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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樂soccer 원문보기 글쓴이: 서초패왕 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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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 이진성 작가(코믹스 『이순신세가』 저자)
영국인으로서 넬슨과 대등한 제독이 있다는 건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만약 누군가가 넬슨과 비견된다면, 그건 일생동안 패배를 몰랐으며 적의 앞에서 최후를 맞은 아시아 인종의 이 위대한 제독이어야 할 것이다.
-G.A 발라드-
그러나 일본은 뭍에서 성공을 거둔 반면, 바다에서는 일대 타격을 받았다. 한반도 사람들은 항해에 능한 민족이었고,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뛰어난 장군이 있었다.
-버나드 로 롱고메리-
역사를 통틀어 정면 공격과 기습 공격, 병사를 뭉치고 산개시키는 전술에 모두 뛰어났던 장군은 몇 되지 않는다. 육군에서는 정복전의 대가였던 나폴레옹이 그런 장군이었고, 해군 중에는 더욱 천재적인 전술가로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서 태어났기에 서양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기록이 부족하다는 것을 전제하더라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최상급의 지휘관이다.
-사토 테츠타로의 『제국 국방사론』 중-
*먼저 일본측 전사인원은 글쓴이 개인적으로 대선(아다케 기준) 1척 당 150~200명, 중선(세키부네 기준) 1척 당 80~100 명으로 추산한 값, 넷상에서 나와있는 전상자 수를 인용한 값이 포함되었습니다.
*격침된 전선 수도 글쓴이가 선조 실록, 난중일기, 징비록 등의 사료 뿐만 아니라 넷상의 다른 자료에서 인용한 것도 있어 객관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1차 출진>
옥포 해전 : 1592년 6월 16일(음력 5월 7일)
26척 격침, 사망자 3,000~4,080명
합포 해전 : 1592년 6월 16일(음력 5월 7일)
5척 격침, 사망자 490여 명
적진포 해전 : 1592년 6월 17일(음력 5월 8일)
11척 격침, 사망자 2,840명
-합계-
사망자 6,330~7,410여 명, 42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부상자 1명, 격침 없음
<2차 출진>
사천 해전 : 1592년 7월 8일(음력 5월 29일)
13척 격침, 사망자 1,200~2,600명
당포 해전 : 1592년 7월 10일(음력 6월 2일)
21척 격침, 사망자 2,820명
*일본 지휘관 피해*
구루지마 미치유키: 사망
당항포 해전 : 1592년 7월 13일(음력 6월 5일)
26척 격침, 사망자 2,720명
율포 해전 : 1592년 7월 15일(음력 6월 7일)
3척 격침, 4척 포획, 사망자 500명
-합계-
사망자 7,240~8,640명, 63척 격침, 4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11명, 부상자 49명, 격침 없음
<3차 출진>
한산도 해전 :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54척 격침, 12척 포획, 사망자 7,000~9,0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와키자카 야스하루 : 도주
와키자카 사베에 : 사망
와타나베 시치에몬 : 사망
미나베 사마노조 : 할복 자살
→ 사망자 9천명 설은 『병량조발건기』 참고
※ 『난중일기』에서는 47척 격침, 12척 포획이 정설이지만,
여기서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랐습니다.
아군이 죽 벌여서 학익진(鶴翼陣)을 쳐 기(旗)를 휘두르고 북을 치며 떠들면서 일시에 나란히 진격하여,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연속적으로 쏘아대어 먼저 적선 3척을 쳐부수니 왜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조금 퇴각하니, 여러 장수와 군졸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발을 구르고 뛰었다. 예기(銳氣)를 이용하여 왜적들을 무찌르고 화살과 탄환을 번갈아 발사하여 적선 63척을 불살라버리니, 잔여 왜적 4백여 명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다.
