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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은 인생의 확실한 성공 비결)
잠 12:3
(3) 사람이 악으로서 굳게 서지 못하거니와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하고 감사하여
어떤 부족함도 느끼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가치관 최우선에 모시고,
영적으로 성장해가면서 더욱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하여
담대히 나아가기 시작하면 마귀는 반드시 뒤에서 우리를 불러 세웁니다.
“그래, 네 다짐이 완전히 틀렸다는 게 아니야.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지.
그런데... 넌 지금 100% 행복해? 솔직히 아니잖아?
너는 하루만 금식해도 배가 고파서 힘들어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기면 짜증도 나잖아?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지지 못하면 솔직히 욕구불만도 쌓이고,
네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하다못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때도 있는데
네 마음대로 안 되니까 한숨을 쉴 때도 있을 거야.
그리고 돈이 없으니까 힘들게 셋방 구해서 이사도 계속 다녀야 해서 지치고,
또 네 주변 사람들은 너에게 나이에 맞는 소비를 기대하는데 너는 그러질 못하니까
괜히 미움 받고, 손아래 사람들에게까지 멸시 당하는 기분이니까 솔직히 싫잖아?
이제는 좀 당당하게 살고 싶지 않아?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건 좋다 이거야.
근데 솔직히 너 힘들잖아? 그치? 마음대로 선택이 가능하다면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네가 원하는 대로 멋들어지게 살고 싶잖아?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못 섬기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걸?
골방에 처박혀서 기도만 한다고 뭔가 대단한 게 이루어질 것 같아?
쉽게 말해서 자기 성공감, 높은 자존감, 나이에 걸 맞는 여유로운 재력,
네가 매일 먹는 라면 같은 거 말고 남들처럼 맛있는 음식,
허름하고 낡은 그런 옷 말고 최신유행 새 옷,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관심과 인정과 존경,
언제나 너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사랑해주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이 전부 꼭 있어야 사람은 행복하고, 안정적이며,
자신의 인생에 비로소 만족하는 거야. 그거야말로 성공한 인생이지.
그래야 전도도 더 잘할 수 있는 파워 크리스천이 될 걸?
즉 그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응이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 유난떨지 말자.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원래 인간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한 거다~너? 애써 숨길 필요 없어.
근데 넌 텅 비었어. 너 지금 아무 것도 없어. 이대로는 실패에 가까운 인생이 돼버릴걸?
이대로 가면 넌 나중에 크게 후회할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하나님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기도 안 들어주시면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야. 넌 이미 버림받은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속는 셈치고 하나님을 한 번 시험해봐~“
이렇게 마귀는 하나님의 진리와는 정반대되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그럴듯하게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그리스도인들을 현혹하고 있고,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그 입냄새 나는 더러운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합니다.
마귀의 이런 가르침은 그가 관장하고 있는 대중문화를 통해서 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작품성이 있다는 영화나 드라마 등의 대중문화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가 아름다운가? 가족이라는 위대한 사랑’ 등을
관객들이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제시하기도 하는데
대중들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묘사하여 매우 설득력 있고 치밀한 장치가 된
그럴듯한 내용을 보여주다가 결말에는
‘어떤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의 척도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성공과 돈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던 가족이라 해도 돈이 없다면 꼭 불화가 생기고, 그대로는 끝내 파탄이 난다.
실패와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과 사랑은 반드시 창문으로 달아나는 것이 진리다.
결국은 돈과 출세가 있어야 자신의 가족, 즉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즉 돈과 성공과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다 있어야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다.
