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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제 후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이자율을 그때그때 조정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며, 침체된 기업 투자를 상쇄할 만한 가계지출 증가를 유도하기 위해서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이 나스닥 버블 대신 주택 버블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는 2001년부터 금융기관들과 부자들의 탐욕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CDO 시장의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확대, 미국 부동산 버블로부터 시작된 2007년에 발생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미국 최대, 최악의 금융 위기다.[1]
테러와의 전쟁을 발생시킨 9.11 테러[2]와 함께 21세기 인류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사건이다. 경제적으로는 대침체, 양극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2010년대의 모든 경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3] 정치적으로는 이 사건 하나만으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알리고 신냉전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극단주의 정치 세력이 대공황 시대인 1930년대 이후로[4] 다시 세계적으로 기를 펴기 시작하는 등 2010년대~2020년대 사회 혼란, 더 나아가서 세계화의 흐름에 균열을 일으킨 신냉전 구도 형성의 도화선이 된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 중 비우량 대출자[5]를 뜻하며, 모기지(Mortgage)는 주택담보대출을 뜻한다.[6]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부동산 버블로 부동산 가격이 굉장히 높아지자 신용불량자에게 주택담보대출을 막 퍼주다가 발생한 대참사라는 것이다.
경제학 용어가 생소한 사람이 본 문서를 읽으면 약간 읽기 힘들 수도 있어 미리 간단하고 피상적으로만 요약하였다.
닷컴버블 붕괴와 아프간/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편다. 그로 인해 대출이 늘고 주택 가격이 급상승했다. 주택 가격의 인상 속도가 이자율보다 높아지자, 사람들은 "대출을 못 갚는 일이 생기더라도 담보인 주택을 팔아버리면 돈을 벌 수 있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은행도 돈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신용불량자에 가까운 사람들까지 대출을 해줘서 집을 사게 만들었다. 하지만 집을 살 사람(대출할 사람)이 줄어들자 집값은 폭락했다. 집으로 대출을 갚을 수 없자,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담보로 잡힌 주택을 포기한다.[7] 이를 시작으로 돈을 빌려준 은행과 대출 증서를 기초로 한 투자 상품도 전부 망했고, 그로 인해 달러화의 가치와 미국 경제가 망하여, 연쇄적으로 세계 경제가 망했다.
더 쉽게 말하면 이렇다.
경제정책 변화로 집값이 빠르게 상승했다. 빚을 내서 집을 샀음에도 집값 상승으로 얻는 이익[8]이 내야 되는 대출 이자보다 훨씬 커졌다. 너도나도 막 빚을 내서 집을 사며 투기가 시작되었고 금융기관과 투자은행들은 이 대출 채권을 증권 형태의 금융 상품으로 팔아먹었으며 이를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의 금융기관에서 사들였다. 하지만 경제 상황의 변화와 정책 변경으로 집값이 폭락하자 다같이 망했다.
아예 한 줄 요약을 하자면 이렇다.
집값이 폭등하자 아무에게나 돈을 무분별하게 펑펑 빌려줬고, 집값이 폭락하자 다 망했다.
세부 골자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카드 회사들이 심지어 신용불량자한테까지 신용카드를 발급하였고, 이후 카드 사용액을 갚지 못한 개인 파산이 급증하면서 2004년 카드대란이 터지고, 경제 위기가 엄습한 것과 똑같은 과정이다.
하지만 본 사태의 피해 규모와 영향은 카드대란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카드대란은 그 영향이 국내와, 우리나라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주변국 정도에 ‘과소비를 한 개인과 집단에 대한 경제적 타격’이 주 영향이었다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경제를 단숨에 밑바닥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경제학자들은 이를 '대공황'에 이은 '대침체'로 분류하고 있다.
2.2. 발단: 연준의 저금리 정책
2001년에 당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약자 Fed. 미국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금융정책기구)의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투자자는 안전하면서도 수익이 보장된 투자처로서 미국 국채를 이용해 수익을 얻었다. 그러나 Fed, 특히 그린스펀은 그것을 결코 좋게 보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FOMC(연방 공개 시장 위원회,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는 충분한 경제적 성장을 촉진할 필요가 있는 이상, 매우 협조적인/조절적인 정책을 고수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The FOMC stands prepared to maintain a highly accommodative stance of policy for as long as needed to promote satisfactory economic performance.
이 말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린스펀은 미국 국채에 대한 정책을 바꿀 것을 시사한 것이었고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해서 다음과 같았다.
이제는 여러분이 미국 국채로 돈 버는 것을 못 봐주겠으니, 다른 데로 가시오.
2.3. 부채담보부증권
이 발언 직후,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매니저들은 그동안 놀고 먹기나 다름 없었던 미국 국채 돈줄이 막힐 것이라 직감하고 새로운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이 찾아낸 것은 CDO(부채담보부증권)이었다. 당시 CDO는 40% 정도의 수익률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었고, 90% 이상의 채무자들은 성실하게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CDO는 매우 이상적인 투자처였다. 애초에 집을 담보로 삼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는 갚지 않으면 곧바로 노숙자가 되기에 모기지를 갚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안갚아도 집이 은행에 넘어가니 손해볼 장사는 아니었다.