『선조실록』 선조 25년(1592) 6월 21일 4번째 기사
안골포 해전 : 1592년 8월 16일(7월 10일)
42척 격침, 사망자 3,960여 명
-합계-
사망자 10,960~12,960여 명, 96척 격침, 12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19명, 부상자 116명, 격침 없음
<4차 출진>
장림포 해전 : 1592년 10월 4일(음력 8월 29일)
6척 격침, 사망자 480명
화준구미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5척 격침, 사망자 500명
다대포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5척 격침, 사망자 590명
서평포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8척 격침, 사망자 1,000명
절영도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9척 격침, 사망자 1,200명
초량목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4척 격침, 사망자 380명
부산포 해전 :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128척 격침, 사망자 3,830여 명, 부상자 1,200여 명
-합계-
사망자 7,980여 명, 부상자 1,200여 명, 165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6명, 부상자 25명, 격침 없음, 3척 소규모 파손
- 조선 지휘관 피해 : 정운 사망
▶▶▶ 부산포 이전의 6 해전에서 일본측 전사자는 확정된 것이 아닌 함선 승선인원에 따른 추측 입니다.
<5차 출진>
웅포 해전 : 1593년 3월 12일~4월 17일(음력 2월 10일~3월 6일)
51척 격침, 사망자 2,5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구와나 치카카쓰 : 사망
-합계-
사망자 2,500여 명, 51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불명, 협선 4척 전복, 전함 격침 없음
<6차 출진>
견내량 해전(2차 한산 해전) : 1593년 5월 5일(음력 3월 26일)
10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7차 출진>
읍전포 해전 : 1594년 4월 23일(음력 3월 4일)
6척 격침, 사망자 500여 명
어선포 해전 : 1594년 4월 23일(음력 3월 4일)
2척 격침, 사망자 50여 명
자구미포 해전 : 1594년 4월 23일(음력 3월 4일)
2척 격침, 사망자 150여 명
2차 당항포 해전 : 1594년 4월 24일(음력 3월 5일)
31척 격침, 사망자 4,100여 명
-합계-
사망자 4,800여 명, 41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8차 출진>
장문포, 영등포 해전 : 1594년 11월 10일~11월 12일(음력 9월 29일~10월 1일)
2척 격침, 사망자 190여 명
2차 장문포 해전 : 1594년 11월 15일(음력 10월 4일)
내륙 일본군의 무대응
▶ 전상자, 피해전선 없음.
-합계-
사망자 190여 명, 2척 격침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9차 출진>
부산포 대치 : 1597년 3월20일(음력 2월 10일)
내륙 일본군의 무대응과 기상 악조건으로 철군
▶ 전상자, 피해전선 없음.
가덕도 포격 : 1597년 3월 23일(음력 2월 13일)
가덕도 왜성에 포격을 가해 일본군 수십~백여 명 사상
※ 사후선 1척의 인원들이 야영지 편성중 일본군 척후의 습격으로
초동 1명 사망, 격군 5명이 생포되는 피해를 입음
▶▶ 이후 가덕도 왜성에 포격을 가하여 포로로 잡힌 5명 모두 송환, 피해전선 없음.
-합계-
사상자 수십~백여 명
*조선수군 손실 : 초동 1명 사망, 격침 없음
------칠천량 참사 이후------
<10차 출진>
어란포 해전 : 1597년 10월 8일(음력 8월 28일)
8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벽파진 해전 : 1597년 10월 17일(음력 9월 7일)
13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불명, 격침 없음
<11차 출진>
명량 해전 : 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31척 격침, 50여 척 반파 추정, 사망자 3,000~5,000여 명 추정
*일본 지휘관 피해*
도도 다카도라(총대장) : 부상
구루지마 미치후사(선봉) : 사망
모리 다카마사(군감) : 침수 뒤 구조
와키자카 야스하루 : 도주
하타 노부토키 : 사망
-합계-
사망자 3,000~5,000여 명 추정, 31척 격침, 50여 척 반파 추정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11명(안위의 배에서 뛰어내린 수부 8명 포함), 부상자 21명(추정치), 격침 없음
- 대장선 사망자 : 김탁(순천 감목관), 계생(본영노비)
- 대장선 부상자 : 이극신(강진현감), 박영남, 봉학
→ 출처 : 『난중일기』
