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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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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단고기』에서 천부경은 “천제 한국에서 말로만 전해지던 글이니, 환웅대성존이 하늘에서 내려온 뒤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이를 기록하게 하였다. 고운 최치원이 또한 일찍이 신지의 전자(篆字)로 기록해 놓은 옛 비석을 보고 다시 서첩을 만들어서 세상에 전한 것이다.
그러나 본조에 이르러 오직 유교의 글에만 뜻을 두고 다시 조의에 뜻을 두어 그 글을 듣고 보존하려들지 않았으니 참으로 한스럽기 그지없다. 그런 까닭에 이 천부경을 특별히 밝혀 세상에 내놓아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 한다.”고 한다.
여기서 천부경은 환웅이 명령하여 지은 것으로 나온다. 『한단고기』 범례에 따르면 「태백일사」는 이맥이 편찬한 것을 이기가 소장한 것이라고 한다. 『한단고기』는 계연수가 편찬한 것으로 그는 스승 이기의 집에서 「태백일사」와 「삼일신고」를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계연수가 묘향산에서 천부경을 발견하고 단군교 교당에 보낸 글과 약간 다르다. 계연수가 보낸 글에서는 “단군께서 태백산 단목아래 내려오실 때, 가지고 온 천부경”이라고 한다. 단군 천부경 81자를 신지가 전자로 옛 비석에 새긴 것을, 최치원이 그 글자를 풀어서 새겼다고 한다.
계연수는 ‘단군이 신인이고, 천부 삼인을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스승으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천부삼인이 곧 천부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천부경을 외우면 재액이 길상으로 바뀌고, 성질 나쁜 사람이 어질고 착한 사람으로 바뀌고, 그것이 오래되면 자손이 번창하고, 장수와 복락이 이어져 신선이 되는 결과를 얻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가지게 되면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계연수는 명심하고 있다가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을 하였고, 그것을 다시 찾아서 탁본을 하였다고 한다. 그것을 집에 가지고 와서 해석하였으나 풀지 못하고, 마침 서울에서 온 사람이 서울에 단군교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길에서 서울 사람을 만나 보냈다고 한다.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이나 김택영의 『김택영전집』에서도 모두 단군을 이야기한다. 계연수가 전한 천부경을 세상에 알린 단군교에서는 환인, 환웅, 단군이 시대에 따라 달리 부른 것이지만 하나라고 한다. 반면에 『한단고기』에서는 환웅의 신시배달국 시대와 단군의 시대는 달리 규정되고 있다.
먼저 천부경을 만들게 한 주인이 환웅인지 아니면 단군인지 먼저 밝혀져야 할 것 같다. 아마도 단학회 혹은 단단학회 쪽에서는 환웅을 중시하고, 대종교 또는 단군교 쪽에서는 단군을 중시하는 것 같다.
일제시대에는 단군교가 있었지만 나철이 대종교로 바꾸었고, 그 사이에서 정훈모가 다시 독립해나가면서 단군교가 새로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 이유립이 단학회를 만드면서 이기-계연수-이유립의 계보를 세웠다. 그런데 이유립의 단학회에서는 계연수가 묘향산에 천부경을 스스로 새겨 넣은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참고로 「삼일신고」는 『한단고기』에서는 환웅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고, 대종교에서도 환웅이 지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둘째는 서첩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언급도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두 문제는 중요하지 않지만 천부경의 정확한 유래를 위해서도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 두 개의 천부경에서 모두 관련된 인물이 계연수란 점도 공통이다. 한 사람의 인물이 두 개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2) 천부경도의 문제
계연수는 묘향산에서 천부경과 천부경도를 전했다. 두 가지는 모두 『단탁』창간호에 실려 있다. 그런데 천부경은 세상에 알려졌지만, 천부경도는 묻히고 말았다. 전병훈이나 김택영의 주석에도 나오지 않고, 그 외의 한국 연구자들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한단고기』에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하도·낙서를 통한 천부경의 해석
3) 천부경의 해석
(1) 하도낙서를 통한 천부경 해석
기존의 연구는 천부경을 해석하는데 하도낙서를 이용하였다. 첫째는 천부경에 十과 九가 나오는데 이는 각각 하도의 十과 낙서의 九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천부경에는 ‘六生七八九’란 구절과 ‘一積十鉅’란 구절이 있고, 하도에는 一부터 十까지의 수가 나열되어 있고, 낙서에는 一부터 九까지의 수가 나열되어 있다. 천부경의 九와 十은 하도낙서의 九와 十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九와 十이 다른 체계를 갖는 것으로 설명됨을 뜻한다.
