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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이 살아가는 AI 세상
나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퇴물 취급받는 꼰대가 되었다. 나이 오십에는 나 스스로 쉰세대라 불렀고 예순을 넘기며 자연스레 꼰대 세대가 되었다. 꼰대란 말을 검색해보니 국어사전에 ‘꼰대’는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자,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이라 한다. 내가 굳이 꼰대라고 스스로를 비하하여 붙이는 이유는 권위만 내세우는 안하무인, 고집불통의 꼰대가 아닌 멋진 꼰대가 되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 꼰대들은 천년을 지나 또 다른 천년 속에 살고 있다. 두 천년을 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1960년대 초반, 한국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태어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마을에서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의 배고픔을 아무리 실감 나게 설명하려 해도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당시에는 군인이 5·16쿠데타로 정부를 이양한 군사정부 시절이었고 ‘간첩 신고’ 및 ‘반공, 방첩’ 표어 문구가 동네마다 붙어있던 시절이었고 반공교육이 교육의 기조를 이루고 있던 살벌한 시기였다.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바가지와 냄비를 철모처럼 머리에 쓰고 전쟁놀이를 하던 때라 등교도 마을 앞에서 모여 두 줄로 서서 집단으로 등교를 했다. 초등학교도 ‘국민학교’라고 했다. 따라서 1969년 이후 발행한 교과서 앞부분에 모든 국민이 스스로 익혀서 실천해야 할 ‘국민교육헌장’ 문구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것은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하여 반포된 우리나라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마련한 헌장이었다. 이 ‘국민교육헌장’은 가정교육 ·학교 교육 ·사회교육 등 모든 교육의 근본 지표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줄줄 외워지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로 시작하여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다‘로 마치며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까지 외워야 끝난다.
학교에서는 다 외우지 못하면 남아서 다 외운 후에야 집에 보내주던 어처구니없던 시절이었다. 어찌 보면 요즘 세대들에겐 달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지 모르는 단어들의 집합이다. 국가 지상주의, 전체주의적 표현이 많은데 당시 시대상을 보면 최고의 표현들이었을 것이다.
주요 문구를 보면 ‘민족중흥, 역사적 사명, 조상의 빛난 얼, 자주독립의 자세, 인류 공영에 이바지,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 개척의 정신, 공익과 질서, 능률과 실질을 숭상,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 국가건설에 참여, 봉사하는 국민정신, 반공 민주 정신,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 민족의 슬기, 새역사 창조’ 등이다.
이 ‘국민교육헌장’은 제5공화국까지 이어지다가 1980년대 민주화가 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폐지하게 되었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국민교육헌장의 강제 낭독이 사라졌고 그 후 폐지 논의가 계속되다가 2003년 11월 28일 공식 폐지되었다고 한다. 상당히 오랜 기간 우리들의 정신을 붙잡아 둔 덕목이었다.
그런데, 이 국민교육헌장을 누군가 패러디하여 ‘고교교육헌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요즘 성적 위주의 교육 세태를 풍자한 것 같아 전문을 옮겨 본다.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선배의 빛난 입시 스펙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친구 타도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입시의 지표로 삼는다. 영악한 마음과 빈약한 몸으로 입시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무시하고 우리의 성적만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아 찍기의 힘과 눈치의 정신을 기른다. 시기심과 배타성을 앞세우고 능률적 찍기 기술을 숭상하며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완전히 타파하여 메마르고 살벌한 경쟁 정신을 북돋운다. 나는 눈치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성적이 향상하며 남의 성공이 나의 파멸의 근본임을 깨달아 견제와 시샘이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남의 실패를 도와주고 봉사하는 척하는 학생 정신을 드높인다. 이기 정신에 투철한 입시 전략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명문대 입학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배에게 물려줄 영광된 명문대 입학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눈치 빠른 학생으로서 남의 실패를 보아 줄기찬 배타주의로 명문대에 입학하자.“
어떤가? 그럴싸하지 않은가. 만약, 제3공화국 시절이었으면 금방 색출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민주화가 이 자를 살린 셈이다. 또한 체조도 ‘국민체조’라고 해서 기본동작을 나라에서 만들어 전국에 보급하고 익히게 했다. 어쩌면 우리 꼰대 세대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웃픈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글자가 1인 나는 요즘, 2000년대 이후 출생한 3이나 4로 시작하는 디지털 원주민들이 주를 이루는 Z세대들과 섞여 산다. MZ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출생한 Z세대를 말하며 밀레니얼 세대인 Y세대의 뒤를 잇는 인구 집단들을 말한다고 한다. 그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유행에 민감하며 남이 하지 않은 이색적인 경험을 더 원하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특징을 보면 집단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고 소유보다는 공유를 먼저 생각하고 소비에서도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나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 세대와는 달리 미래보다는 현재를, 가격보다는 취향을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Z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가 뒤섞인 환경에서 자란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어 자란 디지털 원주민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인터넷을 사용해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등 정보기술(IT)에 친숙하며 스마트폰에 익숙하며 이미지와 영상 콘텐츠를 선호한다. 꼰대들과 소통을 차단하는 Z세대는 문화의 소비자이자 생산자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세대이다.
