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에서 놓임을 받고 돌아오게 하셔
에스라 2장 1절 – 2절 2024년 4월 28일 주일 오전 말씀지
사로잡혀 갈 때는 언제이고 놓임을 받고 돌아오게 하실 때는 언제입니까? 옛적에 하셨다고 옛 이야기, 역사 이야기 입니까? 그렇다면 오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내게 이루시는 역사는 보지 못하게 됩니다. 아직도 성경책으로만 무겁게 가지고 있는 자들은 육의 사람이요 영으로 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고전2:14-
하늘에서부터 영광 받을 자들로 택하여 지어주신 하나님의 아들들인데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육신으로만 살아가면 1.애굽에서 종살이 2.광야에서 방황 생활 3.가나안에서 포로 생활뿐입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살면서 고통 중에 지긋 지긋한 삶만이 있게 됩니다.
에스라는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돕습니까? 종살이 하는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고 광야에서 연단 받게 하셔서 가나안에서 왕노릇하게 하시려 은혜로 많은 것을 주셨건만 배가 불러 하나님을 발로 참으로 사로잡혀 가 포로 생활하고 있는데 거기서 놓임 받아 돌아오게 도우시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 성령 시대인데 이제부터 영으로 살게 하시려 1.복음으로 살리시고 2.새벽을 깨우게 하사 일용양식을 주시고 3.생명의 떡을 먹고 자라나 열매맺으며 주신 직분을 감당하며 환난을 준비하며 살게 하시려 때의 양식을 주시고 4.신부의 믿음으로 자라게 하시려 꿀인 영광의 복음까지 주시고 5.환난을 당하나 담대하게 하시고 6.생명역사 위하여 살게 하시다가 사도들처럼 순교하는 것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다니엘로 호위하는 미가엘 천사장까지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단12:1) 아직도 아버지되신 하나님이 무엇을 도우시는지 알지 못하는 원인은 성경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요 육으로만 살다가 죄에 매이게 되었고 몸인 성전이 부숴진 것입니다. 그래도 불쌍히 여겨 다시 무너졌던 그 몸 된 성전을 짓게 하시려 포로 생활같은 고통에서 놓임 받아 선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올라가게된 것입니다. 스8:31-
이것이 에스겔 37장에 에스겔 선지에게 보여주신 골짜기의 뼈(이스라엘 족속)들이 대언의 말씀으로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룬 것입니다.
1절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옛적에 이루신 일들은 다 성령 시대에 보내신 자들은 위하여 이루신 일들입니다. 먼저는 왜?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에 멸망을 당하고 이제는 유다 백성들까지 바벨론 왕에 의해 사로잡혀 가게 하셨습니까? 솔로몬의 교만과 타락이 원인이요 (왕상11:11) 이어서 왕이 된 자들과 방백들과 모든 백성들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 때부터 두 나라로 갈라지게 하셨고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유다는 다윗의 혈통에 왕이 세워져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나아가고 북이스라엘은 백성수만 많았지 금 송아지를 세워 제사했던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뜻이 ‘백성이 많음’이라는 뜻인데 오늘날 많은 교인 수를 자랑하는 곳입니다. 왕상12:28-
그때에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백성만 잘못한 것을 보지 말고 오늘도 말씀이 없는 곳과 말씀이 있는데도 날마다 주신 날들을 성령의 역사가 없이 살아감으로 인하여 원죄가 올라와 기쁨이 없고 사람만 의식하고 직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답답한 심령으로 열매가 없이 사는 자들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나를 잘못된 자리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회복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에스라서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책망하는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놓임 받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시편 107:10절에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아 곤고와 쇠사슬에 매인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라 하셨고 17절에 죽을 지경에서 미련하여 원망만 나오게 된다고 하셨고 20절에 고통 중에 나오게 하사 말씀으로 고쳐주신다 하셨는데 끝까지 나오지 않으면 지긋 지긋한 삶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이 그 자리에 떨어져 사로잡혀 갔던 것입니다. 바벨론 왕은 세상주의 자로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주의 자들을 몽둥이로 사용하사 치셨으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렘50:23-
역대하 36:13-19절에 유다에 마지막 왕 시드기야 왕 때에 바벨론 왕으로 쳐들어오게 하셨는데 그때에 애굽 왕에게 도움을 청하면 안된다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신약에서는 우리의 몸으로 죄 된 생활에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백발노옹은 연장자로서 오래 믿었다 하는 자들로 주신 그 지혜로 영을 앞세워 바로 살면서 아이와 젊은이들에게 바른 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데도 바르게 하지 못하면 지긋 지긋한 생활을 하다가 죽게 하시는데 이제 아주 기쁨의 예배를 할 수 없는 자리에 떨어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멸망 전에 어서 말씀 앞으로 돌아오라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없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욜2:12-
