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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갑사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절이고 월출산은 전라도 사람 특히 전남사람들 중에 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면 일 년에 적어도 한두 번은 오는 곳이다.
그러나 큰 산이 늘 그렇듯이 매번 올 때마다 변하는 월출산의 모습과 함께 도갑사는 늘 새로운 맛을 준다.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점심때가 되었다.
다섯 사람은 각자 싸가지고 온 점심 보따리를 풀어놓고 둘러앉았다.
경숙과 미세스 김은 싸가지고 온 한 두 가지 반찬을 선생님께 내어놓았다. 그런데 경화는 자기가 싸가지고 온 세 개의 도시락을 내어놓더니 화가 선생님과 철수에게 하나씩 주고 경숙과 미세스 김에게는 자기의 도시락이 다른 것보다 크니 같이 먹자고 한다.
그것을 본 경숙은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화가 선생님이야 선생님이니까 점심을 준비했다고 한다지만 상식적으로 시집을 안 간 처녀가 남자의 도시락을 싸 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 자기가 책임지고 다른 모든 사람의 점심을 준비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미세스 김과 경숙을 제외하고 철수의 도시락만 준비했다는 것이.
광주에서 여기로 오는 차 속에서나 도착하여 도갑사를 둘러볼 때도 철수에 대한 경화의 행동이 이상해서 경숙이 의아하게 생각을 했었다.
경화가 철수를 바라보는 눈길이나 철수를 대하는 행동과 되도록 철수의 곁에 서려고 하는 것을 보고 경화가 철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철수가 그런 경화의 행동을 모르는 체하고 가끔은 일부러 무관심한 체한다는 것이다.
경숙이 화방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미세스 김이나 철수는 몇 번 만났지만, 경화는 거의 만나 적이 없어 두 사람이 만나는 것도 보지 못한 경숙은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아까는 자기가 잘못 본 것인가 했는데 이렇게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철수에게 준다는 것은 확실히 경화와 철수 사이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는 이들과 만난 지가 얼마 안 돼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모르거나 혹 다른 사람들 몰래 두 사람이 만나고 있었던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도시락을 받은 철수의 태도가 또 사람을 혼란하게 만든다.
경화가 주는 도시락을 흔쾌히 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자기도 도시락을 싸왔다고 사양하더니 경화가 거의 떠맡기듯 주고
“남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하는 화가 선생님의 말씀에 할 수 없는 듯 받아서는 미세스 김과 경숙에게 나누어준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며
물론 특별한 음식은 동료가 나누어 먹는 것은 보통 일이나 두 사람에게 거의 다 나누어 주고 자기 것은 한두 젓가락밖에 남지 않았다.
경화가 자기 도시락이 좀 크니 다른 사람과 나누어 먹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그러는 철수의 그 모습에 경화는 뾰로통해지고 경숙과 미세스 김은 경화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경숙은 두 사람의 관계를 헤아릴 수가 없다.
두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사이라면 철수는 고마워하며 받아서 맛있게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쑥스러워 그런다면 경숙과 미세스 김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고, 그러다 철수가 두 사람의 관계가 탄로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연극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이상하게 서먹하게 되고 철수가 나누어주는 음식을 반 어거지로 받으며 경숙이 혹 미세스 김은 알까해서 미세스 김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의문의 눈짓을 했지만 미세스 김은 모르는 척 딴청을 한다.
“경화씨 도시락이 참 맛있네요.”
서먹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경숙이 한 말이다.
그 말에 화가 선생님이
“그래! 맛있지, 손경화 고마워.”하고 응수했고
“선생님한테 맛없는 것이 어디 있어요?”
한 것은 미세스 김이다
“아니 그럼 미세스 김은 경화가 싸온 도시락이 맛이 없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라 선생님이 음식 맛을 제대로 아시겠어요.”
“아니 뭐야? 왜 내가 음식 맛을 몰라?”
“선생님은 노인이시니까 맛감각이 퇴화되어---”
“뭐가? 어째?”
