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帔帖(하피첩)
정약용(丁若鏞:1762~1836)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茶山) · 여유당(與猶堂) · 사암(俟菴).
500여 권의 방대한 실학관계 저작을 했으며, 경학 관계 연구서 232권을 비롯하여,
『목민심서(牧民心書)』 · 『경세유표(經世遺表)』 ·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詩와 文으로도 뛰어 난 저서들을 많이 남겼다.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를 보내왔네
病妻寄敝裙 병처기페군
천리의 먼 곳에서 본 마음을 닮았구려
千里託心素 천리탁심소
오랜 세월에 붉은빛 이미 바랬으니
歲久紅已褪 세구홍이퇴
늘그막에 서러운 생각만 일어나네
愴然念衰暮 창연념쇠모
재단하여 작은 서첩을 만들어서는
裁成小書帖 재성소서첩
아들 경계해주는 글귀나 써보았네
聯寫戒子句 연사계자구
바라노니 어버이 마음 제대로 헤아려서
庶幾念二親 서기념이친
평생토록 가슴속에 새겨두거라
終身鐫肺腸 종신전폐장
「하피첩」에 대하여
다산의 문집에 「제하피첩(題霞帔帖)」이라는 글이 있다.
‘하피첩’이라는 서첩이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는 글이다.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할 때 몸져누운 아내가 헤진 치마 다섯폭을 보내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시집올 때 입었던 활옷인가본데, 붉은색이 이미 바래서 담황색이었다.
글씨 쓰는 재료로 삼기에 딱 알맞았다. 그래서 그것을 재단하여 조그만 첩을 만들어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해주는 말을 써서 두 아들에게 전해준다. 뒷날 이 글을 보고 감회가 일어나 어버이의 좋은 은택(恩澤)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그리워하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나리라, ‘노을처럼 붉은 치마로 만든 첩〔霞帖(하첩)〕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붉은 치마 〔紅裙(홍군)〕' 라고 하면 ’기생‘이라는 뜻도 있어 은근하게 돌려서 이름을 지었다. 순조 10년 (1810) 초 가을에 다산의 동암(東庵)에서 쓰다”라는 짤막한 글이다.
아들에게 교훈의 글로 보낸 글과는 별도로 1813년 강진의 유배지에서 시집가는 외동딸에게 남은 치마폭에 남은 치마폭에 「매조도(梅鳥圖)」를 그리고 화제(畫題)를 달고 설명서까지 쓴 그림은 오래전부터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었다. 그 그림도 유배지에서의 편지와 같은 글이다. 「제하피첩」은 다섯 폭의 헤진 치마라고 했는데. 딸에게 주는 그림에서는 여섯 폭이라 했으니 어느 것이 옳은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른 자료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네 폭을 써주었다고 했는데 세 폭만 발견된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주)창비, 2001
*여담
6.25 전쟁 당시, 정약용의 5대손이 피란길에 수원역 근처에서 「하피첩」을 분실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하다가, 2004년 수원 주택 철거현장 쓰레기 더미에서 페지줍는 할머니 리어카에서 고문서 세 권을 발견했다.
이씨는 “다른 페지를 줄 테니 책을 달라”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2006년 ’진품명품‘에 소개되어 세상에 나왔다.
하피첩은 원래 4권이지만 아직도 1권의 행방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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