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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의 상수, 박근혜의 '힘'/[고성국의 '박근혜論']<1>박근혜 '독주'구도 유지될까?
사실상 본선으로 여겨졌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석패한지 3년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여전히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다. 혹자는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대세론은 없다"고 얘기하고, 또다른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에 들어 "현직 대통령은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특정인을 대통령이 될 수 없게 할 수는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지만 박근혜는 2012년 대선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 정치판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다. 이명박 정부의 중간 평가라 할 수 있는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정치권이 빠르게 '대권모드'로 정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복잡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면서 4선 국회의원이자 이미 한번 대권에 도전했던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분석은 의외로 찾아보기 힘들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배경에 기반한 열광이 아니면 비난이라는 극단의 논설만 존재한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정권교체라는 사건을 두번 경험한 한국정치 현실에서 다시 주목받는 논의가 새로운 리더십과 리더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바람직한 리더와 리더십을 논함에 있어 이론적이고 원론적인 차원의 논의도 중요하지만, 개별 정치인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고, 이는 언론이 할 수 밖에 없다고 보여진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의 '박근혜論'을 연재한다. 이후 야권의 대선주자들에 대한 분석도 준비할 계획이다. 고 박사의 '박근혜論'은 주 2회, 총 10회에 걸쳐 실린다. 편집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한나라당에 역풍이 몰아닥쳤을 때부터 박근혜는 한국정치의 상수가 됐다. 그 후로 박근혜는 가장 응집력 높은 대중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탄핵역풍에 떠내려갈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지켜냈고 천막당사를 감행해 '차떼기당'의 이미지를 날려버렸다. 재보궐 선거에서 40:0이라는 굴욕적인 참패를 참여정부에게 안겨준 사람도 박근혜였고 2006년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이끈 사람도 박근혜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전은 박근혜를 위한 경선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는 경선을 예측불허의 초접전으로 끌고 가 경선흥행 효과와 예방백신 효과를 극대화시켰고, '아름다운 승복'을 연출해 전당대회를 한나라당의 축제로 마무리했다. 박근혜는 압도적으로 앞서가던 이명박 후보로부터 국정동반자 선언과 함께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고 'BBK사건'으로 이명박 후보가 낙마할지도 모른다면서 출마를 강행한 이회창의 손을 끝내 들어주지 않음으로써 '이회창의 반란'을 찻잔 속의 태풍으로 가두고 이명박 압승 구도를 최종적으로 확정지어주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고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현존권력이 군림하는 상황에서도 박근혜의 파워와 영향력은 줄지 않았다. 정부출범 두 달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친이 직계의 거칠 것 없는 '공천학살'에 맞서 친박진영을 구축해 진지를 고수하고, '공천탈락자들의 옹색한 자구책'이라는 세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당명으로 내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 출마자들을 30여명 가까이 당선시켜 '공천학살'을 무력화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재보궐 선거와 미디어법 파동을 거치면서 박근혜는 비껴서 있되,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 꼭 필요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는 '절제의 미학'을 보였다. 그런 박근혜가 세종시 국면에서는 그간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터프한 인파이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제대로 된 연설이나 대국민담화 한 번 없이, 그 흔한 인터뷰 한 번 하지 않으면서도 만들어내는 박근혜의 위력적인 파워와 계측하기 어려운 영향력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손학규의 부상…박근혜 '일인독주체제'에 변화 바람 부나?
다음 대통령 선거는 2012년 12월이다. 아직은 2년이나 남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2012년이 밝아옴과 동시에 대통령 선거가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1년부터 모든 정치역학은 2012 대선구도를 중심으로 다시 짜여질 것이 분명하다. 아니 정치역학의 재편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박근혜의 8.21 비밀회동 후 범여권 내에서 계파 완화의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탄력을 받고 있는 양상도 그렇고, 민주당이 손학규를 내세우면서 한나라당의 김문수, 오세훈과 중원 쟁탈전을 벌이기 시작한 양상도 그렇다. 이명박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정국이 어느 사이엔가 박근혜, 손학규, 김문수, 유시민, 오세훈 등 차기 주자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최근 수직 상승하고 있는 손학규의 지지율이 일시적인 '전당대회 효과'에 그칠지 "잃어버린 600만 표"를 되찾아 올 블루칩에 대한 '지속적인 표 쏠림'으로 연결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손학규의 부상으로 박근혜 일인독주 체제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학규와 유시민, 김문수와 오세훈은 수도권과 중간층의 지지를 놓고 밀고 당기는 길항관계에 있다. 박근혜는 이 중원대결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과 중간층을 둘러싼 경쟁, 이른바 중원쟁탈전이 격화될수록 박근혜의 행보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비록 차이가 많이 나는 2위 싸움이지만 싸움이 있는 한 그 싸움터로부터 너무 주변화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수도권 유권자들과 중간층은 이념지향성보다는 이슈지향성이 강하고 고정성보다는 변동성이 크다. 2007년 대선에서 530여만 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도 이들이고 그 불과 몇 달 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도 이들이다. 6.2 지방선거 때 투표장에 '몰려가' 이변을 만들어 낸 사람들도 이들이며 손학규가 틈만 나면 외치는 "잃어버린 600만 표" 또한 이들이다.
바야흐로 중원싸움이 막 시작되었다. 깃발을 먼저 올린 쪽은 민주당이다. 당연하다. 언제든 도전자가 먼저 링에 오르는 법이니까.
2012년 대선은 박근혜와 '반박근혜'의 쟁투
박근혜는 지금의 구도를 잘 유지, 관리해가려 할 것이다. 10.1 청와대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과 18대 국회의 성공을 위해 건배한 것은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반면 여당 내 반박근혜 진영과 야당에게 2011년은 '박근혜 절대 우위 구도'를 흔들어야만 할 절대절명의 승부의 시기가 될 것이다.
만약 2012년 상반기까지도 '박근혜 절대 우위 구도'가 유지된다면 2012 대선의 승부는 사실상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지지율이 보여주고 있는 높은 응집력이 '마지막 승부'를 앞두고 갑자기 이완될 것도 아니고 2002년의 노무현처럼 들불과 같이 번져갈 휘발성과 확산성을 갖춘 새로운 후보를 또 다시 기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지키려는 박근혜와 흔들려는 반박근혜 세력 간 쟁투는 우리 정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다소 이른 느낌이 없지 않은 2010년 말에 2012 대선을 전망하는 평론을 시작하게 된 이유도 이렇듯 예상 밖으로 빨리 움직이기 시작한 대권 주자들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정치지형을 제대로 읽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프레시안>의 문제의식 때문이다.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은?/[고성국의 '박근혜論']<2> 대중성, 타이밍 감각, 화법에 대해기사입력 2010-10-28 오전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고 정치인은 대중의 지지를 먹고 산다. 대중의 지지에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는 것이 선출직 정치인의 숙명이다. 대중의 지지는 적극적 지지, 확산성 있는 지지도 있고 소극적 지지, 확산성 없는 지지도 있다. 적극적 지지란 응집력과 충성도가 높다는 뜻이고, 확산성이란 지지자의 대중 전파력이 크다는 뜻이다. 이 두 요소를 모두 갖춘 정치인은 행복하다. 충성도도 높고 확산성도 크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 '대중 흡입력'
박근혜는 적극적 지지자들은 많지만 확산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된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25%~30%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의 지지자들이 웬만한 정치상황에는 꿈쩍도 않는 충성도 높은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충성도 높은 25%~30%의 고정적 지지자들의 존재, 이것이 바로 박근혜 경쟁력의 핵심이고 모든 정치인들이 부러워하는 박근혜 경쟁력의 비밀이다.
정치인은 스킨십에 목숨을 건다. 한 번이라도 손을 잡은 유권자는 절반 이상 지지자가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의 손을 전부 잡지는 못한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절대적인 제한이 있어서다. 확산성이 중요한 이유다.
어떤 정치인이건 대중을 지지자로 만들어내는 흡입력을 갖고 있다. 대권주자반열에 오른 정치인들은 대중흡입력의 다양한 요소, 즉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박근혜의 대중 흡입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충성도 높은 지지층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대중 흡입력을 매력이라 한다면 박근혜는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몇 배 더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하겠다.