화가선생님이 짐짓 화난 체 해고
“아이고, 깜짝이야! 무얼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내세요.”
“미세스 김이 나를 완전히 노인 취급하는데 그럼 화가 안나?”
“제가 그랬나요. 그렇다면 잘못됐네요.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미세스 김이 능청스럽게 사과를 한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띠우려는 두 사람의 농담에 경숙은 실소를 했지만 철수와 경화는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한다.
그렇게 점심 식사가 끝나고 그림 공부가 시작됐다.
화가 선생님이 각자 도갑사 근처 적당한 곳을 찾아가 적당한 테마를 잡아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
각자 그림 그릴 준비를 하고 자리를 찾아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먹과 물감을 쓰지만 경숙은 아직 물감을 쓰는 단계가 아니어서 먹과 화판을 들고 절 주위를 돌아 절에서 조금 떨어진 장송 밑에 자리를 잡고 저 멀리 보이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산수를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없이 한참을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데 뒤에서
“생각보다 그림을 잘 그리시네요.”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다보니 철수가 뒤에 와있다.
경숙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놀랬네요. 언제 오셨어요? 이제 배우고 있는 걸요.”
얼굴을 붉히며 경숙이 말했다.
“처음 배우시는 데 비해서 잘 그리셔요. 그림에 소질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아니에요. 옛날에 서양화는 좀 그렸는데 동양화는 처음이라 서툴러요. 그래서인지 못 그린다고 늘 선생님한테 꾸중을 들어요.”
“선생님이 그러셨다면 일부러 그러셨을 거예요. 경숙씨를 분발시키기 위해.”
“좋게 보아 주시니 고맙군요. 그런데 철수씨는 그림 다 그리셨어요?”
“네! 그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경숙씨의 그림 솜씨가 궁금하여 와 봤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군요.”
“자꾸 그러시면 제가 정말인 줄 알고 건방져져요.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하고 경숙이 눈을 살짝 흘긴다.
철수는 그 모습이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을 한다.
“이제 제 그림을 보셨으니 철수씨 그림도 보여주세요.”
경숙은 정말로 철수의 그림 수준이 궁금하다.
경숙의 요구에 철수는 순순히 응하고 경숙을 데리고 자기가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간다.
철수는 저만치 폭포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폭포를 중심으로 주변 경치를 그리고 있었다.
철수의 그림은 초짜인 경숙이 보아도 굉장하다.
“정말 훌륭한 솜씨네요.”
“아직은 많이 배워야 합니다.”
“장차 미술계로 나가실 계획이신가요?”
“아직은 그런 계획 없습니다. 지금 직장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취미 삼아 그리고 있습니다.”
“참! 직장이 어디세요?”
“증권회사에 대리로 있습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돈 많이 버시겠어요. 요새 증권회사에 다니는 여직원들도 자기 재산이 보통 이삼 억은 된다는데. 아 실례를 했네요. 미안합니다.”
하는 말을 하고 경숙은 증권회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소문만 가지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후회를 하고 얼른 말을 얼버무린다.
“그 대신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요.”
경숙의 태도를 본 철수는 경숙이 무안해하는 것을 풀어주기 위해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꾸한다.
“그러시군요.”
경숙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경숙씨는 은행에 다니신다고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경숙이 되묻는다.
“선생님께 들었습니다. 경숙씨가 처음 들어오셨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하다가 경숙은 짐작이 갔다.
고모부가 선생님에게 말하셨을 것이라고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뒤로 경화가 다가가다가 둘이서 무엇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웃는 것을 보고는 질투심이 가슴에 번진다.
경숙이 화방에 들어가기 한 달 전까지는 경화와 철수는 연인 사이였다.
경화가 쫓아가고 철수는 달아나는
그때까지는 철수와 경화 그리고 미세스 김 세 사람이 같은 시간에 모여 그림 공부를 했다.
철수가 화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경화는 이미 두 달 전에 그림 공부를 시작하고 있었고 철수가 들어가고 한 달쯤 지난 후 미세스 김이 화방에 들어왔다.
