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이었다.
무쇠와 같은 감격이었다. 50년 만에 은사님을 다시 뵙다니... 진혼을 하고 싶은 감격이 북받쳤다. 561회 한글날, 신암-선열공원... 애국지사들의 유택에 서니... 죽은 자보다는 산자들의 잘못이 더 많다는 감회가 짙다.
***송운(松雲) ‘배 학보’(裵 鶴甫) (1920~1992) : 경북 성주 선남에서 성주배씨 30대손으로 출생. 1939년 당시19세의 나이로 주도한, 왜관항일사건이 계기가 되어 17명의 항일단체인 백의단(白衣團)을 조직하여 부단장을 역임. 그 후 35명으로 증원된 다혁단(茶革團)으로 발전하였으며, 회지(會誌)인 ‘반딧불’이 일경에 발각되어 전단원이 체포됨. 3년9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던 중, 5명은 옥중에서 순국하고 나머지 애국투사들은 조국광복으로 풀려남.***
회 고 사
유세차... 정해년 2007년 10월9일- 한글날.
경북중학교 42회 동기생들이 ‘신암(新岩)-선열공원’에 잠드신 애국지사 ‘배 학보’(裵 鶴甫) 선생님의 영전에서 삼가 머리를 조아려 명복을 비나이다. 우리겨레의 말과 얼을 되살리기 위해 일제36년과 싸우며 조국광복을 위해 불같이 청춘을 불사른 은사님의 높으신 애국 혼을 이제야 알게 된 못난 제자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일경에 체포되어 3년9개월간의 옥고를 치르던 중, 조국해방을 맞아 국어책을 들고 홀연히 우리 경북중학교의 교단에 나타나신 ‘배 학보’ 선생님...
돌이켜보니 은사님은 우리에게 학문을 가르치기 이전에 인생을 가르쳤으며, 국어를 가르쳤다기보다는 국어 혼을 가르치셨습니다. 긴 이별은 영원한 상봉인가! 우리는 ‘배 학보’ 선생님을 너무 짧게 만났고 또 너무 길게 헤어졌도다. 은사님의 뜻을 십분도 헤아리지 못하고 소년들은 그만 이로(易老)하고 말았으니 풍진에 찌든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가신님 무덤가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삼가 영전에 모여 잠시나마 은사님의 얼을 새기고 조금이나마 애국지사의 혼을 마시니 가슴 뭉클한 감격이 영광스럽습니다. 가고 아니 계신 은사님의 빈자리가 지금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습니다. 거룩한 유지를 받들어 우리에게 주신 선물- 금싸라기 땅을 소중히 간직하고 은사님이 늘 가슴에 품었던 애국 혼을 좌우명으로 하겠나이다. 멀리 가물가물 대봉동의 수양버들이 내려다보이는 신암(新岩) -선열의 영전에서 -늘 새롭게 우뚝 선 바위- 송운(松雲) ‘배 학보’ 선생님의 기상(氣像)을 느끼며... 감격과 형설의 공을 소중히 모은 한 움큼 의 꽃을 바칩니다.
2007. 10. 9. 경북중학교 42회 문하생 김 성현(金誠顯) 올림
회지인 ‘반딧불’의 내용이 궁금하긴 하나, 아마 대역죄인으로 몰린듯하다.
5명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고 하니, 죽일 작정으로 자행된 모진고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 나라 잃은 서러움이여! 만일 해방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우리는 은사님을 뵙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문(碑文)에...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겨레의 말과 얼을 되살리는 기름역할을 하셨다고 적고 있으니... 단하나 애국심으로 일제36년과 정면승부를 하신 은사님의 용안이... 어렴풋하기는 하나 아주 무겁게 가슴을 눌러온다.
일촌의 광음은 결국 50년이었나?
무언의 독립투사 ‘배 학보’선생님... 경북중학교의 교단에 서신 은사님은 백삼선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고 싶었을까. 물끄러미 허허롭게 특유의 구릿빛- 붉은 안색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아마 모르긴 몰라도... 백삼선의 우리들이 장차 이 나라의 금싸라기-기둥으로 자라나는 걸 목마르게 바랐을 것이다.
<少年易老 學難成 一村光陰 不可輕>
이 구절은 은사님이 우리들에게 남기신 유훈(遺訓)이나 다름없다. 경북중학교 42회 졸업생치고 이 구절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유훈이 약효가 되어... 멜로디를 타고 평생을 갈 줄이야 당시는 아무도 몰랐었다. 금 쟁반에 은구슬이 구르는 학문을 우리들의 가슴에 평생이 가도록 심어 놓은 ‘배 학보’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시나이까.