CDO는 간단하게 말하면 여러 사람의 주택담보대출을 모아서 만든 증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은 당신의 저당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함과 동시에 유동성을 확보한다. 은행은 손쉽게 원금을 확보하게 된다. 당신이 대출금을 은행에 갚으면, 그 이자가 투자자에게 가는 구조였다. 은행은 더욱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다른 파생에 투자하고, 투자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9]
구체적인 작동 기전은 이렇다. 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주택구입자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이자 수입을 얻는다. 그럴 경우 주택구입을 위해 모기지론을 쓴 사람은 채무자가 되고 은행은 채권자가 된다. 은행은 자신의 돈이 일정 기간 동안 묶이는 대신 상환이 완료되면 이자 수입을 얻는다.
여기에서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굴렸다. 모기지론 이용자에게 대출해 줌으로써 묶인 돈을 어떻게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 줄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도 많은 이자 수입을 얻을 수 있기에 은행은 파생상품 설계자와 손을 잡고 ABS라고 이름붙여진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했다. 관련 문서를 읽다 보면 ABS가 아닌 MBS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ABS가 뜻하는것은 자산유동화증권이고 MBS가 뜻하는 것은 모기지유동화증권이다. 모기지가 은행 입장에서 채권이자 자산이라는것을 생각한다면 둘이 실질적으로 같은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확히는 MBS가 ABS의 부분집합이다.
ABS는 말 그대로 은행의 '자산'인 담보대출을 '유동화' 즉 묶이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회수하기 위해 발행된 '증권'이었다. 은행은 자사가 보유한 모기지론을 한데 끌어모아 커다란 집합을 만들었고 이를 몇 등급의 트란셰로 나누어 증권화 시켰다. 요컨대 제일 신용도 높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ABS를 구입하면 낮은 이자 소득을 얻지만 실물인 모기지집합에 속한 대출의 채무불이행률이 100퍼센트에 근접하지 않는 이상 손해를 보지 않게 설계되었으며 제일 낮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ABS를 구입하면 채무불이행률이 조금만 높아져도 손실을 입지만 높은 이자를 얻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
즉, 은행에 빚을 진 채무자들에게 돈을 걸고 채무자들이 돈을 잘 갚으면 돈을 따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잃는, 그야말로 경제 논리에 의해 돈놓고 돈먹기가 이루어지는 인간 경마나 다름 없는 것이 'ABS'라고 볼 수 있다. 경마가 말마다 배당률이 다른 것처럼 ABS도 성실하게 잘 갚는 채권자들은 배당이 낮았고, 그렇지 않고 신용불량자에 가까울수록 배당률이 높았다.
2.3.1. 광풍의 확산
ABS의 도입으로 은행은 대출한 자금을 증권으로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한테 팔아넘기는 것이 가능해졌고 은행은 그렇게 얻어낸 자금을 다시 열심히 대출해주기 시작했다. 자연히 대출해주고자 하는 자금이 늘어나서 이자율은 낮아졌고 시중에는 많은 돈이 풀려 자산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자산 가격이 폭증하자 이는 마치 세이가 주장했던 '세이의 법칙',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주장과 합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돈을 빌려 '자산'을 구입하고자 한 것이었다.
급기야 미국 시중 은행들은 폭증하는 대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ABS를 한단계 더 굴려서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CDO즉 부채담보부증권이 그것이었다. CDO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대출된 모기지론을 실물자산으로 하는 ABS들 중 가장 등급이 낮은 고위험 트란셰를 전국에서 끌어모아 집합화한 이후 다시 트란셰를 나누어 발행한 것이었다. 아무리 낮은 등급의 트란셰에 속한 고위험 ABS라 할지라도 특정 지역에서라면 모를까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부도가 일어난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가능성이 낮다고 당시에는 평가되었다. 즉 고위 트란셰에 속한 CDO는 부실화 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으면서 그 기초가 되는 고위험 ABS의 높은 수익률을 함께 가진 마법의 상품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이 있을 수 없는 로우리스크 하이리턴 상품에 열광했다. 미국 은행들이 발행한 CDO는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았다. 은행은 CDO의 발행으로 큰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기에 CDO의 준거가 되는 고위험 ABS를 많이 만들어내려고 하였고 고위험 ABS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결국 해서는 안될 짓인 서브프라임 등급의 대출을 양산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의 등급을 이야기하자면 아래와 같다.
재산과 수입이 안정되어 있는 고객에게 주는 Prime 등급(우량)
Prime에 비해 채무불이행 위험도가 높지만 돈을 갚을 능력은 있다고 판단되는 Alt(alternative)-A 등급
돈을 갚지 못할 확률이 높다고 보는 서브프라임(SubPrime) 등급(비우량)
광풍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당연히 '프라임(Prime)' 대출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확실한 수입, 확실한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주택담보대출로서, 회수율이 매우 높지만, 새로운 고객은 매우 적은 타입의 대출 방식이었다. 경제는 '신용'으로 굴러가는 만큼, 신용이 좋은 개인, 즉 프라임 등급에게 대출이 잘되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기현상으로 인해 미국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등급의 고객'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말았다. 돈이 서브프라임 등급에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등급 고객에게 은행들이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갑자기 '신용'이라는 요소가 필요없어진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파생상품을 만들어 투기와 돈놀이를 팔기 위한 잘못된 이유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 대참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2.3.2. 서브프라임을 잡아라
2001년부터 2년간은 그럭저럭 서브프라임에 목숨걸지 않아도 프라임 등급 대출만으로도 CDO를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3년이 되자, 거의 모든 프라임 대출 대상자는 이미 모기지를 쓰고 있거나 쓸 생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은행은 새로운 CDO를 새로운 투자자에게 발급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이 필요했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은행은 해서는 안될 '서브프라임' 대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서브프라임 계층은 당연히 빚을 갚을 능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당장 대출 실적 올리지 않으면 잘리는 판에 정말 양심적인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원들이 그런 거 신경쓸 리 없었다.
