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볼 수 없는 글씨(1)
(김대우 모세신부)
편지를 받는 일은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특히 남자들만 모여 사는 곳에서 받는 편지는 온화한 봄바람 같다.
편지에는 보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어서 봉투를 여는 순간부터
글을 읽는 내내 그 사람의 향기가 그윽하다.
신학교에 입학한 지 7년이 흐르고. 기도 수련에 집중하는 때였다.
학교 뒷동산에 올라 땀을 잔뜩 흘리고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두툼한 서류 봉투가 놓여 있었다.
의아한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더니 종이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성 바오로딸수도회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에서 온 답안지였다.
편지를 기대했던 내게 과제물이 도착한 것이다.
대학 학부 과정을 마치며 `우편 성경공부`평가자 교육을 받았는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성경공부는 수강생과 평가자가 우편으로 답안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며
교육원의 담당 수녀님이 중개자 역할을 한다.
수강생은 평가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로 평가된 답안지와 메모를 받아볼 수 있다.
반면에 평가자는 수강생의 이름과 소속 정도만 알 수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답안지를 채점했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답안지가 있었다.
종이 위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글씨체 때문이었다.
우리말로 쓰였지만 마치 히브리어 성경을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글씨체로 보아서는 한글공부를 막 시작한 학생이거나 늦깎이 할머니 학생 같았다.
그러나 답안은 정성이 가득했고 풍부한 영성이 깃들어 있어
채점을 한다는 게 송구할 정도였다.
누굴까?
머릿속에 여러 유형의 사람이 스쳐갔다.
학생 카드를 보았더니 봉쇄수도원 소속 수녀님이었다.
이럴 수가! 수녀님이셨구나!
장난기가 발동했다.
답안지마다 빨간 펜으로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은 후
`참 잘했어요`라고 쓰기도 하고.
빈 공간에 숨은 그림 찾듯 작은 글씨로 `글씨가 이게 뭐예요!
호호호...글씨 연습을 더 해야겠어요.
호호호..라며 보란 듯이 예쁜 글씨체로 적기도 했다.
다음 달. 우편 성경공부 답안지가 도착했다.
제일 먼저 가장 글씨를 못 쓴 답안지를 찾았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글씨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답안지를 넘기다 `메모난`에 시선이 갔다.
수녀님은 작은 글을 남겨 놓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