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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25~39 지옥 판결이 예고된 위선자들
오늘의 말씀요약
예수님은 자신들이 조상 때에 있었으면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않았으리라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화를 선언하십니다. 선지자를 박해하고 죽인 그들에게 의인이 흘린
피가 돌아가고, 암탉처럼 그들을 모으려 한 주님을 거부했기에 예루살렘이 버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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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겉과 속마태복음 23장 25~28절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인 신앙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십니다. 무덤은 겉으로 하얗게 칠해져 깨끗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부정한 시체와 뼈가 가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해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탐욕과 위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보이는 종교적 모습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참된 신앙은 겉사람만이 아니라 속사람까지 변화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삶의 중심이 새로워지고 내면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중성을 무엇에 비유하여 책망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은 이후 내 속사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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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분량마태복음 23장 29~39절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명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서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따라다니며 박해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결국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조상들의 죄악을 이어받아 그 죄의 분량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과 성전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어떤 분량을 쌓으며 살아갑니다. 죄와 교만의 분량을 쌓을 수도 있고, 회개와 믿음, 은혜의 분량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열매를 쌓아 가기를 원하십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심판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죄의 분량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을 쌓기 위해 어떤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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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신앙과 삶이 다르다면
내가 어릴 때 다닌 교회는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계단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다리가 불편한 권사님들이 그 높은 데까지 올라가서 열심히 기도했다. 그분들의 기도는 은혜로웠고, 찬양도 아름다웠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갈 때 일어났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매번 남의 밭에서 고추나 오이, 커다란 호박까지도 따 가는 것이었다. 새벽에 교회에서 기도할 때는 권사님인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도둑이 된다.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 되지 못한 모습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믿는 일과 아는 일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사람으로 장성하기를 권고한다(엡 4:13). 믿는 일, 즉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 된다는 것은, 살면서 하는 일이 신앙과 일치한다는 뜻이다. 만일 믿음과 삶이 하나 되지 못한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회칠한 무덤’(마 23:27) 같다고 하실 것이다.
성경에서 ‘온전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성숙한 사람이 되게 하는 과정으로,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춘다는 뜻의 의학 용어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아프다고 그냥 둔다면, 다리뼈가 비뚤어진 채로 굳어 버릴 것이다. 후에 다리를 바로잡으려면, 다시 부러뜨릴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지만, 부러진 뼈를 바로잡는 과정을 거쳐야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말씀으로 자신을 직면하고 바로 세울 때,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 한 절 묵상
23장 27,28절 | ‘경건한 영성’과 ‘위선’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바른 영성을 가진 성도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추구합니다(엡 5:9). 겉으로는 율법 준행에 열심이나, 속으로는 외식과 탐욕과 불법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습니다. 회칠한 무덤의 외면은 햇빛을 받아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안팎이 다른 바리새인들의 행태가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믿음은 겉과 속이 일치하는, 거짓 없는 믿음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의 음성으로, 주님의 시선으로 이중적인 저를 흔들어 깨우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앞에 세워 두었던 두터운 위선의 벽을 허물고, 애써 외면해 왔던 죄악을 직면하게 하소서. 겉사람이 아닌 제 속사람을 꿰뚫어 보시는 주님 시선에 붙들려 신실한 태도로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명언 마태복음 23장 25~39절
겉을 닦는 신앙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 찰스 스펄전
기독교는 행동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 마틴 로이드 존스
종교는 사람을 바꾸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변한다. - A. W 토저
기독교의 문제는 사람들이 복음을 모르기보다 복음을 겉으로만 믿는 것이다. - 존 스토트
종교는 우리를 스스로 의롭다 여기게 만들지만 복음은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 - 팀 켈러
하나님은 우리의 종교적 활동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원하신다. - 프랜시스 챈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설 때 삶이 하나님께 돌아선다. - 앤드류 머레이
거룩함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된다. - 존 웨슬리
3월16일 전도
마태복음 23장 25~39절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향해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정결해 보였지만 마음속에는 탐욕과 위선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무덤에 실수로 접촉하지 않도록 석회를 발라 하얗게 칠했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뼈와 부정한 것이 가득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거부하고 박해하며 죄악의 길을 계속 걸어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마저 거부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을 통해 죄의 분량이 쌓이고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분량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 은혜의 분량을 쌓으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하도다” 마태복음 23장 27
신앙은 겉모습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경건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겉사람만이 아니라 속사람의 변화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서며, 겉과 속이 같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서기관과 비리새인들에 대한 일곱 가지 비판 중 마지막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사소한 것들은 철저히 지키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홀히 여기는 죄, 형식에 치우치고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르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한 책임도 추궁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위선과 외식에 대하여 꾸짖으십니다.
마치 회 칠한 무덤처럼 겉은 아름답게
보여도 안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십니다. 또한 의로운 체 하면서도
실제로는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독사 같은 자들, 마침내 예수님마저 죽이는
악한 죄인들임을 폭로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조상으로부터
흘러오는 죄와 자신의 악함은 예수님의 보혈 외에는 씻을 방법이 없는데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해 주신 크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지자들을 죽인 악한 백성이지만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것같이 이스라엘을 모으려고 하신 일이 많았음에도 거부했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죄를 죄대로 갚지 않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덮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그런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자신은 의롭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은 물론 자기가 살고 있는 성읍, 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죄 때문이라기보다 의인
열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외식적 행동을 낳습니다.
당장은 사람들의 칭찬이 좋아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평가가 진짜입니다.
주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또한 그들은 스스로 깨끗하다 자랑했지만 그저 겉보기에만 그런 것이었습니다. 잔과 대접의 속으로 비유되는 내면을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채우면서 정결한 척만 했습니다(25~26절). 이번에는 더러운 그릇 정도가 아니라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석회로 바깥을 하얗게 칠한 무덤이 겉으로 깔끔하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한 것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렇다는 것(27절)을 예수님은 질책하십니다.
바울은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행17:22) 라고 말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익숙함이 신앙적으로 성숙함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훌륭해 보인다고 해서 내적으로 경건하고 거룩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진짜 믿음의 사람은 속사람이 정결한 사람입니다.
참된 능력은 정결한 영으로 행하는 순종에서 나옵니다. 음란과 맘몬이 팽배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결한 영성입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은 교회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불의한 삶의 실체를 주님께 낱낱이 고백해야 합니다. 경건한 척하려고 사역하고 봉사하기에 힘썼던 외식을 버리고 먼저 예수님의 보혈로 내 자신이 정결하게 하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