처음에 서브프라임 대출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을 때, 은행들은 'Verifi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증명, 자산 증명)'를 조금 완화해, 'Stated Income, Verified Assets(수입 명시, 자산 증명)'로 완화했다가, 'Stated Income, Stated Assets(수입 명시, 자산 명시)'라는 말도 안되는 정책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었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새 고객은 자신의 금융 재산을 증명할 엄청난 양의 서류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는 빚을 갚을 만한 충분한 수입이 있다고 서류에 명시하기만 하면 되었고, 은행은 고객의 재산 목록을 조사하지 않고서도 돈을 빌려주기 시작하였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서류에다가 거짓으로 10억짜리 아파트 1채 보유 및 연봉 1억 5000짜리 직장에서 다닌다고 거짓으로 적고 집을 넓히겠다고 10억 추가대출을 요청해도 은행에서 아무 확인도 없이 10억 대출을 해줬다는 말이다.
심지어 돈맛을 알고 모여든 중국과 신흥 국가들의 자금들마저 CDO로 몰려들기 시작하자, 이제는 완화된 기준으로도 부족하게 되었다. 더욱 많은 모기지가 필요했다. 그러자 새로운 모기지가 절실히 필요했던 은행들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든다. 마침내 No Income, No Asset(NINA) 대출이 시장에 나온 것이다. 이전의 서브프라임 대출제도도 이미 재산목록과 수입을 거짓으로 적어도 되는 소위 묻지마 대출상품이 된 지 오래인 판에 이 대출 상품은 고객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신청만 하면 재산이 없어도, 수입이 없어도 은행은 대출을 해주었다.
물론 은행이 미쳐서 아무 이유도 없이 배짱을 부려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정부의 한 가구 한 주택 정책[10] 기조 하에 연준은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고 있었고, 은행들도 계속 저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한 가구 한 주택의 기조 때문에 주택 시장에 붐이 일어서 주택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브프라임 등급의 사람들이 집을 사는데, 그 사는 집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집값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 집값의 100%까지 빌려준다 하더라도 집값이 오른다면 담보 가치가 더 높은 것이므로 은행들은 미친 듯이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이 얼마나 대출 심사를 대충 했는지 보여주는 일화 중에 기절초풍할 게 하나 있다. 한창 NINA 대출이 성행할 때, 오하이오에서는 죽은 사람 23명이 대출을 받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그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인데, 은행은 상대방이 본인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 빅쇼트에서도 기르는 애완견 이름으로 돈을 빌린 케이스가 나온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묻지마'로 무언가가 이루어진 시점에서 이미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연하지만 이 따위 엉터리 장난질이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는 없었고, 누구도 모르는 새에 이 위험한 돈놀이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2.4. 재앙의 시작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파티는 마침내 미국 내 집값이 주춤하며 대재앙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사실 집값이 영원히 폭등한다면 파티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그것은 수학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은행 이자의 '이율'은 총액에 대한 정률이다. 즉 5퍼센트의 이율이라면 1만 달러를 빌리면 500 달러, 1백만 달러를 빌리면 5만 달러의 이자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값은 그렇지 않다. 자산가격인 집값의 '상승률'은 시장에 풀린 자금의 총액에 정비례한다. 즉 시장에 풀린 자금이 M일 경우 10만달러인 집은 2M일 경우 20만 달러가 되어 상승률은 100%가 된다. 하지만 2M의 통화량이 시중에 풀린 상태에서 M을 추가하면 3M이 되므로 집값의 상승률은 이전과 달리 50%만 증가한다. 증가율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2M을 쏟아부어 4M을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승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통화를 점점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동일한 정도의 상승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통화량은 자산가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버블이 붕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산가격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높거나 적어도 같아야 함을 되새겨 본다면 여기에 내포된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애시당초 영원히 유지하는게 불가능한 것이다.
한창 CDO 붐이 불기 시작하던 미국 부동산 자산 폭등의 초창기에는 은행 이자보다 시간당 통화량 증가율이 더 커서 자산가격 상승률 더 높았겠지만 이자율은 거의 일정한 반면 투자자금 유입으로 인한 통화량 증가율은 통화량이 커짐에 따라 결국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자산가격 상승률이 이자율보다 낮아지게 되는 시점은 필연적으로 온다. 그건 정책의 문제도 경제의 문제도 아닌 수학의 문제다. 즉 공리에 가까운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다. 돈을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에 따라 이자율과 통화량증가율이 데드크로스를 하는 역전의 시기가 잠시 뒤로 미뤄질 수는 있다. 하지만 영원히 뒤로 미뤄질 수는 없다.
