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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태준 회장의 미망인 장옥자 여사의 望夫歌
``유례 없는 일`` 박태준 묘소서 부인이 1년간 매일...
장옥자 여사가 남편 박태준 명예회장 묘소에 올려놓은 믹스 커피. [신인섭 기자]
‘철강왕’이라 부르지만 장옥자(82) 여사에게는 ‘효자사 주지스님’으로 기억된다.
1968년 시작된 포항제철(지금의 포스코) 건설이 92년 광양제철소 4기 설비 준공식으로 마무리되는 동안 남편 박 회장이 서울에 가족을 두고서 꼬박 지냈던 곳이 포항 효자동이다.
“서울에서 아버지(남편을 지칭) 숙소로 내려갈 때면 아버지는 나를 기다리며 창문 앞에서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눈물이 났던지….” 장 여사의 회고다. 장 여사는 남편이 묻혀 있는 서울 동작동 현충원 묘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찾았다.
본지는 올 초부터 현충원에서 장 여사를 10여 차례 만나 박 회장과 57년 생을 함께한 그의 ‘현충원 망부가(望夫歌)’를 지켜봤다.
장옥자 여사 ◆시묘살이 1년 전날 내린 폭설과 강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6일 오전 11시쯤 되자 이날도 어김없이 장 여사가 탄 검은색 세단이 현충원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에 선 초소병은 두말없이 차를 향해 경례를 했고, 차는 국가유공자 3구역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박 회장 묘소 앞에는 천막이 쳐져 있는데, 검은색 정장 차림의 장 여사는 매일 그곳에서 5시간가량을 보낸다. 묘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꽃무늬 사기 찻잔에 믹스 커피를 타는 일부터 한다.
그러고는 커피 잔을 묘소 상석 위에 깔아 놓은 주황색 보자기 위에 살포시 놓고 한참 동안 묵념한다. 장 여사는 “아버지가 참 커피를 좋아하셨다”고 했다.
천막 안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난 7월 20일 태풍 카눈이 소멸한 날, 33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충남 천안에서 온 30여 명이 묘소를 찾았다.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TMC의 임직원들이었다. 장병효 포스코TMC 대표는 “ 그분의 정신을 다시 한번 다지고자 왔다”고 말했다.
현충원에 산책 나온 동네 주민도 박 회장 묘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장 여사는 이들을 위해 커피 믹스와 따뜻한 물이 담긴 보온병을 늘 준비했다.
테이블 위 손님맞이용 간식 그릇엔 쥐눈이콩·아몬드가 담겨 있었다. 장 여사의 이 같은 시묘살이에 현충원 관계자는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아버지에게 인사하러 왔는데 아무도 맞아주지 않으면 어떡하겠습니까. 방문객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해야겠다고 곁을 지켰던 것이 벌써 1년이 됐네요.” 지금도 집에서 어쩌다 생일 때 받은 선물 같은, 추억이 담긴 소지품을 발견하면 충격 받아요. ‘내가 존재하는 게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집에서 나 혼자 있을 때면 방문을 잠그고 웁니다.” 그러면서 휴대전화 메인 화면으로 등록해 놓은 명예회장의 사진을 슬쩍 보여줬다.
그는 “내겐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버지랑 두말없이 결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현충원은 그런 장 여사에게 ‘힐링캠프’ 같은 곳이 됐다.
장옥자 여사가 6일 남편 묘소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여사는 지난해 박태준 명예회장이 이곳에 안장된 뒤 매일 5시간씩 묘소 앞 천막에서 지내며 방문객을 맞았다. [신인섭 기자]
결혼 당시 박 회장은 육군사관학교 교무처장이었다. 63년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박 회장은 이후 포항제철을 세우며 기업인의 삶을 살았고, 민자당 최고위원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장 여사는 결혼 직후 남편이 한 말을 이렇게 기억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평생을 살겠다는 것이 내 목표요. (동그란 원을 그리며) 이를 위한 내 능력이 이 원만큼인데 오로지 이 원에 전념할 수 있게 나를 좀 보좌해주시오.
” 장 여사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약속했고, 살림살이를 하면서 남편의 원칙에 늘 따랐다.
박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36년간 살았던 북아현동 집을 팔아야 했고, 박 회장은 집 판 돈 14억5000만원 중 10억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해버렸다.
부부는 이후 전세살이를 하다가 둘째 딸 소유 한남동 맨션에서 살았다. 2010년, 박 회장은 아내에게 미안했던지 이렇게 말했다고 장 여사가 전했다.