대중이 박근혜에게 느끼는 매력은 1차적으로 그의 외모와 행동거지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박근혜는 단아하고 맵시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품위 있으면서도 겸손한 태도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는 스타킹이 '빵꾸나서' 창피했던 경험 같은 에피소드를 약간의 여성적 수줍음에 얹어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소탈한' 화법은 적대적 감정을 갖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녹여버릴만큼 호소력이 강하다.
싸울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타이밍 감각'
박근혜의 흡입력은 타이밍에 대한 특유의 감각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치는 워낙 변화가 많고 유동적이라서 시의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행동, 같은 말에도 충격효과나 파급효과가 극대화되는 결정적 시점이 있다. 박근혜는 이 '결정적 시점'을 포착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디어법 파동 때 절충안을 제시한 시점이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본회의 반대토론을 감행한 시점은 발언의 파급효과가 최고점에 도달한 때이다.
타이밍 감각이 진짜 중요한 때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다. '지금이야말로 싸울 때'라든지 '지금은 타협할 때'와 같은 전략적 선택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타이밍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박근혜의 감각은 김영삼, 김대중 같은 대중정치인의 감각에 근접한다.
YS가 절정의 타이밍 감각을 보여준 것은 내각제 각서 파동 때였다. 3당 합당을 하면서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이 내각제 개헌에 합의 했다는 이른바 '내각제 각서'를 민정계가 공개한 직후 YS는 일체의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칩거 투쟁을 벌였다.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YS는 권력을 위해 물밑거래도 마다않는 정략 정치인으로 매도당했을 것이다. 이 마산 칩거투쟁에서 승리한 YS는 승기를 잡아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일생일대의 승부처로 전환시킨 타이밍과 대세감각은 과연 YS라 할만 했다.
DJ의 타이밍감각은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은퇴선언을 번복하고 감행한 정계복귀에서 빛을 발했다. DJ는 대권 4수라는 초유의 승부수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터뜨렸다. 엄청난 비난이 빤히 예상되었음에도 DJ는 밀어붙였고 정계복귀에 성공했다. DJP연합도 DJ의 빛나는 승부감각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만전에 만전을 기한 1997년 대선에서 DJ는 선거 직전 DJP연합을 이루어냄으로써 한편으로는 DJ대세론을 확산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일각의 '안티 DJ' 분위기를 우회적 방식으로 해소하는데 성공했다.
박근혜도 정치 초년병 시절 이회창과 결별해 탈당했다 복당한 적이 있다. 승부호흡은 선보였으나 진검승부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던 셈이다. 이에 비하면 세종시 승부는 제대로 승부를 걸어 끝까지 갔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긴박한 승부호흡은 관전자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집중하게 만들고 때로는 응원을 넘어 함께 행동하게 만든다. 박근혜는 승부호흡을 아는 정치인이고, 승부를 할 때의 팽팽한 긴장감을 감당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이것이 박근혜가 대중의 관심을 흡입하는 또 다른 비결이다.
타이밍에는 승부를 할 때의 타이밍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멈출 때의 타이밍도 있다. 8.21 회동은 박근혜가 싸움을 시작할 때의 타이밍 뿐만 아니라 싸움을 멈출 때의 타이밍 감각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8.21 회동 후 전개된 계파구도의 완화와 바닥에서 불기 시작한 '박근혜 대세론', 더 나아가 친이계의 '반 박근혜 분위기 희석' 등은 박근혜가 싸움을 멈출 때의 긍정적 효과를 어떻게 정치적 성과로 수렴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세종시 이슈에서 싸움할 때의 타이밍과 일단 싸움이 시작됐을 때 리더가 어떻게 강렬한 투쟁의지를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보여주었고 8.21 회동을 통해 싸움을 멈춰야 할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그리고 싸움을 멈춘 후 어떻게 상대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고 안정시켜야 하는지를 알고 있음을 또한 보여주었다.
이렇듯 타이밍 감각은 단순히 시점을 선택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싸울 때와 멈출 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에 걸맞는 행보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의 타이밍 감각이 대중흡입력을 발휘하는 이유도 그에 걸맞는 행보감각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나오는 '압축적 화법'
박근혜가 발휘하는 대중 흡입력의 마지막 요소는 그의 화법이다. 박근혜의 화법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쪽이고 자극적이기 보다는 무미건조한 쪽이다. 조어를 좋아하지도 않고 장황하지도 않다. 그의 화법은 압축적이지만 일부러 압축한다기 보다는 꼭 필요한 만큼만 말하는 방식이다.
"대전은요?"(2005년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에 '테러'를 당한 후 내놓은 첫 마디)
"참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시도에 대해)
이런 말은 의식적으로 압축한다고 해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홍보전문가들이 머리를 짜낸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사람이 골똘하게 생각한 끝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다.
'무심결에' 나온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심결에 나오는 한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 한마디에 농축되어 있는 화자의 진정성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어법이 압축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말에 그의 감성과 정치적 판단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충성도 → 확산성'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정치는 99% 말로 이루어진다. 군사 권위주의시대에는 정치가 때로 폭력이나 정보기관의 위협과 공작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치는 정치인들의 말에 의해 이루어진다.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대통령의 주요한 통치 수단도 말이다. 적어도 국민을 상대로 통치를 할 때 대통령은 말아닌 다른 수단에 의존하지 못한다. 공무원들이라면 인사권이라는 수단도 있고 이익집단들에게는 법이라는 수단도 있겠으나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말아닌 다른 것에 의존할 수 없다.
정치는 고도의 상징행위다. 정치인의 말은 상징행위의 직접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화법과 어법이 대중적 흡입력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말 잘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상징적 통치행위라는 정치의 본질에 잘 부합하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과 품성이다.
소통은 진정성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데 대중적 흡입력이 있는 화법을 구사할 수 있는 정치인은, 그리하여 말의 진정성을 느끼게 만들 줄 아는 정치인은 소통을 통해 더 많은 대중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다. 이에 반해 아무리 노력해도 대중의 일체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화법을 구사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에게 소통은 도달할 수 없는 벽처럼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미니홈피, 블로그에 이어 트위터가 정치적 소통의 효과적인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140자 이내의 짧은 문장과 한 두컷의 사진으로 속도감 있게 소통하는 트위터의 핵심은 감성적 교감이다. 실시간 소통이라는 동시성과 현장성을 주 무기로 하는 트위터에서의 소통은 설사 그 소재가 하드한 정치라 하더라도 전달 방식은 소프트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트위터를 직접 한다. 당연히 매일 매시간 할 수는 없다. 때로 며칠 동안 못할 때도 있고 하더라도 짧은 인사말 이상을 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래도 미니홈피, 블로그, 트위터를 찾는 사람들은 기분나빠하지 않는다. 비록 짧은 인사 글이라도 박근혜가 직접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 같은 믿음과 기대를 알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 작업 즉, 대중과의 직접적 소통만은 자신이 직접 하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머릿 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는 정황이 대중으로 하여금 박근혜와 감성적으로 교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스타와 팬 사이에 형성되는 내밀한 공동체 정서 같이. 이것이 박근혜 대중성의 비밀이다. 바로 이것이 박근혜 지지자들의 높은 충성도가 확산성으로 전화할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근혜 철학'은 존재하는가?/[고성국의 박근혜論]<3> 계파 정치 던지고, '포용'과 정치력 보여야
적이 강하면 피하고 적이 약하면 공격한다. 전쟁이나 정치나 공방의 기본 원리는 다르지 않다. 정치에서는 상대의 약점을 집중공격 하는 것을 '인정머리 없다'거나 '공정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같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기는 정치나 경제나 마찬가지다.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4대강 사업 등 국민이 궁금해 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답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박근혜를 압박했다. 이정희 대표가 답변을 요구한 이슈는 4대강 외에 감세정책, 민주주의, 인권문제였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도 "국가적 아젠다고 국민적 관심사인 4대강 사업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주요 아젠다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요구받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여ㆍ야 정치권은 주요 아젠다 및 이슈에 대한 박근혜의 입장, 또는 '입장 없음'이 박근혜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가치와 주장과 감성은 있지만 체계적인 가치관, 체계적인 비전, 체계적인 정책은 없다는 것이 박근혜가 가장 많이 공격받아 온 대목이고 박근혜 리더십의 최대 약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수첩공주'라는 별칭에도 그런 폄하의 뉘앙스가 묻어있다.
