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개드립 - [실화] 안양 석수동 할머니댁 ( http://www.dogdrip.net/89952790 )
생각해 보니 나도 괴담 비스므리 경험담이 몇 개 있다.
다음은 99% 내 경험담이다. 1% 는 일기에도 적어 놓지 않은 경험이기에 혹시 모를 기억의 오류이다.
난 90년대 신촌에서 대학을 다녔다. 집은 성남이었다.
보통은 신촌역 에서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가끔 종로나 시내에서 모임이라도 있으면 광화문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곤 했다.
어쩌다 시내에서 밤 늦게 술이라도 먹게 되면 12시 이전에 모임을 마쳐 야지 마지막 지하철을 탈 수 있었고
그걸 놓치면 새벽 1시 쯤 성남 종점으로 돌아가는 36번 좌석 버스가 막차였고 그 마쳐 놓치면 택시 타고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대학생이었던 내게 시내에서 성남시 까지 택시비는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어서 마지막 술값 지불 하고 나면 간신히 좌석 버스 요금만 달랑 남아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래서 막차를 놓친 날은 택시 말고 마지막 찬스가 한번 더 있었는데 그건 같은 정류장에서 안양 가는 104-1 번 좌석 버스였다.
안양에는 따뜻한 보금자리인 외가댁이 있었고 외박을 해도 집에 전화 한 통화면 부모님을 안심 시켜드릴 수 있는 좋은 핑게거리 였다.
그래서 안부도 드릴 겸 겸사 겸사 심야 외할머니 댁에 방문 하곤 했다.
할머니 댁은 관악역 바로 옆 박달동 이었는데 안양과 서울의 경계선 부분 쯤 , 서울 가기 마지막 주유소와 관악역 중간 쯤 위치했다.
집 자체는 그냥 평범한, 좀 허접한 주택이었는데 곧 그 동네가 재개발 된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이었다.
새벽에 할머니 댁에 가면 보통은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아서 살짝 열고 들어갈 수 있었고 할머니 깨우기 싫어서 사랑방에 조용히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인사하곤 했다.
안방은 할머니가 쓰시고 사랑방은 이혼한 이모의 아들인 이종사촌 동생이 쓰고 있었는데 10살이나 어린 그 녀석과 슬쩍 같이 이불을 덮고 자곤 했다.
할머니에게 나는 그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대학생 외손자 였기에 절대 잔소리 하시거나 캐묻는 거 없이 아침엔 꼭 해장국에 쌈지 돈 용돈 까지 얻어 타곤 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92년 졸업을 하고는 바로 군에 입대했다. ROTC 여서 장교로 임관했는데 장기복무를 해서 6년 근무 했으니 94년이나 95년 쯤 된 것 같다.
한번은 휴가를 나왔다가 대학 연합써클 모임에 참가를 했다. 본부가 광화문이라 의례히 종로에서 밤 늦게 까지 술 먹고 학창시절 같이 광화문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새벽 1시를 넘기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36번 버스를 놓치고 104-1번을 타고 안양으로 향하게 되었다.
마치 학창시절의 어느 날 같이.
나는 어릴 때 부터 집에서 워낙 엄격하게 술을 배워 평생 취해서 단 한번도 실수라고는 해 본 적이 없었고 당시에 맥주 3000cc 정도 먹었던 것 같았다.
그때는 최고 7000cc 까지 먹은 적도 있었으니 3000이면 그냥 기분 좋게 취한 정도였다.
안양까지 버스 타고 중간에 정확히 정거장에서 내려서 할머니 집까지 찾아갈 정도였으니 만취는 아니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한 나는 주무시는 할머니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 바로 사랑방에 들어가서 여느때와 같이 사촌동생과 슬쩍 같이 자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왜 그리도 꿈에 악몽이 심하던지 세상의 모든 귀신이란 귀신은 다 만난 것 같았다.
지금도 생생한 그 밤의 느낌은 영화에서 봤던 늪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걸쭉한 반 진흙 늪 위에 얇은 비닐을 펴서 깔고 그 위에 눕는 느낌. 축축하고 차가운 늪으로 몸은 가라 앉고 비닐은 같이 빠지면서 내 몸을 감싸서 숨도 쉬기 힘든
그런 느낌.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겁을 주는 그 귀신들.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아직도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귀신이 그리 무섭지도 않다. 그날도 나를 겁주는 귀신들이 무섭다기 보다는 귀찮았다.
나의 달콤한 잠을 방해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귀신들은 집요했다. 아마도 꿈을 꾸다가 말다를 반복했던 것 같은데 다시 꾸는 꿈엔 어김 없이 같은 귀신들이 달려들었다.
느낌에 몇 시간을 이렇게 시달렸을까 꿈속의 꿈 같이 조용하고 굵직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몇 해 전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여~서 모하노? 일라라' 하는 것이었다.
가위 눌려서 어물쩡 하게 허우적 거리는 나에게 다시 손을 내밀고 빨리 일어나라고 독촉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난 잠에서 깼다.
헉~ 그런데 ....
창문 틈새로 보이는 밖은 벌써 밝아오는 새벽이었고 뻥 뚫린 시야에 집안이 뭔가가 이상했다.
원래 창 밖은 옆집 담 벼락이었는데 ....
내가 덮고 잔 이불은 이불이 아니고 벽에서 뜯겨 떨어진 벽지였고 베니아 합판 천장은 반쯤 내려와 있었다.
책상과 장농 가구들도 사라졌었고 지저분한 게 마치 흉가 같이.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밖으로 나왔는데 이런...
할머니 집이 있던 그 블록의 100채 쯤 되는 집은 몽땅 사라졌고 마치 '알박기' 하는 집 모양으로 할머니 집만 단 한 채 달랑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기찻길 쪽에 붙어 있는 집들 먼저 허물며 찻길쪽으로 나오다 보니 할머니 집이 제일 마지막 순서였던 것 같았다.
할머니 집도 이미 철거를 시작한 듯 담벼락은 다 무너져 내려있고 천장은 구멍이 뚫려 있어 바로 부서질 듯한 모습이었다.
헉, 이런, 내가 저런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니...
그때서야 몇 년 전에 할머니가 시내에 있는 삼촌 집으로 이사 갔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삼촌집에도 가서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군 생할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데 .....
간밤에 술 취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안방에 계신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고 할머니는 여어 잘 자라고 대답했는데 .....
내 옆에서 자고 있던 사촌동생은?
그냥 착각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너무 생생했는데....지금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그때는 별 큰 감흥 그냥 넘어 갔었다. 누구에게 말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깨웠던 외할아버지의 영령은 아끼는 외손주를 지켜 주고자 한 외할아버지의 영령이었나?
아님 그냥 하룻 밤의 꿈에 불과한 흔한 경험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글을 쓰려고 그때 기억을 되살려 보는데 2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꿈 만큼 생생하고 칙칙한 꿈은 이후에 다시 꿔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첫댓글 헐 ㅁㅊ
할부지아녔음 위험했겠는데
삭제된 댓글 입니다.
95년도면 지금이랑 틀리니까.. 석수1동이 관악역인데 그뒤가 박달동맞아.. 더 소름은 저 사람이 말한 재개발한지역이 나지금 사는곳 근처... 시이발 무서워ㅠㅜ
신기하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 주절주절 쓰는데 차라리 간단하게 쓰는게 더 나았을듯
헐 홀렸나보다 할아버지ㅠㅠㅠㅠㅠ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