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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출 17:8-16)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변화를 위해 사람들이 다짐하고 결심하지만 변화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벌을 받고 도박을 끊고자 다짐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같이 도박장에 앉아 있습니다. 경찰이 들이닥쳐 체포하려 할 때 그는 창문으로 도망치고자 뛰어내립니다. 하필 그 집은 3층이었고 그는 다리를 다쳤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스승에게 찾아가 남편이 도박에서 빠져나오도록 설득해 달라고 청을 합니다. 스승은 그에게 말합니다. ‘다음에는 1층에서 하게.’ 아내는 스승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도박을 끊으라고 말해달라고 했는데 왜 말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스승은 변화가 어려우니 다치지 않도록 1층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도박은 못 끊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변화가 어렵다는 말이겠지요. 새롭게 된다는 것도 말은 쉽지만 어렵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교회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외친 것입니다. 교회가 본래의 자리에서 벗어나 세속의 길로 접어들 때,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그렇게 개신교는 탄생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기독교는 전혀 새롭지도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생각으로 덧입혀져 선포되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500여년전 종교개혁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새로워지려는 노력은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늘 새로워지려고 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든, 사람이든 새로워지려고 할 때,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의지와 노력으로는 변화하고 개혁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을 시작할 때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교회는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것이 종교개혁이고, 신앙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자기 지식과 경험과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런 뜻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도 다를 수 있습니다. 차이가 있고,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고 말씀을 들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으면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깊이 말씀 속에 빠져들 때 비로소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성령님께 청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얄팍한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안다’는 교만이 교회와 신앙을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새로워지도록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자신이 변화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날이 있습니다. 광복절이지요. 광복절에 우리가 해방되었습니까?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일왕이 항복 선언을 연합군에게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일제에 협력한 친일 세력도 뿌리 뽑지 못했습니다. 왜곡된 역사, 정치를 물려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복절은 해방된 날이 아니라, 해방의 길에 들어선 날, 해방의 길을 시작한 날입니다. 완전한 해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해방의 길을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노예로 살고 식민지배를 받고 살던 때가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해방되었는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며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해방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 해방의 시작인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앞길에는 수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애굽에서 편안하게 살던 우리를 이끌어내 이 고생을 시키느냐. 애굽으로 돌아가자.’ 아마 사람들은 해방된다고 하면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게 될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먹을 것도 없이 고생을 하니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해방된 것이 아니라, 해방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해방된 나라, 자유와 평화의 나라는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은 슬픔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불평합니다. 예수 믿고 세례 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는데 왜 내 삶은 이렇게 고달프냐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길을 나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먹을 물이 없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모세를 향하여 백성들은 불평합니다. (3절) 모세로서도 답답합니다.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고 하십니다. 그대로 하자 바위에서 물이 나왔습니다. 르비딤에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 부족이 공격할 때 담대하게 맞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높은 곳에서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손을 오래 들고 있을 수 없어서 아론과 훌이라는 사람이 각각 모세의 팔을 한쪽씩 붙들고 버티고 있습니다.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 있었던 것은 주술적인 힘이 아니라, 아마 하나님의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었을 것입니다. 군사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헌신하는 지도자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조금만 어려우면 불평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백성이 ‘내 백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물론 혼자 힘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아론과 훌과 같은 협력자가 있어야 합니다. 18장에는 협력자를 제도적으로 마련합니다. 천부장, 백부장 같은 지도자를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제도는 모세 때 만들어졌다기보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론과 훌과 같은 협력자들이 있어 모세를 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지도자와 협력자는 언제나 있습니다. 아무리 많고 좋은 지도자와 일꾼이 있다고 해도 사람의 지혜와 능력만으로 해방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가능합니다. 모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기 위해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는 순종했습니다. 믿음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였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싸우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으면 백성들은 변했을까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랐을까요?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3장에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 지파에서 한 명씩 뽑아 가나안을 정탐하게 하는데, 열 지파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가나안 땅이 풍요로운 곳이지만 그곳 사람들은 장대하여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낙심하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고생하며 왔는데 차지하지 못한다고 하니 광야에서 떠돌이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며 용기를 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보고를 한 정탐꾼들이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게 되리라고 벌을 내리십니다. 백성들은 그 땅을 우리가 정복하자고 전쟁을 시도하지만, 아말렉족과 가나안족에게 패하고 맙니다. 그 전쟁은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민 14장)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탈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 지식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그때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내 지식, 능력, 생각으로 행할 때 교만, 탐욕, 시기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으면 믿음으로 순종하겠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 28:20)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주님을 피하고 외면하면서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살아가려는 것은 아닙니까?
아말렉 전쟁에서 모세가 손을 든 것은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표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손을 내리는 것은 자기 생각, 자기 능력으로 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할 때 승리하고, 자기 생각을 따를 때 실패합니다. 협력자는 지도자가 자기 생각으로 일하지 않도록 팔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붙잡아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나와 나의 협조자가 힘을 합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우리를 도울 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올바르게 갈 수가 있습니다. 비록 우리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길, 해방의 길을 끝까지 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