'박근혜 철학'은 담금질을 거쳤는가?
체계적인 가치관과 비전을 갖추지 못하고 단편적인 생각들과 가치들만 있다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몇몇 부분에 집착할 위험이 있다는 말이다. 숲과 나무를 같이 보는 균형감각과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지 못하고 특정 생각이나 가치에 고집스럽게 집착할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체계화 된 가치관과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눈, 코, 입을 따로 예쁘게 그려놓고 그것들을 조합하면 가장 예쁜 얼굴이 될 것 같지만 막상 그렇게 그려놓으면 어딘지 균형이 안 맞거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색하고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런 경우가 체계화되지 않은 가치들의 모습이다. 매력적인 얼굴은 눈, 코, 입 하나하나도 예쁘지만 각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고 균형이 잡혀 전체적으로 개성과 매력을 풍기는 얼굴이다. 이런 얼굴은 표정이 살아있고 자연스럽다.
박근혜는 자신의 프로필백문백답에서 이성을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느냐는 질문에 "어느 한 곳보다 전체적 느낌을 본다"고 대답한 바 있다. "어느 한 곳보다는 전체적 느낌" 바로 이것이 가치들의 덩어리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을 보는 방법이다.
체계화 된 가치관은 가치들을 단순히 정렬시키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가치관은 가치들을 용해해 차원이 다른 '가치 체계'로 재구성할 때 만들어진다. 가치관의 형성과정은 구리와 주석을 함께 녹여 청동이라는 전혀 새로운 금속을 만들어내는 합금제조과정과 같다. 물론 청동 속에는 구리도 있고 주석도 있다. 그렇다고 구리나 주석을 청동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가치들의 덩어리와 체계화된 가치관은 이렇게 차원을 달리 한다.
가치들을 녹여 새로운 가치관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은 논리와 철학의 담금질 과정이다. 이는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 그리고 훈련된 논리적 추론에 의해 얻어지는 깨달음과 숙성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젊은 시절 이념적 담금질을 받은 박정희나 평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은 김대중은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부단히 단련했다. 그러나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 노태우는 말할 것도 없고 김영삼, 노무현 같은 대중 정치인도 체계화 된 가치관을 갖추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지향하는 가치는 있었지만 그것을 가치관으로 담금질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또한 아직 체계화 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몇몇 가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그걸 가치관이라 할 수는 없다. 그가 젊은 날부터 치열한 지적, 논리적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왔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박근혜,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
이 같은 약점을 해소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지적 담금질을 해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계화된 가치관으로 무장된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그들의 판단과 조언을 중하게 듣는 것이다.
두 가지 방안 중에는 첫 번째 방안이 무조건 더 좋다. 스스로 담금질을 받아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은 개인의 성숙을 위해서나 최고 지도자의 품격을 위해서나 꼭 필요한 것이다. 사실 후자의 방법도 전자 즉 본인이 가치관을 어느 정도 체계화하고 있을 때 효과적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박근혜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정책 사안에 너무 깊이 매몰되는 것이 꼭 바람직한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역사, 철학 등 체계화된 가치관 정립을 위한 인문적, 사회과학적 독서와 토론을 폭넓고 깊이 있게 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의 스탠포드대학 연설이 의미 있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스탠포드대학 연설에서 박근혜는 구체적 정책보다는 외교와 경제 분야에 대한 박근혜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대목은 경제에 대한 박근혜의 가치관이 투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설의 백미라 할만하다. 스탠포드 연설 같은 비전이 어쩌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지도자는 정책 전문성을 넘어서는 비전, 가치관의 선도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두 번째 약점은 포용과 통합의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포용과 통합은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의 생각도 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포용과 통합의 시작이다. 이 같은 겸손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과 고백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절대자와 인간이 맺는 종교적 관계의 출발점이고 인간과 인간이 맺는 민주적 사회ㆍ정치관계의 시작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 몸을 숙이는 예수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희구하는 진정으로 통합적인 리더십, 사랑의 정치인 것이다. 박근혜는 천주교 신자이므로 절대자 앞에서는 절대적으로 겸손할 것이다. 그러나 절대자 앞에서의 절대적 겸손이 인간 간의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서의 겸손함으로도 나타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겸손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능동적 행동이 필요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통합은 없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포용은 없다. 강한 자가 먼저 다가가고 강한 자가 먼저 움직인다. 진실로 겸손한 자, 진실로 자신을 열어놓는 자가 먼저 다가가고 먼저 움직인다.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던질 수 있나?
그동안 박근혜에게서는 이런 능동성, 이런 자신감을 볼 수 없었다. 통합적 리더십을 세를 모으는 정치공학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 아무리 다수파를 형성해도 그것이 패도정치적 방식으로 세를 모으는 것인 한 그것을 통합적 리더십이라 하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과연 '패도 정치'의 끝자락에 있는 계파 리더십을 홀연히 던져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박근혜 리더십의 단점으로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박근혜의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는 언뜻 박근혜의 약점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의 브레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박근혜의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대선이 2년이나 남은 지금 시점에서 확정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그렇게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면 그 즉시 수십 명의 인수위원들과 200~300명의 청와대 직원들, 그리고 500~1000여 명의 정부 기관, 산하기관, 각종 주요 위원회의 핵심 인사들을 배치해야 한다. 당선되자마자 임기 5년을 함께 할 최측근 인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적 수준에서 공개적으로 검증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의 인물들은 어떠한 검증과정도 없이 대통령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 국가를 움직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이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감당해야 할 기본적인 책임이다.
사람을 보면 비전과 정책이 보이고 사람을 보면 행정 스타일이 보이는 법이다. 박근혜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박근혜 정부를 움직여나갈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결코 개인적인 호기심이 아니다. 유력한 대권 주자에 대한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다. 셰도우 캐비넷 수준이건 대선캠프 수준이건 그도 아니면 자문팀 수준이건 박근혜는 언제든 이 문제에 대해 답변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박근혜의 사생활?…네 개의 불가론과 그 해석/[고성국의 박근혜論]<4>박근혜 '불가론'의 허와 실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에게는 세 가지의 '불가론'이 있었다.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그리고 '베일에 싸인 박근혜가 검증과정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불가론'이 그것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새롭게 제기된 '불가론'이 있다면 아마도 "권위적, 독단적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 4불가론은 각각 따로 돌아다니지만 때론 결합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가 그렇게 간단하게 권력을 넘겨주겠느냐', '현직 대통령은 누굴 대통령으로 만들 힘은 없어도 대통령이 못 되게 만들 힘은 있다'는 자못 설득력 있어 보이는 현실론과 결합되어 유포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성 대통령 시기 상조론?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진영이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대목은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이었다. 박근혜가 그 바쁜 와중에도 독일까지 가서 여성 총리 메르켈과 회동을 가진 것도 그렇고 엘리자베스 여왕과 마가렛 대처를 롤모델로 설정한 것도 그렇다. 성공한 여성 리더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성대통령 불가론을 희석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각설하고.
'여성대통령 시기상조론'은 시대착오적인 데마고그다. 여성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는 호남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그리고 상고출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얘기만큼이나 악의적인 선동이다. 그럼에도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지역에 따라 2012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유교적 전통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는 경북 북부지역 같은 곳 말이다.
그러나 '불가론'의 강도는 이 지역에서조차 매우 약화될 것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모든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여성 대통령 불가론'을 흔들리지 않는 소신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여성대통령 불가론'은 박근혜 대세론이 취약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을 때 다른 이유들과 결합돼 '박근혜는 안 돼'라는 여론을 만드는 매개변수적 역할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형성되어 있는 대세론을 꺾을 만큼 위력적인 불가론은 이미 아니다.
