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 수지부모
지난달 초에 예기치 못한 가축전염병이 발생해서 경황없는 중에 사무실에서 하룻밤 자게 되었다. 경황없는 마음이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서도 그랬을까? 수도꼭지에 끓는 물이 나오는 줄도 모르고 발을 씻는다며 덤벙 담갔다가 끔찍한 화상을 입었다. 다행이 심부화상은 아니었고 물집만 잡히는 화상이었으나 피부는 풍선처럼 금새 부풀어 올랐다. 놀라서 물집을 손으로 쓸어 내렸더니 피부가 훌렁 찢어졌다. 찢어진 피부의 일부를 다시 상처를 덮어 주었으나 일부는 그대로 노출되었다.
치료기간 내내 피부가 없는 곳은 있는 곳에 비해 쓰리고 아팠을 뿐만 아니라 치료 시간도 훨씬 길었다. 그리고 다 낳은 지금도 피부가 노출된 부분은 흉터까지 남겼다. 비록 죽은 피부껍질이었지만 화상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톡톡히 큰 몫을 해 내고 마침내 탈락되었다. 이렇듯 우리 몸을 이루는 기관 중에 필요치 않은 부분은 없는 가보다. 날마다 하는 면도며, 이발, 손톱도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 몸에 나름 제 역할을 다하고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리라.
우리 집 막내 현우는 지극정성으로 몸을 아낀다. 그것이 지나쳐서 가족보다 우선 제 몸부터 챙기고 보는 녀석을 처음에는 야속하게 보았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보지 않게 되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고 했지 않는가? 부모에게 받은 몸을 알아서 잘 지키며, 또 건강하니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켜주는 것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걱정하는 큰 부분이 아닌가? 부모가 자식에게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모두 다 해주어도 병약한 아이들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정말 고마고, 잠시라도 아들에게 야속하다며 탓했던 마음이 오히려 부끄럽다. 제 몸 잘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의 걱정을 덜어 주는 것이니 효의 시작이라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님은 분명한 것 같다.
孝經에서 공자가 증자에게 이르길...
身體髮膚(신체발부) : 자기의 신체 (머리털과 피부, 곧 몸 전체)는
受之父母(수지부모) : 부모님으로부터 이어 받은 것이니,
不敢毁傷(불감훼상) : 감히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孝之始也(효지시야) : 효도의 시작이니라.
立身行道(입신행도) :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揚名於後世(양명어후세) 후세에 이름을 날려
以顯父母(이현부모) 부모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孝之終也(효지종야) 효의 마지막이니라.
‘身體髮膚 受之父母’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조선 말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연상된다. 개화를 거부하던 상징적인 저항이 부모로부터 받은 상투와 수염까지 목숨처럼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身體髮膚는 受之父母라하여 털 하나를 자르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불효라고 보았으며, 나라를 지키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요즘 세태로 보아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경시하는 부분이 흔한 것 같다. 미용을 위한 성형술은 논외로 하고라도 자신의 몸을 학대하여 일시적인 쾌락이나 다른 목적을 얻고자 경우가 많다. 남을 혐오스럽게 만드는 문신이며 자해(自害)가 그렇고, 우리 몸을 상하게 하는 흡연도 크게는 그런 범주에 든다고 본다. 심지어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서 자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자신의 몸을 간수하는 것이 효’라던 옛 선인들의 뜻은 크게 무색하게 되었다. 또한 갈수록 자살률도 높아진다고 하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극단적인 사회로 변해가는 것일까?
부모님께 받은 몸을 잘 지키는 것은 효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 더 분명해 졌다. 그러나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다는 뜻도,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도 점점 퇴색되어가는 것 같아 생각할수록 유감스럽다. 무슨 이유가 되었든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될 일이다. 앞으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기보다 보다 건전한 생각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바꾸고 볼 일이다. 자신을 학대할 수 있는 정신력이라면 더 좋은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못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것이 곧 효의 시작이자 충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첫댓글 지난 주에 한편을 쓰지 못해서 부랴부랴 썼습니다...즐거운 휴일 되세요..^^
일전에 <솔사랑방>에다 화상을 입었다던 이야기를 올린 내용을 멋지게 한 편의 수필로 낳셨네요. 나날이 일취월장하시는 표현과 문장력과 노력에 ㅉㅉㅉㅉ 보냅니다.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효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역사적 사실의 평가는 바른 역사의식과 그 시대의 상황 분석 결과 없이는 단정할 수 없지 않을까요. (예: 쇄국정책)
그러고 보니 너무 단정적으로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다듬어 보겠습니다...^^
발전 하기위해 세태를 현명하게 받아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닐까요. 참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도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군요. 나를 사랑하는 일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효도도 될수 있는 근신이요, 자식에게도 근심을 주지 않으니까요. 좋은 글 감상 잘 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하고 다니는 문신이나 피어싱을 보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의 작품을 감상하며 더 공감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