또한 돈만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행복한 것이니
다들 이 진리를 깨달아서 열심히 성공의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서
행복을 쟁취해내길...‘로 마무리 짓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진리는 눈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고,
그저 육신적인 가치관만 주입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대중문화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파리 목숨쯤으로 묘사하면서도 먼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그 잔인한 폭력이 정당하게 느껴져 주인공의 살인행위를 응원하게끔 만드는 폭력미화 작품,
용서와 사랑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다는 식으로 복수를 미화하는 증오미화 작품 등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펼치는 영화와 드라마 등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온 가족이 모여서 보기 좋은 선하고, 아름다운 내용이라고 홍보하는 작품들마저
이런 육신적이고, 탐욕적인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상 생각해볼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마귀가 주입하길 원하는 그 가치관을
교묘하고, 매우 그럴듯하게 구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세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아무리 ‘가슴 따뜻한 가족영화’, ‘순한 맛의 가족드라마’ 라고 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대중문화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로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는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또한 그런 내용들을 영분별 없이 시청하여 마구 스스로에게 주입하다보면
마치 가랑비에 옷이 흠뻑 젖듯 가치관이 오염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럼 내 인생은 결국 불행한 인생이라는 거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불평의 마음, 욕구불만의 마음을 먹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대중문화를 접하는 중에 자신의 진정한 모습(오염된 모습)을
발견하여 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에
성령 하나님의 세세한 인도하심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뇌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대중문화는 일반적으로 멀리하는 것이 좋다.”,
“꼭 보고 싶다면 영분별을 하면서 시청하고, 본 이후에는 빠르게 다시 신앙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시청 후에 멍해진 상태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맑은 상태로
빠르게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권장입니다.]
대중문화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 가치관들이 전염되는데
나를 전적으로(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희생해주며,
사랑해주면서 많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헌신적인 부모,
나만 사랑해주고 내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변함없이 늘 응원해주는 배우자 또는 애인,
나를 언제나 최고로 생각해주는 사랑스러운 자녀들(그리고 돈 잘 버는 자녀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여유로운 돈,
더 나아가 뭇사람들의 관심과 인정 등,
즉 사람에게는 이런 세상적인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성공한 인생이고, 행복한 사람이며,
의미 있는 인생이라는 가치관을 서로 서로 열심히 주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는 쓸데없는 대화주제,
명절자랑대회의 단골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의 것들에 그토록 목을 매며, 얻고 싶어 하고,
얻지 못하면 불행해지며, 다 잃으면 급기야 죽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침범 당하거나 빼앗겨 잃게 되면
극도로 분노하며, 미워하여 용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을 영적으로 추적해보면 최종적으로는 결국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문제를 탓할 사람을 찾다가 못 찾으면 자기 자신을 탓하고, 그러다가 하나님까지 원망하는 순서)
이처럼 마귀가 정의 내린 인생의 행복이란 철저히도 육신적이고,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며, 반드시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즉 탐욕과 관련이 있는 것들입니다.
딤후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사랑하는 가족, 생활비, 열심히 일하는 인생 등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이
다 잘못 된 거라서 전부 없어야만 한다, 이혼을 하고, 자녀를 버리며, 직업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서 혼자 살아야 한다는 낮은 수준의 사이비적인 얘기가 아니라
‘인간 행복의 참된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더 높은 수준의 내용입니다.
즉 ‘나는 과연 하나님만으로 진심으로 행복하고 감사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세상의 것들을 꼭 소유하고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깊은 고찰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가치관 최고위에 모신, 즉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확고하다면 그 외의 다른 모든 것들은
번외의 것들, 즉 하나님께서 나에게 추가적으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로 생각하며,
은혜를 추가로 더 받은 자답게 그 은혜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며 살아가지만
솔직히 육신 것인 것들, 세상적인 것들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그리스도인은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잘못 설정한 사람으로서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인이라기보다는 불신자에 더 가깝습니다.
세상의 것들, 육신적인 충족을 신앙의 필요충분조건,
또는 최우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여 솔직히 돌아보면
나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반드시 있어야만 행복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연 나는 이 중에 몇 가지에 해당되는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 보십시다.
(1) 마음이 힘들고, 짜증이 많이 난 날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예물을, 찬송을) 드리지 않거나
억지로 드리긴 해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 하진 않는다.
(2) 삶의 불만족이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원망, 불평하는 마음이 있다면
기도와 말씀묵상을 하지 않거나, 한다 해도 자신의 육신적인 것을 해결해달라는 기도만 하게 된다.
(3) 평소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내가 순종하려는 내용이 아닌
대부분 ‘나 중심’으로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뭔가를 더 주시길,
나의 순종과 노력 없이 그냥 하나님이 다 해주시길 요구하는 내용이 압도적이다.
(4) 하나님께서 나에게 세상적인 것들을 많이 허락해주시는 것 같으면 기쁨이 넘치고, 행복해져서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지만 반대의 경우 급격히 우울해지고, 소심해진다.
(5) 나의 문제를 오래토록 해결해주지 않는 하나님이 솔직히 원망스럽고,
화가 나는 분노의 마음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길 싫어한다.
