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대란에 화물 파업까지… 납기·출고 지연 속출
원자재 조달부터 생산까지 타격 ‘도미노’… 위약금 우려도
사태 장기화 시 항만물류 마비·수출입 공급망 타격 현실화
▲[부산=뉴시스] 화물연대 총파업 초반 중소 수출입 기업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사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총파업 이틀째인 6월 8일 오후 부산 남구 신선대부두 입구에서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컨테이너 운반 차량이 들어가는 모습.
#1. 철도차량부품을 수출하는 B사는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물류난으로 중국에서 수입된 화물을 인천항에서 반출하지 못하게 됐다. 이대로 생산 조업이 중단되면 최대 십수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화물 항만 반출에 군 위탁 화물차량을 지원해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2. 신발 제조업체 E사는 국내 생산 원료를 베트남 법인으로 수출해 가공해서 미국으로 완제품을 수출한다. 그러나 물류 경색이 심화하면서 원료 출고와 수출이 지연돼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미국 바이어 납기를 위반할 경우 50만 달러의 위약금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수출입 화주들의 우려가 깊어진 가운데 피해는 이처럼 중소기업들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대기업이나 주요 기관과 달리 야적장이 없고 상대적으로 재고 확보가 어려운 만큼 파업을 미리 알아도 대비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계약에서 ‘을’인 이들은 물류 중단으로 인한 체선료와 보관 비용을 떠안고 납기 지연으로 인한 위약금까지 물게 생겼다. 출고조차 불가능한 탓에 해상물류 대란으로 겨우겨우 확보한 선복에 수출품을 실을 수도 없게 됐다. 선복량 재확보 비용과 그동안 발생하는 재고 비용도 사태가 길어지는 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화주협의회 운영사인 한국무역협회는 5월 31일부터 6월 8일까지 화물연대 파업 관련 애로를 112건 접수했다고 밝혔다. 수출기업의 위약금 발생 애로가 25.9%로 가장 많은 사례를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수출기업 납품 지연(22.3%), 수입 원자재 조달 차질(17%), 수출 선적 차질(12.5%) 등이 뒤를 이었다.
이준봉 무역협회 화주협의회 사무국장은 “지난달 말 애로신고센터를 만들어 운영 중인데 대기업의 경우 2∼3일 버틸 여력이 되지만 중소기업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신선식품 같은 경우 기한이 정해져 있는 만큼 폐기 처분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삼계탕과 오리털 등 생산 직후 출고가 시급한 제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 D사는 3일간 생산분이 1FEU(40피트 컨테이너 하나)에 달하는데 출고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3일 동안 6000만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호소하며 공컨테이너 확보와 적기 출고 및 선적 지원을 무역협회에 요청했다.
정부는 이번 총파업이 사전 예고된 만큼 주요 기업과 항만에서 필요한 운송량을 사전 처리해 놓으면서 당장 큰 물류차질이 벌어지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50여 곳의 물류 거점이 봉쇄되며 개별 기업들과 항만 사이 내륙운송에 차질이 커 화주들의 근심은 여전한 상황이다. 특히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항만 마비는 물론 수출입 기업들의 조업조차 위태로울 전망이다. 철강재에 이어 레미콘과 자동차 부품 등의 조달에도 차질이 생겼다. 충북 단양 시멘트 생산기지나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포스코 포항 제철소 등 주요 생산처에서 출하장이 봉쇄되면서다.
중간재가 제때 납품되지 못하면서 자동차, 조선, 가전 등 주요 수출산업의 조업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현대자동차는 화물연대 총파업 이후 울산공장 조업이 일부 중단됐다가 다시 개시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시작한 7일 국토부에 따르면 항만별 컨테이너 장치율(항만의 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 비율)은 68.1%로, 평시(65.8%)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이는 파업이 이어진 이튿날 69.0%로 소폭 올랐다.
해양수산부는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 비상수송대책을 수립해 본부 비상수송대책반(반장 해운물류국장)을 비상대책본부(본부장 차관)로 격상하고, 항만별 지방 비상수송대책본부는 외부기관과 합동 근무반을 신설해 운영했다. 우선 관용 컨테이너 운송 화물차 총 127대(군위탁 100대, 지방국토관리청 21대, 도로공사 6대)를 주요 항만 등에 투입하고,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필요하면 부두 내 이송 장비인 야드 트랙터가 부두 밖으로 임시 운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한, 자가용 8t 이상 화물트럭 및 견인형 특수차(트랙터)에 대해 운송거부 종료 시까지 유상운송을 임시 허용하고, 긴급 수출입 컨테이너 등에 대해서는 화물열차를 증편 운행하는 등 고객사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아울러 견인형 특수차와 자가용 유상운송허가 차량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재정·민자)하고, 차량 파손 행위로 피해를 본 차량에 대한 보상을 준비하는 등 운송참여 유도책도 병행했다.
광양항은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해 임시 컨테이너장치장과 대체 운송 수단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하루 평균 약 4000TEU를 기록했던 반·출입 물동량은 파업 첫날과 둘째 날 이틀 연속 ‘0TEU’였다. 인천항의 경우 파업으로 인한 항만운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시 컨테이너장치장 확보 ▷비상시 야드 트랙터 임시 도로허가증 발급 ▷군 위탁 차량의 지원 방안 등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전체 컨테이너물동량 4분의 3가량을 처리하는 부산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8일 기준 부산항 전체 부두 장치율은 총 컨테이너 보관능력 한계인 59만2335TEU 중 44만1424TEU를 채우면서 74.5%로 나타났다. 이는 전날 같은 시간대보다 1.1%p 증가한 수치다.
부산항만공사는 총파업 장기화 시 컨테이너장치율이 90%가 넘는 항만 마비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임시장치장 활용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안전운임 전 차종·항목 확대, 운송료 인상 등 주요 쟁점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촉구하면서 무기한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계획이다. 화물연대는 그간 이들 사안에 대해 대정부 교섭을 요구해왔으나 진척이 없자 결국 예고대로 지난 7일 자정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총파업 참여자는 전체 화물 노동자 42만 명의 6%인 2만5000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참가자들 가운데 컨테이너 운송자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져 수출입 업계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수출입 기업들인 화주협의회 측은 화물연대가 보장을 요구하는 안전운임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는 국토부가 매년 분기별로 유가 변동분을 반영해 고시하는 안전운임 이상으로 운송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있다. 고시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할 경우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3년간 한시적인 일몰법으로 도입돼 올해 말까지만 적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화주협의회 측은 안전운임제로 인해 화물 운송요금이 매년 늘면서 물류비 부담이 업종에 따라 최대 70%까지 인상되는 등 평균 30~40% 인상되고, 이에 따라 글로벌 물류대란에 따른 해상·항공 운임 급등에 이어 육상 운임까지 올라가면서 물류비 삼중고에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화주협의회 운영 측인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한 경제 6단체들은 총파업을 앞두고 발표한 공동성명서를 통해 “수출 물품의 운송 차질은 납기 지연 등 해외 바이어들에 대한 계약위반의 원인이 되어 일차적인 손해배상 외에 기업들의 대외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문제를 발생시켜 기업들의 피해는 산술적으로 추정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