초창기에는 은행이, 중반기에는 미국의 투자자가, 그리고 후반기에는 미국 외의 전 세계에서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통화량을 증가시켰지만 안타깝게도 그 이상의 통화량을 공급해 줄 주체는 이제 없었기에 '통화량 증가율=자산가치 상승률'은 이자율의 밑으로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그 날이 도래하자 미국 전역에서 채무불이행률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카드대란의 원흉이었던 '돌려막기'마냥 모기지도 돌려막기로 버티다가 한계가 오고만 것이다.
채무불이행률이 폭증하고 기초가 되는 모기지론이 걸레가 되기 시작하자 은행은 더 이상 기초자산인 모기지를 생산해 낼 수 없었고, 새로운 모기지를 만들지 못하니 새로운 ABS와 CDO를 발행할 수 없게 되어 이를 매개로 공급되던 통화는 더 이상 미국의 주택시장에 공급되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량은 오히려 불이행자의 담보자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은행으로 회수되어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통화량의 축소는 자산가의 축소를 불러오고 자산가의 축소는 더 많은 부실과 통화량의 재축소를 유발했다. 이는 당연히 미국 전국에서 일어난 현상이었고, 이 현상은 CDO의 기초가정 즉 '미국 전역에서 불이행률이 한꺼번에 폭증하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가정'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리고 만다.
이는 뻔한 이야기였다. 모든 지역에서 한꺼번에 불이행률이 폭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CDO는 모든 지역에서 한꺼번에 불이행률이 폭증하자 죄다 휴짓조각이 되어 버렸다.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진 투기꾼들과 돈을 빌려준 은행과 혼돈에 발을 담가 통화량 증가에 일조한 투자자들은 차례차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경제 위기가 시작되었다.
또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상품에는 또 다른 복병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이자. 계약 체결 이후 처음 1-2년간은 비교적 합리적인 6% 정도의 금리로 상환을 하다가, 티저 기간이 만료되면 갑자기 복리 12~20%급으로 폭등한다. 6%와 20%의 차이가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억 단위의 담보 대출인 만큼 한 달에 내야 하는 돈이 몇 배로 뛰니 채무를 이행하던 사람들도 튈 수밖에 없었던 것.
버블이 터지기 얼마 전에 나와서 크게 주목 받진 못했지만 마이너스 대출 상품[11]도 나왔었다! 이건 월 납입금이 이자보다도 작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잔금이 늘어나는 미친 물건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수어사이드 모기지(suicide mortgage). 당연히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기꾼들에게나 적합한 상품이었고, 은행들도 “집값은 항상 오른다”는 확신에 가까운 전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품들을 팔 수 있었다.
이렇게 미쳐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은행원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CDO 자체가 워낙 새로운 투자법이라는 문제였다. 아직 깊게 연구되지 않은 투자법이었고, 은행원들이 가지고 있던 컴퓨터 모델은 모두 오래된 자료에 기초한 것이었다. 즉, Prime 시절에 모은 데이터에 근거해 작성되었다.
당연히 그런 모델이 서브프라임을 이용한 CDO에는 맞지 않았지만, 은행원은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계속 믿었다. 시뮬레이션은 CDO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투자자들의 심리적 근거가 되었고, 실제로도 서브프라임의 성적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서브프라임 계층의 고객들도 프라임 계층 같이 그럭저럭 돈을 갚아나가서, 프라임만큼은 아니지만 60~80%의 서브프라임 고객들은 돈을 성실히 갚고 있었다.[12][13]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다. 1차 기초 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MBS를 기초 자산으로 CDO-0를 만들고, CDO-0과 CDO-0의 기초 자산인 MBS를 기초로 CDO-1을, 그리고 이런 식으로 CDO-2, CDO-3... 같이 기초 자산의 족보가 뒤엉킨 파생 상품에 대한 위험 분석과 관리가 슈퍼컴퓨터로도 불가능할 지경에 다다랐다는 걸 말이다.
2.5. 전조
연준에서도 이러한 상황으로 주택 가격이 이례적인 속도로 오르고 있음을 미리 인식하긴 하였다. 2004년 1월 그린스펀은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과소 평가하고 있는 현 상황을 언급하며 자산 가격이 올라가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언급하였으나, 아직은 버블이라고 표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시점에서 이미 버블은 커지고 있었지만.
2005년 6월, 이제는 주택 가격의 버블이 존재한다고 보는 측과 존재하지 않는다(또는 버블이 있더라도 리스크가 관리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이 양쪽으로 나누어졌다. 버블이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주택 가격이 임대료보다 훨씬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음을 지적했지만 반대로 그런 상승에 입지 등의 이유가 있으며, 주택 가격이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연준의 정책으로 충격을 조절할 수 있음을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동년, 잭슨 홀 컨퍼런스에서 모기지 리스크를 주장한 학자들이 몇 명 있었으나 시장은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주택 가격은 2004년에 16%, 2005년에 15% 상승했다.
