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첫 내한 1일차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간 공연하는데 레퍼투아가 완전히 달라서 선택을 해야했고 1일차 공연에 엘리나 가랑차가 나와서 저는 오늘공연을 선택했습니다
지휘는 야닉 네제 세갱, 현재 북미에서 무척 잘 나가는 지휘자이고 작년에 빈필, 야닉 네제 세갱, 조성진 이 조합으로 레전드 공연을 해서 우리에겐 익숙한 이름인데요 실제로 무척 커리어가 화려한 지휘자인 것 같아 기대에 차서 공연 시작을 기다렸습니다
아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외모에 제가 조금 실망아니고 혼돈이 왔는데 들어오는 발걸음이나 의상이나 지휘자보다는 배우 느낌이 많이 났어요 사실 오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습에서도 비슷한 느낌인 것이 공연 시작 전에 조금 일찍 객석에 앉았는데 앞에서 두번째 열이라 상당히 자세히 관찰이 가능한 위치였죠 일찍 나와서 연습하고 있는 단원도 있고 동시에 입장하지 않고 한명씩 한명씩 들어오는데(획일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등장) 일단 전 연령대, 전 인종이 다 포진한 느낌으로 다양한 구성의 단원이었고 복장도 남자 단원은 검은색 양복을 거의 통일했는데 여자 단원들 의상이 색깔만 검은 색이지 다채로운 드레스와 바지 정장까지 자유분방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등장하는 야닉 네제 세갱은 반짝이 가라 셔츠같은 상의를 입고 나옵니다 좀 충격...... 그러나 멋짐폭발
이 오케스트라는 '자유로움 속에 꽉 잡힌 질서' 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군요 가장 놀랍고 감동했던 것은 언뜻 봐도 나이가 70대 이상인 듯한 단원들이 꽤 있었습니다 특히 한 명씩 들어오는 중간에 거의 노화로 등이 굽어서 거동이 불편해 보일 정도인 백발의 단원이 바이올린을 들고 천천히 들어오는데 정말 놀라웠고 그리고나서 보니 백발이 성성한 단원이 꽤나 많았어요 아 찐 대가들인 것 같았습니다
야닉 네제 세갱은 그 빤짝이 셔츠를 입고 포디엄 위를 날다가 오케스트라 속으로 몸을 던질 듯 격렬한 지휘를 하는 스타일이고 매우 유쾌하고 정열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뉴요커 느낌이 확 오는 지휘자였습니다
오늘 공연 레퍼투아는 1부에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서곡 드뷔시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2부에 바르톡의 오페라 <푸른수염의 성> 이었는데요
세 곡이 다 일맥상통한 면이 있어 기존의 오페라와는 다른 바그너의 무지크 드라마를 보고 드뷔시는 나름대로 해석한 방식으로 상징주의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를 작곡했고 바르톡은 <푸른수염의 성>을 작곡할 때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니 이번 공연의 기획의도가 읽혀집니다
첫번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은 보통 오케스트라들이 오프닝 곡으로 오페라 서곡을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제 개인적으로는 늘 만족하지는 못했었는데 오늘 서곡은 출발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1부 공연은 MET 오케스트라 단독공연인데 첫번째 곡, 두번째 곡 둘 다 관악파트가 무척 돋보이게 들렸습니다 메트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부분인 것이 공연 시작 전에 악장이 인사를 하고 튜닝 후 자리를 잡고 지휘자를 기다리는 동안에 맨 앞 자리 악장과 그 옆 바이올린 주자(아마도 부악장?)가 small talk 를 하고 중간에도 간간히 대화도 하고 다른 단원들도 릴랙스한 모습이었는데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그들의 모습이 변합니다 이 박자도 음계도 모호한 작품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한 뭉텅이가 되어 야닉 네제 세갱의 손짓에 따라 음악을 빚어내는데 어려운, 그리고 친숙하지 않은 작품들이 귀에 잘 꽂히는 경험을 했어요 오늘 공연 곡들은 전부 클로징이 임팩트없게 끝나는데 정말 오늘 같이 공연을 본 관객들은 그 여운을 존중하듯이 한 분도 성급한 박수를 치지 않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곡은 끝나고 다들 숨도 멈춘 채 그 여운을 음미하는 씬 상상이 되시나요 ㅎㅎ
인터미션이 끝나고 오늘의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이 공연에 온 이유인 <푸른 수염의 성> 이 시작됩니다 직관도 처음이고 음원으로도 많이 듣지 못했던 작품이라 그냥 백지상태로 들을 각오로 앉았는데 지휘자만 들어와서 다시 인사를 하고 오케스트라가 첫 음을 울립니다 속으로 가랑차는 언제 나오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첫 동기 부분이 끝나자 왼쪽 문으로 베이스 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이 나오고 오른쪽 문으로 엘리나 가랑차가 동시에 등장합니다 이 오페라는 거의 두 명의 대화 방식으로 된 단막의 오페라인 것을 알고 갔지만 이런 등장 방식은 의외였고 좀 신선했어요 무대 상단에 헝가리어 원문과 한글 번역이 잘 되어있어서 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반복되는 헝가리어 단어들이 각인될 만큼 대사와 음악에 같이 빠질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반 혼의 목소리는 오페라보다는 가곡에 더 어울릴 것 같은 톤이지만 거의 한시간 이상을 내내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로 푸른 수염을 연기했고 가랑차는 성량, 텍스쳐, 볼륨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어요 아 정말 이런 목소리를 국내 무대에서 들어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게다가 그녀는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제 자리에서는 거의 그녀을 마주보는 느낌으로 관람하면서 내내 그녀의 호흡, 발성, 눈빛까지 관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door 5, 6 에서 그녀의 폭발적인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터져나오는 혼연일체된 사운드에 압도당해서 잠시 넋을 잃기도 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롯데콘서트홀까지 오는 길이 험했지만 이 공연을 보려고 일도 하루 빼고 왔지만 언제 이런 공연을 또 볼 수 있겠냐 하는 마음으로 온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커튼콜 후에 앵콜곡을 기대했는데 앵콜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엘리나 가랑차의 아리아 하나 들을 수 있을 까 했는데 말이죠 야닉 네제 세갱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내일 공연에서 보라고 합니다 ㅎㅎ
이번 공연은 최고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대급 가수, 거기다 접하기 힘든 진귀한 레퍼투아까지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