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통제가 길어지면서 무너져 버린 일상이 그리워진다.
십육년전에 시작했던 검도외에도 최근에는 팝송 교실, 요가, 성악 등을 배우러 다녔는데
두달이 넘어도 가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동안 일상이 주는 행복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먼저 검도다. "야 ~ 아 압"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휘둘러 대는 죽도로 한바탕 대련을 뛰고 나면 겨울인데도 도복 상의 밑에까지 쭈욱 흘러내리는 땀, 그와함께 군더더기 살이 한웅큼 빠진듯하며 날아 갈듯이 상쾌해진다. 이윽고 샤워장의 거울에는 강렬한 눈빛에 활기찬 중늙은 사내의 얼굴이 나타난다.
낮에는 요가다. 처음에는 팔다리 구부렸다가 펴고 하는게 힘들었다. 일주일 지나면서 기분이 짜릿하면서도 시원한 느낌. 동네 문화센터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어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다. 첫날에 뒤편에 앉았다., 고양이 자세로 엎드려 있는데 강사가 말했다.
"고개들고 앞을 쳐다 보세요"
바로 내 눈앞에는 고무풍선같은 빵빵한 히푸가 왕창왕창 떠 올라 있었다.
쫘악 들어붙는 요가복이니 얼마나 놀랐겠나. 쫄보라 머리를 푸욱 숙였다. 다음 시간부터는 맨앞자리에 앉았다.
앞자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뒤편으로 갈때는 야릇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본능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나이' 인데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한달이 지나자 바로 휴강이 되었으니 아쉽기만 하다.
일주일에 한번씩가는 곳은 팝송교실과 성악반이다. 팝송교실에는 30명 정원인데 남성은 두세명에 불과하다. 여기도 여성들이 대세다. 쉬는 시간도 있고, 끝나고 밥같이 묵기도 한다. 내 나이 정도되면 마누라가 무서워지는, 그러면서 뭇 여성들도 사뭇 무서워지기 시작하는 나이다. 그래서 말조심을 꽤 하는 편이다. 다행히 식사후 커피숍에서 쟁반드는 내모습을 지켜본 큰언니께서
"쟤는 총무보조시켜" 하여 나는 당당히 총무보조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는 살벌한 여인천하에서 숨죽이고 있다.
Martin Hurkens가 부른 You Raise me Up 도 불렀다. 라이온 킹에 나오는 노래, 얼라가 어릴때 비디오로 자주 돌려 본 영화다. 이제 스물여덟인데 나중에 결혼식축가로 불러주까 했는데, 묵묵부답이더라.
성악은 수요일 저녁에 한다.
한국가곡, 이태리, 독일 노래들을 배운다. 발성연습을 삼십분하고, 새 노래 배우고 조별로 나가서 연습한다. 악보는 중학교때 보고 처음이어서, 반복하는 곳을 몰라 실수도 한다.
여긴 의외로 남성들이 많다. 나는 중반에 속하고, 팔십넘은 할머니도 오신다. 지난 해 발표회때 '강건너 봄이 오듯' 을 불렀다.
작년부터 이 노래만 연습했다. 아마도 이천번은 부른거 같다. 그렇지만 정식연습이 아니고, 콧노래로 흥을거렸기 때문에 아직도 자신없다. (아래 첨부한 음성파일 참조)
다음으로 한달에 한번씩은 압구정동 음악감상실에 간다. 재작년 1월에 처음 나가고 부터 클래식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젊을때는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접하고 부터 관심을 가졌었다.
특히 나는 슈만 그리고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승 슈만이 작고한뒤, 골키퍼 없는 클라라와 브람스사이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래서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이들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문득 '나는 왜 이런데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특히 브람스의 Sextet Sonata in B flat major II Andante, 슈트트가르트(The Stuttgart Chamber Orchestra) 는 스승인 슈만의 마누라 클라라를 지켜보며 독신으로 살아가는 정경을 잘 표현한 듯하였다. 아마도 브람스는 클라라 관심을 사려고 이 음악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마누라하고 냉전이 길어지게 되면 이 음악을 주로 틀어 놓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거 보면 클라라에게도 효과가 없었지 않나 싶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이 좋아하는 남성상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는 생각이다.
다음에는 올드팝송반하고 밴드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가려 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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