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입국의 조력자, 나카소네 수상
제3의길2019.12.012경제, 경제 > 경제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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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고성혁 기자.
-나카소네 수상은 80년대 냉전 당시 레이건, 대처, 콜, 전두환과 더불어 자유진영을 이끈 리더
-나카소네가 결정한 대한경협 40억 달러, 한국을 반도체 입국으로 견인. 지금의 삼성 있게 해
-대한항공 00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기에 격추되었을 때도 결정적 정보를 일본이 제공해
며칠 전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이 운명했다. 나카소네 수상은 80년대 냉전 당시 레이건, 대처, 콜, 전두환과 더불어 자유진영을 이끈 리더였다. 나카소네는 한국과의 관계를 준동맹으로 끌어 올린 인물이다.
우리 국민은 새카맣게 잊고 있지만 나카소네가 결정한 대한경협 40억 달러는 한국이 반도체 입국이 되는 바탕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일본이 한국에 수출을 꺼려하던 반도체 설비 수출도 허가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삼성이 있다.
80년대 초 중동사태로 유가가 급등했다. 경제를 재건해야 하는 전두환 정부는 안보를 빌미로 일본에 대규모 경협차관을 요구했다. 공로명 당시 외무차관보가 1981년 8월 일본 측에 밝힌 경협 요구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은 국방비 부담이 과대하다.
둘째, 새롭게 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할 예정인데 군사비 부담 때문에 차질이 생겼다.
셋째, 그때까지 거의 200억 달러나 쌓인 대일 무역적자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뒤집어 보면 일본은 안전보장의 측면에서 ‘무임승차’를 해오면서 한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만큼, 한국이 군사비 부담을 줄여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이 운명했다. 나카소네 수상은 80년대 냉전 당시 레이건, 대처, 콜, 전두환과 더불어 자유진영을 이끈 리더였다.
전두환 정권의 대일 요구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격화된 신(新)냉전과 맞물리면서 미국으로부터도 측면 지원을 받았다.
1981년 2월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전두환은 막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과의 회담에서 한국이 태평양에서 미국 방위의 방호벽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역할 분담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일본이 한국에 거액의 원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레이건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안전 보장 체제의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해 전두환의 구상을 사실상 지지했다. 이를 토대로 전두환 정권은 안보 분담금을 내놓으라고 일본 측에 들이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자민당 정권 중에서 리버럴한 축에 속했던 스즈키 정권은 한국 측이 내세운 ‘안보 경협’의 논리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
“일본은 주일미군의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형식으로 미군을 지원하고 있고 이는 한국 방위에도 도움을 준다. 다시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미군을 매개로 공동으로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셈인데, 일본이 일방적으로 한국으로부터 안보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시 작성된 일본 외교문서는 이렇게 말하면서, 더욱이 한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안보의 논리로 포장하는 것은 일본의 헌법정신 즉 전수방위專守防衛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일본 측으로선 미국이 후원하는 전두환 정권의 요구를 마냥 무시해 한일관계를 파탄 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일본 정가는 난색을 표명했다. 1965년에 이미 한일수교를 이유로 경협차관을 제공했다는 이유다. 게다가 반도체 설비는 정부관할이 아니라 개별 기업관련 사항이라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 막후 조정자로 등장한 인물이 있었다. 세지마 류조였다. 세지마 류조는 전두환, 노태우, 권익현 등 한국의 ‘신세대’ 정치인들과 일본의 ‘구세력’을 다시 이어주는 구원투수로서 등판한 것이다.
세지마는 한때 삼성물산 상무를 겸임하기도 해 인연이 있었던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과 함께 한일 간의 ‘40억 달러 총액 맞추기’ 작업을 막후에서 추진했다.
이 문제는 스즈키 내각 다음으로 등장한 나카소네 내각에서 결론지어졌다.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가 현직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였다.
1989년까지 7년간에 걸쳐 제공된 일본정부 차관 18억 5,000만 달러, 일본 수출입 은행 융자 21억 5,000만 달러 등 총액 40억 달러를 한국에 제공했다. 그 돈은 한국이 반도체 설비 도입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업그레이드 작업에 사용되었다.
대한항공 007기가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기에 격추되었을 때 결정적 정보도 일본이 제공했다. 전두환 나카소네의 안보에 기반한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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