“여보, 내가 평생 살다가 남의 집에서 죽는 거 아냐.” 장 여사는 오히려 남편의 이 말 한마디가 늘 마음에 걸렸다. 보다 못한 장남이 지금 장 여사가 기거하고 있는 서울 청운동 낡은 단독주택을 샀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 집을 자기 명의로 하는 것에 끝끝내 반대했다. “우리에게 10년 세 주는 걸로 해달라”고 아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청운동 집으로 이사 가기 전에 지병인 폐부종 증세가 악화돼 생을 마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늘 아내부터 배려하는 남편이었다. 장 여사는 “아버지는 내겐 둘도 없이 자상한, 신사 남편이었다”고 회상했다.
장 여사는 “ 늘 ‘명예도 직위도 없이 나 하나 보고 시집온 아내를 어디 이길 데가 없어서 이겨야 하나. 내가 양보한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출장을 갈 때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꼬박꼬박 엽서를 보냈다. 임직원들에게 최고 수준의 주택·교육 단지를 제공하겠다는 신념에서다.
그래서 얻은 또 하나의 별명이 ‘떴다’다. 그가 관사에서 회사로 이동할 때면 직원들이 ‘떴다’ 신호를 주고받으며 한바탕 난리를 쳤다. 보도블록 하나가 튀어나와 있어도 호통이 나오는 건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박 회장은 포항·광양에 27개의 학교를 만들었다.
한국 기업 최초로 임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전액 대학 장학금 제도도 만들었다. 장 여사는 이처럼 ‘오로지 포철’만 생각하던 남편과 함께 포스코의 변천사를 지켜봤다.
그래서 걱정도 많다. 장 여사는 “포스코는 국민의 기업이다. 더 이상 외풍에 시달리게 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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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퍼스트레이디 포철의 영부인 장옥자,
남편도와 직원부녀교육 생활개혁 내조열정 - 전국 첫 쓰레기 분리수거 창시자
장옥자 여사는 1930년 부산에서 3남2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54년 박태준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그녀는 포스코 설립 이후 임직원 부인들과 함께 부인회를 만들어 ‘생활개선운동’에 나섰다. 포스코 내 지어진 사원주택에서 직원들이 함께 살다 보니 하수구가 자주 막히는 등 자잘한 사고가 많았다.
남편이 일 나간 사이 화투를 치거나 춤추러 가는 부인들도 종종 있어 ‘군기 단속’도 필요했다.
이에 장 여사는 10년 차 이상 근무한 직원 부인을 모아 놓고 매주 강연을 했다. 당시 포철의 중요성을 알리고 식사 자리에서 매너 교육도 했다. 포항 시민을 대상으로 “쓰레기를 가져오면 돈을 주겠다”고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다. 또 임직원 부인 몇 명을 뽑아 일본에 견학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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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前 일본 총리,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묘소 참배
2012/05/12
포스코는 11일 모리 요시로 前 일본 총리가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묘소를 참배하고 유가족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고 밝혔다.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장옥자 여사(왼쪽)와 모리 요시로 전 일본총리(오른쪽).(사진 = 포스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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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왕 故 박태준 명예회장 추모비 제막
‘철강왕’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추모비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세워졌다. 정준양 박태준 명예회장 추모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포스코 회장)을 비롯해 포스코 전·현 임직원과 이배용 국가브랜드위원장, 이기수 양형위원장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철강 불모지인 한국에서 일관제철소 건설과 산업 근대화에 앞장 선 고인의 공로에 대해 존경의 글을 썼다.
뒷면에는 포스코 임직원들이 포스코를 창립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데 대한 감사의 글을 새겼다. 지구촌 곳곳에 또 다른 포스코 신화를 창조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포스코센터에 동상과 부조를 설치하고 드라마 ‘철강왕’ 제작 방영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故박태준 명예회장 1주기 추모식, '박태준 정신'을 되새기다
2012 12.13
작년 2012 12.13 박태준 서거 1주기 맞아 포스코센터내 박태준 명예회장의 모습과 어록이 담긴 부조 제막식. 왼쪽부터 이기수 전 고려대총장,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황경로 前 포스코 회장, 장옥자 여사(故 박태준 명예회장 부인), 박성빈씨(故 박태준 명예회장 장남), 이배용 전 국가브랜드위원장, 김용민 포스텍 총장
서울대 이용덕 교수가 양각과 음각이 뒤바뀐 ‘역상조각’ 형식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독특한 입체감으로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이 움직이듯 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부조 왼쪽에는 ‘조상의 피의 대가로 짓는 제철소입니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투신해야 합니다’ 등 고인이 남긴 어록을 새겨 넣었습니다.
‘박태준 사상, 미래를 열다’는 청암 박태준 명예회장의 타계 1주기에 발맞춰 그의 사상과 생애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한 단행본으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하여 최진덕,전상인, 김왕배, 백기복 등 총 5명이 공동 집필하고, ‘박태준’ 평전을 쓴 이대환 작가가 엮어 펴냈습니다.
포스코 창업에서부터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으로 키워낸 박태준의 인간적인 면모부터 제철보국과 교육보국의 이념까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박태준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그가 이루어낸 업적에 비추어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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