8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얼마 전 퇴임한 칠레의 바첼레트 대통령이나 룰라 대통령을 이어 브라질을 이끌 지우마 호세프 새 대통령,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핀란드의 국격을 높이고 있는 할로넨 대통령의 사례를 잠깐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안될까?
'독재자의 딸은 안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 또한 그렇게 위력이 클 것 같지 않다. 박근혜가 막 정계에 입문할 무렵에는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 입문 10년이 지난 박근혜를, 그리하여 박정희의 딸이라는 과거의 스토리 못지 않게 박근혜 자신의 스토리를 많이 갖게 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이 '경제성장 주역의 딸'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보다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독재자의 딸은 안 된다'는 당위론적 불가론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2009년 1월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은 누구인가'란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9%는 박정희, 18.3%는 김대중, 7.9%는 노무현을 응답했다. 박정희는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50%를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53.4%는 박정희, 25.4%는 김대중, 12.4%는 노무현을 꼽았다.
박정희는 남성, 여성 모두에서 그리고 모든 세대에서 1위로 꼽혔다. 이렇듯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거의 모든 조사에서 박정희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의 절반 가량이 박정희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와 같은 여론 지형에서 박근혜를 '박정희의 딸=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기도 하지만 '육영수의 딸'이기도 하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찌됐든 공과를 둘러싼 논란이라도 있지만 육영수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논란이 없다. 육영수는 모든 조사에서 바람직한 영부인상으로 꼽히고 있다. 그것도 압도적 1위로. 박근혜가 충청권에서 강한 지지세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충북 옥천이 육영수의 고향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박근혜가 세종시 전선으로 영남과 충청을 정치적으로 아울렀다면 박정희와 육영수 또한 영남과 충청을 묶어내고 있다. 참으로 좋은 '가정환경'이자 '출생배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영화를 통해 '역사로 알게 되는 20~30대가 유권자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박정희는 그야말로 오래 전 역사의 인물이다. '역사'가 된 박정희를 설명할 때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강한 소구력을 갖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 박정희'는 설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설명을 해야 할 '역사적 현실'의 '비현실성' 때문에 설명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쿠데타'를 영화에서나 접하는 젊은 층에게 5.16 쿠데타와 10.26 까지의 비극적 역사를 체감도 높게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죽은 사람과 싸워 이긴 장사는 없다. 박근혜를 대적하기도 벅찬 박근혜의 경쟁자들이 박정희와 육영수까지 싸움터로 불러내는 무모함을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의 사생활'?
'박근혜의 사생활'이 박근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절반 이상 설득력을 잃었다. 2007년 경선에서 나올 얘기는 대부분 다 나왔기 때문이다. '숨겨둔 아이'얘기까지 나왔고 "아이를 데리고 오면 DNA 조사라도 받겠다"는 박근혜의 강경한 대응까지 나왔으므로 더 나올 얘기가 뭐가 있겠는가.
'최태민 목사 관련 논란'도 그 사건 자체가 30년도 더 된 것인데다가 당사자도 세상에 없고 설사 제기된 의혹들이 일부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대규모 권력형 부정부패로 번질 일은 없는, 말하자면 법률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공소시효가 소멸된 지나가 버린 에피소드가 아닌가 말이다. 그 밖에 육영재단 관련 논란이나 동생 근령 씨와의 불화를 둘러싼 얘기들이 거론 될 수는 있으나 비극적 가족사에 대한 동정심을 자극할 뿐 불가론으로까지 비화될 그런 수준의 문제라 하기는 어렵다.
이처럼 박근혜의 사생활 관련 논란은 이미 58세에 이른 박근혜의 '여성적 매력'을 환기시키고 동정심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그의 이력에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는 못할 것 같다. 얼마 전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박근혜 비키니' 사진에 대한 대중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박근혜의 롤모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국가 간 정략결혼이 가장 중요한 외교수단이자 집단 안보체제의 보증서로 작용했던 시대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각국 국왕들의 청혼이 있을 때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품격을 유지하면서 담백하게 청혼을 물리쳤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독신생활까지 영국국민들의 사랑을 끌어내는 인간적 요소로 활용할 줄 알았다.
박근혜가 결혼과 독신생활에 대해 어떤 속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독신 생활까지 포함한 그의 인생 궤적이 외형상 엘리자베스 1세와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은 약점보다는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1세가 행한 마지막 의회 연설이 박근혜의 심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신께서 나를 여왕으로 만들어 주신데 감사하지만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영광은 백성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략)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때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 국정운영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네 번째 불가론은 주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친이계로부터 제기되었다. 친박계 인사들의 복당문제나 세종시 문제 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친이계는 '박근혜의 높은 벽'에 번번이 무릎 꿇었다. 그 과정에서 터져나온 불만들이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친박계 의원들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지금껏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가 직접 지시하고 줄 세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주위의 의견을 경청하고 결정하되 그 결정을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의 생각을 이심전심으로 따라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이런 설명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토론 부재의 친박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황을 박근혜의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리더십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크다.
박근혜의 리더십이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의 긴박하고도 각박한 정치 현실이 친박계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방어적으로 만들었으며 그 상황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강한 카리스마와 돌파력이 결과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이 사실에 근사한 설명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불가론은 '박근혜 불가론'이라기보다는 '박근혜 경쟁력'으로 읽힐 수도 있는 양면적 성격을 갖는다. 어느 쪽에 가까운지는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역지사지.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대목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무소의 뿔' 박근혜, '계파 정치'의 비밀은?/[고성국의 박근혜論]<5>박근혜와 '친박계'
박근혜는 생래적으로 '패도정치'를 경계한다. 권력을 두고 벌이는 측근들간의 암투와 경쟁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도 결국은 측근들간의 암투로 비극적 최후를 맞지 않았던가.
박근혜는 누군가를 중용하고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순간 '패도정치'의 메커니즘이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가 정치권의 상식과는 달리 어떤 경우에도 '좌장',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다. 박근혜는 모든 정치인을 여러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대한다. 나의 정치가 있으면 그의 정치가 있을 것이고, 각각의 정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각자의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각자가 지는 것이므로.
박근혜와 다른 정치인들간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을 매개로 하는 공적이고 기능적이고 일시적인 관계다. 정치 자체가 공적인 일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그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패도정치'의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박근혜의 생각인 듯하다.
박근혜의 이 같은 관계 설정 방식은 본능적으로 권력의 독점을 지향하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이고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특히 자신의 선택에 충실한 올인형 정치인인 김무성 같은 승부사에게 박근혜의 일응 무미건조한 공식적 관계맺음은 기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와 김무성의 결별은 어느 정도 예정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무성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드러내는 순간 두 사람은 함께 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나와도 '친박계 정권'은 아닐 것
박근혜는 조직을 믿지 않는다. 조직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믿고 정치적 세보다는 바닥의 민심을 믿는다. 박근혜는 시골장터에서 만난 이름모를 아주머니들을 믿는다. 어머니가 죽었을 때, 아버지가 죽었을 때 뜨거운 눈물을 같이 흘렸던 저자거리의 장삼이사를 더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는 본질적으로 대중 정치인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대중 정치인이다. 이는 박근혜가 겪어온 곡절 많고 굴곡진 정치역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제 2의 천성과 같은 것이다.
박근혜는 신뢰를 가장 중요한 인생철학으로 생각한다. 그가 청와대를 나와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의 어려운 시기동안 썼던 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신뢰다. 이는 그만큼 그가 많은 배신을 보고 겪었다는 뜻이고, 배신과 모멸의 참담한 세월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겪은 배신은 대중의 배신이 아니었다. 바닥 민심의 배신이 아니었다. 배신은 늘 높은 자리, 조직의 위세를 즐기던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것이다.
