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누가 쓴 글이지?’
주책같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쓰긴 누가 써? 니가 썼지?’
‘정말? 내가 썼다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고,
어느 땐 제 글이 낯설어서 당황할 때도 있습니다.
가을을 타는 남자, 가을을 앓는 남자가 쓴 몇 개의 가을 파편들입니다. 가을이 오면 아픕니다.
가을엔 온다는 말보다
간다는 말이 훨씬 잘 어울린다.
가을엔 기다린다는 말 보다
그리워한다는 말을 해야 더 편하다.
가을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잊었던 그대를 마음으로 만지는 계절이다.
인생이란 눈에 속는다. 눈이 나를 속인다.
그래서 많이 속아 왔다.
내 눈이 나를 속여 왔다.
그러니 가을을 그 어리석은 눈으로 보면 또 속는 거다.
내 눈에 내가 속고 가을을 속이고 만다.
가을은 눈으로 볼 게 아니다.
가을을 마음으로 만지고 나면
그리움 묻어나는 그대가 된다
가을나무 밑에 가서
말없는 말 잘 듣고
따라하자
여전히 그 자리 움직이지 못해도
하늘 향해 마음 여는 모습 따라하자
가을엔 가을나무 따라 살자!
그대 따라하면 그대를 닮을 수도 있을까?
떨어져도 곱다
밟혀도 곱고
이별도 이만큼 고울 수 있다면
그대, 성공한 거다
굴러도 곱다
바람 부는 대로 구를 만큼 가벼울 수 있다면
바람만큼 가벼워서
바람이 놀랄 수 있다면
행복한 거다, 그대 괜찮은 거다
가을이 가을 낙엽에 새긴 언어!
조금 더 가볍게 살기,
바람 불면
생각도 없이 모든 낙엽이 훌훌 떨어지는 줄 알지? 천만에.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낙엽이 있지
뭔가를 생각하다가,
너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다가
어느 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떨어질 때를 알고 혼자 툭, 떨어지는 낙엽이 진짜 낙엽이지
떨어진다고 다 낙엽은 아니지
떨어지면 나무가 더 환해지게 만드는 낙엽.
그게 진짜 낙엽이지.
가을이 슬쩍 찔러준 알림장이지
지금은 짐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
낙엽을 떨구는 이유는
가벼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뜻이라고.
열매를 떨구는 이유는
무거운 짐도 내려놓으라는 뜻이라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서러워하지 않고
곁에 와서 서성이는 이가 없어도
실망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이제, 가을나무 끄트머리엔
하늘이 걸려 있을 뿐이다.
나는 그대를 아는 데 그대는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대를 모르겠는데 그대는 나를 안다고 한다. 내가 그대를 안다고 할 때 그대도 나를 안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그대를 모른다고 할 때에도 그대가 나를 안다고 해 줬으면 하는 건 사치일까?
가을이 툭툭 나를 건드리는 걸 보면 나를 아는 눈치인데 나는 아직도 그대를 모르겠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가을이 떠날 때가 되어야
나, 그대를 알아 볼 거다. 그러나
그때 가서는 그대가 나를 몰라 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속이 타고, 가을은 불붙는다.
가을엔 따라하자
그 동안 못 했던 일,
가을나무 보면서 따라하자
떠나보내지 못했던 거
너무 아픈 과거여서 잊지 못했던 거
나무가 낙엽 훌훌 떠나보내는 거 보면서 따라하자
때가 되면 그래야 하는 거다
첫댓글 목사님 가을의 감성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외로움, 고독 ㅋ 이 시만 읽어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겠어요^^
'낙엽은 가을의 알림장'.. 맞아요..^^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가을의 세밀한 음성을 놓칠뻔 했네요...
언젠가 설교말씀 중에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 시를 읽으며 여고시절 문학소녀로 되돌아간 것 같아요...맨날 뭘 끄적이곤 했는데 이젠 저녁 찬거리 걱정하는 억센 아줌마가 되었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