그렇게 같이 공부하는 동안 경화가 철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경화의 감정을 알게 된 철수도 처음에는 경화에게 호감을 가졌지만 사귀면서 집에서 무남독녀로 자라 자기의 과시욕이 강하고 나서기 좋아하며 고집이 센 경화가 자기와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돼 철수는 경화의 성격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이야기했다.
그런 철수에게 경화는 자기의 성격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려주면 고치겠다고 하며 매달렸다.
철수는 몇 번 경화 성격의 단점을 이야기하고 고치기 바랬지만, 경화의 성격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철수는 사람의 성격은 자기의 천성과 자기가 자라온 환경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라고 하고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는 철수를 경화는 포기할 수가 없다.
철수의 태도가 냉정해질수록 경화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이성으로 통제되는 것이 아닌 것인가? 철수의 내정해지는 태도에 남자가 철수뿐이 없는가 하고 철수를 잊으려고 해도 경화는 철수를 떨칠 수가 없다.
사랑이 가슴에 들어오면 머리는 가슴에 종이 되는가 보다
그리고 상대가 싫다고 하면 더욱 다가가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는 병의 특징인지 경화는 철수에게 점점 깊어지는 사랑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더욱 사랑의 공세를 취한다.
철수는 그렇게 집요하게 달려드는 경화가 더욱 싫어진다.
그것도 경화의 성격에 일면인 것 같아서
철수는 고민스러웠다.
경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던 철수는 자기가 경화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그림 공부를 그만두고 경화한테서 오는 전화는 모두 끊었다.
경화는 철수가 화방을 며칠 안 나오자, 그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화가 선생님에게 미안했지만, 그것을 선생님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곤 화가 선생님을 움직여 철수를 화방에 나오게 하려고
“선생님 요새 철수씨가 왜 화방에 안 나와요?”
하고 천연스럽게 물었다.
“아마 바쁜 모양이지. 곧 나오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화가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선생님 전화 한번 해 보세요.”
“왜? 고군에게 무슨 일이 있나?”
“저도 모르죠. 잘 나오던 사람이 안 나오니까 궁금해서 그러죠.”
“회사가 바쁜 모양이지.”
화가 선생님은 같은 말만 하신다.
더 이상 말을 해 봐야 소용이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자기 때문이라는 말은 할 수 없어 경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하고 며칠 더 철수의 결석이 길어지자 평소에 철수의 그림 솜씨에 많은 칭찬을 하고 그를 아끼던 화가 선생님이 갑자기 화방에 나오지 않는 철수에게 연락해서 화방으로 불러내 그림 공부를 게을리한다고 질책을 했다.
선생님의 오해를 풀어드리기 위해 할 수 없이 자기의 고민을 말하는 철수의 이야기를 듣고 난 화가 선생님이 묘안을 냈다.
학생들의 공부 시간을 따로따로 나누워 하면 서로 만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철수와 경화의 수업 받는 날짜를 달리하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그러나 자기가 계속해서 화방을 나오면 자기가 수업받으러 나오는 날이나 시간을 경화가 알게 되어 그녀가 자기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서 기다려 만나려고 할 것이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망설이던 철수는 철수의 재능을 그대로 썩히는 것이 아까워하는 화가 선생님이 잡으며 권하기도 하고 여자 때문에 자기의 취미생활을 접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고 특히 자기가 존경하는 선생님 밑에서 좋아하는 그림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것을 생각해 화가 선생님의 권유를 받았다.
또 한편으로는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확실한 자기 의사 표현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실은 철수를 사랑하시고 경화의 집안 사정을 잘 아시는 화가 선생님이 경화가 철수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서 철수와 경화가 맺어지면 사고무친인 철수에게 많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선생님이 철수를 위해 철수에게 그렇게 권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자꾸 만나면 혹 철수의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서든지 철수와 경화를 만나게 하려고
그런데 효과가 이상하게 나타났다.
며칠 어디를 좀 다녀오느라 후속 연재가 늦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