우리나라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은 1984년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된 텔레비전 쇼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란 작품을 통해 매스미디어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이 권력을 통제하며 사회를 감시하고 대중매체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내용을 풍자하여 비판적 의도를 담고 있는 텔레비전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작품은 미국,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실시간으로 상영되었다. 당시 백남준이 인터뷰를 하던 중에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는 개인들이 손에 작은 텔레비전을 들고 다니며 어디에서든 세계 각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세계 여러 나라의 소식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볼 수 있고 상품도 구매하여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그야말로 글로벌 시대가 예언대로 실현된 셈이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꼰대들은 당연히 버벅대고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나는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Z세대 학생들과 만나 소통하며 대화하는 일이 때론 두렵기도 하다.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올 수 있도록 레포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그들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전혀 엉뚱한 생각으로 답을 할 때 뒷말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다른 천년 사람임을 숨기려 Z세대들의 틈새에서 그들의 말을 배우고 의미도 모른 채 그들의 말을 해야 그들과 섞일 수 있을지 모른다.
새 천년에 새 땅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나는 스마트하지 않은 꼰대 아저씨다. 너희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잘살게 된 것이 너희 생각 속 꼰대들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덕분이라고 구 천년의 아픈 역사의 행적을 ‘나 때는 말이야’를 달아 말해도 달달한 ‘카페라테’로 받아들이는 겪어보지 않은 너희들이 그 시절 그 아픔을 알기나 할까. 민주주의의 탈을 쓴 유신체제 이야기를, 체육관 선거로 치러진 대통령선거를 가늠이나 할까. 요즘 세대들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열망을,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 쏟아내며 ‘독재 타도’ 구호를 외치며 피 흘려 싸운 80년대를 어떤 언어로 설명해야 할까. 침 튀기며 핏대올려 힘껏 뱉어내도 그들에게 닿지 않은 불발탄 같은 허황한 말일 것이다.
배고파보지 않은 자들이 배고픔의 고통을 알지 못하듯 이미 행복이 만들어진 완성된 세상에서 행복을 만드는 래시피는 귀찮은 것일 뿐이다. 비행기, 기차, 고속버스 승차권도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예매를 한다. 음식점에 가도, 커피숍에 가도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는다. 집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물건이나 음식을 주문하면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시대다. 리모컨 없이도 AI ‘지니’를 불러 TV를 켜고 끈다. 현관 입구에서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불러올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고 알려주고 등록된 차가 아니면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차단봉이 열리지 않는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다. 등록된 차가 들어오면 차단봉 앞의 센서가 인식하여 팔을 들고 통과시켜준다. 차량이 통과하면 거실 스피커에서 차량이 들어왔다고 알려준다. 스마트 키를 이용하면 집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 수 있고 차량 상태도 점검이 가능한 세상이다. 집 밖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로 집안의 전자제품을 조종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함께 살고 있다. 모르면 고집을 버리고 배우자. 우리가 다른 나라 언어를 평생 배우듯이 요즘 시대 젊은이에게 배우자. 꼰대들이여, 이제,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자. 모르면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편함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우리 집에도 로봇 청소기가 있다. 그러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멈추어 서 있다. 얼마 전에 딸애가 구매해서 우리에게 사용해 보라고 가져다준 로봇 청소기가 거실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다. 몇 차례 사용하다가 기능을 잘 몰라 고이 모셔놓고 있다. 아무리 편리하다 해도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겐 불편하다. 편함이 불러온 스마트 세상의 낯섦이 우리 꼰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제 로봇 청소기 같은 기술은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기능을 제대로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기능을 제대로 익히면 우리도 AI 시대를 MZ세대와 더불어 편리하게 살 수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AI 기술의 이해와 수용을 통해,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최대한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AI 기술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AI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할지에 대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평생 학습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넓히며,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호기심과 개방성이다. 우리가 이러한 태도를 갖춘다면, AI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창의력과 융합적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작업을 대신할 수 있지만, 창의적이고 비정형적인 문제 해결은 여전히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AI 시대의 핵심 자질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하나하나 학습을 통해 익혀야 할 것이다. AI 시대, 우리는 ‘알아야 면장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더욱 실감 날 것이다. 알면 편안한 삶을 살 것이고 모르면 모든 것이 불편할 것이다.
창의적 사고 능력, 챗 GPT와 Dall-E 같은 도구를 '생성형' AI 라고 부르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AI 애플리케이션은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 정보, 이미지를 조합하여 새로운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뿐이다. 따라서 틀에서 벗어난 혁신적 사고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의성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 능력이다. 창의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꼰대들이여, 두려움을 떨쳐내고 AI와 친해지자. AI와 친구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