(6) 나도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요셉처럼
높은 자리에서 힘 있고, 부유하고 싶은데,
그러면 나도 지금보다 순종을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러질 못하니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지 못한 문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모두에게 쉽게 주어진 평범한 것으로 느껴진다.)
(7) 나도 언젠가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세상을 호령하는 자리
(또는 부유하게 마음껏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에 올라갈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나의 인생은 결국 실패이며 불행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늘 불안하다.
(8) 하나님께선 다른 사람들은 많이 사랑하시고, 나만 덜 사랑하시는 것 같다.
위와 같이 간단히 정리한 8가지에 자신을 대입해 보았을 때
단 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있는 자가 맞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짜증이 난다고 해도 국가의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 앞에서,
아니 직장상사 앞에서조차 마음 내키는 대로 감정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도 마음을 숨기고, 억지로라도 그 앞에서는 굽실거리며
자신의 충성을 표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나의 거취, 나의 월급, 나의 이익과 불이익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앞에서도 거침없이 마구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교만한 자로서 윗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자,
또는 자신이 그 윗사람보다 높다고(낫다고) 생각하는 자,
또는 정신적인 질환(분노조절장애)을 앓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 대상이 직장상사라면 도저히 참기 힘들다며 퇴사를 결정하여
이미 사표를 써서 품안에 갖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조직폭력배 앞에서는 ‘분노조절장애’가 한 순간에 ‘분노조절잘해’로 바뀐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사춘기에 접어든 중/고등학생들은 아무리 짜증이 난 상태라 해도
막상 학교의 일진무리 앞에서는 눈도 못 맞추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순한 양이 됩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언제나 사랑해주는 부모 앞에서는
분노한 호랑이가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자신이 기분에 따라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절대 자신을 해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 그리고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사람 앞에선 마음대로 악한 모습을 보이는 태도는
정확히 말해 그 사람을 경히 여겨 우습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것들로 인하여 나빠진 기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생을 불평하여
하나님 앞에서도 선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여 경히 여기는 교만한 자이고,
또한 하나님만으론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반드시 세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마음을 먹겠다는 지극히 육신적인, 동물 같은 모습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숨기고 아닌 척, 거룩한 척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히 솔직하되 마땅히 지킬 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실 분이 전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을 가진 자인지
진지하고 솔직하게 영혼을 걸고, 자신의 모습을 겸손히 되돌아보십시다.
나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자,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로 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늘 감사하는 자,
나를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이제는 나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고 있어도
그것과는 아무 관련 없이 항상 하나님을 최고로 생각하며,
언제든지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는 예배와 예물을 올려드리는 자,
매일 하나님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온전히 순종하고 싶어 하는 자,
온전히 순종하고 열매를 맺기 위하여 계속 치열하게 싸우는 자(마귀와 싸우고, 나의 욕심과 싸우고),
내 기분이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 해도
조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과 순종과 법도를 지키기를 힘쓰며,
그 어떤 때라도 하나님께 만큼은 무례를 범하지 아니하는 자.
바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될 모습을 갖춘 자로서
언제나 피조물의 선(Line)을 지키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지친 날에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나버린 날에도,
세상적으론 자신의 인생이 절망적인 것 같아 보여 슬픈 날에도
하나님께 예배는 제대로, 찬송도 제대로, 예물도, 기도도, 말씀묵상도
변함없이 제대로 하기를 힘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을 모욕하거나 거절하는 말도 절대 입에 담지 않습니다.
마치 어린 아기가 서럽게 엉엉 울면서도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과자는 열심히 씹어 먹으면서 우는 모습과 비슷하게
마땅히 드려야 할 것들은 제대로 드리는 겁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가치관 최우선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자신이 지키고 있는 그 선은 점점 명확해집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며 금하신 죄에 민감해져서
죄를 짓고 싶지만 꾹 참는 낮은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이제는 자신도 미워하기에
사람이 보든 안 보든 순종을, 선함을 망설임 없이 선택합니다.
일시적인 감정과 기분을 기준으로 그것을 주인삼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선 안에서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인 것입니다.
