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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리는 꿈을 꾸었고
비로소 나는 내 꿈을 그리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
✺ KBS1 <예썰의 전당> [286회] 미술관에 걸린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2022년 11월 27일 방송 다시보기
✵ 예썰의 전당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는 말 못할 진심을 그림에 담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고흐는 화가로 활동했던 10년, 그 짧은 시간 동안 천여 점이 넘는 그림과 스케치를 남기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인간관계가 서툴러 늘 외로웠던 고흐는 말과 시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아냈고, 그의 작품은 지금 우리에게 진심을 전하는 ‘편지’가 됐다. 특별 게스트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미술관에 걸린 편지’에 담긴 고흐의 마음을 들여다보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감자 먹는 사람들', 1885년
"보잘 것 없는 사람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언젠가 내 작품을 통해
보잘 것없는 사람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
고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부모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불안
누구보다
사람을 갈구했지만
사람에
서투를 수밖에 없던 고흐
✵ 예썰 하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밤하늘! ‘별이 빛나는 밤’에 숨겨진 고흐의 안타까운 사연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은 물결처럼 소용돌이치는 밤하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 그림에 영감을 받아 ‘빈센트’라는 명곡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데 낭만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 그림은 사실 고흐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밝게 빛나는 별, 하늘로 솟아오른 사이프러스 나무 등 그림 곳곳에는 당시 고흐의 심정이 담겨있다는데. ‘별이 빛나는 밤’에 숨겨진 고흐의 안타까운 사연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 예썰 둘. ‘해바라기’는 한 남자를 향한 고흐의 열렬한 고백? 비극으로 끝난 두 남자의 만남! 대인관계가 서툴렀던 고흐는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실패했다. 그런데 외로웠던 고흐에게도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싶은 친구가 나타난다. ‘타히티의 여인들’로 유명한 프랑스 탈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이다.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던 고흐는 동료 화가들에게 아를로 오라는 편지를 보내지만, 오직 고갱에게서만 수락의 답장을 받는다. 친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기쁨에 고흐는 고갱을 맞이하는 4점의 작품을 그린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 하지만 두 사람이 동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관계는 파국을 맞고, 고흐는 떠나려는 고갱 앞에서 자신의 귀까지 자르고 만다. 고흐와 고갱, 두 사람의 사이는 왜 비극으로 끝난 것일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해바라기', 1888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아레아레아', 1892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타히티의 여인들', 1891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해바라기', 1887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붓꽃', 1889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슬픔에 빠진 노인', 1890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밤의 프로방스 시골길', 1890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해바라기를 그리는 고흐', 1888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아를 투우장의 관중', 1888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작업실의 창문', 1889년
Vincent van Gogh(1853-1890), ‘Wheat Fieid with Cypresses(삼나무가 있는 밀밭)’,
1889년, oil on canves, 73ⅹ93.4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 예썰 셋. ‘빈센트’가 ‘빈센트’에게 주는 선물, ‘꽃피는 아몬드 나무’에 담긴 고흐의 사랑! 해바라기’처럼 고흐의 진심 어린 애정이 담긴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꽃피는 아몬드 나무’다. 고흐는 동명의 ‘빈센트’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작품을 그렸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꽃피는 아몬드 나무’가 자신의 최고 ‘걸작’이라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고 며칠을 앓아누웠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고흐는 이 그림을 통해 빈센트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했다는데. 고흐가 이토록 사랑했던 ‘빈센트’는 누구일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90년
"너는 존재 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한 사람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 난 내 그림들을 위해 내 생명을 걸었다.