그러나 2007년,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2006년에 미국 주택 시장의 거품은 최고조에 도달했다. 거품 규모는 약 2조 달러였던 것으로 추산된다. 언제, 어떻게 정확히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주택 가격이 너무 높다는 것을 차차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당시 서브프라임 계층의 사람들은 "만약 일이 없다면, 지금까지 떡상한 집을 팔아서 돈을 갚으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빚을 갚았었다. 원래 미국의 담보 시스템은, 대출을 갚지 못하면 담보로 잡힌 해당 부동산만 포기하면 된다. 즉 집만 날리면 되고 설령 대출금이 남아도 마저 갚을 필요 없다. 은행이 고객의 다른 자산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 시스템이므로, 어느 정도는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주택담보대출의 기본이 그런 것이기도 하고...
2.6. 연쇄 반응
거품이 꺼지고 나자 떨어진 집값으로 대출금을 갚기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다수의 서브프라임 고객이 채무불이행, 즉 디폴트를 선언했다. 거품이 꺼지자 경제도 서서히 불황에 빠지기 시작했고, 일자리도 줄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집을 산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다. 애초에 자산 시장의 특성이 그렇다. 갑자기 매물이 늘어나면 매도세가 급물살을 타며, 매물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미친 듯이 꺼진다.[15] 때문에 반대의 경우도 맞지만 이미 반대의 경우가 끝나고 매물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모든 일이 도미노처럼 진행되었다.
즉, 집값이 떨어졌다.
→ 서브프라임 계층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빌린 빚을 갚지 못하게 되었다. 또는 일부러 안 갚게 되었다.[16]
→ CDO의 수익률이 떨어지다 못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 서브프라임에 투자되었던 수조 달러의 돈이 하늘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투자자들이 다급히 자신들의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 CDO들은 우량자산에서 부실자산으로 변모, 대부분의 자산을 CDO로 가지고 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은 공황에 빠졌다.
마침내 2008년 9월, 다량의 CDO를 가지고 있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점으로, 미국의 경제에 크게 의존하던 몇몇 나라는 아예 경제가 자빠지기도 하면서 전 세계적인 불황이 시작된다.
3. 또다른 원인
아시아 각국의 1997년 외환 위기와 2000년대 초반의 9.11 테러와 닷컴버블의 붕괴로 인한 통화정책[17]과 정부 정책의 실패, 그리고 그 뒤의 시장의 붕괴[18]까지 초래하는 상황을 본다면,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상황이 비슷하고 실제로 작은 공황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이다. 다만 수요와 공급의 조절 실패가 아닌 부동산의 무분별한 대출로 말미암은 사태라는 점에서 경제적 파장은 경제대공황에 비하면 매우 약한 편이다. 물론 이 사건으로 각국의 여러 금융이나 건축 회사가 박살나거나 큰 타격을 입고, 세계 경제 불황의 원인이기도 한 만큼 절대적인 사건의 타격이 '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대공황처럼 세계 단위로 모두 다 함께 쫄딱 망한 건 아니니 말이다.
라구람 라잔은 폴트라인에서 빈부격차의 심화가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빈부 격차의 원인에 관해서 레이건 시절의 규제 완화[19] 등 여러 원인을 이야기 했으나 가장 큰 것은 미국의 교육 불평등 내지는 숙련 편향적 기술 진보(Skill-biased technical change)라고 주장했다.[20]
이에 더해 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정치적 차원에서 부동산 대출을 쉽게 해주는 식의 땜질 처방에만 의존한 게 문제였다고 평한다.
이 부동산 대출은 빌 클린턴 정부의 '서민용 주택 확대' 정책과 부시 정부의 '한 가정 한 집' 정책의 이름으로 2008년 거품 붕괴 때까지 계속됐다. 똑같은 정책을 이름만 다르게 붙여 시행해왔던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이처럼 양당이 아무 불협화음 없이 추진한 정책은 주택 정책이 유일한데, 이는 근본적으로 빈부 격차에서 촉발되었다. 금융규제법처럼 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정책도 근시안적이다. 이 문제에 한해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둘 다 공범이라고 책에서 거론한 바 있다.
빈부격차가 경제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자명한 이야기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경제학 원론을 배울 때 우리는 경제학이란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기 위해 존재하는 학문이며 가격이란 그 자원을 분배하는 기제라고 배운다. 즉 모두가 가질 수 없는 유한한 자원의 경우 제일 필요한 사람부터 분배되어야 하며 그것을 해주는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의 가격이라는 것이다. 해당 자원을 제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제일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해당 자원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사람은 낮은 가격을 제시할 것이기에. 그런데 이 모델은 빈부격차 상황을 가정하면 그 설명력이 저해된다. 딸 결혼식에 올릴 수백억대 케이크를 주문할 정도로 부유한 재벌과 돈이 없어 굶어죽어가는 사람을 가정해 보자. 재벌은 특정 재화에 낮은 효용을 보인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며 그 결과로 식량자원이 가난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재벌의 딸 결혼식 케이크에 금칠하는데 쓰이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3.2. 국제적 불균형
이 외에도 일본, 독일, 나아가 한국, 중국 등 신흥국들이 수출 증대를 꾀하면서[21] 미국과의 무역 관계에서 오랫동안 흑자국이 된 것 역시 문제로 본 바 있다.[22] 이러한 국제적 문제는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더 심화되었는데 한국,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이 오랫동안 달러를 비축해두고 자본을 미국에 과잉 공급하게 되면서 미국 경제의 가해자가 되었다고 한 바 있다.[23]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라구람 라잔은 이러한 국가들, 특히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에서 지나치게 흑자를 보려는 태도를 경계하고 자국 내의 내수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보통 자본이 유입되는 것이 이론적으로 볼 때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자본이 유입되더라도 특정 분야로 지나치게 집중되어 해당국의 경제를 비교적 교란하지 않고 그것이 기술 발전이나 산업화 등에 쓰인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경제 성장에 기여하므로 그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경우, 유입된 해외 자본이 부동산 등의 분야에만 몰려서 자국 경제를 교란한 바 있다.