박근혜에게 친박계는 길을 함께 가는 좋은 동반자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길을 가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같은 길을 가는 한 서로는 존중의 대상이고 '상의'의 상대다. 그러나 명령하고 복종하는 상하관계는 아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친박계가 곧 정권의 주체세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친박계 중 여건이 맞는 사람들은 역할을 하겠지만 그저 그 뿐, 더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곧 친박계 정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서 제기한 문제, 즉 박근혜와 함께 할 사람들의 면면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가 가진 것은 '권력'이 아니라 '영향력'
권력은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을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강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도하는 것이다. 앞에 것을 권력(power)라 하고 뒤에 것을 영향력(influence)라 한다.
권력(power)은 직접적이고 영향력(influence)은 간접적이다. 권력(power)은 단도직입적이고 영향력(influence)는 우회적이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제왕적 총재의 권력은 '파워'(power)였다. 사람들을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과 정보기관의 동원력이 있었고 정치자금과 정치인에게는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는 공천권을 독점했다. 이들의 권력은 매우 직접적이고 단도직입적이었다. 그러나 권력(power)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권력을 휘두른 역대 대통령이나 제왕적 총재들의 말로가 비극적이고 허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의 힘은 권력(power)이라기보다는 영향력(influence)에 가깝다. 그는 대통령도 아니고 제왕적 총재도 아니기 때문에 권력(power)을 행사하려야 행사할 권력(power)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대로 수십명의 국회의원들이 움직인다면 그에게 어떤 형태로든 힘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영향력(influence)이라 부른다.
영향력(influence)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그가 제시하는 길이 옳은 길이고 이기는 길일 때 영향력(influence)은 커진다. 영향력(influence)을 통한 힘은 언제든 회수될 수 있으므로 힘의 유지를 위해서는 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의 합리적 핵심을 움켜쥘 수 있는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패도가 아니라 왕도로 간다'는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영향력(influence)은 좋은 의미의 권위(authority)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와 친박계의 관계를 주군과 신하로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박근혜의 힘이 권력(power)이 아니라 영향력(influence)이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박근혜의 '문제점'을 보는가, 보지 않는가
박근혜가 친박계 의원들과 맺는 관계 양식은 통상적인 권력정치에서 보여지는 계파정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은 계파의 결속력을 보여주는 집단적 행동, 이벤트, 모임, 회의체계가 없다. 친박계 의원들끼리 자주 만나고, 특정 정치 사안에 대해 의논도 하겠지만, '계파 보스'라 할 박근혜가 이들과 함께 회의를 하거나 어떤 입장을 정해 통보하고 지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매우 예민한 문제, 예컨대 세종시 문제나 미디어법 같은 문제 또는 친박계 의원의 입각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박근혜는 개인 의견을 밝히거나 물어오는 의원들의 질문에 짧게 답하는 정도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친박계 의원 누구라도 박근혜를 만날 수 있고 어떤 문제든 얘기할 수 있으나 최종적 판단과 선택은 철저하게 각자의 몫이다.
박근혜에게는 통상적 의미의 캠프도 없고 계보도 없다. 박근혜는 계보관리를 위해 돈을 쓰지 않으며 그들의 공천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발생하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거나 한 두마디 하는 것이 고작이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도 박근혜에게 그 이상의 적극적 행동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근혜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박근혜는 자신의 관심을 표현할 때는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한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박근혜의 표현은 단순 명쾌해서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다. 경주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수성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거나 경쟁자였던 정종복 후보가 청하는 악수를 분명하게 거절하는 것처럼.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정도의 행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법 절충안을 낼 때나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토론을 할 때나 박근혜는 친박계 의원들과 사전에 상의하거나 입장을 조율하지 않았다. 단추만 누르면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역량 있는 전문가들을 얼마나 많이,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박근혜가 이 문제들과 관련해 적어도 친박계 의원 모두와 직접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재미있는 것은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의 이 같은 태도를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들은 박근혜의 생각과 가치에 동의해서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므로 박근혜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고 또 구체적인 부분에서 약간 이견이 있더라도 큰 방향에서 문제가 없으면 함께 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친박계 의원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관계가 사실이 아니거나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논박하기 어렵다. 실제로 친박계 의원들은 이런 방식의 의사소통과 행동 통일에서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 생각이 있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박근혜의 생각과 판단을 공유하고 박근혜와 함께 행동하는데 부자연스러움이나 억지스러움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친박계 인사의 개별적 입각 같은 매우 예민한 사안의 경우에도 박근혜는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입장이고 나머지 친박계 의원들도 찬반양론이 있을 경우 대체로 본인의 최종적 선택을 존중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친이계, '느슨한' 친박계 비웃을 때 아니다.
친이계는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비웃는다. 제대로 된 회의체계 하나 없는 집단이 무슨 세력이며 계보냐는 비아냥을 보내기도 하고, 모든 의원들이 오로지 박근혜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공박하기도 한다. 친이계는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간의 이러한 관계를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길 좋아한다. 박근혜는 다른 의원들과 일체의 대화와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며, 한 번 박근혜가 결정하면 친박계는 그걸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박계의 이 같은 행태를 소통부재라 공격하는 것은 다소 작위적인 정치공세로 보인다. 소통부재라기 보다는 소통방식이 다른 것이다. 적어도 친박계 의원들은 이러한 소통방식 즉 일종의 텔레파시 소통이라 할까, 이심전심의 소통 방식에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이 그렇게 느끼는데 그걸 밖에서 아무리 아니라 한들 이들에게 무슨 실제적인 의미를 가질 것인가.
정치인들에게 회의란 어떤 것일까? 여야 최고위원회의 광경을 보면 회의란 정치인들이 언론을 향해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지, 열린 마음으로 안건을 토론하고 차이를 해소해가는 통상적 의미의 회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회의건 회의에는 입장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정치권에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치권에서는 회의의 결론이 표 대결로 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설사 표 대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점검해보고 불리한 쪽이 고집을 꺾는 방식으로 회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계파회의도 그렇고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구성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도 그렇다. 다시 말해 정치권에서는 회의를 통해 순수하게 화쟁적 방식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결정은 최종적으로 힘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에 대한 조언과 직언, 충언과 간언의 형태로 정치인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계급장 떼고 토론하는'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와 친박계 의원들의 관계를 회의체계가 없음을 근거로 소통부재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정략적 공세다. 친이계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 제대로 된 토론형 회의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않았던가 말이다
"'MB 후계'는 없다…박근혜, 'MB 무시' 방식으로 차별화 할 것"/[고성국의 박근혜論]<6> 이명박과 박근혜
지난 8월 21일 이명박, 박근혜 비밀회동이 청와대에서 있은 직후 박근혜는 이정현 의원을 통해 회동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다.
"두 분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경제문제를 포함한 국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당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임을 잘 얻어 이명박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대화가 있었다."
일체의 배석자를 두지 않고 두 사람만 회동한 자리여서 전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청와대나 친박계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이 "분위기가 좋았다. 지금까지의 회동 중에서 가장 성과가 있었다"는 긍정 평가들이었음을 보면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한 회동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시점에서 두 사람이 모두 만족할만한 대화란 어떤 것이었을까? 이정현 의원의 설명에 답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은 목표는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키면 자신도 역사에 남고 퇴임 후 안전도 자동적으로 보장된다. 성공한 정부, 성공한 대통령만큼 강력한 보호막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것은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최대의 원조이자 가장 강력한 후원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8.21 평화합의', 과연 지켜질까?
박근혜 전 대표의 목표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한 것은 한나라당내 선두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때에 따라 결정적인 한마디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통령이 공정한 경선관리까지 약속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더 이상 무얼 바랄것인가. 대통령과 부동의 대권 선두주자 두 사람이 만나 정부의 성공과 정권재창출을 다짐했다면 이미 그것으로 박근혜는 선두주자의 프리미엄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합의가 지켜지는가이다. 약속이행과 관련해서 박근혜 전 대표는 상대적으로 홀가분하고 유리한 입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국정전반에 대해 협조적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협조적 자세를 취하려 해도 '세종시 문제'같이 소신과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사안이 등장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박 전 대표가 정권의 성공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8.21 회동이 있은지 한 달 반쯤 후인 10월 1일 청와대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간단한 건배사를 하는 정도의 '성의'만으로도 박근혜 전 대표는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 쪽은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노력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당내경선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복잡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그 어떤 일보다 더 어렵다는데 정치의 어려움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도 상관없다. 박근혜 전 대표가 돼도 괜찮다'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친이계와 다른 대권주자들이 대통령의 마음 즉 '이심'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주자들간 경쟁에 끌려 들어가는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마음을 비울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아직 여러 선택지가 열려있고 어떤 길이건 자신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과 자신감이 있는 임기 중반에 말이다.