천부경의 '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 五七一妙衍'을 설명하는 데 하도와 낙서를 이용하는 연구가 있다. 하도는 복희가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무늬를 보고 지은 것이라고 하고, 낙서는 우임금이 낙수에서 나온 거북의 무늬를 보고 지었다고 한다. 전병훈은 「동한신성 단군 천부경」에서 먼저 人二三大三合六과 生七八九를 끊어서 해석을 한다. 즉 삼양(三陽)과 육음(六陰)으로 대삼합육(大三合六)을 해석한다.
그리고 뒤의 生七八九를 해석하면서 "(천지인) 삼재가 서로 만나 감육(坎六)의 수(水)가 동팔(東八)의 목(木)을 낳고"라고 한다. 六이 七八九를 낳는 과정을 “東八의 木은 남칠(南七)의 화(火)를 낳고, 南七의 火는 중앙의 토(土)를 낳고, 토는 서구(西九)의 금(金)을 낳는다”고 해석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하도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데 전병훈의 해석에서는 6-8-7-5-9의 순서로 되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六生八七五九가 되어야 한다. 천부경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이 발생한다.
둘째는 이준우는 「천부경정해」에서 하도는 一부터 十까지 되어 있고, 낙서는 一부터 九까지 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수는 五와 十이라고 한다. 따라서 천부경 해석에 있어서 一이 중심수가 아닌 五와 十을 중심수로 하는 해석을 하다 보니, 成環五七은 成環五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五는 생수이고 十은 성수이다.
그래서 생수와 성수가 고리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十이란 하도 수에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運三四는 一(수)+二(화)=三(목)+一(수)=四(금)이 된다. 運三四는 木과 金이 된다. 木은 자전운동ㆍ상승운동, 金은 공전운동ㆍ하강운동이라는 것이다. 木이 왜 자전운동인지, 金이 공전운동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하도의 수와 運三四가 연결이 되지 않는 문제점을 낳는다.
셋째 박영호(유영모)는 천부경의 六生七八九와 五七一을 낙서에 적용하여 설명한다. 먼저 六生七八九에서 九에 주목한다. 일부터 九까지 이루어지 것은 낙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九를 주장한 낙서는 우주를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五七一은 五에서부터 일곱 번째가 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五七을 五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五七一을 억지로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五 다음에 七을 ‘일곱 번째’라고 해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수와 기수의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五와 七을 달리 해석하는 것이다.
(2) 하도낙서의 역사적 고찰
하도낙서를 가지고 천부경을 해석하는 방식은 동일성에만 초점을 두었지 그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을 보지 못한다. 하도낙서의 경우 역사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하도와 낙서는 송대 이전에는 그림으로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림으로 나타난 것은 송대 이후이다. 송대 이전에는 글로서만 존재하였다. 『상서 고명』에서는 동쪽에다 하도를 진열하였다고 되어 있고, 낙서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이것도 옥기들과 같이 배열된 보석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고명편은 康王때의 일로 언급되고 있고 그 이전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춘추 전국시대로 들어와서야 聖王이 천명을 받은 상서로운 징표로 소개되고 있다. 공자는 “봉황이 이르지 않고 하도가 나오지 않으니, 나는 끝났구나.”라고 하여 낙서는 보이지 않고 하도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관자 소광』에 와서야 하도와 낙서를 언급하고 있다.
