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김창숙 부티크’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길가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었다. 고속도로 진입하는 길가에 산수유나무가 몇 그루 있다. 봄이면 제일 먼저 꽃소식을 알리는 순박한 봄 처녀다. 붉은 열매를 겨우내 달고 있더니 어느새 꽃을 피우고 있다. 눈이 내리면 산수유 열매는 붉은 꽃이 된다. 열매를 수확하지 않으니, 가지에 매달려서 겨울을 난다.
버스를 기다리는 데 마음이 설렌다. 봄바람이 났다. 프렌치코트로 멋을 내고 머리도 정성 들여서 손질했다. 하얀 셔츠도 오랜만에 다림질했다. 안에 검정 티셔츠를 입고 하얀 셔츠를 겉옷으로 입었다. 멋을 한껏 내고 외출하는 기분은 봄바람처럼 살랑거린다. 버스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한적했다. 조금은 더운 날씨다. 묘목 시장이 분주해졌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과수원 풍경이 ‘봄’ 그 자체다. 시골에 살면 계절의 변화를 일찍 느낄 수 있다. 버스 안에 사람들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졌다.
백화점에서 남편 와이셔츠를 샀다. 얼마 전에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선물을 준비 못했다. 아니 남편과 백화점에 갔었는데 내 선물만 사고 그냥 들어왔다. 남편이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칠 것을 알기에 그냥 들어왔다. 혼자 나가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선물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모처럼 곱게 꾸미고 나가서 쇼핑도 하고 시장도 들러보고 아들이 좋아하는 닭강정도 사고 소소한 소품도 사면서 하루 즐기고 싶었다. 분홍색 셔츠를 샀다. 봄이니까 화사하게 입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젊어 보이기도 하니까. 선물 포장을 부탁했더니 깔끔하게 해주었다. 쇼핑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마구 행복해졌다.
지나가는데‘김창숙 부띠끄’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친정에 가실 때 벼르고 별러 샀던 옷이다. 엄마 생각에 매장 앞에서 물끄러미 진열
된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밖에 걸어놓은 셔츠가 편안해 보였다. 가격도 세일해서 저렴했다. 한 개 사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김창숙 부띠끄’분위기가 아니었다. 옷도 젊어졌고 정장이 아닌 캐주얼한 옷이 진열이 되어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내 옷이다’하는 옷을 발견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마음에 쏙 드는 옷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4년 가까이 옷을 사지 않았다. 5월에 문학 기행 간다고 하는데 다음 달 엄마 기일에 대전도 가야 하는데 남편과 4월에 제주도 여행도 가야 하는데 등등 사야 하는 이유가 하나씩 떠올랐다. 이런 날은 일을 저지르고 만다. 입어보니 사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후드가 달린 캐주얼한 트렌치코트다. 세일을 해서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만, 그래도 10만 원이 넘었다, 잠시 주저하다가 이대로 집에 가도 눈에 어른거려서 다시 나오고 말 것을 알기에 시원하게 샀다. 나에게 주는 봄 선물이라 생각했다.
시장에서 닭강정을 샀다. 맛있는 냄새가 비닐봉지를 뚫고 새어 나오지만, 아들이 좋아하니 용감하게 들고 버스에 탔다. 다행히 손님이 많지 않아서 혼자 앉아서 집까지 왔다. 남편 선물도 샀고 내 옷도 사고 아들이 좋아하는 닭강정도 샀으니 날아갈 듯 행복하다. 충동구매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봄이 왔잖아, 꽃놀이 갈 때 입고 가자.” - 2024년3월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