◆ Vincent Starry, Starry Night(별이, 별이 빛나는 밤에)
Vincent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당신의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며
Look out on a summer's day
여름날의 밖을 바라봐요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눈으로
Shadows on the hills
언덕위의 그림자들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나무와 수선화를 그려요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산들바람과 겨울의 차가움을 그려봐요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눈 내린 것 같은 리넨 화폭 속에요
Now I understand
이제 난 이해해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정신 상태에 대해 고민했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당신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려 노력했는지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어떤지 모를 거예요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 이제야 그들은 들을지 몰라요
Starry, starry night
별이 빛나는 밤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밝게 불꽃처럼 빛나는 꽃들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보랏빛 실안개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구름들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연회청색으로 빛나는 빈센트의 눈에 비치네요
Colors changing hue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색들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금빛으로 빛나는 아침의 들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고통에 주름지고 바랜 얼굴들....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그것들이 예술가의 사랑스러워 하는 손 아래 위로를 받네요
Now I understand
이제 저는 이해하겠어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제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요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얼마나 당신이 제정신을 유지하려 노력했는지요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그리고 어떻게 당신이 그들을 풀어줬는지요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알려 하지도 않겠죠
Perhaps they'll listen now
아마 지금쯤 들을 거예요
For they could not love you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당신의 사랑은 진실됐었어요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그리고 만약 그 별이 빛나는 밤에 아무 희망도 눈에 띄지 않았을 때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당신은 스스로의 삶을 끝냈죠, 연인들이 으레 그렇듯이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하지만 전 이 말을 해줄 수 있었어요, 빈센트.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이 세상은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니었어요
Starry, starry night
별이, 별이 빛나는 밤에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초상화들이 빈 복도에 걸렸어요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세상을 보고 잊을 수도 없는 눈을 지닌, 프레임도 없는 머리들이요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당신이 만났던 이방인들처럼
The ragged men in their ragged clothes
남루한 옷차림에 남루한 사람들
The silver thorn of the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피로 얼룩진 장미의 은빛 가시는 부숴지고 부숴져 새로 쌓인 눈 위에 누워 있어요
Now I think I know
이제 전 알 것 같아요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당신이 제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또 그게 무엇을 뜻했는지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제정신이려 노력했는지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당신이 어떻게 그들을 자유케 했는지요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그들은 듣지 않을 거예요, 아직도 듣지 않고 있겠죠
Perhaps they never will
아마 영원히요...
-돈 매클레인(Don McLean, 1945- )
● 돈 매클레인(Don McLean, 1945- )은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이다. 팬들에게 "미국의 트루바두르" 또는 "경로의 왕"으로 알려진, 그는 1971년 히트곡 〈American Pie〉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초기 로큰롤 세대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8분 30초짜리 포크 록 "문화적 표준"이다. 그의 다른 히트 싱글로는 〈Vincent〉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것), 〈Dreidel〉, 그리고 〈Wonderful Baby〉가 포함되어 있으며, 로이 오비슨의 〈Crying〉과 스카이라이너스의 〈Since I Don't Have You〉도 포함되어 있다. 맥클린의 노래 〈And I Love You So〉는 엘비스 프레슬리, 페리 코모, 헬렌 레디, 글렌 캠벨 등이 녹음했다. 2000년, 마돈나는 〈American Pie〉의 공연으로 히트를 쳤다. 2004년, 맥클린은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해바라기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내가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편지 中. 1888년 6월.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언젠가는 사람들도 내 그림이 거기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거야.
-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편지 中. 1888년.
선명한 색채와 거칠지만 독특한 표현으로 오늘날 가장 유명한 화가이다.
영혼의 화가, 빛의 화가, 해바라기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서양화가 중 한 사람이다. 살아서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을 만큼 무명이었고, 궁핍과 정신질환으로 고통스런 생을 살다 사후 재평가된 ‘시대를 앞서 나간 천재 예술가’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던 테오도루스 반 고흐이고, 어머니는 안나 코르넬리아다.
16세가 되던 해, 고흐는 화상이던 큰아버지의 주선으로 헤이그의 구필 화랑에서 수습 화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화상은 당시 장래가 유망한 직업이었으나 고흐는 그림에 대한 관점 차이로 손님들과 종종 다투었고, 하숙집 주인 딸을 짝사랑하면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해고되었다. 해고된 후에는 견습 교사, 서점 점원 등을 전전했다. 이처럼 힘든 시기에 고흐가 마음으로 의지했던 것은 종교와 그림이었다. 고흐는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 공부를 시작했으나 일 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어서 고흐는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촌에서 선교사로 일했으나 6개월 뒤에 해고되었다. 그럼에도 무보수로 일을 계속했기 때문에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네 살 아래인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에 의지하게 되었다. 화상으로 일하던 테오는 평생 형을 물질적으로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흐가 그림을 계속 그리는 데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27세가 된 고흐는 테오의 제안에 따라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가의 길도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고흐는 1880년 테오의 주선으로 헤이그로 갔다. 여기서 화가 안톤 모브의 화실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으나 그림에 대한 견해차로 얼마 후 나왔다. 1885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펜 미술학교에 등록했으나 몇 달 만에 퇴학당했다.
