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고용평등주간'에 본 미혼모 현실
"편견 갖지 말고 한 아이 엄마로 봐주세요!"
수정시간: 2014-05-30 [11:41:35] | 23면
부산일보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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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한국미혼모가족협회와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미혼모 출산휴가 권리 캠페인을 공동으로 벌이고 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제공
여전히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는 자막이 뜬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가 해외입양 문제와 미혼모 양육 지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입양의 날'인 지난 11일 공개한 공익광고의 한 장면이다.
지난 26일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는 '미혼모에게도 출산휴가를'이란 이색적인 캠페인까지 열렸다. 이번 주는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제14회 남녀고용평등강조주간. 미혼모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왜곡된 사회적 시선 여전히 높은 벽
양육 용기 내지만 현실이 '포기'로 몰아
10명 중 8명 넘게 "차별 심각" 응답
실질적 '자립 지원' 제도화 서둘러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 '심각'
지난 4월 A 씨는 아이의 출생 신고를 위해 구청 민원실을 찾았다. 서류를 살펴본 공무원은 A 씨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더니 혼잣말처럼, 그러나 또렷하게 물었다. "무슨 마리안가?" 미혼모로 혼자 아기를 낳아 기르던 A 씨는 출생신고서의 아버지 인적 사항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목경화 대표는 "공무원의 인식이 이러니 사회 전반의 시선은 어떻겠느냐"고 되물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사례도 한두 건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물론 맞서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편견의 높은 벽 앞에서 대부분 무너지고 말죠." 목 대표는 양육을 선택한 미혼모들은 그래도 아이를 지키겠다는 큰 용기를 낸 사람들이라고 했다. 미혼모는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지만 출산하여 어머니가 된 경우다.
특히 경제력이 없는 24세 미만의 청소년 미혼모들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다. 그래서 발생하는 것이 영아 유기 사건이다. 극단의 선택은 그만큼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는 아이를 키울 권리가 있고, 아이는 부모와 함께할 권리 또한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만찮은 현실은 양육의 포기로 이어진다. 지난해 입양의 94.3%가 미혼모의 아이다.
■아이는 친부모와 함께 살 권리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이들은 친부모와 함께 살 권리를 부모와 사회, 국가로부터 보장 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무리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들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도 잦다.
지난 26일 미혼모 관련 단체들이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미혼모 출산휴가 권리 캠페인을 벌인 것도 이런 장벽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목 대표는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은 누구나 출산휴가를 보장 받지만, 유독 미혼모에 대한 편견은 혹독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마저 누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2011년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미혼모 차별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84.5%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냐는 질문에 90.2%가 "그렇다"고 답했고, 남성(미혼부)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는 사람도 76.3%에 달했다.
박 대표는 "경제 활동과 양육을 동시에 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정책의 미비는 미혼모 가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로 내년 3월 25일 시행되는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혼인 여부 상관없이 부양의무 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지난 19일 전국여성법무사회 오영나 부회장의 발제로 '양육비 이행 절차와 확보 방안'에 대한 포럼을 열었다. 오 부회장은 발제 문에서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비는 친자 관계의 본질에서 발생하는 의무"라며 "부부의 혼인관계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부모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출산을 미혼 부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경우라도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 판례가 있다며 적극적인 대처를 당부했다.
박 대표도 "미혼모라서 겪는 소득 상실과 자녀 양육의 책임은 결코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다"며 "미혼모의 권리는 국가가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찾고, 또 제도 보완을 통해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도움을 받으려면…
미혼모·부가 생활이나 삶의 진로 등에 대한 상담을 받으려면 가족협회나 민간지원센터, 광역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원센터로 연락하면 된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cafe.naver.com/missmammamia, 02-2682-3376)는 '미스맘마미아'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미혼모들이 중심이 돼 만든 단체이다. 같은 처지의 미혼모들인 만큼 생생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www.kumsa.org, 02-734-5007)는 양육 미혼모들을 위한 권익 옹호와 사회적 편견 불식을 위해 지원하고 활동하는 단체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안과의사 리차드 보아스 박사가 출연한 기금을 종자돈으로 만든 재단으로 미혼모 지원 현안 발굴을 위한 당사자와 전문가, 기관의 네트워크를 기획한다. 상담과 법률 자문, 교육도 진행. 보아스 박사는 우리나라 여자아이를 입양하기도 했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부산시 미혼모·부자지원센터(051-253-5235), 울산시 건강가정지원센터(052-274-3137), 경남도 미혼모지원센터(055-243-0233) 등에서는 미혼부모 상담, 출산 및 양육 지원, 위기 지원 등 제반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