“옛날 사람이 하늘의 명령을 받은 자는 용과 거북을 빌어서 하도와 낙서가 나오고, 땅에서 승황(乘黄)이 나왔으니, 지금 세 가지 상서로운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하도와 낙서 이외에 승황이란 것도 제시하고 있다. 『회남자 숙신훈』에서는 성인이 다스릴 때, 낙수에서 붉은 책이 나오고, 황하에서 녹색 그림이 나왔다고 되어 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하도와 낙서가 나오자 성인이 본 받았다고 되어 있다. 공자나 관자 등에서 보이는 하도와 낙서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고, 성왕의 징표로만 설명되고 있다.
한대에 들어와서 반고는 『한서 오행지』에서 하도는 팔괘라고 하고 낙서는 홍범구주라고 규정한 유흠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유흠은 복희가 하도로부터 주역의 팔괘를 만들고, 우가 낙서로부터 상서 홍범구주를 기술하였다고 한다. 팔괘는 음양론적인 사고이고, 홍범은 오행론적인 사고이다. 하도와 낙서를 팔괘와 홍범으로 보는 것은 음양오행론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하도와 낙서를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한 것이지만, 춘추 전국시대의 성왕의 징표라고 하는 해석과 차이를 보인다.
한 대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참위도서들이다.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하도적복부』(河圖赤伏符), 『하도함고편』(河圖含古篇), 『낙서견요도』(洛書甄曜圖), 『낙서녹운기』(洛書錄運期)가 그것이다. 장형에 따르면 하도는 모두 45편이고 여기에 유가경전의 참위도서 36편을 더해 모두 81편이 있다고 한다. 참위도서는 왕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해 미래의 예언적인 글로, 經에 대한 緯로 설명되어진다. 이러한 참위도서의 유행은 후한대 철학에서 일반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정현은 “하도는 건과 통하여 하늘이 둘러쌈을 나타내고, 낙서는 곤으로 흘러 땅의 징표를 드러낸다.”고 하여 참위적인 성격을 주장한다.
정현은 하도의 본문은 9편, 낙서의 본문은 6편 모두 16편이고, 그 밖의 하도낙서는 30편이고, 여기에 유가경전 36편이 있다고 함으로써, 장형과 다른 숫자를 제시하기도 한다. 참위도서의 내용은 전한대와 달리 다시 성왕의 징표로 해석한다. 북두성이 지신과 결합하여 낳은 것이 황제이고, 황제의 이마는 넓고 용의 모습을 하였으며, 낙수가에서 하도를 얻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밖에도 복희, 창힐, 요, 순, 우, 탕, 문왕, 공자 등의 신화가 하도낙서 참위도서에 실려 있다. 하도낙서가 여러 왕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한 왕에 귀속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위진시대에도 여전히 참위도서가 유행한다. 『공자하락참』(孔子河洛讖), 『하도요원편』(河圖要元篇), 『상청하도내현경』(上淸河圖內玄經), 『태상하도보록』(太上河圖寶籙) 등이 있다. 수당대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수서 경적지에는 하도 20권, 하도용문 1권, 그 밖의 유가경전 13권, 모두 92권이 전한다. 그러나 당대 경적지에는 하도낙서의 참위서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하도낙서의 참위도서가 시대마다 다르게 나오는 것은 각 시대마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송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하도낙서 설명에 변화가 온다. 그림이 등장한 것이다. 첫 시작은 유목(劉牧)이다. 유목은 검은 점과 흰 점을 가지고 하도낙서를 설명한다. 하도는 9에서 끝나고 모두 45개의 점이 있고, 낙서는 10에서 끝나고 모두 55개의 점이 있다. 전자를 구궁수라고 하고, 후자를 오행생성수라고 한다. 하도에서는 5가 역할을 하지 않아 1-9, 2-6, 3-7, 4-6의 네 개의 조합과 여덟 개의 수가 있으니 사상팔괘에 해당하고, 낙서는 5-10이 역할을 하여 1-6, 1-7, 3-8, 4-9로 이루어지니 오행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주희와 채원정은 이를 비판하고, 하도는 10수로 55개의 점, 낙서는 9수로 45개의 점이라고 한다. 하도와 낙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는 한 대 유학자들은 하도를 8괘로 보았는데, 8괘는 주역에서 나오고, 주역에서는 천지의 수는 55라고 하는 것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한 낙서는 홍범구주로 9수가 맞다고 한다. 주희는 이러한 사고가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 소옹(邵雍)에게서 온 것이라고 한다. 소옹이 원은 하도의 수이고, 방은 낙서의 수라고 한 것에 대해서, 주희는 원은 하도이고, 방은 낙서라고 해석한다.