이런 일들을 반복하면서 고흐는 고향집 목사관 부속 건물에 자리를 잡고 홀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 루이스달 등 좋아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고 연대감을 느끼면서 양식화된 미를 표현하는 것보다 진실성을 드러내고 분위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때 완성한 대표작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농부 가족을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이 그림은 잘못된 인체 비례, 구성의 결함, 과장된 얼굴 묘사 등 회화적 기교가 부족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며, 고흐만의 거칠지만 독특한 붓질 표현과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등불 아래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땅을 경작할 때 쓰는 그 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려고 했다. 노동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을 강조한 건 그들이 밥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감자 먹는 사람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 그가 몰두하고 있던 주제와 화가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잘 드러나 있다.
1885년 10월 말, 고흐는 고향을 떠났다. 고흐의 충동적인 태도에 반감을 가졌던 이웃 사람들이 지난 3월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고흐를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이후 고흐는 안트베르펜에 잠시 체류한 뒤 1886년에 파리로 올라왔다.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정과 깊은 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조차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일하는 사람', 1883년
파리에서 고흐는 모네, 르누아르, 쇠라 등의 작품을 접하고 인상주의가 지닌 요소들을 자신의 작품에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큰 영향을 받은 화가는 폴 고갱과 들라크루아였다. 구필 화랑의 지배인으로 있던 테오가 연 인상주의 화가들의 전시회에서 고흐는 무명 화가였던 고갱을 만났다. 당시 고갱은 강렬한 색채를 균일하고 표현적으로 사용하는 양식을 개발하던 중이었다.
이 시기에 고흐가 강렬하게 매혹된 또 다른 것은 일본 판화 우키요에였다. 고흐는 색채 표현에 몰두하고 물감을 다루는 방식을 습득했다. 색채의 자율성을 주장한 들라크루아의 색채 이론을 공부하면서 색채 대조 기법을 개발했고, 색과 붓놀림을 대담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탕기 영감의 초상〉에서 고흐는 노란색, 초록색, 빨간색, 푸른색 등 강렬한 원색을 대담하게 구사했는데, 그에게 색채란 현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자연의 색이 아니라 자신의 격렬한 내면세계를 묘사하는 표현주의적 도구였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탕기 영감의 초상’, 파리 로댕 미술관
1887년, 고흐는 툴루즈 로트레크, 베르나르, 루이 앙크탱 등과 함께 레스토랑 샬레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나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파리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다. 고흐의 소란스러운 행동이 동생 테오의 사회생활에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1883년 5월 테오에게 보낸 편지'
1888년 2월, 고흐는 남프랑스 아를로 떠났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면 늘 그랬듯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중해 특유의 온화한 기후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아를에서 자신의 작품의 본질인 강렬하고 따뜻한 색채와 초기에 영감을 받았던 농촌 소재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동생 빌레미나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아를에서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붙잡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고흐의 작품 대부분은 이 시기에 그려졌다. 이때 전형적인 고흐의 그림으로 보이는 화법을 개발한 것이다. 고흐는 론 강 유역의 밀밭과 포도밭, 운하, 밤의 거리 등을 걸으며 남프랑스의 풍경에 심취했는데, 이는 그가 대상의 자연색이 아니라 각각의 그림을 위해 발전시킨 색채 체계에 적합한 색을 사용하는 특유의 기법을 완성할 수 있게 했다.
그에게 색은 대상의 모습을 그리는 수단이 아니라 화가의 감정과 내면을 드러내는 개인적 표현이었다. 그림에 나타난 붓 자국 역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가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현 기법이었다.
색채의 위치를 정할 때 자연으로부터 일련의 순서와 정확성을 받아들인다. 자연을 세세하게 관찰하지만 내가 사용한 색이 내 그림에서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것이 사물의 색과 동일한 색인지는 더 이상 내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형태에 있어서는 ‘나는 내가 그린 형태가 정확하지 못해 실제와 다를까 봐 겁이 난다’라고 썼다.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습작을 할 때도 정확하고 꼼꼼하게 드로잉했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이를 바탕으로 작품의 효과를 생각하여 선택한 색을 입혔다. 그는 작품 속에서 대상을 종종 심하게 변형시키기도 했지만, 여전히 자연에 충실한 상태로, 추상으로 통하는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았다.