<12차 출전>
고금도 근해 전투 : 1598년 3월(음력 2월) 경
16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13차 출전>
흥양 고도 전투 : 1598년 4월 20일(음력 3월 18일)
5척의 일본 함대 격퇴(격침과 사상자는 알 수 없음)
-합계-
격침과 사상자 불명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없음, 격침 없음
<14차 출진>
절이도 해전 : 1598년 8월 20일(음력 7월 19일)
50여 척 격침, 50여 척 반파, 사망자 9,000~10,000여 명
-합계-
사망자 9,000~10,000여 명, 50여 척 격침, 50여 척 반파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불명, 부상자 불명, 격침 없음
<15차 출진>
순천 왜교성 전투(장도 해전) : 1598년 10월 19일~11월 5일(음력 9월 20일~10월 7일)
31척 격침, 11척 포획, 사망자 2,900여 명, 부상자 200여 명
*일본 지휘관 피해*
오야노 다네토모 : 사망
오야노 다네하카루 : 사망
스모토 미치타카 : 사망
-합계-
사망자 2,900여 명, 부상자 200여 명, 31 척 격침, 11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29명(지휘관 미포함), 부상자 백여 명, 격침 없음
- 조선 지휘관 피해 : 황세득 사망, 군관 이청일 사망
*명군 손실 : 사상자 2,300여 명, 전함 30여 척 격침 및 파손
▶▶▶ 독단적으로 공격을 감행하다 일본군의 포위에 갇힌 명의 수군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군에 비해)취약했던 근접전에 돌입한 결과, 그동안 치뤘던 해전들에 비해 굉장히 많은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노량해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해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6차 출진>
노량 해전 : 1598년 12월 15일~12월 16일(음력 11월 18일~11월 19일)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반파, 100여 척 포획, 사망자 12,000~16,000여 명, 부상자 3,000여 명
→ 참고로 『명사』「진린전」에서는 사상자가 1만으로 나와 있습니다.
만약 이게 노량 앞바다에서 직접적 결전을 치뤘던 시마즈군만의 피해로 가정한다면
순천에서 탈출을 시도한 고니시군의 피해도 추가적으로 더 나왔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일본 지휘관 피해*
시마즈 요시히로 : 휘하 병력의 8할 이상을 잃고, 도주
고니시 유키나가 : 해전 발발전에 도주
타치바나 무네시게 : 도주
오코히라 다카시게 : 사망
마치다 히사마사 : 사망
이케베 사다마사 : 사망
-합계-
사망자 12,000~16,000여 명, 부상자 3,000여 명, 200여 척 격침, 150여 척 반파, 100여 척 포획
*조선수군 손실 : 사망자 130여 명, 부상자 170여 명, 격침 없음, 6척 소규모 파손
*명군 손실 : 사상자 500여 명, 격침 1척 ← 조선수군에게서 대여한 판옥선
- 조선 지휘관 피해 : 이순신 사망, 이영남 사망, 이언량 사망, 방덕룡 사망, 고득장 사망
- 명 지휘관 피해 : 등자룡 사망
<종합>
일본군 손실 : 사망자 66,920~79,700여 명, 부상자 4,400여 명(+a), 격침 770~850여 척, 포획 120~130여 척,
반파 240~250여 척
※ 일본군 부상자는 최대 20,000명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조선군 손실 : 사망자 약 250~290여 명, 부상자 480~500여 명, 전함 격침 없음, 소규모 파손 9척, 협선 4척 전복
명군 손실 : 사상자 약 2,800여 명, 전함 격침 및 파손 30여 척(+ 노량해전 당시 대여한 판옥선 1척)
만화출처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선조편'
자신과 국가의 위기를 극복한 성웅이자,
시공을 초월한 위대한 리더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4.28~1598.12.16
(음력 1545 3.8~1598.11.19)
자료출처 : 『선조 실록』, 『선조 수정실록』, 『징비록』, 『임진장초』,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이분의 「행록」, 이순신포럼, 문화콘텐츠닷컴-문화원형백과, 위키백과, 나무위키, 네이버 역사카페 '부흥' 등
첫댓글 대단하고 감동입니다....
존경합니다...
세계적인 영웅!!! ㅠㅠ
친일파들에겐 역적으로 보이겠지??
위대한 영웅.... 이순신장군이 없었으면 임진왜란때 조선은 없어졌겠죠
존경합니다^^
이순신 장군!!!
하늘이 내리신 위대한 영웅
우리도 본받읍시다
서글픈게도 이순신을 알린것은 우리가 아닌 일본 해군 제독..ㅠㅠㅠ
장군의 현 종가집 며느리는 땅 팔아먹고 문중 보물 팔아먹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