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 자연, 그 속에 담긴 생명의 역설: 황광현 「메콩강의 추억」
밤하늘 달빛 아래 고요히 흐르는 강
비바람 몰아치던 정글을 헤치고서
전쟁터 젊은 청춘을 앗아갔던 강물이여
전쟁의 광기로 피비린내 불러오고
내일의 희망마저 무너지게 하였지만
그래도 산다는 희망 잊지 않고 있어라
목숨을 담보로 한 이국땅 전쟁이라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산화된들
메콩강 저녁노을은 어제처럼 아름답다
-황광현 「메콩강의 추억」 전문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260279
황광현 시인의 시조 「메콩강의 추억」은 시인이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로서 겪은 개인적 경험이 깊게 반영된 작품이다. 이 시조는 단순한 전쟁 서사나 감정의 토로에 머물지 않고, 전쟁을 겪은 자로서의 깊은 성찰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대립적이면서도 조화로운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
첫째 수에서 메콩강은 "고요히 흐르는 강"으로 묘사되지만, 그 이면에는 "젊은 청춘을 앗아갔던 강물"이라는 비극적 역사가 담겨 있다. 자연의 고요와 전쟁의 참혹함이 충돌하는 이 대목에서, 시인은 자연의 불변성과 인간 삶의 덧없음을 대비시킨다. 메콩강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시인의 전쟁 경험이 응축된 상징적 장소로 기능하며, 청춘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이자, 그 비극을 초월하는 자연의 지속성을 함께 드러낸다.
둘째 수에 이르면 전쟁의 참혹한 장면이 보다 선명해진다. "전쟁의 광기로 피비린내 불러오고"라는 구절은 전쟁의 폭력성을 극명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의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인의 내면적 목소리가 들린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아이러니적 구조다. 전쟁으로 인해 "내일의 희망마저 무너지게" 되었음에도, "그래도 산다는 희망 잊지 않고 있어라"는 구절은 전쟁의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역설을 잘 보여준다. 이는 전쟁의 비참함을 넘어서는 생명력에 대한 강한 믿음을 상징하며, 참전 용사로서 시인이 느낀 복합적인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셋째 수에서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통찰이 두드러진다.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에 산화된들"이라는 표현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그 뒤를 잇는 "메콩강 저녁노을은 어제처럼 아름답다"는 구절에서 자연의 무심한 영원성과 그 속에서 덧없이 사라지는 인간의 운명이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때 메콩강은 죽음과 상실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을 품고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자연의 지속성을 상징하며, 인간의 유한한 삶을 초월하는 존재의 초월성을 암시한다.
황광현 시인의 이 시조는 전쟁 참전이라는 극한의 경험을 기반으로,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근원적 문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자연을 통해 인간 삶의 덧없음과 희망의 끈을 동시에 담아낸 점에서, 이 시조는 단순한 개인적 회고를 넘어선 보편적 성찰의 장을 열어준다. 전쟁의 상흔을 품은 메콩강은 역사의 비극을 간직한 동시에, 그 비극을 초월하는 자연의 무한한 시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시인의 심리적 깊이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다. (리뷰: 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