'후계'는 북한에나 있는말…현실 정치에는 없다.
역대 대통령들 중 마음을 비운 대통령은 지금껏 한명도 없었다. 예외 없이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의지로 후계 구도를 만들려 했고 정 여의치 않을 경우에도 '누구는 안된다'는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하려 했다.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임기 마지막까지 레임덕 없이 대통령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차기 구도가 내손 안에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 특히 대권주자들에게 분명히 각인시켜야만 했다. 이를 통해 대권주자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게 만들고 대권주자들에게 쏠리는 힘을 자신에게 다시 가져와야 했다. 둘째, 자신이 임기 중 추진한 정책들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를 원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맡게 된 역사적 소명이 더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국정능력이 있건 없건 대통령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국정과제를 밀어붙였다.
일단 두 가지 부분만 얘기해보자. 세 번째는 밑에서 다루겠다.
대통령이 욕심낼만한 국정과제들은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끝마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통령들의 의욕이 강하고 소명의식이 클수록 그들이 손댄 국정과제도 1, 2년 또는 4~5년 안에 끝낼 수 있는 단기 과제들이 아니라 10년 정도는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제들인 경우가 많았다. 임기가 제한돼 있는 대통령이므로 자신이 그토록 중시한 국정과제가 자신의 임기 종료와 더불어 실종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늘 마음 한켠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은 세 가지다.
1안은 임기종료까지 최선을 다하되 그 이상의 미련은 갖지 않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이 누구건 이제는 그의 몫이라고 담백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깨끗한 이 방식을 선택한 대통령은 아쉽게도 지금껏 아무도 없었다.
2안은 어떻게든 밀어붙여서 임기 종료 전에 마무리 하거나 최소한 다음 대통령이 되돌릴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못'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시도했던 방식이다. 이 방식은 국정운영의 여유와 품격을 유지하기 어려운 방식이며 동시에 반대세력의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이다. 그만큼 후유증도 크다. 반면 정권 실세들은 대체로 이 방식을 선호한다. '복잡한 정치'가 필요 없고 가시적 성과가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을 밀어붙여온 그간의 과정도 크게 봐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3안은 자신의 위업을 잘 계승할 후계자를 육성해 다음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대통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명도 없었다.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전두환, 김대중도 후계자인 노태우, 노무현을 자신의 뜻을 잘 받들고 자신이 추진한 국정과제를 잘 계승하는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노태우는 전두환 집권 내내 보신하고 근신하며 2인자의 조심스러운 처세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물태우'라 불릴 만큼 패기도 배포도 없었다. 그런 노태우도 대통령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내 버렸다. 이것이 정치다.
노무현을 김대중의 후계자라 했지만 과연 노무현을 김대중이 '만든' 후계자로 볼 것인지는 다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사실 김대중 입장에서는 후보시절의 노무현이 '탈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표방하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 할 상황 아니었을까 싶다. 노무현도 집권하자마자 대북송금 특검을 실시해 김대중 정부 최대의 치적인 대북정책에 큰 흠집을 남겼다. '후계'란 북한과 같이 완벽하게 통제된 폐쇄사회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경쟁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차기 권력은 역대 대통령의 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진다
대통령이 자기 손으로 다음 대통령을 만들고 싶어하는 세 번째 이유는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군부독재 권위주의 시절에 '퇴임 후 안전문제'는 주로 독재를 휘두른 대통령의 퇴임 후 신변안전 문제였다. 정경유착에 의한 부패와 천문학적 규모의 정치자금 및 개인적 축재 문제에 면죄부를 얻는 것도 중요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은 모두 이 문제 때문에 퇴임 후 사법처리 됐다. 민주화된 이후 대통령들의 퇴임 후 문제는 주로 정치자금 특히 돈이 많이 드는 대선자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은 많은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사법처리를 면했다. 그러나 가장 적극적으로 퇴임 후 활동을 계획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자금의 덫에 걸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통령의 '퇴임 후'를 다음 대통령이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행적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금방 확인된다. '퇴임 후'의 보장은 대통령 스스로 당당하고 떳떳함으로써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가 해줄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가 만들어내다시피한 차기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이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차기 권력은 역대 대통령들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없이 만들어진다. 미래권력은 미래권력을 두고 벌이는 차기 주자들간의 경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대통령이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 아니다. 백보 양보해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의도와 구상대로 움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기 대통령에게는 그의 시대가 있고 그의 국민이 있고 그의 권력이 있고 그의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70~80% 아닌 40% 지지율에 과연 친이계가 끝까지 따를까?
과연 이명박 대통령은 중립과 공정관리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를 '만드는'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과정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현실적이며 자신의 이해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정치가 합리적 계산만이 아니라 즉흥적 감정이나 가망 없는 도전, 또는 결과를 보고 나서야 납득하게 되는 심각한 착각과 오산에 의해 결정될 때가 더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어느 길을 선택할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더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 간 이해관계의 분열이다. 친이계는 지금까지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해왔다. 이명박정부의 성과는 곧 친이계의 성과였다. 그러나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이해관계는 같이 갈수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갈수도 있는 복합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이계의 이해관계가 같이 가는 주요한 동인은 40%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다. 사실 과반에도 못 미치는 이 정도의 수치는 그렇게 높은 수치가 아니다. 다만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초 10%대까지 추락했다가 회복했다는 점, 40%대의 지지율을 1년 넘게 안정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지지율이 일정한 정도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70~80%가 아니라 40%정도의 지지율은 친이계로 하여금 언제까지나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가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통상 대통령의 지지율에 기대와 희망이 투영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40%의 대통령 지지율은 차기 권력 창출의 보증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친이계는 조만간 각각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 공산이 크다.
유력한 친이계 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와 청와대 간의 갈등이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는 김문수 지사에게 "경기도나 잘 챙겨라"는 발언을 작심하고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런 정서가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비서들의 공통된 정서일 것이다. 대통령의 길과 차기 주자의 길은 이렇게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 후보들, 'MB와 차별화'는 불가피하다
정권을 성공시키고 그 성과를 계승하고 이어받아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가 있다면 어느 대통령이 그를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지금껏 어떤 대권 주자도 전 정권의 성과를 계승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건 적이 없다.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나라를 운영하겠다"는 것으로 경쟁하는 대통령 선거에서 "지난 정권을 계승하겠다"는 주장은 빛바랜 사진처럼 초라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야당 후보들의 주 메뉴가 "정권 심판과 새로운 권력 창출"인 점을 감안하면 스스로 전 정권의 짐을 짊어지고 야당의 심판을 자초할 어리석은 후보가 어디에 있겠는가. 여당 후보들의 현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가 불가피한 이유다.
차별화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 방식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의 차별화다. 이회창 추종자들이 김영삼 인형을 불태웠던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 방식은 무시하는 방식의 차별화다. 정동영이 노무현을 취급했던 방식이다. 정동영은 대선 기간 내내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언급을 교묘하게 회피했다. 야당의 공세도 무시했다. 이명박과 워낙 큰 차이가 나는 선거였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가능했을지도 모르나 적어도 노무현과의 관계에서 정동영은 비교적 큰 부담없이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절충적으로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노무현은 대선기간 내내 줄곧 김대중 대통령의 공과 과를 모두 승계하겠다고 했다. 공은 공대로 계승하고 과는 적극적으로 지양하겠다는 뜻이지만 방점이 공의 계승보다 과의 지양에 있음은 누구에게나 분명했다.
박근혜, MB와 차별화 시도할 것…양자 공멸은 피할 수 있을까?
