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주리 고내마을 포구 용주리 고내마을 포구의 한가로운 어선
해 뜨는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구름 속에 숨어든 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늦장을 부리다 9시께가 다 되어서야 잿빛구름 속에서 살며시 어둠을 털어낸다. 용주리 가는 길. 가막만의 포구 모퉁이에 다다를 즈음 해는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이 멈춰선 듯 고즈넉하고 산길, 저 멀리 양식장엔 어선이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쏟아지는 햇살, 바다에는 금빛 물결 잔잔하게 일렁이고 햇빛은 구름 사이에서 수만 갈래로 쏟아져 내린다. 포구의 한가롭고 텅 빈 밭 자락에서 장끼가 울며 푸드덕 날아오른다. 여수 소호동에서 굽이진 고갯길을 넘으면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이다.
▲ 산길 세상이 멈춰선 듯 고즈넉하고 산길
▲ 어선 배는 포구에 결박당한 채 하릴없이 출렁인다.
하릴없는 어선은 거의 반년을 저렇듯 말없이 발이 묶이고...
고내마을 포구에서 만난 권오현(74)할아버지는 갯일을 안 하느냐 묻자
“요즘은 없어. 어쩌다 낙지배가 한두 척 다니지, 아무것도 없어 여기는 해변산중이여.”
애완견과 함께 산책 나온 할아버지는 멸 배(멸치 배)가 끝나면 용주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배는 포구에 결박당한 채 하릴없이 출렁인다. 거의 반년을 저렇듯 말없이 발이 묶여있단다. 할미새가 주변을 살피며 어선사이를 자꾸만 맴돈다. 아마도 어선 어디엔가 둥지가 있는 모양이다.
어부가 닻줄을 끌어올리더니 바다의 정적을 깨뜨린다. 바다에 나가느냐. 뭐 잡으러 가느냐? 소리쳐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시운전이다. 포구에 떠있는 바지선에는 왜가리 한 마리 홀로 서있다.
▲ 씨도 안 보여 옛날에는 방파제에서 해삼도 많이 잡고 그랬는데... 지금은 씨도 안 보여.
▲ 결박당한 어선 거의 반년을 저렇듯 말없이 발이 묶여있다.
▲ 장독대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의 장독대
“바다를 살리려면 우선 생활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지 않아야 돼.”
용주리 마을 길가에는 300년 된 팽나무 고목이 있다. 이 고목나무의 높이만도 무려 16m나 된다. 먼 옛날 할아버지 때부터 마을을 지켜왔다고 한다.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의 장독대는 구차한 살림살이를 말해주는 듯하다. 마을 주민 김만식(53)씨는 해가 갈수록 해산물이 줄어든다고 말한다.
“죽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다 생활오폐수와 화장실 때문이죠. 옛날에는 방파제에서 해삼도 많이 잡고 그랬는데... 지금은 씨도 안 보여. 방파제 쌓느라 새 돌을 갖다 놓으면 해삼과 고기가 많이 들었어요. 아마도 그때는 오염이 안 돼서 그랬나 봐요.”
“바다를 살리려면 우선 생활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지 않아야 돼. 세제물이 안 내려와야 해, 오폐수가 흘러드는 곳은 다 썩었어.”
▲ 산책 애완견과 함께 산책 나온 할아버지
▲ 호두리 포구 호두리 포구
▲ 지평선 안개 뒤덮인 지평선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이상고온과 흘러드는 오폐수로 인해 바닷가 청정마을이 병들어가고 있다. 바다에는 생활쓰레기 부유물이 떠다니고, 팽나무 근처의 하늘에는 하루살이가 떼 지어 날고 있다.
“금년에는 따시다 안 합디여. 햇빛 나면 눈을 못 떠, 새까매~ 날이 따신께. 쪼끔 있으면 겁나 겁나 눈으로 코로 막 들어가...”
용주리 고내마을을 가로질러 조금 오르면 호두리 가는 길이다. 여우머리를 닮았다하여 ‘여우호’와 ‘머리두’를 써서 호두리란 지명이 붙었다. 호두리 마을회관 앞에서 어르신이 멸치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바다는 잔잔하다. 포근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바로 앞에는 대섬 죽도가 있다. 안개 뒤덮인 지평선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고요한 바다에서는 이따금씩 괭이갈매기 울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