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박상범
출생 : 1943년 4월 10일
경력 : 1985년 대통령 경호처장
1993년 2월 대통령 경호실장
1994년 12월 ~ 1997년 3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
1997년 3월 ~ 1998년 3월 국가보훈처 처장
1999년 8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직능대표
10ㆍ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현장, 버마 아웅산테러 등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 긴 불사조.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피격하던 당시 몸을 던져 박 대통령을 보호했던 보 디가드 박상범 전 김영삼 대통령 경호실장(62)에게 붙은 별명이다. 그는 최근 8ㆍ15 육영수 여사 저격 현장이 공개되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 전 실장은 경호실장, 국가보훈처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민주평통 장학회 이 사장을 맡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5명의 대통령을 근접 경호했던 당시 의 비밀을 모두 간직한 채 언론에 일절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언론에서 수없이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역대 대통령의 비화를 들으려는 언론사들의 접촉 시도가 부담스러워 해외로 피한 적도 있다.
하지만 박 전 실장의 성품을 잘 아는 인사들은 역시 '그답다'고 평한다. 박 전 실장은 성남 중고, 고려대 법대를 나와 해병대에 입대해 대위로 전역한 뒤 공 채로 청와대 경호원이 됐다. 태권도 합기도 유도 등 무예를 합치면 두 자리 숫 자는 된다.
그는 1974년 문세광의 총성이 울리자 바로 단상으로 올라가 대통령을 가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장 용감하고 충직한 경호원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차지철 경호실장 휘하 경호원으로 1979년 10ㆍ26 궁정동 만찬장에 있었다 .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경호팀은 박 대통령을 시해하고 이어 차지철 실장과 경 호원들을 향해 총을 쐈다. 그를 비롯한 박 대통령 경호팀원들은 확인사살까지 당했다. 하지만 박 전 실장은 죽지 않았다. 후일 알아보니 그를 친형처럼 따르 던 중앙정보부 후배들이 일부러 그의 허벅지와 옆구리만 스치게 총을 쐈던 것 이다.
그는 1983년 버마 아웅산사태 때도 전두환 대통령의 경호과장으로 폭파 현장을 간발의 차이로 비켜났다. 그의 구사일생 얘기는 또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한 국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첫 데뷔 자리가 됐던 미국 방문을 앞두고 경호실 차원 에서 사전 현장조사를 갔다가 차량이 전복되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했으나 여 기서도 사신(死神)은 그를 비켜갔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민간인 출신으로서 첫 경호실장의 중책을 맡았다. 그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김 대통령의 안위에 대해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했다. 북한 군부 내 강경파가 갑자 기 김 대통령을 공격하거나 붙잡을 가능성에 대해 헬기공수 등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김일성 주석이 하얀 옷을 입고 관에 누운 채 실려 나오 는 꿈을 꿨다. 박 전 실장은 그 다음날 정종욱 외교안보수석, 윤여준 안기부 특보, 정세현 통일비서관과 점심을 같이 하면서 김 주석 문제로 정상회담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당시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김 주석은 사망했다.
그는 민주평통 사무총장 시절이나 보훈처 장관 시절 항상 겸손함과 온화함, 여 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당시 10여 명의 기자들이 덤비면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분은 공 간이 좁기 때문에 집중공격이 어렵다"며 "여러분들이 덤벼도 급소만 가격하면 금새 KO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다. 박 전 실장은 불사신의 기억들을 묻는 질문에 "무슨 기사냐, 소주나 한 잔 하 자"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