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이임 감사 미사를 앞둔 6월 15일 오전 11시, 명동대성당에서 사제 성화의 날 행사로 조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특강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차기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염수정 대주교를 비롯한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참석해 대성당을 가득 채웠다.
조광 교수 "서울대교구 창설 181주년 … 전환기 맞아 교구사 검토 필요"
|
 |
|
▲ 조광 교수 |
조광 교수는 ‘서울대교구가 걸어온 길, 걸어갈 길’을 주제로 강연했다. 조 교수는 2012년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으로부터 따져 서울대교구 창설 181주년, 정식 교계제도 설정 50주년이라며 “이러한 숫자는 서울대교구가 일종의 전환기 내지는 새로운 역사적 시간의 단위에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이 전환기에 즈음하여 서울대교구가 나갈 앞길을 전망하며, 이를 바르게 이끌기 위해서는 교구사에 대한 검토가 꼭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신자 수 변화 추이와 교계제도상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 교회와 서울대교구의 발자취를 간략히 살피고, 개항기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적용한 ‘정교분리론’(政敎分離論), 일제시대 민족주의 운동과 교회의 관계 등을 자세히 논했다.
'냉담자' 집계 꼭 필요한가 의문 … 프랑스어로 쓴 초기 한국 천주교 통계 연구해야
한편, 조 교수는 한국 교회가 여타 종교에 비해 신자 수 증가가 지속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신자들의 질적 특성에 있어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주일 미사 참례자와 청소년 신자가 줄어드는 반면 “행방불명자나 이른바 냉담자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 교수는 ‘냉담자’를 집계하는 일을 재고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냉담자를 교회의 공식 통계로 집계하는 경우는 한국 교회뿐인 것 같다며, 이는 교회에 경각심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지만 천주교에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한국 천주교회 통계 자료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여러 언어로 쓰였기 때문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 기록된 초기 통계에는 프랑스어로 된 노트가 첨부돼 있다며, 이 자료들의 정리와 연구를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했다.
조 교수는 한국이 다민족 · 다문화 · 다종교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교회의 직접적인 사목 대상이 누구인가 생각해보자”며 “천주교 신자 이외의 비종교인들과 한국인 전체를 사목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냉담하고 떠나가고 신자 증가가 둔화되더라도, 이 사회에 가톨릭 정신에 따라 복음의 가르침을 펼치고 실천하는 사람을 많이 만드는데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회사, '교회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교회와 타자의 관계사'다 한국 교회, 100년 전보다 100배 깊어졌는가?
조 교수는 맺음말에서 ‘교회사’란 교회 자체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는 역사지만, 동시에 교회와 타자(타종교, 타문화, 국가, 사회, 경제 등)의 관계사이기도 하다고 역설했다. 교회사에서 교회 자신이 ‘한 일’을 논하고 그 전개과정만 적다 보면 교회가 잘 한 일, 발전상만을 기록하는데 그칠 수 있다. 그러나 교회와 타자의 관계를 주목하면 "부작위(不作爲)의 역사", 즉 '그때 교회는 왜 가만히 있었는가' 하는 것까지 주목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이른바 '선교지역'의 역사를 논할 때에는 '관계의 역사'가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한국 교회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 이웃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교회가 되기 위해 복음의 원점(原點)에 서서 우리 자신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난 100년간에 교회가 성취한 외적 성장이 곧 우리 교회의 내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인지 따져 보아야 하겠다. 현재 우리의 신앙이 100년 전의 신도들보다 100배 이상 깊어진 것도 아니며, 한국 사회에 대한 우리 교회의 봉사가 100배 이상으로 성장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우리 교회의 앞에는 우리의 봉사를 요청하는 무수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하느님 백성의 소리 수용할 제도적 장치 필요 … '성직자 권위주의' 성찰해야 한국 교회, '어머니와 교사'가 되려면 먼저 학생이 되라
조 교수는 “현재의 서울대교구와 한국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친교와 일치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신앙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서 “본당 단위뿐만 아니라 교구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도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두루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자부심을 갖고 교회 일에 종사하며 투신할 수 있는 유능한 평신도들이 양성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현대 교회의 취약점으로 지적돼 온 ‘성직자의 권위주의’에 대한 본격적 반성과 상호 이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가 19세기 이래 서구 문화의 전파자로 자임하며 민중을 계몽하고자 했고, 1970년대부터는 스승이자 해결사 역할을 맡고자 했다면서 “그러나 새 천년기의 한국 교회가 계속 이와 같은 과거의 역할에만 도취되어 있다면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 교수는 교회가 좋은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와 문화를 배우는 진지한 학생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교사’로 태어나기 위해 교회는 먼저 학생이 되어야 한다.”
조 교수는 한국 교회, 특히 서울대교구의 과제로 △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민족 문화의 중요성 인정과 화해 △ 타종교와의 대화 확대 △ 영성생활 발전 △ 그리스도교 신학 · 철학 연구 심화 △ 민족 화해 · 일치 위해 정복론적 선교관 극복, ‘화해의 선교론’ 개발 △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문제에 대한 관심 △ 해외 선교 강화 등을 제시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
|
▲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명동대성당에 모인 염수정 대주교(오른쪽) 등 서울대교구 사제들이 낮 기도를 바치고 있다. |
|
 |
|
▲ 조광 교수의 특강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정 추기경은 1970년 청주교구장으로 임명됐을 당시 교구의 한국인 사제는 6명에 불과했고 "신부 100명을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울부짖었는데, 1998년에 떠나올 때는 청주교구 신부가 106명이나 됐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의 평가만 주목하고, 만사를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긍정적 자세로 따르라"는 권고로 인사말을 마치고, 서울대교구 사제단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