차별화를 한다면 박근혜는 두 번째 방식. 즉 이명박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하려 할 것이다. 선두주자가 대통령을 무시하면서 차별화 하면 결국 선두주자가 제시하는 비전을 중심으로 대립구도가 짜여지게 되는데, 이것이 박근혜가 선호하는 방식이고 가장 네거티브적이지 않은 방식이 된다.
반면 친이계 주자들이 차별화를 한다면 세 번째 방식이 불가피하다. 김문수는 "경기도나 잘 챙기라"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에 대해 "저는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고 있고, 말할 부분에 대해서는 직언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제 책무가 아니고 도민을 섬기는 것이 제 책무다. 잘하는 것은 박수를 치고 잘못 하는 부분은 말해야 한다"고 했다. 말 그대로 시시비비를 가려 공은 계승하고 과는 지양한다는 절충적 차별화 그대로다.
절충적 차별화를 시도하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선거일에 다가갈수록 그리고 전세가 불리할수록 공의 계승보다는 과의 지양을 더 강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차별화가 조금만 과열되거나 역으로 이 같은 절충적 차별화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통령 쪽에서 과민반응을 보이게 되면 속절없이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차별화로 전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도의 절제와 균형이 필요한 절충적 차별화를 과연 전세가 불리한 친이계 후보들이 끝까지 견지해 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2012 대선을 관전하는 재미있는 포인트 중의 하나다.
마지막 가능성으로 이명박과 친이계의 선제적 도발에 의해 박근혜가 수세에 몰린 나머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방식의 차별화를 감행하게 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명박과 박근혜 모두에게 매우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명박은 권위의 심각한 손상을, 박근혜는 협량한 정치꾼 이미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는 너무 큰 부담과 타격이 예상되는 이 길을 두 사람 다 피해가려 할 것이지만 정치가 때로 합리적 타산보다는 즉흥적 기분과 분위기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린 주위에 입을 벌리고 버티고 있는 벙커들처럼 양자 공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극단적 자극적 차별화의 늪을 과연 이명박과 박근혜는 피해갈 수 있을 것인가.
오세훈·김문수, 박근혜가 그렇게 만만한가?/[고성국의 박근혜論]<7> 박근혜와 당내 경쟁자들
11월 2일 열린 한나라당 중진 최고위원연석회의는 김문수, 오세훈의 중앙정치 데뷔무대였다. 김문수는 3선, 오세훈은 초선의 의정경력을 갖고 있으므로 중앙정치 데뷔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국회의원 중 한 명이 아니라 대권주자로 중앙정치 무대에 선다는 점에서 데뷔무대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당헌까지 개정해 두 사람을 '중앙정치 무대'로 불러들인 한나라당 친이계의 고민은 박근혜에 맞설 친이계 주자가 마땅치 않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아무리 봐도 6.2 선거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보여준 김문수, 오세훈만한 후보가 없다는 것이다. 대권주자로서 행보하기 쉽지 않은 광역단체장들인 두 사람의 정치적 한계를 당이 직접 나서서 풀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항마에 대한 친이계의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
정몽준도 있고 이재오도 있다고 하나 이재오는 아무래도 메이커에 가깝고 정몽준은 설사 12월 초에 2022월드컵 유치에 성공해도 2002년과 같은 폭발력을 다시 끌어모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몽준에게 6.2 지방선거의 패배는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오세훈의 경우
오세훈의 경쟁력은 개혁 이미지와 서울시정의 성과들이다. 정치 입문 전 활발한 언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개혁 이미지는 17대 국회를 거치면서 '오세훈 브랜드'로 굳어졌다. 오세훈의 개혁 이미지와 서울시장 경력은 부동층이 다수인 수도권 중간층을 흡수해낼 수 있는 요소다. 그가 대권주자로서 본격 행보를 하지 않고 있음에도 6~10%대의 지지를 안정적으로 얻고 있는 것은 그의 지지도가 높은 인지도에 얹혀진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그와 일체감을 느끼는 상당한 정도의 표밭에 기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표들 중에는 지난 4년간의 오세훈 시정에 '감동'받은 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서울'로 표현되는 오세훈 시정은 '이명박의 청계천' 같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충격적 시각효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사실 '청계천' 같은 시각효과는 오세훈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럴만한 소재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데뷔무대에서 오세훈은 자신의 강점, 즉 개혁성과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선명한 메시지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서울시의 그물형복지와 희망플러스통장 등을 예로 들면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서울형 복지정책'을 열심히 설명하려 했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 의회 때문에 어려우니 중앙당이 도와달라는 호소와 함께. 이것은 열심히 일하는 시장으로서의 스탠스는 될지 몰라도 대권주자에 걸맞는 스탠스는 아니다. 대통령을 목표로 하는 대권주자는 행정직인 시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더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김문수의 경우
같은 자리에서 김문수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예로 들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야당의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대한민국이 다 같다는 건 여의도식 사고다. 당은 '골목민심'과 '골목정치'를 잘 아는 지자체와 함께 맞춤형 정치를 해야 한다."
김문수의 발언에는 현장을 누비는 단체장 특유의 감각과 강점이 살아 있고, 당에 대해 당당하게 할 말은 하는 대권주자의 배포가 담겨 있다. 김문수의 이런 스탠스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는 이미 국정 전반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발언도 거침없다.
"CEO리더십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EO리더십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직해 이윤을 내는 기업의 방식인만큼 국가 리더십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국가는 효율성이 없더라도 복지를 챙기고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등 기업 운영과 다른 퍼블릭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렇게 김문수는 이미 '김문수의 길'을 걷고 있다.
오세훈, 김문수의 부상 이유?…"수도권 중간층이 중요하다"
김문수, 오세훈이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는 박근혜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이유가 있다. 수도권 중간층에 대한 소구력 때문이다. 과연 이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가? 박근혜 대세론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여전히 대권주자로 주목받을 만큼 중요한가? 이들이 박근혜보다 더 강한 본선경쟁력을 가진 후보일 수 있다는 기대 섞인 희망을 만들어 낼 만큼 중요한가? 결론은 '중요하다'이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이다.
'예선은 극으로, 본선은 가운데로', 이것은 미국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일종의 경향적 법칙이었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이다. 부시의 선거 참모 칼 로브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는 발상의 전환을 감행했다. "예선, 본선 모두 극으로."
칼 로브의 주도 하에 부시는 매우 공세적인 캠페인을 전개했다. 낙태, 동성애 이슈 등 보수층 입장에서는 수세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이슈들을 공세적으로 먼저 들고 나왔다. 남부지역에 산재해 있는 윤리적 근본주의자들을 자극해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칼 로브의 갈라치기 전략의 성공으로 부시는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부시 정권 8년은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의 세월이었다. 선거가 아무리 치열했다해도 일단 끝나면 "함께 다 같이"를 연출하는 미국 특유의 통합적 정치력을 부시는 보여주지 못했다. 갈라치기 선거전략이 국정운영을 잠식했던 탓이다.
부시의 갈라치기 선거전략은 미국의 선거사에서 부시의 인간됨만큼이나 엉뚱하고 생뚱맞은 것이었다. 사실 부시의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를 제외하면 미국의 선거는 중간층 포용전략 간의 대결이었다. 민주당도 공화당도 승패는 중간층의 선택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단 뽑힌 자기당 후보가 중간층 공략에 적극 나서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오죽하면 선거전략에 무지개연합이란 말까지 붙었을까.
무지개연합은 말 그대로 빨간 것부터 노랑과 녹색을 거쳐 보라에 이르기까지 '표 되는 것이면 뭐든지 하는' 전략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냉전시대의 전위정당도 아니고 세상의 모든 정당들은 모두 대중정당이고 국민정당이지 않은가. 표 있는 곳으로 정당이 움직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것이 현대 정당정치의 '커먼센스(상식)'다.
오세훈·김문수, 박근혜에 맞설 '중간층 전략' 있나?
만약 중간층이 이미지로 움직인다면 정당과 주자들의 중간층 공략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미지를 몇 달 만에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할 수는 없으므로. 그러나 중간층이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으로 움직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간층이 매력을 느끼는 정책이라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래도 정책은 이미지보다는 변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전문가들의 동원도 상대적으로 손이 쉽다.
