디를 결합시켰다. 헝가리 광시곡은 헝가리 마자르 지방의 춤곡 차르다스(Csardas)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차르다스는 느린 템포의 랏산(Lassan)과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Freska)로 구성되어 있는데, 랏산은 어둡고 우울하며, 프리스카는 빠르고 정열적이다. 리스트의 광시곡도 느린 부분과 빠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피아노를 위해 작곡했지만, 피아노를 관현악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이 중 몇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지금은 관현악 버전이 원곡인 피아노 독주곡만큼이나 자주 연주된다. 모두 12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2번이 가장 유명하다.
리스트는 교향시의 창시자로 불린다. 그의 교향시들은 다양한 상념과 이미지를 포괄한다. 한 부분에서는 낭만적인 사랑, 다른 부분에서는 전원 풍경, 또 다른 부분에서는 긴장과 갈등을 그리다가 끝에 가서는 마침내 위대한 승리에 도달한다. 리스트의 교향시 중에서 1854년에 쓰인 〈전주곡(Les Preludes)〉은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의 〈시적 명상〉이라는 글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이 곡을 통해 리스트는 운명과 싸우도록 만들어진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1부 〈봄의 정서와 사랑에의 욕망〉, 2부 〈생명의 폭풍우〉, 3부 〈사랑의 위안과 평화로운 목가〉, 4부 〈싸움과 승리〉로 이루어져 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리스트
그 밖의 교향시로 〈탓소, 비탄과 승리〉, 〈프로메테우스〉, 〈마제파〉가 있다. 리스트는 교향시뿐만 아니라 교향곡에도 제목을 붙였는데, 〈파우스트 교향곡〉과 〈단테 교향곡〉이 바로 그것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27회] 나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라 – 프란츠 리스트,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https://youtu.be/fku6ZSpCQ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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