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말씀 : 자평의 한계에 도전하신다는 그 기백은 저희들 젊은 사람보다 더 치열한 정신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껍데기를 버리고 본질에 집착하시는 모습을 뵈오니, 미래의 큰 성취를 기약하는 듯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십수년 공부하고 또 수십년 역업을 하신 분들이 제 죽을 때조차 모르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마음이 든 것도 어찌할 수 없으며, 논내님은 기필코 五行의 道를 깨치시기를 빌어 봅니다. 그래서 범조에게도 한 수 가르쳐 주시기를...
제 명을 보셔서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전생에 불교계통의 인연을 가진 중으로서, 전생에 역학의 인연이 없다가 금생에 처음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 생에 시작하였으니 이생에 이 인연을 마무리하고 가려는 사람입니다. 다음 생까지 이 업을 결코 가져 가지 않을 생각이랍니다. 그러니 이생에 이 오행의 도를 깨치고 말리라! 결심을 하고 있지요. 논내님은 전생공부가 있으시니 저와 차이가 좀 있다 하겠지요...
하여간, 좋은 의도가 다른 분들께도 좋은 마음으로 좋게 받아들여 지도록, 당분간은 글 올리는 것을 좀 자제할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梵造 拜上
우!~~~하하하 하하하 ^^ 전생을 운운하셨구먼요. 암턴 님은 논내가 원하던 역학 도반이시구먼요. 왠가? 또 논내 입이 간질 간질혀서 심심혀 하든 입장인데 논내 이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야글 줄창 줄
줄창 혀게 된단 말씀야! 암턴 전생을 운운 하셨기에 논내 전생과 후생에 대한 야그 쪼매 혀야 겠구먼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려 하지요. 왠가? 과학이란 산물로 입증된것에 익숙하니깐요. 그런데 논내는 스님과 무관한 사
람이구먼요. 오직 역을하고 역을 깨닫기 위하여 도를 찾아 헤메다 보니 스님과 벗도 하고 무속인과도 벗하죠. 논내는 전생이란 것을 보지 못하여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생과 후생이란 도로 통하여 깨달를 뿐이죠. 전생이라 도를 통하
여 한번 생각하여 보면 이렇게 이야기 할 수가 있겠군요. 음양학! 맞조! 맞조...논내는 누가 무슨 질문을 하든 전부 음양학으로 답변을 드리구먼요. 왠가? 음양학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다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구먼요. 한 예로 지
구를 절반 똑 짜개어 생각하여 본다면 과거 갈릴래오는 지구는 각이 졌다 하였을 그 당시 지구는 둥글다혀서 신대륙 개척에 나셨지요. 전생과 후생을 우리 지구에 접목시켜 한번 생각을 하여 보자는 것이죠. 우리는 지구 반대는 보이
질 않습니다. 그러니 갈랠래오 그 당시 사람들과 같이 지구 반대는 없다고 생각 할 수 있죠. 그러나 사실 도! 논내 도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우리가 생활하는 이곳은 전생이라면 후생은 지구 반대쪽이 되겠죠. 후생인 지구 반대쪽
음양학!!!...후생인 그곳에도 사람이 전생과 똑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 반대쪽에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하나요. 아닙니다. 그쪽에도 분명 우리가 낮일 때 그쪽은 밤이며 우리가 밤일 때 그 쪽은 낮이 됩니다. 음양학으
로 도로 생각을 비약하여 본다면 분명 전생과 후생은 이와 같이 음양이죠. 이 세상에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도! 도로 생각하여 본다면 분명 전생이 있으면 이승도 있고 이승이 있으면 후생이 있다는 이치가 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 범조님과 같이 이렇게 만난것은 전생에서 이미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 전의 나비 오늘의 그나비이죠. 요즘 우리 유전공학으로 유전자 하나가 바뀌는데 수많은 세월이 걸리며 우리 몸속에는 수많은
유전자가 세포로 이루어져 간혹 쪼매 변한다 하나 그 그사람이 그사람 즉 그유전자라는 것이죠. 즉 수천년 수만년 동안 우리는 유전자 종족 번식의 법칙에 의하여 수천년전의 그 잠자리 그 나비가 옷만 바꿔어 입고 있을 뿐이지 사실
상 우리는 수만년 전에도 이렇게 만났고 수 천년전에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고 있으며 오늘 우리는 육신의 옷을 벗어 버리나 우리는 또 이렇게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죠. 이는 법칙이 존재 하는 한 법칙이 없어지면 이도 없어지겠
죠. 우리 팔자로 자신에서 아 식 재 관 인 아로 돌아 돌아 육대면 다시 환생한다는 이치도 있을 수 있고 더 정확히 육십갑자 돌아 다시 환생한다는 윤회의 법칙이 없어지지 않는한 육십갑자 돌듯이 우리는 육십갑자만에 다시 만날지 그
는 확실지 않으나 윤회의 법칙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분명 환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이 세생 똑같은 것이 둘이 없다는 법칙에 의하여 님과 논내는 눈섭하나 다르게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날때 얼굴에 점하나 더 가지고 안가지고 하겠
죠. 하늘이 맺어준 좋은 인연들이고 전생과 이승과 다시 후생에서 다시 만날 인연 소중히 그리고 다 함께 사랑하며 서로 위하며 서로 오늘 모든 인연은 하느님과 부처님의 공덕
이라 명심하시고 후학을 위한 좋은 할동 그래야 후생에서 범조님! 미!~~~오 안카는구먼요. 오늘은 요쭘 한겨. 논내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