청년을 넘어선 중년, 노년층은 자신 스스로를 어른스럽게 생각하여
이제 더 이상 어리숙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가 무척 많지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진짜 모습을 솔직하게 돌아보면,
그리고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정확히 진단해보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모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지난 평생을 그 시간에 예배 드려왔으니 분명히 예배는 빠지지 않고(가정예배도 드리고),
습관처럼 예물을 올리고,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듣고, 기도는 하고 있지만
세상의 것들 때문에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 해도
그것을 심각한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는 아이들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중심까지도 다 감찰하시는 분이시기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자신의 숨겨진 모습(스스로 숨긴 모습), 오래토록 고착화되어
스스로 인지하는 것조차 어렵게 된 모습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여 자신을 살펴보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는 순수한 모습으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여
매일 변화되어 성장해가는 사람이 구원에 한 걸음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각자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설정해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명예와 성취감, 거기서 파생되는 돈, 안전하고 안락하며 여유 있는 건강한 생활,
서로를 사랑하는 가족 또는 애인, 만족할만한 음식, 훌륭한 몸매, 취미 등등
‘이것만큼은 나에게 꼭 있어야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며 꼭 붙잡고 있는,
놓치기 싫은 육신적인 어떤 것이 최소 하나 이상은 있을 겁니다.
마 22:35-38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하나님께선 당신을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당신의 영원한 가족으로 삼을 자들을 찾으시기 위해서
과연 어떤 피조물이 나의 마음과 합하기를 애쓰는지,
세상의 육신적인 것들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피조물은 누구누군지,
어떤 자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고, 의지하며, 사랑으로 인내하며, 순종하는지
온 세상을 자세히 둘러보시면서 지금 찾고 계십니다.
그렇게 지금, 알곡과 가라지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최우선적인 사랑과 인내와 순종을 결단하여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십중팔구도 아닌 십이면 십, 분명히 마귀는 우리를 뒤에서 자꾸만 불러 세울 것입니다.
마귀의 그 수작을 미리 알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절대로 걸음을 멈추지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계속 하나님을 향해 앞으로만 나아가십시다.
지금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도 고달프고, 세상적으론 삶의 소망이 보이질 않으며,
자신을 늘 지지하며 사랑해주는 사람(소울메이트)이 한 명도 없어 외로움에 사무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제 슬픈 인생이 제발 기쁘고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을 자신의 가치관 최우선에 두며,
하나님만으로 온전한 만족과 행복함을 느끼고자 결단한 자에게
이 기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만으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며 갈망하는 제 모습이
너무나도 죄송스럽고, 한심하며, 답답합니다.
사람은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저의 이 잘못된 가치관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인정합니다.
가족들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아직도 육신적인 자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인생이어야 제가 안정적일 수 있고,
그것들이 없어지면 저는 솔직히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아직도 이런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이제는 오직 위대하신 하나님을 알며, 섬길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가 100% 만족되어 항상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고, 그렇게 단호히 결단합니다.
하나님, 제 슬픈 인생이 제발 하나님만으로 100% 기쁘고, 행복한
완전한 인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저로 인해 기뻐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제 인생의 유일한 목적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이 세상의 것들을 가장 사랑하여 중요하게 여기는,
즉 육신에 초점을 맞춘 자는 완전히 동일한 기도제목이라 해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 제발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나 이젠 제발 제가 바라는 인생을 살게 해주세요.
이 나이에 최소 얼마 이상은 주셔야죠.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왕이나 총리라는 높은 자리에도 앉혀 주셨고, 돈도 풍성하게 주셨잖습니까?
또 어떤 장로는 사업에 대성공하여 구제와 연보로 하나님의 일을 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들보다 부족한 게 특별히 뭐가 있습니까?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그동안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까? 평생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걸
하나님이 더 잘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저도 제발 성공하게 해주세요.
저도 하나님의 일을 훌륭히 해내고 싶어요. 주시기만 한다면야 저도 어려운 이들을 잘 도울게요.
그리고 저도 남들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와 인정을 받고 싶어요.
지금의 이 상태로는 전 너무나 불행합니다.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되서 너무 힘들고,
이제 예배도 제대로 못 드리겠고, 저 쓸 것도 부족해서 예물도 이거밖에 못 올리겠습니다.
솔직히 기도를 해도 제 기도는 들어주시지도 않는 것 같고,
말씀을 묵상해도 지금은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안 생깁니다.
하나님, 제발 저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제 인생에 부족한 것들이 다 풍성하게 채워져
저의 슬픈 인생이(성공과 돈과 인간의 사랑으로 인해) 기쁘고 행복한 인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묵상하고 그대로 된 줄로 믿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할렐루야!