“마소를 갓 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송강- ‘정철’선생의 가르침도, 아마 그때 은사님을 통해 우리들의 뇌리에 추가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살아생전 우리들에게 인생과 학문을 가르치셨고, 저승에서는 애국지사들과 우국의 정담을 나누고 계시는 ‘배 학보’선생님... 50년 만에 예를 갖춘 은사님의 유택을... 잠시 만에 떠나려하니... 가을하늘의 새털구름마저도 퇴색한 듯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향학에 대한 노스탤지어? 친구들 표정이 그랬고 또 백발이 되어 손을 맞잡은 우정이 그랬다. 마냥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한 해가 다 가더라도... 은사님의 가르침이 다시 있을 때까지... 다시 한번 모란이 필 때까지... 백삼선의 모란이 필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싶었다.
새벽... 이글을 쓰기위해 마음을 가다듬으니 모처럼만에 거실이 정답다.
철지난 선풍기마저도 어쩐지 오늘만큼은 제자리에 놓인듯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었지 아마? 그러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별무신통이다. 이제, 강산도 면역이 생겼음인지... 10년만에는 잘 안변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한 세대 즉, 30년은 되어야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듯하다. 그러니 세상사...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30년을 변화의 주기로 하여 새로운 축을 형성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북중학교가 공중분해 된지 30년이 넘어서고 있다.
문화의 전당에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영 죽었나? 아니지 아니야, 잠들어 있다. 깨워주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잠자는 경북중학교를 깨워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선배들이 아니고서는... 모두 주마간산 격이다.
30년 잤으면 어지간하다.
역사의 현장에서 무대가 30년간이나 증발하다니? 이건 너무 과하다. 제도는 미워도 학문을 미워해서는 아니 되리. 경북중학교는 이제 볼모역할을 마쳤다. 한 세대를 넘기며 묵묵히 부여된 역할을 다했으니... 앞으로의 소임을 돌려 달라. 학교는 형설의 족보다. 모교를 돌려 달라. 역할을 마쳤으니 소임을 돌려 달라.
-경북중학교 복원-
여기에 대해선 어떠한 미사여구도 붙이고 싶지 않다. 또 아무 주장도 하고 싶지 않다. 누가 위국의 홍안에 앞을 가렸느냐고 묻고 싶지도 않다. 이건 과거회귀도 아니요, 세계화도 아니다. 명문의 부활도 아니고 상향화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후학들에게 <少年易老>를 가르치고 싶은 선배들이 있을 따름이다.
저기 교문을 보라.
여기가 생이별의 현장이다. -경북중학교-란 5글자가 들어갈 자리가 비어 있다.
교정은 학교를 기다리고 교문은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족히 한 세대를 기다렸다.
조국분단도 억울한데...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분단이 웬 말이냐?
은사님!
경북중학교를 돌려주십시오.
지금의 소년들은 소년이로(少年易老)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알토란같은 경북중학교 신입생들에게 -<少年易老>- 이 한 구절만은 꼭 전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은사님에게서 배웠던 것처럼...
圓 柱
첫댓글 "한 많은 모교일쎄..쯧쯧 . " 그 놈의 평준화인지 뭔지 때문에..당시 무슨 무슨 명문교는 일제 오적들 자식이나 역적 귀족들이 다니기 때문에 때려 부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서 경북여자중학교와 나란히 모교는 없어졌드랬습니다. 회복해야지요. 까이꺼 우리 동문이 마음만 모우면 됩니다. 궁한대로 대구 교육감만 마음만 있어도 우리 모교는 살릴 수 있어요.
함 뭉치자. 사이버라도 더 활성화 하자...
이 회고사는 영원히 남기고 싶네요 다음 묘제때 한번 더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원주의 회고사! 가슴 뭉크하였소! 모교의 회복! 꼭 이루어야 할 우리의 소망!!!
삼가 선생님 영전에 참석 못해 죄송스럽고, 그냥 은사이시기 전에 애국지사였음을 진작 몰랐었고, 함께 원주의 회고사를 듣지 못해 미안하외다.
은사님의 유택 참배에 참석못하여 죄송하기 그지 없습니다. 삼가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모교가 없는 졸업생들의 심정이야 말할필요가 있겠습니까 ? 우리 모두 복교에 힘을 모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