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자기 아버지인 선왕을 죽이고 대신 자기 어머니와 왕위를 차지한
숙부 클로디어스와 관련하여 자기 처신을 고뇌하는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독백이다.
사실 확인, 무력한 자기 자신, 최종 결정에 대한 갈등으로 고뇌하는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상황은 달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이런 질문과 대면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다른 질문을 던져본다.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정말 중요한 질문일까? 최종 질문일까?
햄릿은 자신이 만난 현실이 자기 삶을 지속할 명분을 분쇄함을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괴로워서, 삶을 지속할 명분이 보이지 않음에서,
최소한 죽음은 현재 자기가 처한 현실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소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자살도 더 행복하기 위해서 한다.
논리적인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는 삶의 상황도 인간세계에는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컨대 고문으로 극심한 고통과 인간 존엄성의 상실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 같은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삶이란 한 문장으로 해석하기에는 심오하고 복잡하다.
그렇더라도 내가 믿기에는 사람에겐 삶이냐 죽음이냐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삶은 그냥 삶이 아니고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다. 삶에는 삶 내부의 의미가 있고 죽음에는 죽음 내부의 의미가 있다.
삶에는 삶 이상의 원인이 있고 죽음에는 죽음 이상의 원인이 있다.
그 의미 그 원인이 삶 자체보다 죽음 자체보다 중요한 본질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는 지표 위로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지표 아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이 보이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인 뿌리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은 삶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지탱해 주었던 의미와 원인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장미 꽃다발을 주었다. 그 여자에게 장미 꽃다발은 귀한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이 주야장천 그 꽃다발만을 품에 안고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장미 꽃다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남자의 사랑이다.
이 장미 꽃다발이 삶이요, 이 장미 꽃다발을 준 남자는 하나님이시고, 꽃다발을 주신 이유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목적으로 우리에게 생을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믿고 감사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내가 사는 집 창문 밖으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찬송가인데 노래 솜씨는 별로였다. 듣다보니 노래하는 청년이 속된 말로 좀 모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른 아침에 내가 사는 집의 거리를 다 지나가도록 씩씩하게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청년의 행동은
나에게 한 가지 사실과 대면하게 했다. 삶을 주신 분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사는 삶.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전11:7)"
삶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폴 투르니에의 말처럼 꽃 한송이 물 한방울 인생의 일분 일초가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내 인생에 내재한 하나님의 은혜, 이에 대한 신앙과 의식, 이것이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인생의 재미, 웰빙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빛은 아름다운 것이요 삶이란 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과 같은 것이다.
쏟아져 내리는 빛을 보듯이 사랑과 감사의 심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당한 자세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기생충처럼 사는 사람은 삶의 이유를 상실하는 순간에 이르게 된다.
삶이냐 죽음이냐를 따지기 전에 삶이 무엇이며, 자신이 삶 앞에 정당한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2023. 11. 14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공감의 글 감사합니다!
주님이 주신 그 선물을 더 사랑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