55개의 점은 사방은 있지만 사각이 없기 때문에 원이 되고, 45개의 점은 사방도 있고 사각도 있기 때문에 각이 된다고 주장한다. 주희는 하도에서 1 6은 북, 2 7은 남, 3 8은 동, 4 9는 서, 5 10은 가운데에 배치한다. 이것은 일음일양과 오행을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희는 점을 치는 과정에서 시초점을 뽑는 결과로 육칠팔구가 나오는 것(老陰, 老陽, 小陽, 小陰)은 하도의 6 7, 8 9와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하도낙서는 태극도설과 일치하는데 태극은 하도낙서의 가운데를, 양의는 음양을, 사상은 하도의 일육ㆍ이칠ㆍ삼팔ㆍ사구와 낙서의 일구ㆍ이팔ㆍ삼칠ㆍ사육을, 팔괘는 하도낙서의 네 변과 모서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유목은 ‘일과 육이 아래에 거한다’(一六居下)를 구주로 해석하고 이를 하도에, ‘구를 이고 일을 밟는다’(戴九履一)를 낙서로 해석한다. 반대로 주희는 전자를 낙서에 후자를 하도에 배당한다. 이러한 대립은 각기 전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옳은지 확정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청대에 들어가면 고증학이 발달하면서 하도낙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시작된다. 하도낙서에 대한 회의는 이미 송대 구양수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구양수는 하도낙서에서 하도가 팔괘라고 한다면, 계사전의 하도낙서 내용과 복희씨가 하늘과 땅을 본받아서 팔괘를 만들었다고 내용의 모순점이 생긴다고 한다. 하도가 나왔는데 팔괘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면 복희는 그것을 받았을 뿐이어서 다시 할 일이 없는 것이고, 팔괘가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인력으로 만든 것이어서 하도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이는 하도낙서의 근거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구양수는 하도만을 말하고 낙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러한 회의적인 시각은 모기령의 『하낙원천편』(河洛原舛篇), 호위(胡渭)의 『역도명변』(易圖明辨)이 계승한다. 모기령에 따르면 하도낙서는 원래 그림이 아니라 서적으로 형태로 되어 있고, 진단의 무리가 정현의 오행 생수와 성수를 하도로 하고 위서 구궁도를 낙서라고 한 것을 절취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후대인들에 의해서 견강부회하여 근거 없는 주장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흑백점의 도식은 유학 이외의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도교 쪽에 관련되는 것이지 유가 경전에 섞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호위는 하도낙서에 관해서 가장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원래 하도가 있었지만 그것이 잃어버리게 되고 송대에서 귀신을 그린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한다. 하도가 45수로 되어 있고 흑과 백으로 표시한 것은 유목의 「용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다시 채원정과 주희가 하도과 낙서의 그림이 바뀌었다고 비판하면서, 하도낙서에 관한 쓸데없는 주장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도와 낙서를 도상으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인 셈이다. 또한 낙서를 홍범구주로 해석하고, 그것을 구궁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구궁은 천자가 계절에 따라 다른 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 수레, 옷, 음식도 달라야 하고, 이것을 어기면 음양이 질서를 잃고 하늘에서 재앙이 내린다고 한다. 이것을 낙서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호위는 하도낙서와 주역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문제제기 한다. 