그 원인으로 거론된 것이 닷컴 버블이다.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닷컴 버블로 인해 제조업, 서비스업 시장의 이자율이 하락해 해당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연준의 금리 하락에 따라 시장에 풀린 돈이 고스란히 부동산으로 몰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리고 금리 하락 시 다시 해당 시장이 투자를 늘리게 될 거라는 것과 90~2000년대 내내 시중에 돈을 풀다가 금리를 재인상하기 시작한 시점을 잘못 잡은 연준, 마지막으로 그러한 위험을 무시하고 부동산 시장 광풍을 즐긴 금융계 역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24][25]
다만 이 경우에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것을 비판하는 건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비판이다. 당시 연준은 이러한 리스크를 거의 인식하지 못 하고 있거나, 인식하고 있더라도 금융 시장 안에서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 연준에게 더 가시적인 위협은 적정 수준을 지나치게 넘어선 인플레이션율이었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모기지론의 위협은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도 않았고, 일어나더라도 충분히 제어 가능한 수준으로 보였다. 하지만 계속된 인플레이션은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위험 수위에 있었으며, 만약 연준이 금리를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문제가 터졌을 가능성도 있다.
연준이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 잘못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지만, 그 시스템을 직접 만든 투자은행들조차 어느 정도의 위협인지 제대로 평가하지 못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연준이 어느 수로 그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겠는가? 그 상황에서는 좀 더 급해보이는 위험에 손을 쓰는 것이 합리적인[26] 선택이었다.
3.4. 잘못된 금융시장의 시스템
거기에 더해 금융 기관의 잘못된 인센티브와 시스템 역시 지적하고 있다. 가령 금융 기관의 경우 지나치게 고수익 고위험 수익을 추구하도록 보수 구조가 짜여졌으며, 투명성이나 기타 구조적 요인 역시 지적되었다. 이에 대해 라잔 교수는 그렇다고 금융시장을 정부의 힘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고 보다 시장 자유를 유지하면서[27] 금융 기관에 대한 특권이나 보조금 폐지,[28] 온건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해서 책임성 문제도 들 수 있다. 이는 정확히는 금융 시장 상품 구조와 관련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의 각종 금융 상품은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사람들이 부동산 대출을 위해서 자금을 빌린다. 원칙적으로 여기서만 끝난다면 은행이 대출 상환 여부 감시에 책임이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다만 아래와 같은 파생 상품이 일을 키웠다.
은행 등 금융사는 이런 대출 자금을 가지고 얻은 담보나 채권을 근거로 증권을 발행한다(MBS ; Mortgage Backed Securities).
MBS는 위험도 등등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그리고 금융사는 이런 MBS를 수익, 위험 등등 취향에 따라 선별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이렇게 대출채권 등등으로 이루어진 포트폴리오를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이라 한다.
그리고 그런 CDO를 근거로 또 채권, 즉 파생 상품이 발행된다. 그 중에는 아예 대놓고 위험만 떼어서 거래하는 CDS라는 상품도 있다. 즉, 부동산 담보 대출과 관해서 특정인의 채권채무 관계와 엮였고, 그 채무 이행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관련 금융사들은 여럿이 된다.