중간층의 이 같은 특성을 감안할 때 누구도 이미지나 지역연고 등을 막연하게 내세우면서 중간층에 대한 소구력이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 경력이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많은 중간층, 부동층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그 이상은 아니다. 그 보다는 이들 중간층, 부동층에 어필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수도권 중간층, 부동층이 갖는 관심 중 첫째는 일자리, 복지 문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젊고 서민층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치의식이나 사회의식이 그만큼 개방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오세훈, 김문수의 서울시장, 경기지사 경력보다 박근혜의 행복국가론이 소구력이 떨어질거라고 예단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데도 없다. 수도권 단체장이라는 경력과 개혁이미지만으로 수도권 중간층과 부동층을 공략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상대는 거의 모든 지역, 계층, 세대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 아닌가.
김문수, 오세훈의 잠재력에 주목하면 할수록 현실화 과정의 어려움이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선거는 상대가 있는 것이므로.
손학규ㆍ유시민ㆍ정동영이 박근혜를 이길 방법은?/[고성국의 박근혜論]<8>박근혜와 야권의 경쟁자들
한나라당은 이회창이 잃어버린 정권을 찾아오는데 10년 걸렸다. 민주당은 잃어버린 정권을 5년 만에 되찾아올 수 있을까?
정권을 찾아오는데 최소 몇 년이 필요하다는 공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권을 지키는 것보다 찾아오는 게 더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키는 쪽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거의 무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책수단을 독점하고 있고, 인적자원의 가용 풀도 넓다. 무엇보다도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에 비해 정권을 찾아와야 하는 쪽은 정책수단도 거의 없고 인력풀도 좁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도 원천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모든 면에서 지키는 쪽은 성 위에 있고 찾으려는 쪽은 성 아래 있는 형국이다.병법에도 성을 공격하려면 지키는 쪽보다 10배의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공격하는 쪽의 자원이 절대적으로 빈곤한 정치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정권교체나 정권 탈환이 정권재창출 못지않게 빈번히 일어나는 걸 보면 과연 정치에는 산술적 계산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손학규, 유시민, 정동영 등 야권의 주자들은 이 산술적 계산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정치생명을 걸고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들에게 박근혜는 넘을 수 없는 벽일 수도 있지만 화려한 비상을 위한 도약대일 수도 있다.
손학규, 진정성 보였지만 '표의 충성도' 낮아
손학규는 수도권 중간층에 강점이 있는 주자다. 경기도지사 이력도 그렇고 중도 개혁적인 정치 칼라도 그렇다. 민심대장정을 돌파해낸 손학규 특유의 돌파력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나름의 진정성도 젊은 층에게는 매력 있는 포인트다. 한마디로 손학규는 확산성이 큰 주자다. 중간층, 부동층을 흡수해 낼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주자다. 반면 표의 충성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손학규는 재야 시절에도 김근태 같은 리더라기보다는 아웃사이더나 비판적 지식인에 가까웠고 정치권에 입문한 후에도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당대표임에도 손학규에게서는 여전히 비주류의 냄새가 난다. 맏며느리 보다는 데릴사위 같은 느낌이다. 이런 한계적 성격은 중간층과의 접점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폭발력을 갖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언제든 주저앉을 수 있는 치명적 약점이 된다. 지지도가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회복이 어렵다는 뜻이다. 표의 충성도가 낮은 것이다.
그가 2007년에 끝내 한나라당의 벽을 넘지 못하고 민주당으로 옮겨온 것도 따지고 보면 표의 충성도가 높지 않아서였다. 당장의 패배도 패배지만 그 패배를 딛고 일어서 2012년을 향해 도전할 단단한 기반을 한나라당 안에서 구축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대효과가 꺼지면서 별다른 추가 상승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손학규 측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뚜렷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한 탓일 것이다.
유시민의 경쟁력, 그리고 유시민의 '짐'
유시민은 손학규의 대척점에 서 있다. 그는 매우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갖고 있다. '노빠' 못지않은 '유빠'의 존재가 지금의 유시민을 만들었다. 유시민은 '유빠', 즉 열광적 지지자를 만들어내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유빠'를 끌어들이는 직설적이면서도 화려한 어법을 받쳐주는 것은 폭넓은 독서와 필력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간단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국회 의석 하나 없는 국민참여당의 후보로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민주진영 단일후보가 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는 유시민 개인의 경쟁력 못지않게 국민참여당의 경쟁력도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세력의 일부가 모인 당이다. 노무현 세력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안희정, 이광재는 민주당에 있고 김두관은 무소속이다. 그런가 하면 노무현의 영원한 비서실장 문재인은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유시민이 노무현 계승을 말할 수는 있으나 노무현의 적통을 주장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통 야당의 적장자를 자임하고 있는 민주당과의 세 대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손학규, 정동영은 민주당이 끌어주는대로 올라타면 되는데, 유시민은 국민참여당에 올라탄다기 보다는 국민참여당을 끌고 가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것이 6.2 선거 내내 유시민의 행보가 무거웠던 이유였다. 더 나아가 그가 경기도지사 야권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표를 모두 흡수하지 못해 김문수에게 석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표의 확산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정동영, '균형잡힌 1등' 될까, '만년 2등' 머물까,
정동영은 손학규와 유시민의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표의 충성도는 유시민만 못하고 표의 확산성은 손학규에 미치지 못한다. 이 점은 정동영에게 위험요소임이 분명하지만, 하기에 따라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은 안정적 2등으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는 균형 잡힌 1등감으로 부각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동영이 만약 만년 2등이 아니라 균형 잡힌 1등감 후보로 부상한다면 그가 지닌 화려한 미디어감각과 발군의 이슈감각 또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들은 어디까지나 공중전이 주로 이루어지는 본선에서 1:1 진승부를 펼칠 때 발휘되는 것이지 백병전 양상으로 치러지는 예선에서 힘을 발휘할 요소들은 아니다.
'野 단일후보 vs 박근혜' 구도 생기면 초박빙 상황 올 것
박근혜에게도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와 어려운 상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예선을 통과하든 선거구도 자체를 바꾸어야 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야권 후보가 누가 되건 같은 색깔, 같은 구도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수도권 중간층에 강점이 있으나 표 충성도가 약해 전선이 복잡하게 만들어질 손학규, 표 충성도는 높으나 확산성이 떨어져 대결 구도가 간명하게 구축될 유시민, 전통적인 야권 후보로서의 안정감과 화려한 감각의 정동영. 결코 간단한 후보들이 아니지만, 확실하게 박근혜를 이길 필승카드라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후보들이다. 여성후보 한명숙이 야권 후보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여성 대 여성'식의 맞불전략으로 박근혜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박근혜에게 여성 후보는 '박근혜 브랜드'의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야권의 도전자들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핵심적 변수는 사실 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이들이 '더불어 하나가 되었을 때'의 시너지다. 손학규의 수도권 중간층에 대한 강점과 유시민의 충성도 높은 표, 거기에 정동영의 화려한 감각과 안정감이 더해진다면 각각의 전투력의 단순 합산을 넘어서는 위력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연합할 수만 있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수도권, 영남의 일부, 계층적으로는 좌파, 중도좌파와 일부 중도우파까지 아우르게 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들이 합체 로봇처럼 후보단일화의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는 유기적 유연성과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박근혜와 야권 단일후보 간의 1:1 맞대결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초유의 혼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박근혜가 지금부터 대비해가야 하는 상황은 바로 이같은 초박빙의 혼전상황이다
박근혜, 인생 최대의 승부처가 다가왔다
첫댓글 [고성국의 '박근혜論']은 <1> <2>,<3>,<4>,<5>,<6>,<7>,<8>,<9>,<10>까지로 끝을 맺었습니다. 지회장 이상급은 관심있게 탐독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 고담봉님께서 이렇게 헌신적으로 함께 할수있도록 열심히 노력하시는데 제 자신을 되돌아보니 부끄럽게 느껴져 옵니다
늘 함께 할수있도록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결과를 맺을수있도록 하겠습니다 .
모 사이트에서 봤었는데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