호위는 주역을 하도낙서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한다. 하도낙서는 복희가 세상을 관찰한 뒤에 나온 하나이지, 하도낙서가 주역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음으로 천지의 수와 하도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천지의 수가 하도라면 먼저 공자가 이것을 하도라고 이야기하였을 것인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 도교에서의 하도낙서에 대해 살펴보자. 도장에서도 하도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태상동신태원하도삼원앙신사의』(太上洞神太元河圖三元仰謝儀),『동현영보하도앙사삼십육토황재의』(洞玄靈寶河圖仰謝三十六土皇齋儀), 『동현영보하도앙사삼십육천재의』(洞玄靈寶河圖仰謝三十六天齋儀) 등이 있다. 이들을 살펴보면 주로 그림은 보이지 않고 글만 있고, 여러 신들에게 제사지내면서 참회를 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도낙서의 그림이 본격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송말원초대의 진사제(陳思齊)의 『역도통변』(易圖通變)에 와서이다. 그 속에 「하도변증」(河圖辨證)과 「하도유론」(河圖遺論)이 있는데, 그는 유목의 주장을 따라 하도는 9수, 낙수는 10수라고 주장한다. 그 밖의 사대통(赦大通)을 비롯한 도교학자들은 주희의 하도낙서설을 따르고 있다.
결국 우리가 보는 하도낙서는 주희 때 만들어진 것이다. 주희의 권위가 하도낙서를 복희 시대의 작품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3) 천부경과 하도낙서의 六 천부경 81자를 아홉 자씩 나열하면 한 가운데가 육이다. 그것은 육이 그만큼 중심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천부경에서 ‘六生七八九’가 있는데 여기서 六은 七八九와 다른 존재로 설명되고 있다. 반면에 하도낙서에서 六은 七八九와 같은 존재로 설명된다. 그런데 천부경에서는 제시된 육은 원래 1-3-9의 구조에서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육은 하도의 1+5=6, 낙서의 4-6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하도는 일이삼사가 오를 중심으로 육칠팔구로 전환된다. 이는 오행으로 해석될 수 있다. 一·六은 水, 二·七은 火, 三·八은 木, 四·九는 金, 五·十은 土이다. 일이삼사는 생수(生數), 육칠팔구는 성수(成數)라고 한다. 낙서에서는 1-9, 2-8, 3-7, 4-6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천부경에서 육은 천지인+천지인에서 나오는 것이다. 혹은 천(一), 지(二), 인(三)이 합쳐서 나온 글자(一+二+三)라고도 한다. 육은 천지인이 다시 천지인의 九로 나누어지기 전에 한번 전환하는 계기인 것이다. 그 육은 숫자 일이삼사오와는 다른 숫자를 의미한다. 육은 칠팔구와 다른 차원이면서 일상적인 일이삼사오와도 다른 차원이다. 앞의 육은 칠팔구를 낳는 차원이고, 뒤의 육은 개별 숫자의 육이 아니라 천지인+천지인을 의미하는 중요한 수인 것이다. 다음은 이 육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그 차이점을 알아보겠다. 먼저 회삼경에서는 육의 의미에 대해 육이 중심적인 수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선후천수를 제시하고 있다. 회삼경에서는 선천수를 오로 보고 후천수를 육으로 본다. “선천의 셈[先天數]은 하나로 비롯하여 다섯으로 중간이 되고 아홉으로 끝마치며[始一中五終九], 후천의 셈[後天數]은 둘에서 비롯하여 여섯으로 중간이 되고 열에 끝마치나니 [始二中六終十], 그러므로 하나 다섯 아홉은 세 홀수[三奇]라 이르고, 둘 여섯 열은 세 짝수[三耦]라 한다.” 이것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선천수에서는 오가 중심이지만, 후천수에서는 육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후천수에서 육이 중심이고, 일은 생략되어 있고 십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뒤에서 나오는 것처럼 일이 다른 수와 차원이 다른 본체수임을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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