그런데 원래 책임자가 여럿이면 대체로 그런 의무 수행은 남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는 방관하는 책임성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부동산 대부자금 채무 이행에 대해서도 채권자인 금융사들은 책임자가 여럿이니 방관하게 된다. 더군다나 많은 금융사들은 기업이나 가계에도 대출을 함은 물론 자기들끼리도 서로 대출을 해주고 있어 서로 얽혀있으므로, 어느 한 쪽이 터지면 공동으로 피해를 본다. 즉, 각종 파생 상품은 개인의 위험을 제거하는 데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구조적 위험은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고려는 이런 금융 시장의 기술적 구조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3.5. 결론
라구람 라잔 교수는 시장과 정부 양 측 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모든 문제의 흑막은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데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확립하자는 정공법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와 사회가 합심하여 교육 개혁을 이룩하여 빈부 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하며 중국, 한국, 일본, 독일 같은 나라들, 특히 중국의 경우 이제는 경제 규모도 크니만큼 더 이상 미국 수요에 의존하기보다 어느 정도 내수를 키워야 한다고 한 바 있다. 2018년 현재 이젠 중국이 너무 내수 위주라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고, 관련된 주변국들은 휩쓸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눈치 싸움하는 추세. 단순 내수위주라기엔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것 같지만
4. 반응
미 하원에서 공화당이 구제금융을 부결시켰을 때, 시카고 대학교를 비롯해 6개 대학의 교수진들은 구제 금융을 반대하는 서명을 했다. 이 외에도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배로 교수[29]는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의 적자 재정을 반대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를 진지하게 따르는 사람들은 확실히 신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했다는 걸 본다면 신자유주의 전체의 도덕적 해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긴 하다.[30] 더불어 간혹 엉뚱한 사람이 신자유주의자라 오명을 쓰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맨큐는 비록 공화당 시절에 부시 밑에서 벼슬을 얻었지만 연방 정부가 서브프라임 사태의 촉발에 관여한 정황은 없었으며[31], 정작 맨큐 본인은 케인즈를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는 새케인지언이다.[32]
다만 이런 학자들이나 평소 신념이 투철한 사람들 외에 비교적 신념이 덜 투철하고 대세에 영합한 기회주의자들이 재계에 적지 않았다. 가령 서브프라임 사태에 직접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정작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돈을 빌리려고 해도 조사도 똑바로 안 하고 빌려주는 등 삽질을 알아서 한 주제에 신자유주의 원리대로라면 파산하고도 남았어야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연명했다. 그리고 그 지원금을 기업 살리는데만 제대로 써도 봐줄까 말까인데, 그 지원금으로 보너스 파티를 벌이는 추태까지 보여주었다. 결국 열받은 미국인들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뽑으면서 친월가, 즉 친금융 정부는 싫다고 대놓고 선언하게 된다.[33]
유명 철학가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자신의 저서인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이러한 행태에 대해, 호황일 때는 자본의 사회화와 규제를 미친 듯이 까며 저항하던 자본가들이 막상 위기에 닥치자 그토록 질색을 하던 (구제금융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사회화'를 구걸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비꼬았다. 실제로 밀턴 프리드먼은 "사기업은 자유시장 경제의 위험한 존재들이며 자유에 찬성하지만, 정작 자기들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 개입을 원한다."라고 비꼰 바 있다. 그 뒤 이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용어로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말이 생겨났다.
애초에 자본가들은 이익집단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다. 자본가들이 무조건 시장 친화적이라면 툭하면 "수입품 때문에 우리 산업 다 망해요"라 징징거리며 "관세 올려주세요" 같은 이런 말들을 할 리가 없다. 이건 프리드먼까지 갈 필요도 없고, 자유방임주의의 근거 이론을 제창한 애덤 스미스부터가 지적한 내용이다. 다들 한 번 쯤은 들어본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가장 먼저 보여준 그 당사자조차도 '국가가 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은 무시하지 않았다. 저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한 이유도 '정부는 상공업자들과 유착해서 독과점을 조장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자유롭게 경쟁하도록 감시하라'라는 것. 즉 정부의 역할은 이런 사악하고 욕심 많은 이익집단이 필요 이상의 부를 축적하여 사회를 경직시키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학자들조차도, 신자유주의가 한창 유행할 때는 전혀 거부감도 보이지 않다가, 이제 와서는 '이건 학자,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화 과정에서 발생한 천민자본주의적 소행이다'이라고 꼬리를 자르고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는 주장도 나왔다.
4.1. 변명
자본가들에게 구제금융을 허가해준 연준이나 정부, 의회를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들 입장에서도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게, 구제금융을 내주지 않았다간 나라가 망하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다. 당시 분산되어 있었던 위험이 점점 증폭되면서 모인 타격이 덮친 기업들은 금융 뿐만 아니라 제조업, 민간 금융 등에도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회사들이었다.
분명 원칙대로라면 망하게 놔두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방치했다간 미국의 근간산업들의 숨통을 끊어놓는 일격이 될 수 있었고, 대공황기에 비해 훨씬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 체계 하에서 그런 대타격은 전 세계의 경제를 다 같이 망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며, 심지어는 전간기의 대공황처럼 장차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34][35] 따라서 정부와 연준 입장에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제금융이기도 했다. 아주 좋은 예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0년, 30년... 물론 '애초에 망하기엔 너무 덩치가 커져버린 놈들을 그대로 놔뒀던 것 부터가 위험했다'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건 앞서 말한 것처럼 애덤 스미스도 지적한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구제금융 자체는 필요악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어떤 변명도 불가능한 구간은 저 구제금융을 받고 난 다음의 행적이다. 일의 책임은 명백하게 자신들에게 있고 그러면서도 평소의 행태를 싹 버리는 모습까지 보여가며 구제금융을 받으려고 했으며 어쨌든 망하게 했다간 심하면 다 같이 망할 판이라 해줘야 하는 쪽에서 구제금융을 해준 것까지는 공리주의적 측면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저걸 받고 나서 자성하여 더 잘 해보려는 노력이 아니라 보너스 파티나 벌이는 추태를 보인 것은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구제금융이 나빴다기 보다는 월가나 자본가는 구제금융 후 자성, 자숙, 책임에 대한 통감이 부족했던 것이 연준, 정부, 의회는 그런 그들을 구제금융 해주면서도 통제할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5. 영향
금융 시장이 얼어붙고 주택 가치가 폭락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달러화의 가치가 급락, 미국 경제가 전체적으로 불경기가 되면서 미국을 상대로 무역을 해서 큰 이익을 얻던 국가들이 타격을 입었다. 후에 세계금융위기를 비롯한 여러 경제 문제들의 근본 배경이 되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위기 때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은 있었고,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 마이클 버리를 비롯한 몇몇 투자자들이 공매도 및 저점매수로 많은 이익을 보았다.