저에게도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쓥니다!“
이제는 부디 우리의 영적수준을 높이십시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는
우리가 세상의 것들에 도저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반드시 세상 것들을 누려야만(어느 정도 소유해야만)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그 마음 자체가 마귀에게 이미 세뇌되어 버렸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요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의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이 말씀은 상징적인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서 아무 것도 없이 살아도, 오늘날로 치면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가족도 없고(또는 억지로 같이 사는 원수 같은 가족만 있고), 돈도 없고, 기댈 곳도 없고,
이제는 꿈도 없는, 즉 육신적으로는 보잘 것 없을지라도
그런 없어질 것들과는 아무 관련 없이 그저 하나님만으로 100% 만족하고, 행복하기에
마음이 진실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 사람이 바로
거지 나사로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또한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부와 명예와 사랑을 다 가진 사람인데도
여전히 변함없이 하나님만으로 온전히 만족하고 행복해하며,
자신에게 허락해주신 것들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보기 드문 사람들은
말씀에 등장하는 고넬료와 같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성령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는 사람입니다.
행 10:30-35, 44-48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한 번도 부유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하면 무조건 힘들고,
반대로 부유해지기만 하면 문제들이 다 해결되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부유한 이들도 인생에서 힘든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가난한 사람보다 더 힘든 고뇌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적게 맡은 자나, 많이 맡은 자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다른 것일 뿐
모두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동일합니다.
이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보다 활동반경이 넓기에
(즉 욕심을 따라 원하는 것은 거의 다 얻을 수 있을 것이기에)
세상의 유혹이 훨씬 더 많을 텐데도 변치 않고 늘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 자신에게 맡겨진 소유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제를 하는
고넬료 같이 살아가는 사람은 보기 드문 특별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가진 것이 없다며 ‘나는 가난해서 순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라며 원망을 하고,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세상의 것들에 대한 갈망이 온 마음에 가득하여
가난하면서도 욕심을 따르는 사람은
부유하면서 욕심을 따르는 사람보다도 못한 자입니다.
욕심에다 원망과 불평까지 더 했기 때문입니다.
즉 부유하든, 가난하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는 불신자인 셈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를 양극단에서 비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있는 자, 없는 자 사이의 적당히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는 감사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게 없는 것만 보면서 힘들어하며,
하나님께 육신적인 것들을 주시길 간구하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지금 어떻습니까?
오늘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사실상 없습니다.
원래 모든 인생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알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디폴트벨류(초기 설정값) 이기에 지금 뭐라도 입고 있다면,
입에 넣을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마 5:45 하
(45)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공기, 물, 햇빛 등을 누리고 있는 걸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신학용어로는 이것을 보편은혜라고 부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모든 것을 공급받는 피조물 앞에 당연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다 거두시면 모든 인간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혹은 최소 남들만큼) 갖고 싶은데 가지지 못해서,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데 그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워서, 충분히 누리고 싶은데 누리지 못해서,
인정받고 싶은데 무시를 당해서 짜증이 나고, 자신의 인생이 싫어지며,
원망과 불평과 염려로 하나님께 이젠 좀 많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에게 내려진 모든 은혜들에 감사할 줄 알며,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 있다는 최고의 은혜,
나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신비한 사랑,
언제나 나를 살펴주시며 인도해주시는 성령님의 보살핌 덕분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행복하여 감사하는 기도를 매일 올리고 있습니까?
누군가는 돈은 있는데 애정이 결핍되어 외롭고,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은 있는데 돈이 없어서 힘들고,
또 누군가는 존경받는 자리에 있지만 경제적으로 불만족스럽거나 외로워합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인생에서 자신에게 없는 것만 보지 말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자는 취지도 결국
‘하나님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기에 지금 있는 것에서라도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자.’는
‘카르페 디엠’(오늘을 즐기자), 즉 ‘세상행복주의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되면
결국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진리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 겁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생각한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역시 진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 부분은 억지로가 아닌 오로지 각자의 선택,
즉 각자 자신이 자유롭게 설정한 가치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우리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시는 분이 아닌 자유로운 의지를 주신 분이시며,
또한 모든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과 서로 영원히 사랑하며, 천국에서 함께 살게 될 가족들을 찾고 계신 겁니다.