내성적이고 거의 말을 하지 않으며 음울해 보이는 고흐는 이곳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모든 풍경도 주변이 냉담하자 점차 시들해졌다. 고흐는 파리에서 꿈꾸다 실패했던 ‘화가들의 공동체 생활’을 다시 꿈꾸며 테오에게 고갱을 설득해 아를로 오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동 화실인 노란 집을 꾸미면서 기대에 가득 찬 고흐는 〈해바라기〉 연작과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침실〉을 그렸다. 침실에 그려진 두 개의 의자, 두 개의 액자, 두 개의 그림에는 고갱이 도착하는 날을 기다리는 고흐의 부푼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해바라기’,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아를에 있는 반 고흐의 침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하지만 두 사람은 기질적으로 맞지 않았고, 고갱이 도착한 지 두 달 만에 그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고흐는 고갱에게 딱 달라붙어 자신이 그린 것들을 보여 주고 토론하고 싶어 했는데, 고갱은 그의 태도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기대가 깨진 고흐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갱에게 집착했고, 고갱이 떠날 것을 두려워했다. 잠을 자는 사이에 고갱이 떠날까 봐 한밤중에도 몇 번이고 고갱의 침실을 들여다봤을 정도였다.
어느 날 고갱이 밤 산책을 나갈 때 고흐는 면도칼을 들고 그의 뒤를 쫓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두려워진 고갱은 고흐를 설득해 집으로 돌려보낸 뒤 여관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를 발견했다. 그동안 고흐의 병증 때문에 머물렀던 고갱은 이로써 완전히 질려 고흐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아를을 떠났다.
이 사건으로 고흐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게 되었고, 고갱을 잃은 슬픔을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병원에 갇힌 동안에도 계속 그림을 그렸지만, 삶의 희망을 잃은 상태였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붕대로 귀를 감은 자화상’
1889년, 36세의 고흐는 생 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그는 1년여를 이곳에서 지내면서 〈붓꽃〉, 〈사이프러스가 있는 푸른 밀밭〉, 〈올리브밭〉, 〈별이 빛나는 밤〉 등을 그리며 서서히 자신감을 찾았다. 그러나 발작은 계속되었고, 우울증과 환상, 피해망상,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 1889년, 뉴욕 현대미술관
고흐가 생레미 정신요양원에 자진해서 들어간 후에 그곳에서 그린 격정적인 그림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림 전체가 들끓는 에너지로 소용돌이치는 이 그림에서 달은 태양처럼 불타고 하늘에는 폭발할 듯한 노란 별들이 가득하다. 그 가운데로 거대한 나선형의 성운이 꿈틀거리고 지상에서는 하늘을 향해 치솟은 거대한 불꽃 모양의 삼나무가 이에 대응하고 있다. 작품 전체는 충동적이며 격렬한 붓놀림, 거대한 궤도를 따르는 감정의 해방으로 힘과 긴박감을 자아낸다. 게다가 전경의 차분한 마을 풍경과 같은 요소를 대비시켜 그 효과를 더 증대시키고 있다.
1890년 9월, 고흐는 아마추어 화가인 가셰 박사의 제안으로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옮겨 갔다. 박사의 치료를 받으며 작업에 몰두한 그는 매일 한두 점씩 그림을 그리는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를 지배하고 있던 슬픔과 고독,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를 일생 후원해 주었던 동생 테오가 자신 때문에 가정생활과 재정적 측면에서 곤란을 겪자 엄청난 자책감에 시달렸다. 결국 1890년 7월 29일 밤, 그는 들판에 나가 권총 자살을 기도했다. 그리고 이틀 후 머물던 여관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묘는 오베르에 쓰였다. 고흐가 죽고 1년 후 동생 테오도 사망했으며, 테오도 그의 옆에 묻혔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 ‘Wheat Fieid with Cypresses(삼나무가 있는 밀밭)’,
1889년, oil on canves, 73ⅹ93.4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빈센트 반 고흐, ‘봄 뉘넌의 목사관 정원(De pastorie in Nuenen in het voorjaar)’,
1884년 5월, 유화. 흐로닝어 미술관에서 소장.
반 고흐가 부모와 함께 뉘넌에서 목사관과 주변 정원에서 살면서 그린 그림으로 2020년 3월 30일, 호르닝어 미술관에서 대여하여 전시 중이던 노르트홀란트주 라런에 있는 싱어 라런 박물관에서 도둑에 의해 도난당했다가 2023년 되찾았다. 추정 가격 80억원.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28회] 미술관에 걸린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