돌아왔으면 이제부터는 세상 바라보지 말고 또 내 열심과 충성을 하여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려 하지 말고 주의 발아래 앉아 내게 주시는 영식을 받기 위하여 오직 말씀 앞에 겸손히 받는 생활로 돌아온 것입니다. 슥1:3
아직도 자기 삶 속에 신령한 영적 기쁨도 없으면서도 직분자라고 예배당 나와서 자기 열심 충성 마음대로 하려는 자가 많은데 그렇다면 성경은 필요가 없습니다. 직분자로 일을 할 때에 자기가 무엇을 잘한다고 교만합니까? 그러면 또 포로 생활 시작입니다. 사로잡혀 가게 하신 것은 예배 때에 기쁨이 없고 포로 된 것처럼 지긋지긋한 삶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놓임을 받은 자가 2절에 앞선 자 11명과 3절의 각 자손들 곧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들입니다. 고레스 왕의 마음도 감동하셨고 돌아오게 하실 자들도 감동하신 것입니다. 스1:5-
내 삶이 고통스러울 때에는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화입니다. 성령의 감화로 바로 가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면 이제부터 더욱 말씀을 사모해야 하고 드디어 감동을 주셔서 거룩한 삶이 이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 죽는 짐승과 같은데 그래서 시편 49:20절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포로 생활에서 놓임 받고 돌아오는 곳은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이요 그 이름의 뜻은 평화입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온 자들은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인데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니 하늘의 기쁨과 평화가 갈수록 커지는데 그러니 찬송이 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는 죄사함의 평안이고 영광성을 바라볼 때에 평강까지 누리게 하십니다. 돌아오게 하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하게 하사 입술의 열매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13:15-
각기 본성에 이른 자 돌아온 자들에게 예루살렘(말씀을 양식으로 나눠주는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케 하셔서 평안을 주시고 찬송케 하사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본성이니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영광 성을 바라보는 영적 기쁨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히11:10-
2절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지금도 몸인 성전을 재건하여 신앙을 회복하게 하신 자들의 이름을 적으십니다. 계시록 21장 27절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빌립보 4장 3절에 상 받을 생명책이 있고 계시록 13장 8절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 있는데 상 받을 생명책은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광의 보좌 왼편에 염소처럼 일한 것이 분명히 있건만 너의 명예와 배를 채우려 한 것이니 일한 것이 하나도 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25:44-
스룹바벨은 ‘바벨론의 씨’ 라는 뜻인데 느부갓네살 왕이 사로잡아온 유다에 왕손인데 이름을 바꾸어 자기 나라에 일군으로 쓴 것입니다. (대상3:19) 곧 너는 이제부터 바벨론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름도 강제로 벨드사살이라 지었지만 다니엘(하나님은 심판장이시라)은 그 이름 뜻대로 삽니다. 단7:1
스룹바벨은 학1:1, 2:2, 21 슥 3:8-9, 6:12-13에 여호와의 순, 여호와의 종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스룹바벨은 사로잡혀왔고 바벨론의 씨라고 개명까지 당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아는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 그라야의 손자요 요사닥의 아들로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는 뜻인데 돌아오게 하실 때 제사장 삼으신 자로 성전 건축에 가장 큰 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스3:2-
느헤미야는 여호와께서 위로하셨다는 뜻인데 3차에 돌아와 성벽을 재건하게 하신 자입니다.
느1:1-
스라야는 여호와께서 주관자가 되셨다, 르엘라야는 여호와께서 멸망케 하셨다, 모르드개는 말뚝이라는 바벨론의 신의 이름이라는 뜻으로 에스더서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것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2차에 돌아오게 하신 자입니다. 에2:5-
빌산은 뜻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미스밧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미스밧은 수효, 비그왜는 행복하다, 르훔은 긍휼히 여기게 됨, 바아나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모두가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회복과 영광에 관한 말씀들을 받고 깊이 회개하며 기어코 사는 날 동안 내게 이루실 것이 믿어져 기도하며 회복의 날을 기다린 자들입니다. 겔36:37-
주시는 말씀마다 양식으로 받고 자라나 하나님께서 앞서게 하신 자들로 이 열한 분들은 간안에서 다윗과 같이 왕같은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이었지만 잘못도 없이 잘못한 자들로 인해 함께 바벨론까지 끌려갔다가 같이 고통을 받는데 그 고통까지도 감사한 앞선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