이 땅에서 아주 잠시 누리고 싶은, 곧 없어질 세상 것들에
우리의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갈지,
아니면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지.
부디 현명하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이 모든 것을 가진
(혹은 거의 모든 것을 가진) 고넬료와 같은 사람에 가깝든,
아무 것도 없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사람에 가깝든
부디 가장 중요한 부분만큼은 놓치지 마십시다.
딤전 6:6-10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육신적 소망이 다 사라지고, 인간관계도 다 끊어지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움직입니다.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위해,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세상적인 성공을 향해 힘써 나아가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항상 사랑해줄만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며,
또한 과거 나를 최고로 사랑해주던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육신적인 공허를 달래보기 위해
여행도 가보고, 원하는 것에 돈도 써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보고, 취미생활도 해보지만
그것들 역시 순간적일뿐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에 힘들어 합니다.
육신적인 옛 자아를 가진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긴 하지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는 이들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 잠깐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즉시 다음 것을 채우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세상의 순간적인 쾌락들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여행도 계속 가고, 맛집도 꾸준히 찾아다니며, 원하는 물건들을 무한쇼핑하고,
자녀 교육에도 열을 올리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못하고, SNS도 꾸준히 업데이트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채울 수 없는 공허함과 가정불화를 핑계로
배우자가 있어도 비밀스레 애인을 따로 두고, 그것도 아니면 합리화를 하며 성매수를 합니다.
그렇기에 그것들을 계속 유지하게 해줄 돈을 그토록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엔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삶 속에 있는 문제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인생 때문에 너무 힘들고,
이대로는 도저히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며,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내가 원하는 인생이 되어야만 기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그리고 자신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면
이미 많이 세뇌되어 가치관이 오염된 것으로서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길수록 바로 잡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지 인지하여
과감하게 하나님 편을 선택하기로 결단하여 마음을 비워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로 살아갈 것을 결정한다면
우리를 사랑해주고 계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도우심 가운데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선 당신을 가치관 최우선에 두고,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인생을 선택한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며,
그 누구보다 우리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분으로서
우리를 최고의 길, 가장 행복한 길, 의미 있는 인생,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경말씀 전체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명확히 계시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임을 확언합니다.
그 분은 무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신 분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사랑의 증거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이제는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기적이 그의 삶속에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며, 세상의 것들이 잘 보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길 원하는 자에게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세상의 것들 때문에 너무나 힘들고, 고된 삶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죽음 이후에도 지옥의 불타는 작열통,
불속에서도 죽지 않는 벌레들에게 온몸을 파 먹히는 끔찍한 고통만 세세토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아 그 분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 한 분 외엔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완전하게 해줄 수 없으며,
예수님 외엔 그 무엇도 자신을 진심으로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 예수님을 최고로, 가장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행복해지고 싶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예수님께로부터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제는 나도 최고로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지고, 범사에 감사를 하게 되며,
고작 이 세상의 것들로 인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품게 되는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소유자,
아직 이 땅에 머물곤 있지만 이미 천국에서 살고 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해도,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된다 해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예수님만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이후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어
그 분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인생을 살게 되며,
죄를 짓고 싶지만 억지로 참고 있는 수준이 아닌 아예 죄를 미워하게 되고,
세상의 것들에 조금도 휘둘리지 않으며, 누가 뭐래도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처럼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그 행복과 감사는 그 어떤 존재도 우리에게서 영원히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세세토록 변치 않는 진리의 감사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오늘날 자신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지,
나의 기도와 내 인생의 목표는 어느 쪽에 가까운지,
과연 나는 행복한 사람인지 등에 관해 솔직히 살펴보고,
앞으로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인생을 살아갈지를 스스로 결정함으로서
각자에게 남은 시간동안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자로 살아가기로 다짐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의 모습을 이미 갖춘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머지않아 보이는 그 날에 부르심을 받아
공중에서 예수님을 반갑고 기쁘게 영접하며, 그 이후로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미 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3.04.30.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세상에서 부귀 영화 모두 잃어버려도 주의 평안 내가 받고 영생복을 얻겠네
2. 주도 곤욕 당했으니 나도 곤욕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뵈시면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려할 것 없도다
3. 내가 핍박 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 외에 기뻐할 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하니 기뻐할 것 뿐일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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