그 외에도 대공황 때는 대통령부터 펀더멘털만 외치다가 결국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로 교체된 이후에야 제대로 대응한 것과는 달리 이미 비슷한 사태를 한 번 겪어봐서 초기 대응도 대공황에 비해 신속했으며, 1차대전 이후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오직 미국에만 집중되었던 대공황 시기와는 달리 상당한 경제 호황 이후에 처음부터 전 세계에 어느 정도 충격을 분산시키면서 발생했다는 점 등 변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타격이 줄어서 3차대전으로 안 갔다는 평도 있다.[36]
'시장에 맡겨놓으면 된다'는 신자유주의 경제 패러다임에 또 한 번 큰 충격을 가한 변환점이 된다. 은행은 잘 나갈 때는 "국가 규제 따위는 다 없어도 된다. 그런 거 없이도 시장은 잘 굴러간다(laissez faire)"라고 주장하더니만, 정작 서브프라임 폭탄이 터지자 "우리 망하면 경제도 다 망하니까 국회님 돈 좀 지원해주세요!"했다. 애초에 이 사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투자 모델을 소위 최고급 엘리트 집단이라 불리는 거대은행에서 어떤 의문도 없이 받아들인 시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런 작자들이 평소에는 가난한 사람이나 타인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서 혼자서 생존하도록 노력하라"고 하든지, "네가 망하는 것은 100% 너의 책임"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사태의 원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여러 금융 기업은 미국 정부에서 준 어마어마한 수준의 지원금으로 임원들 보너스를 줬다. 그리하여 일어난 것이 월가 점령 시위. 그러나 별로 변한 것도 없고, 피해는 보통 사람들이 당하면서 금융 엘리트들과 부자들은 몇 명의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그때는 참 당황했지" 이 정도로 넘어갔다.[37]
이 외에도 다들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경제학계에서는 다른 식으로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 학파는 새케인즈 학파 등이 주시하는 금융 부문을 다소 경시하고 실물 부문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는 금융 부문이 경제에 크게 영향을 미친 반면, 실물 부문에서는 경제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바 있다. 따라서 금융부문에 대해 이전보다 경제학자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게 되었고, 특히 부동산 같은 자산 시장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다.
게다가 화폐시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실물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비상식적 통화정책[38]이나 금융 가속도 효과[39] 등이 재조명되었다는 점 역시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이다.
미국 내 공무원직의 인식도 바뀌었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경험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도 이 위기를 겪기 전까지는 공무원직이 그리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아니었다. 대놓고 "나는 공무원 따위는 안해"라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공무원으로 뽑히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2006년 전에는 회사들도 버블로 번창하고 이런 회사들에 취직하면 공무원직보다 수입이 더 좋았었다.
하지만 버블이 터진 뒤,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거나 직원 해고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버티려고 하면서[40] 많은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이로 인해 어디서 구직을 하면 한 자리에 몇 백명씩 지원을 하는 현상이 일어닜다. 그때의 급박한 상황을 말하자면, 입문 단계의 프로그래머를 구하는데 지원한 사람들의 반 이상이 그 분야에서 매니저급 경험자였다. 워낙 일자리가 없으니, 자기가 해고되기 전의 월급의 반도 못 받는 일이라도 닥치고 해야 할 지경이었고, 그나마도 워낙 경쟁률이 높아서 구직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 결과 2008년 후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너도나도 월급은 적지만 안정적인 공무원을 선호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현재에도 공무원 시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경쟁률도 꽤 높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에서 역으로 공무원 선호 풍조가 일어난 것이다.
정리하자면 서브프라임 사태는 단순한 경제위기가 아닌 미국 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꿔버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한국인에게 있어 IMF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다.[41]
특히 지표적인 부분에서 경제 회복은 충분히 이뤄졌지만, 일반인들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그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기에 모기지 사태 이후 10년도 더 지난 2021년에도 그 여파는 여전하다.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무는 듯 보였지만 코로나 사태로 그 상처가 다시 덧나서 결과적으론 일반인들의 삶은 더 나아지긴 커녕 후퇴해버렸다.
결국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여파는 여전하고 사람들의 정신적 훼손 또한 여전하다.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국 내에서 여전히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한 다큐, 영화, 출판물 등의 저작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을 보면, 이 사태가 미국인들의 머리 속에 얼마나 큰 충격으로 자리잡았는지 알 수 있다.
6. 관련 매체 및 자료
세스 토보크먼, 만화로 이해하는 세계 금융 위기 (원제 Understanding the Crash), ISBN 9788994142159
(2ch 번역) 쉽게 배우는 서브프라임 문제
DC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에서 연재되었던 12의 연작 만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위기를 말하다> (원제 Federal reserve and the financial crisis), ISBN 9788994142326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원제 Stress Test), ISBN 9791195275564[43]
헨리 폴슨, 벤 버냉키, 티모시 가이트너, <위기의 징조들> (원제 Firefighting), ISBN 9791191328042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미국 경제 사령탑이었던 세 사람[44]의 금융 위기 대처 과정과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을 서술한 책이다.
KBS 다큐:미국발 금융위기 한국을 덮치다(2008.09.21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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